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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갈수록(김정호 곡)

by 김선웅

가을의 색채는 화려하다.

그러나 가을은 말한다. 이제 곧 안녕이라고.

그 시절, 이런 가을엔 책 한 권쯤 옆에 끼고 아무도 없는 길을 걸으며 세상과 자연, 젊음과 미래에 대한 독백을 했다.

벤치에 하나 둘 쌓이는 낙엽은 한 시절의 퇴장과 젊음이 또 잘라지는 것에 쓸쓸함이 엄습했다.

가을 편지를 고이 받아 줄 이성 친구와 낙엽 진 오솔길을 걷는 것은 자연과 어울리는 멋진 풍경이었다.

장독대에 떨어진 감잎을 보며 ‘오메, 단풍 들겄네’ 새삼 놀라는 시인(김영랑)의 정서나 밤늦은 들창가에 낙엽이 우수수 떨어지고 기러기 울어대는 연민, 그리워하는 마음은 사람들에게서 사라졌다.

그런 것들은 돈벌이도 안되고 생활에 꼭 필요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낭만과 정서는 다 어디 갔을까?

젊음과 낭만, 인생철학을 논하는 것은 시덥잖고 한심한 짓이 되어버렸다.

주식이나 부동산 대화가 현실적이고 부유한 것이 최고인 세상이다.


가을은 어느새 왔다가 단풍을 물들이고 곧 떠나겠노라 말한다.

요절한 가수 김정호의 '날이 갈수록' 가사가 떠오른다.

"가을잎 찬바람에 흩어져 날리고 캠퍼스 잔디 위엔 또다시 황금물결. 잊을 수 없는 얼굴, 얼굴~~ 가을이 가네. 젊음도 가네~(생략)"

이 곡은 당대에도 유명했고 TV '불후의 명곡'에서도 여러 가수가 리바이벌해 감동을 주었다.

나의 대학 시절 작은 캠퍼스에도 가을이면 노란 은행나무잎이 포근한 낭만과 시절이 또 가고 있다는 상실감을 같이 주었다.

그 상실의 시간이 참 많이도 흘러갔다.

이 가을, 나만 쓸쓸한 건 아닐 것이다.

그러나 다시 기다린다. 내년의 따사하고 파릇한 생명의 봄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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