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사무라이, 아들의 배를 가르다

아들의 뱃속에 떡이 있느냐!!

by 김선웅

사무라이, 아들의 배를 가르다

목근통신(木槿通信)은 제목도 어렵고 무척 오래전 책이라 생소할 수 있다. 목근은 ‘무궁화꽃’이다. 이 책은 기자이며 수필가인 재일교포 김소운(1907~1987)의 1951년 수필집인데 일본인의 습성, 심성, 한국을 모멸적으로 바라보는 시각 등 해방 후 한국인이 쓴 일본에 관한 인문학적 고찰의 압도적인 저서라고 생각한다.

일본 사회에 반향을 일으킨 이 책을 20대에 우연히 문고판으로 구입하여 정독하고 부분적으로는 두 번, 세 번 밑줄 쳐가며 읽었으며, 일본에 대한 인문학적인 관심을 갖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전엔 그저 일본을 침략국, 징용, 히로시마 원자폭탄, 경제대국 정도로만 생각하였다.

일본인의 근성으로 ‘앗살’ 한 것이 있다 예전엔 ‘앗살하다’는 말이 심심찮게 대화용어로 사용되었는데 요즘은 사라져 버렸다. ‘통 크게, 화끈하게’로 대체된 것 같다. ‘앗살’은 ‘맺고 끊는 것이 확실하게’,‘깨끗이’를 의미하는 일본어 ‘앗사리(あっさり)’에서 온 것이다.

출처 픽사베이

목근통신의 내용 중 일본의 사무라이 일화 두 가지이다.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아들의 배를 가른 실화이다.

「떡집 주인이 같은 마을에 사는 가난한 사무라이의 아들이 떡을 훔쳐 먹었다고 사무라이를 찾아가 돈을 내라고 했다. 사무라이는 아들에게 사실을 추궁하고 자초지종을 들었다. 아들은 그런 적 없다며 울며 말했다. 사무라이는 “비록 가난하지만 사무라이의 아들이 그럴 리 없다” 며 떡집 주인에게 아들의 결백을 주장하였지만 떡집 주인은 도둑질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사무라이는 아들을 떡집 주인에게 데리고 가 아들의 배를 가르고 뱃속에 떡이 없음을 확인시킨 후 겁에 질린 떡집 주인의 목을 베어 버리고 자신은 배를 찔러 자결하였다.」


47인의 사무라이가 주인의 복수를 하다

다음은 주인의 명예회복과 충성, 복수를 위해 목숨을 바친 ‘47인의 사무라이’ 이야기로 널리 알려진 내용이며, 이 실화는 주신구라(忠臣葬)라는 작품으로 발표되고 지금까지 가부키, 인형극, 시 등으로 각색되고 있는데 처음 접했을 땐 일본에서 이토록 유명한 일화인 줄 몰랐다.

「1701년 에도 시대, 아코藩(번 : 제후가 통치하는 영지)의 번주 아사노는 자신의 명예를 침해한 막부(幕府)의 의전담당관 키라 요시히사와 말다툼 끝에 칼을 뽑아 부상을 입혔다. 그는 쇼군 앞에서 감히 칼을 빼어 든 죄로 할복을 명 받고 죽게 되며 막대한 영지를 몰수당한다.

아사노를 모시던 47인의 사무라이는 번주가 억울하게 죽고 땅을 몰수당해 갈 곳이 없게 되자 주군의 복수를 위해 절치부심하며 일부러 녹슨 칼을 차고 다니고 술에 절어 유곽을 전전하는 등 복수의 칼을 감춘 채 때를 기다렸다. 자금 마련을 위해 아내를 팔고 딸을 원수의 시녀로 들여놓아 정보를 얻었으며 비밀누설이 우려되자 숙부를 살해하기도 한다. 그들은 눈이 내리는 밤 기회를 얻어 주군의 원수인 키라 요시히사를 살해한 후 그 목을 창에 꿰어 주군의 무덤에 바친다.

주군에 대한 충성과 복수에 일본 사회는 칭송이 자자했지만 막부는 법에 따라 이들을 처단한다. 다만 참수형을 택하지 않고 할복 자살을 명한다. 명예와 자존심을 지켜 준 것이다.」

출처 픽사베이

이 두 가지 사례는 앗살하다.

그 당시 일본 사회에서 사무라이의 명예는 목숨보다 상위의 가치였다. 일본의 무사도 정신은 국민 도덕의 골격을 형성해 왔다. ‘꽃은 벚꽃, 사람은 무사’라는 일본 속담이 있다.

젊은 시절엔 이런 글을 읽고 멋지다, 무서운 민족성이다 하는 걸 느꼈지만 지금은 생각이 다르다.

명예를 지키기 위해 아들의 배를 가르고 떡집 주인을 죽인 후 자결하는 사무라이의 그 정신은 당시 일본 사회의 보이지 않는 율법, 강요된 도덕, 가치였을 것이다. 그러나 무고한 두 명의 목숨을 뺏고 자신의 목숨을 쉽게 버릴 만큼 그 명예와 가치가 중요했는지는 한국인으로서, 현대적 관념으로서는 정의롭지도 가치적이지도 않고 폭력적이며 비윤리적이다.

47인 사무라이의 행태와 정신은 태평양 전쟁 때 카미카제를 연상케 하고 일본이 추구했던 군국주의, 호전성, 잔인함과도 그 맥을 같이 한다.

아내도 팔고 딸도 희생시키는 칼잡이 사무라이 문화를 미화하거나 맹신적인 충성, 복수를 선망할 건 아니다. 하지만 선별적으로 충의, 복종, 명예의 사무라이 정신을 현대화하면 신의, 보답, 응징 등으로 변형해도 될 것 같다.

근래 우리 사회에서 발생하는 무차별 살인, 폭행, 사기, 가짜뉴스에 피해자는 오롯이 막대한 신체적,물질적 상처를 입어도 가해자에게 관대한 심판이 내려지고 범죄자가 큰소리치는 이런 현상에 앗살하게 가차 없는 심판을 했으면 하는 나의 심정이 불합리 한 건 아닐 것이다. 정신, 물질을 회복할 수 없는 피해자가 너무 많으며 근본 질서와 가치관이 뒤틀리는 세상이다. ♣

keyword
작가의 이전글날이 갈수록(김정호 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