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여행자의 수다
지금까지 우리는 시계 산업의 역사와 현재, 미래, 그리고 시계의 기술적인 부분까지 꽤나 진지한 이야기들을 많이 나누었다. 이번 챕터에서는 무거운 이론이나 복잡한 분석 대신, 좀 더 편안하고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시계와 관련된 소소하지만 흥미로운 잡담들을 풀어놓으려 한다. 마치 오랜 친구와 시계 가게 쇼윈도를 구경하며 나누는 대화처럼, 혹은 시계 애호가들의 비밀스러운 수다처럼 말이다. 브랜드 이야기부터 디자인 철학, 시계 구매 팁, 그리고 개인적인 추억까지. 이 유쾌한 시간 여행에 여러분을 초대한다.
“시계 하나 사려고 하는데, 뭐가 좋을까요?” 필자가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다. 사실 이 질문만큼 답하기 어려운 질문도 없다. 시계는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이 반영되는 아이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몇 가지 기준을 가지고 접근하면, 수많은 시계들 속에서 ‘나만의 파트너’를 찾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것은 역시 TPO(Time, Place, Occasion – 시간, 장소, 상황)다. 매일 정장을 입고 출근하는 사람에게 화려한 색상의 대형 스포츠 시계는 어울리지 않을 것이고, 주말에 아웃도어 활동을 즐기는 사람에게 얇고 섬세한 드레스 워치는 부담스러울 수 있다. 격식 있는 자리에는 심플하고 클래식한 디자인의 시계가, 캐주얼한 자리에는 좀 더 개성 있고 활동적인 디자인의 시계가 잘 어울린다. 물론, “나는 내 방식대로!”를 외치며 TPO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시계를 착용하는 것도 멋진 일이다. 하지만 기본적인 TPO를 고려한다면 더욱 센스 있는 시계 생활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다음은 예산이다. 시계의 가격대는 그야말로 천차만별이다. 몇만 원짜리 패션 시계부터 수십억 원을 호가하는 하이엔드 컴플리케이션 시계까지. 무조건 비싼 시계가 좋은 시계는 아니며, 중요한 것은 자신의 예산 안에서 최대한의 만족감을 얻을 수 있는 시계를 선택하는 것이다. 첫 시계를 구매하는 사회 초년생이라면 50만 원에서 100만 원 사이의 합리적인 가격대의 쿼츠 시계나 입문용 기계식 시계를 추천한다. 세이코, 시티즌, 티쏘, 해밀턴, 미도와 같은 브랜드들은 좋은 선택지가 될 수 있다. 예산이 좀 더 여유롭다면 론진, 오리스, 태그호이어, 튜더 등으로 눈을 돌려볼 수도 있고, 본격적인 명품 시계의 세계로 입문하고 싶다면 오메가, 브라이틀링, 까르띠에, IWC 등을 고려해 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남들이 좋다고 하는 시계보다는, 내가 정말 마음에 들고 오랫동안 애정을 가지고 착용할 수 있는 시계를 선택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개인의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이다. 시계는 그 사람의 개성을 드러내는 중요한 패션 아이템이다. 미니멀하고 단순한 디자인을 좋아하는지, 아니면 화려하고 복잡한 디자인을 선호하는지. 가죽 스트랩의 클래식함을 좋아하는지, 아니면 메탈 브레이슬릿의 견고함을 선호하는지. 활동적인 스포츠를 즐기는지, 아니면 조용히 책 읽는 것을 좋아하는지. 이러한 자신의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을 곰곰이 생각해 보고, 그에 맞는 시계를 선택해야 후회가 없다. 마치 평생 함께할 친구를 고르듯 신중하게, 하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나만의 시계를 찾아보자.
“롤렉스 하나쯤은 있어야지.” “파텍 필립은 성공한 남자의 상징이야.” 명품 시계는 종종 부와 성공, 그리고 사회적 지위를 나타내는 아이콘으로 여겨진다. 실제로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명품 시계들은 그 이름값만으로도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 엄청난 가격표 뒤에는 과연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을까?
명품 시계의 가격은 단순히 원자재 값과 인건비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여기에는 브랜드가 수십, 수백 년간 쌓아온 역사와 전통, 독보적인 기술력과 장인정신, 그리고 끊임없는 연구개발 투자와 혁신적인 디자인, 마지막으로 막대한 마케팅 비용과 브랜드 이미지 관리 비용까지 모든 것이 포함되어 있다. 특히 인하우스 무브먼트 개발, 희귀 소재 사용, 고도의 컴플리케이션 기능 탑재, 수작업으로 이루어지는 섬세한 마감 처리 등은 가격을 상승시키는 주요 요인이다. 또한, 한정 생산을 통해 희소성을 높이는 전략도 가격에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요소들이 명품 시계의 가치를 높이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때로는 브랜드의 명성에 가려져 실제 가치보다 과도하게 가격이 부풀려지는 경우도 없지 않다. 유명 연예인을 동원한 화려한 광고, 고급스러운 매장 인테리어, VVIP 마케팅 등은 모두 소비자 가격에 전가될 수밖에 없다. 또한, 특정 브랜드의 특정 모델이 투기 대상으로 변질되어 리셀 시장에서 정가보다 훨씬 높은 가격에 거래되는 현상은 브랜드의 진정한 가치를 왜곡시키기도 한다.
필자는 감히 말하고 싶다. 무조건 비싼 시계가 좋은 시계는 아니며, 브랜드 이름값에만 현혹되어서는 안 된다고. 오히려 합리적인 가격에 뛰어난 품질과 독창적인 디자인을 가진 숨겨진 보석 같은 시계 브랜드들이 세상에는 많다. 최근 주목받고 있는 수많은 마이크로 브랜드들이나, 오랜 역사와 기술력을 가지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저평가된 가성비 좋은 브랜드들을 찾아보는 것도 시계 생활의 또 다른 즐거움이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브랜드의 명성이나 가격표 뒤에 숨겨진 시계 본연의 가치와 그것이 나에게 주는 만족감을 찾는 것이다.
필자는 평생을 시계와 함께 살아오면서 수많은 시계 디자인을 접해왔다. 유행처럼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디자인도 있었고, 수십 년이 지나도 변치 않는 아름다움을 간직한 디자인도 있었다. 개인적으로 필자는 시대를 초월하는 ‘클래식’ 디자인에 큰 매력을 느낀다. 예를 들어, 간결한 직사각형 케이스와 로마 숫자 인덱스가 특징인 까르띠에의 ‘탱크(Tank)’, 앞뒤로 뒤집히는 독특한 케이스 구조를 가진 예거 르쿨트르의 ‘리베르소(Reverso)’, 기능적이면서도 우아한 디자인의 파텍 필립 ‘칼라트라바(Calatrava)’ 등은 수십 년, 길게는 백 년 가까이 그 디자인의 본질을 유지하며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이러한 시계들은 유행을 타지 않고 어떤 옷차림에도 잘 어울리며, 세월이 흘러도 그 가치가 변하지 않는다.
미니멀리즘의 극치를 보여주는 단순한 디자인이나, 반대로 모든 것을 담아내려는 듯한 화려하고 복잡한 맥시멀리즘 디자인도 나름의 매력이 있다. 중요한 것은 디자인이 시계의 기능과 조화를 이루고, 착용자에게 편안함과 만족감을 주는 것이다.
최근 시계 디자인 트렌드를 보면, 과거의 유산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복각(復刻) 모델’들이 꾸준히 인기를 얻고 있으며, 친환경 소재를 사용하거나 지속 가능한 가치를 담은 디자인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또한, 스마트워치의 영향으로 전통적인 시계 디자인에 디지털적인 요소를 접목하려는 시도들도 나타나고 있다. 앞으로 시계 디자인은 더욱 다양하고 실험적인 방향으로 진화해 나갈 것이며, 이는 시계 애호가들에게는 더 큰 즐거움을 선사할 것이다. 필자 역시 새로운 디자인 트렌드를 주시하면서도, 변치 않는 클래식의 가치를 담은 시계를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다.
아무리 좋은 시계라도 제대로 관리하지 않으면 금방 망가질 수 있다. 소중한 내 시계를 오랫동안 최상의 상태로 유지하기 위한 몇 가지 관리법과 착용 매너를 알아보자.
•기계식 시계 vs. 쿼츠 시계 관리법: 기계식 시계는 보통 3~5년에 한 번씩 ‘오버홀(Overhaul, 분해소지)’이라는 정기점검을 받아야 한다. 무브먼트를 완전히 분해하여 세척하고, 마모된 부품을 교체하며, 윤활유를 다시 주유하는 과정이다. 이는 시계의 수명을 연장하고 정확성을 유지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수동 기계식 시계는 매일 일정한 시간에 태엽을 감아주는 것이 좋으며, 오토매틱 시계는 와인더(Winder)에 보관하면 편리하다. 쿼츠 시계는 보통 2~3년에 한 번씩 배터리를 교체해 주면 되는데, 배터리가 방전된 채로 오래 방치하면 누액이 흘러 무브먼트가 손상될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일상생활 속 주의사항: 시계는 물, 자성, 충격에 약하다. 방수 기능이 있는 시계라도 뜨거운 물이나 비눗물은 피하는 것이 좋으며, 샤워나 사우나 시에는 착용하지 않는 것이 안전하다. 자성이 강한 물건(스피커, 자석 잠금장치가 있는 가방 등) 가까이에 시계를 두면 무브먼트에 영향을 주어 오차가 발생할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또한, 격렬한 운동을 하거나 시계에 강한 충격이 가해질 수 있는 상황에서는 시계를 풀어두는 것이 좋다.
•스트랩 관리도 중요: 가죽 스트랩은 땀이나 물에 약하므로 여름철에는 착용에 주의하고, 땀을 많이 흘렸을 경우에는 부드러운 천으로 닦아 건조해야 한다. 메탈 브레이슬릿은 주기적으로 부드러운 칫솔과 중성세제를 이용하여 틈새의 이물질을 제거해 주면 깨끗하게 사용할 수 있다. 러버 스트랩은 비교적 관리가 용이하지만, 직사광선에 오래 노출되면 변색되거나 경화될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이처럼 약간의 관심과 정성만 있다면, 당신의 시계는 오랫동안 변치 않는 아름다움과 정확한 시간으로 당신과 함께할 것이다.
결국 시계는 단순한 시간 확인 도구나 값비싼 액세서리를 넘어, ‘나’라는 사람을 표현하는 하나의 방식이자, 나의 취향과 가치관, 그리고 살아온 이야기를 담고 있는 ‘손목 위의 작은 자화상’과도 같다. 당신의 손목에는 지금 어떤 시계가 채워져 있는가? 그리고 그 시계는 당신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가?
이처럼 시계에 대한 잡담은 끝없이 이어질 수 있다. 하지만 이제 슬슬 마무리할 시간이 된 것 같다. 다음 마지막 챕터에서는 이 모든 이야기를 갈무리하며, 우리가 왜 시계를 배우고 시계 사업을 더욱 발전시켜야 하는지에 대한 궁극적인 이유와 희망을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부디 이 짧은 잡담이 독자 여러분의 시계 생활에 작은 즐거움과 영감을 더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