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근 모임에 나갔을 뿐인데 15

요한복음

by 황인섭

이단상담소 2회 차.

달달한 맛은 사람의 경계심을 녹일 수 있는 쉬운 길일 것이다.

고등학생시절 교무실에 잠시 방문했을 때,

선생님께서는 던킨도넛을 나눠주셨다.

다른 선생님께 나눠드리려고 다량을 사 왔는데 운 좋게 내가 눈에 띈 것이다.

단 음식을 그리 즐기지 않지만 그때 그 도넛은 기억에 남을 정도로 맛이 좋았다.

예상치 못 한 단 맛.

우연히 좋은 일이 생긴 것과 유사한 기분인 듯하다.

이 때문에 이단상담소로 향하는 내 손에는 던킨도넛 박스가 들려있었다.

도착해 앉은자리에 놓인 안내문에

‘상담예약시간 10분 전에 장소에 도착해 주세요’

라는 글이 3분 지각한 나의 원망이 도넛을 향하게 하긴 했지만.


2-1 이단교리 파훼

상담사는 저번 시간과 다른 분이 입장하셨다.

이제부턴 본격적인 수업을 진행하는 강사가 나오는 모양이다.

이들에게는 내가 어떻게 보일까.

동어반복을 할 수밖에 없었다.

내 상황과 성향을 간략히 설명했다.

저번 시간에는 훨씬 더 자세한 설명을 했지만 부족한 부분이 있었다.

이번 시간에는 훨씬 간략하지만 더 중요한 성향설명을 덧붙였다.

‘신천지를 포함한 어떤 종교도 쉽게 믿어지지 않음‘


수업내용은 이들의 입장에선 적절한 설명이긴 했다.

신천지의 종말론, 윤회사상 등을 비판하고 성경 내용 자체에 집중해야 한다는 복음주의적 사상이 주를 이뤘다.

다만, 무신론자인 내가 받아들이기에는 합리성에서 신천지가 더 우세하다고 느껴졌다.

이런 부분을 설명했더니 의외로 강사는 동의했다.

신천지의 교리는 합리적으로 보이는 것이 맞다.

그 끝에 가야지만 결정적 불합리가 등장한다.

교주는 재림예수이며,

신도는 부귀영생하며,

세상은 종말 한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진심으로 믿고 따른다고 해서 그들을 저지할 권한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이런 믿음만으론 아무에게도 물리적인 악영향은 끼치지 않는다.

(나에겐 약간의 피해가 오긴 했지만)

사실 이런 생각이 나를 힘들게 한다.

고민 없이 그들을 악으로 단정 짓고 싶은데,

그 근본을 욕하기는 싫은 마음이 크다.

소위 ‘사람은 착해’를 입에 달고 사는 사람이다.


신천지의 윤회사상은

구원자 등장 - 건국 - 배반 - 심판

이렇게 반복된다고 한다.

여러 종교역사적 근거를 들어 이런 형태가 반복돼 왔다고 첨언한다.

아마 교주가 사망한다 하더라도 다시 새로운 구원자를 등극시킬 것으로 보인다.


이 논리의 약점은 예수 또한 배반을 한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재림예수라는 논리로 만연한 기독교 신앙에 편승하는 전략을 취한 신천지에서는 부적합한 교리다.

이런 점을 강사도 동의했지만 이미 심취한 이들에게는 통하지 않는 지적이라고 한다.


2-2 성경교육

수업을 듣다 한 시간 반정도가 지나니 강사가 교체되었다.

새로 들어온 강사는 성경교육 부분을 담당한다고 한다.

성경교육은 솔직히 견디기 힘들다.

신천지와 그 뉘앙스가 상당히 유사하다.

1교시에서 이단 교리를 비판하다가 2교시에서 그 이단과 비슷한 논리를 전개한다.

특히 구원으로 향하는 길은 오직 ‘믿음’이라는 주장은 내 말문을 막았다.

재채기를 작게 하려고 노력하다 결국 안 나와버리는 원리로 말문이 막혔다.

‘아무리 착하게 살아도 절을 다니면 지옥에 간다는 말인가?’


나는 예수를 존경한다.

그래서 당시 예수가 그런 의도로 믿음을 주장하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예수는 충분히 본성이 착한 사람들이 무지에 의해 핍박받는 모습을 보고 안타까워했을 것이다.

‘너희는 충분히 선한 존재니 공부가 힘들다면 그저 나를 믿어라 ‘

라는 의미였을 것이다.

같은 논리로 불교에서는 관세음보살,

정치에 대입하면 대의민주주의가 된다.

일반 시민이 모든 정책과 법에 달관할 수 없으니 믿을 만한 사람을 뽑아 세우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해석하는 것이 기성 교회 기준으로 이단에 속할지도 모르겠다.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지 원하지 아니하는 도다 - 요한복음 5장 40절

( 해석은 두 가지다 1. 너희(바리새인)에게 줄 영생은 없으니 오지 말라, 2. 영생을 얻기 위한 마음으로 다니지 말라 )


마지막으로 강사에게 확인 차 하나 물었다.

“안수기도 믿으시나요? 목사가 손 대면 기절하는 거요”

“아뇨, 저희는 그런 건 하지 않습니다”

“그럼 됐네요. 다음 주에 뵐게요 “

다행히 바란 대답이 돌아왔다.

믿음만을 강조하려면 최소한 그 믿음이 수행하는 과정이라고 여겼으면 좋겠다.

자신은 선택받았다는 오만함은 증오스럽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