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심병
친구가 성인 ADHD 판정을 받았다는 소식이다.
그것도 꽤 중증으로.
꽤 오랜 시간 전화를 부여잡고 이야기를 들었다.
스스로 문제의식을 느껴 정신과로 가 상담과 충동테스트를 해 봤다고 한다.
약을 받고 복용해 보니 너무 좋더라며,
‘조금 더 일찍 알았더라면 인생이 좀 더 나았을 텐데’
라는 후회를 느낀다고 한다.
나는 가능한 가까운 사람일수록 솔직하게 대하고 싶다.
내가 가진 반문을 물어보고 상대의 입장을 납득하고 싶다.
“그 테스트라는 거, 혹시 뇌 CT 같은 건 안 찍냐?”
뇌의 특정 부분이 비활성, 과활성 된다는 증거만 있다면 결과를 신뢰할 수 있다.
“그런 건 안 찍고 컴퓨터로 테스트했어. 화면이 바뀔 때마다 클릭하다가 특정색에서 클릭하지 않는 테스트인데 5개 이상 틀리면 ADHD인데 나는 27개 틀렸더라고”
늘 말하고 다니지만 나는 심리학을 잘 믿지 않는다.
이런 류의 테스트는 오류일 가능성이 있다.
어릴 적 시력테스트에서 2.0을 받기 위해 미리 검사지를 외웠었고,
한 번은 안경을 쓰고 싶은 마음에 일부러 0.3을 받아냈다.
물론 이런 식이 효율적이고 색약검사처럼 다른 대안이 없을 수도 있다.
“네가 거기까지 갔다는 건 스스로 ADHD가 있다 생각해서 간 거니까,
테스트에서 더 충동적으로 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친구는 기가 차다며 그건 남을 분석대상으로 보는 선민의식이라며 따졌다.
나는 선민의식이 내 삶의 이유 중 하나라고 인정하고 더 극렬한 주장을 이어갔다.
“치료비용은 얼만데? 약 팔아먹으려는 거 아니야?”
치료비용은 약뿐이며 약은 한 달에 만원도 안 나온다고 말하며 언짢은 기분을 표현했다.
나는 스스로 조금 민망해져 자책하는 마음에 물었다.
“혹시 의심병도 정신질환인가?”
“어 그거 병이야”
모임장과 단 둘이 대화할 시간이 필요했다.
여럿은 위험하다.
주말 동안 혹시나 싶어 사적만남 요청을 기다렸다.
연락은 오지 않았다.
결국 수업날이 되어서야 모임장은
"몇 시에 도착해?"
나는 수업 한 시간 전에 먼저 근처로 가 기다릴 것이라고 말했다.
역시 혹시나 잠시 대화할 시간이 있을까 싶어서였다.
결국 모임장은 수업 시작 15분 전 자리를 잡아놨으니 장소로 올라오라는 연락을 해왔다.
'쓰잘데기없는 수업 한 번 더 들어야 되네'
이번엔 맨 앞자리를 배정받았다.
모임장은 내 노트까지 챙겨두고 미소로 날 맞이했다.
'저 얼굴이 오늘 일그러지겠구나'
솔직히 미안한 마음이었다.
내가 압박을 하면 실토할 테고 그랬을 때 그녀가 겪을 심적 고통을 떠올렸다.
재킷 양쪽 주머니에 유사시를 대비한 철제 너클을 넣고 오긴 했지만.
또또또 또 또 똑같은 반복 세뇌 학습
편견과 선입견을 가르쳤던 저번 시간을 되새기며 수업은 시작됐다.
예수가 인정받지 못했던 이유는 바리새인들의 편견과 선입견 때문이라고,
갈릴레오처럼 새로운 진리를 주장하여 사회로부터 지탄받았다고,
(갈릴레오가 교회로부터 탄압받았다는 것은 오해라는 주장이 신빙성을 얻고 있다)
수준급의 추리소설 작가처럼 적절한 떡밥회수로 새로운 진리를 받아들일 것을 유도하고 있다.
본인들의 진리는 패러다임의 전환이며,
이로 인한 세상으로부터의 핍박과 오해를 받고 있다는 암시다.
'니들이 예수급의 새로운 진리라고?'
또 확증편향을 주제로 수업을 이어갔는데,
확증편향이란 믿고 싶은 것만 믿고
'니들 얘기잖아'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디어 디톡스가 새로운 정보를 차단하는 거잖아'
그리고 저번부터 신경 쓰였던 수업강사의 습관.
본인이 강조하고 싶은 포인트마다 코를 찡긋거리는 표정.
참아야 한다.
참을 인자 세 번이면 너클질도 면한다.
수업은 내 불심을 가늠하며 종료됐다.
이어진 전담강사와의 상담수업.
설문지를 작성하며 대충 농담거리나 던지며 괜찮은 척했지만,
내 머릿속은 모임장을 어떻게 추궁할지를 놓고 무한한 가능성을 반복 중이었다.
설문지 작성이 끝나고 전담강사가 우리 둘에게 다가왔다.
"다음 주에 일정보고 같이 식사 한 번 해요"
심장이 1미리정도 내려앉았다.
아마 다음 주부터는 볼 일이 없을 것이라는 예감 때문이다.
거짓부렁으로 알겠다고 답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집으로 바로 가?"
간단히 바쁜지를 묻는 질문이었다.
모임장은 주행신호와 보행신호가 바뀌듯 잠깐의 텀을 두고 집으로 바로 간다고 대답했다.
'집으로 안 가는 모양이군'
어차피 상관없다.
사상 최악의 형편없는 추궁이 시작됐다.
아, 결심은 시작은 요란하나 끝은 초라하니 설익은 열매는 나뭇가지에 달려있지만 영글면 땅에 처박히는 것과 같구나 - 햄릿
나 "다음 주 식사는 같이 못 하겠는데?"
모임장 "아니, 왜??"
(목소리가 꽤나 크다.)
나 "이제 안 나올 것 같은데?"
모임장 "누가? 왜?"
(내 말의 무게를 눈치챈 듯 최대한 자연스럽게 대답하려는 노력이 보인다)
나 "이제 재미가 없는데?"
모임장 "헤엑 진짜? 어떤 부분에서 재미가 없는 거지?"
나 "원래 다 알고, 재미로 무슨 소리하는지 들어 보려고 했는데 이제 재미마저 없네"
모임장 "뭐가? 뭘 알고, 재미가 없어?"
나 "교회 이름 뭔데"
모임장 "뭐가?"
나 "저기 교회 이름 뭔데"
모임장 "교회 이름이 뭐야?"
(적당한 대답을 생각할 시간을 끌기 위해 질문을 질문으로 대답하고 있다)
나 "저거 주관하는 교회가 있을 거 아니야"
모임장 "그건 모르지 나는, 교회에서 주관하는 거야?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나 "모르면 됐고, 참고로 알려준 번호는 멀티넘버니까 괜히 나중에 엉뚱한 사람한테 전화해서 고소 먹지 마"
(아니었다. 진짜 내 번호였다.)
모임장 "허어 뭐야? 나 전혀 못 알아먹겠는데?"
나 "못 알아먹으면 어쩔 수 없고 난 내일부터 연락 안 받을 거야"
모임장 "뭐야? 나 이런 경우는 처음인데?"
나 "그래? 중간에 눈치챈 사람이 없단 말이야?"
모임장 "응"
나 "내가 볼 때는 눈치채기가 너무 쉬운데"
모임장 "나 완전 아무것도 이해 못 하겠어. 딴 걸 다 떠나서 연락을 안 본다는 건, 고등학교 때 나 너랑 절교할 거야 이런 거 이후로 처음 있는 일인데"
허탈해서 웃었다.
알고 있다 말하면 실토할 것이라는 생각과는 반대였다.
내 입으로 그녀의 정체를 말하기는 정말 마지막까지 꺼려졌다.
모임장 "내가 이해하고 있는 거 맞아? 앞으로 연락 안 할 거니까 받지 마. 약간 이런?"
그거겠냐고.
순간 눈앞에 신천지 남자신도 셋이 포장마차에서 간식을 먹고 있는 것이 보였다.
딱 한 번 그들의 맞은편에서 수업을 들은 적이 있다.
최소한 그들은 지나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여기선 얼굴 팔릴까 봐 말을 못 하겠고..."
모임장 "난 오히려 네가 뭘 알 수 있게끔 말해줘야 대답을 해줄 텐데"
나 "신천지잖아"
모임장 "여기가?? 난 전혀 몰랐는데?"
나 "모를 수가 없어"
모임장 "왜? 알았으면 나는 이거 안 들었겠지"
나 "한참 전부터 알고 있었고 나름 상황이 재밌어서 들어보려 했는데 오늘 들어보니까 앞으로도 별 재미는 없을 것 같네"
모임장 "일단 난 되게 당황스럽고, 네가 예측하듯이 말을 하는데 내가 다 알고 있다고 생각을 하는 거잖아? 나는 이게 교회에서 주관한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는데? 난 교회 다니잖아, 교회에선 이렇게 가리고 안 해"
(교회에선 이렇게 가리고 안 하는 걸 아는 사람이, 어느 교회에서 주관하는지 생각을 안 해본단 말인가)
나 "네 말대로 교회에서 하면 가리고 안 하지"
모임장 "내가 연극했다는 소리면 난 너무 기분이 안 좋은데"
나 "나는 그래도 말하면 인정할 줄 알았는데, 생각하곤 다르네"
모임장 "허어.."
나 "처음 수업 온 날, 강사가 나한테 와서 불편한 거 없냐고 물어보고 너한텐 안 물어보더라. 설정상 너도 처음 왔는데"
모임장 "설정상이 뭐야 도대체"
나 "너네 말대로면 너도 처음 왔는데 너한텐 왜 안 물어보냐고"
모임장 "난 일단 기억도 안 나고, 네가 확정 지어서 거길 다닌다고 말하는 게 기분이 안 좋아. 나중에 물어보면 알 수 있는 문제겠지만"
나 "일단 거기 주소, 기사로 뜨고, 신천지 위장센터로"
(아마 나를 기자로 착각한 듯하다. 나는 기사를 봤다는 의미였는데, 그녀는 기사로 뜬다는 예고로 받아들였다.
모임장 "네가 얘기하는 거는 난 진짜 모르는 얘기야, 언니한테 한 번 물어볼게. 내가 다니는 교회로 데려가도 넌 안 믿을 거잖아. 난 굉장히 기분 나빠. 오해를 받는데 기분 안 나쁠 사람이 있을까?"
나 "오해라고? 나는 오래전부터 의심하고 봤기 때문에, 수상했던 부분 다 글로 적혀있어"
모임장 "니 성격상 뭘 한다는 건지 모르겠지만, 네 말대로면 내가 기사에 나고 그러진 않겠지?"
(공포에 떨고 있다)
나 "특정성은 다 제거해 놨어"
(어차피 멋대로 착각한 거 즐기자)
모임장 "난 그 말을 믿을 수가 없는 게, 그동안 찍었던 사진 하며. 단정 짓는 태도를 보면.."
나 "기사로 안 낼게"
모임장 "너무 어이가 없는 게, 난 살면서 그런 오해를 받은 적이 한 번도 없어"
나 "그럼 난 기분이 좋네. 내 통찰이 특별하다는 거니까"
모임장 "나한테 한 번 물어본 적이라도 있어?"
나 "물어보면 안 되지. 다 준비해서 설득할 텐데"
모임장 "난 그래도 잘 맞는 이성친구가 생겼다고 생각했는데,
네가 이미 결단 내린 게 너무 기분 나빠"
나 "난 그래도 너는 아니라고 끝까지 변호했어 내 친구한테"
모임장 "다른 건 다 모르겠지만. 일단 난 아니야"
모임장에게 내가 본 위장센터 주소가 적힌 기사 링크를 전송했다.
모임장은 곧바로 스마트폰을 들었다.
내가 봤다는 기사를 열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누군가를 여기로 부르고 있는 걸까?
마지막 말을 남기고 차가 있는 방향으로 향해야 했다.
나 "이제 가야겠다. 근데 난 진짜 응원해. 네가 나 속였다고 솔직하게만 말했어도 계속 다녔을 수도 있어. 갈게"
모임장 "그래. 가라 가. 혹시 궁금하면...."
마지막까지 수상한 말을 남기는 모임장을 뒤로하고,
지하철역 앞에서 싸우는 연인을 구경하듯 우리를 구경하던 할아버지와 눈이 마주쳤다.
할아버지는 조금 소리 내어 웃으며 눈을 피했다.
역시, 이 사태의 진짜 승자는 저 할아버지다.
30분가량의 명작 단편 영화를 5D로 즐기고 있다.
연륜은 무시하지 못한다.
차로 향하던 중 스스로 크나큰 실수를 깨닫고는 즉시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크나큰 실수란 주차위치다.
차를 신천지 위장센터 뒤편에 주차해 뒀다.
나는 내가 갑자기 실종되면 찾는 사람에게 포상금 천만 원을 지급하겠다는 말을 주변에 하고 다녔는데,
전화를 받은 친구에게는 긴급포상금 천오백만 원을 불렀다.
친구에게 주소를 말하고 골목을 빙빙 돌아서 차로 향했다.
주머니 속 너클은 상시대기 상태로 끼고 뒤를 10초마다 돌아보며 기어가듯 천천히 갔다.
사실 그들이 그런 짓까지 벌이진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내가 본 그들은, 의도는 착한 사람들이며,
거짓말을 제외하면, 직관적으로 나쁜 행동은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극렬분자는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에 주의를 최대한으로 기울였다.
집으로 돌아와 그녀에게 보낸 기사를 다시 살폈다.
그런데.
주소가 다르다.
내가 갔던 곳은 기사에 적혀있지 않았다.
다른 기사를 모두 뒤져봐도 내가 갔던 곳이 신천지 위장센터라는 기사는 없다.
착각이었다.
딱 한 번 가본 장소를 길치가 로드뷰로 찾았다는 생각은 오만했다.
그저 비슷하게 생긴 근처 건물을 착각했다.
내가 보낸 기사를 보고 그녀는 무슨 생각을 할까
'주소가 어디 나와있다는 거야?'
아니면
'주소가 안 나와 있는데 어떻게 알아차린 거야?'
일까.
내가 큰 죄를 저질렀을 수도 있다.
확신은 100%에서 90%로 내려갔다.
그녀가 인정하지 않은 현재 상황에서 100% 확신을 갖기 위한 방법.
어쩌면 처음부터 갔어야 할 모범답안.
이단상담소로 연락을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