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근 모임에 나갔을 뿐인데 11

디톡스

by 황인섭

서점을 돌아다니다 눈에 띄는 한 책이 있었다.

'유튜브는 책을 집어삼킬 것인가'

생각해 본 적 없는 문제였다.

유튜브가 지식매체를 대체할 수단이 될 수 있을까?

'매리언 울프 - 다시 책으로'

에서는 책을 읽지 않는 것은 문맹이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과거에는 글을 알지 못해 하층민으로 살아갔다면,

현대에는 글은 알지만 책 읽는 것을 버티지 못해 하층민으로 살아간다는 주장이다.

썩 틀린 주장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글자가 없던 몽골제국이 떠오르긴 하지만).

개인의 영역에서 봤을 때 결국 수능이나 직업을 갖기 위한 시험들은 글로 이루어져 있다.

평소 책을 자주 접한다면 확실히 유리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글로 시험을 본다는 전제가 있어야 확실하다.

이미 시험을 모두 통과한 사람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어떻게든 인생에 도움이 된다'는 말은 그냥 있어 보이는 말뿐이지,

'결국 별 도움도 안 된다'라고 바꿔 말해도 나름 괜찮은 말 같아 보인다.

김영하 작가는 첫 작품에서 이런 대사를 주인공에게 시켰다.

"문학은 삶의 잉여에 적합한 수단이다."


쟁점은 세 가지 정도로 생각이 난다.

알고리즘

- 유튜브 : 편향적 생각을 유도하는 알고리즘

- 책 : 유튜브보단 덜 하지만 인용이나 출처를 통해 어느 정도 알고리즘이 작동함

신뢰성

- 유튜브 : 신뢰성이 낮지만 그만큼 주의해서 접근하게 됨

(댓글에서 진위논쟁을 벌이는 걸 매번 볼 수 있고 결국 제대로 알기 위해 찾아봐야 하기 때문에 경우에 따라 신뢰성이 더 높을 수도 있음)

- 책 : 비교적 신뢰성이 높지만(그렇지도 않더라..) 정보를 맹신하는 위험이 있음.

(나는 까뮈나 하루키 소설을 보고 가출을 감행했던 흑역사가 있다)

뇌 영향

- 유튜브 : 집중력 저하, 나중엔 지루한 것을 견디기 힘들게 됨.

- 책 : 집중력 상승, 정적인 여러 매체를 사용하기 편해짐.


이외에도 시력저하, 수면장애들의 문제가 있지만 유튜브와 책 모두 이를 유발한다.

어떤 게 더 좋다고 하긴 힘들지만 특히 책을 맹신하는 태도만큼은 조심할 필요가 있다.

반대로 말하면 맹신하는 태도만 조심하면 책이 대체로 좋다고도 볼 수 있겠다.

다만 두루 당연시된다고 해서 믿고 따르는 태도보다는 한 번 '왜?'라는 질문을 통해 스스로 납득하는 과정을 만드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책이든 유튜브던 둘 모두 플랫폼에 불과하다.

그곳에서 무엇을 하는지가 진짜 중요할 수 있다.


그놈의 디톡스 디톡스.

디톡스란 말이 싫다.

누가 이 말을 유행시켰는지는 모르지만 온갖 상품에 이름을 달고 나온다.

어릴 적 '돌침대'의 유행을 보는 것 같다.

아니, 돌인데 왜 그게 침대라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바닥에서 자면 되는 일 아닌가?'

황토니 옥돌이니 무슨 파가 나온다니 효자상품으로 홍보하여 고급침대보다 더 비싼 돈을 받는다.

거기다 처리하기도 쉽지 않다.

자기가 원조돌침대라며 다른 유사상품에 속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광고를 보고 있으면 웃음이 나온다.


신천지 센터에서 '미디어 디톡스'를 하라고 한다.

매일 몇 시간 미디어를 시청했는지와 줄이기 위한 어떤 노력을 했는지 적어서 올려야 한다.

미디어가 받고 있는 나쁜 취급을 입맛대로 이용하고 있다.

아마도 이런 뜻이 담겨 있을 것이다.

"너희들에게 정보를 주입할 수 있는 건 우리뿐이어야 해"


8회 차.

심리상담가가 당분간 불참한다고 전했다.

'또 뭔 개수작이지?'

다른 포교대상이 생겨 거기에 집중하려는 것일 수도 있고,

애초에 지금쯤 물러나는 계획이었을 수도 있다.


'PK:별에서 온 얼간이'

이번 시간에는 이 영화를 시청한다고 한다.

'의심하고 또 의심하라'

어떤 생각으로 유도할지를 생각하면서 영화를 보려니 두통이 느껴졌다.

사건 1. 주인공은 여러 종교를 찾아다니며 뺏긴 물건을 찾아달라 기도한다.

종교적 해석의 다양성을 주장하고 있다.

주류 종교들은 분열을 막기 위해 통일된 해석을 내세우며 다른 해석을 배척한다.

이미 종교에 임하고 있는 사람들을 겨냥하여,

다른 해석에 대한 경계심을 풀기 위한 의도로 풀이된다.

사건 2. 주인공은 교주가 잘 못된 가르침을 사람들에게 설파한다고 지적한다.

"가난한 자에게 우유를 나눠주지 않고 왜 동상에 우유를 뿌립니까?"

경전을 직해하여 의미 없는 행위를 하지 말고 경전에 담긴 의미를 해석하여야 한다고 말한다.

성경을 비유로 해석하는 신천지의 교리에 힘을 실어주는 주장이다.

인정하기 싫지만 신천지의 교리해석은 꽤 교훈적이다.

애초에 성경의 내용을 교훈이 담긴 비유로 보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다.

사건 3. 주인공은 종교에 대한 맹신을 비판한다.

이 부분은 그날 밤 나를 잠에서 여러 번 깨웠다.

사이비 종교를 대표하는 단어가 맹신일 텐데,

영화에선 맹신을 계속해서 비판하고 있었다.

'이런 걸 틀어줘도 되나?'

자존심이 상했다.

이들이 틀어준 영화 주인공이 내가 이들에게 하려는 말들을 대부분 말해버렸다.

‘우린 이미 네가 말할 문제점들을 인식하고 있어’

미리 반박당한 내 주장들이 초라해졌다.


질문, 질문이다.

영화를 보고 하루동안 정리가 안 되어 힘든 시간을 보냈다.

'사실 사람은 착한 사람들이 아닐까?'

'신천지가 막상 파보면 크게 나쁜 쪽은 아니지 않을까?'

기독교나 천주교인들에게나 이단이지 무신론자인 나는 딱히 나쁘게 볼 것도 없다는 생각까지 든다.

강사가 이튿날 1:1로 만나 상담하자고 말했다.

마음이 급했다.

이들의 논리적 오류를 지적하는 질문지를 작성했다.

얻어맞았기 때문에 나도 몇 대는 때려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나 "저는 무의식도 심리학도 안 믿는데, 자꾸 과거의 상처가 저를 불행하게 한다고 하시네요. 저는 현재 닥친 위기를 풀고 싶은데 그래도 되나요?"


강사 "그래도 되죠"


나 "그럼 이익을 요구하는 믿음이 되잖아요. 돈을 바라고 신을 믿어도 되나요?"


강사 "그럼 안 되죠"


나 "이익을 추구하는 신앙이 잘 못 됐다면, 심리적 안정을 위해 신앙에 임하는 자세도 잘 못 된 것 아닌가요?"


강사 "심리적 안정을 어떻게 해야 얻을 수 있는지 저희한테 배우다 보면 신앙심이 두터워질 겁니다"


나 "믿음이 먼저인가요 수행(선행)이 먼저인가요"


강사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고 나옵니다. 수행은 신앙에서 빠지면 안 되지만 믿음을 우선해야 진정한 수행(선행)도 뒤따를 수 있겠죠"


나 "수행이 없던 사람이 어떻게 옳은 종교를 고를 수 있죠?"


강사 "어떤 종교든 해석이 다양하니 우선 믿는 태도부터 가지는 것도 중요합니다"


나 "교리 해석이 다양할 수 있다고 하면 각자 자기 해석이 맞다고 생각하고 싸울 텐데요?"


강사 “그렇기에 실증을 기반으로 믿음이 이루어져야 해요.”

‘믿게 만들어 줄게’

증명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느껴지는 대답이다.


답답하다.

더 강력히 따지고 하나하나 지적하고 싶다.

하지만 나는 그들의 정체를 모른 채로 조금씩 빠져드는 척해야 한다.

그러면서도 진짜 빠지지 않게 몰입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몰입하지 않고 연기하면서 말을 하니 모든 행동이 부자연스럽다.

소속사 뒷배를 타고 주연으로 캐스팅된 배우의 연기와 같다.

아무 감정 없이 그저 미리 외운 말을 하는 발연기 배우.


그래도 다행히 이들의 의심은 크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조금 무뚝뚝한 대상정도로 보는 듯하다.

수업 참여도는 높지만 감동받지는 않는 학생정도.

이들의 의심이 거둬지는 것과는 반대로 내 흥미는 급속도로 떨어지고 있다.

같은 방식의 반복.

수업, 상담, 대화(외부정보 차단, 같은 내용 반복, 유대감 형성).

모임에 나가기 전 느끼던 지루한 일상이 다시금 느껴지고 있다.

조만간 상황을 바꿀 일을 만들 필요가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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