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근 모임에 나갔을 뿐인데 9

두뇌풀가동

by 황인섭

이유를 알 수 없는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

커피를 먹고 왔으면서 짜장면을 먹고 왔다고 말하거나,

PC방에 왔으면서 당구장에 왔다고 말한다.

내 직장은 근무지를 이탈할 시 미리 알리거나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보통 식사나 가까운 곳 정도는 말없이 다녀온다.

한 번 직장선배와 식사를 하러 나갔다가 회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근무지에 사람이 없다는 것.

선배는 전화를 받으려는 나에게 다이소에 왔다고 하라며 다급한 표정으로 말했다.

"예 저희 잠시 식사하러 나왔습니다. 바로 들어가겠습니다"

선배는 이해할 수 없다며 나에게 왜 그렇게 말했는지 따졌다.

"왜 굳이 거짓말을 해요? 다이소나 식사나 어차피 혼날 거면 그게 그거 아니에요?"

선배는 다이소가 식사보다 명분이 나은 이유,

더 업무적인 사유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며 이게 어른의 지혜라는 듯 늘어놨다.

끝내 동의할 순 없었다.


본능적으로 거짓말부터 하고 보는 이유는 뭘까?

정보의 우위를 점유하고 싶은 마음이 아닐까 생각해 봤다.

'모럴해저드'는 계약에서 중요한 요소인데 정보 비대칭 상황에서 발생한다.

보험가입자는 눈 감고 자전거 타는 묘기를 보여주려다 다쳤지만,

묘기 이야기는 안 하고 보험금을 탈 수 있다.

손님이 음식에서 파리가 나왔다며 환불을 요청해도 식당 주인은 반박할 증거가 없다.

이렇게 정보 우위를 가진 사람이 도적적으로 옳지 못한 이득을 취하는 상황을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라고 한다.


우리는 거짓말을 한 번 할 때마다 정보의 우위를 획득한다.

거짓말을 한 당사자만이 진위여부와 진실이라는 정보를 가지고 있다.

문제는 정보가 과다할 때 발생한다.

모든 거짓말을 외우고 다녀야 하는데 그래야 거짓말끼리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

보통 보험사기는 너무 많은 생명보험에 가입하여 발각되곤 한다.

그래서 거짓말은 지니고 있는 지능 이상의 정보우위 부여하지는 못 한다.


수업 전 카페에서 먼저 만나 출발하기로 했다.

꽤 일찍 도착해 먼저 자리를 잡기 위해 2층으로 올라갔다.

최대한 꼿꼿한 자세로 시점을 높여 동공만 이리저리 돌려 주위를 살펴봤다.

남자 1, 여자 2명인 테이블에 시선이 갔다.

남자는 살짝 붉게 상기된 얼굴로 앉아 있었고,

여자 둘은 능숙하게 무언가를 말하고 있었다.

느낌이 왔다.

화장실로 들어갔는데도 그 테이블의 말소리가 화장실에 울렸다.

내가 모임에 처음 나갔을 때의 흐름과 유사했다.

"저희 모임은 집에서 시간 허비하는 것보다는 나와서 같이 독서라도 하자해서 만든 모임이에요"

깔끔히 손을 털고 화장실을 나오며 두 여자를 관찰했다.

왼쪽 여자 낯이 익다.

신천지 수업에서 본 사람이 확실하다.

대각선으로 조금 떨어진 테이블에 앉아 새로운 희생양을 안타깝게 관망하며 잠시 정보의 우위를 느꼈다.


심리상담가와 모임장은 아슬아슬한 시간에 겨우 카페에 도착했다.

커피고 뭐고 당장 수업으로 가야 했다.

수업장소로 이동하는데 심리상담가가 이상한 말을 했다.

"오늘 OO(수수한 여자)도 온데"

오래전부터 모임에 참가하지 않은 수수한 여성이 난데없이 수업에 참가한다는 소식.

그런데 심리상담가는 수수한 여자와 만난 적이 없다.

모임장이 다급하게 묻지도 않은 해명을 구구절절하게 늘어놨다.

"OO님이 오랜만에 저한테 요즘 모임 어떻냐고 연락이 오셔서,

이런 수업 듣고 있다고 하니까. 자기랑 친구도 듣고 싶다고 하셔서. 제가 언니 전화번호 알려드렸어요"

이 말을 나를 보고 한 것이 아니라, 심리상담가를 보며 말했다.

마치 실수를 눈치채라는 듯이.

혹은 그저 당황하여 내 눈을 피했을 수도 있다.


수업장소에 거의 도착할 때쯤 되어 모임장이 낯선 골목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어제 같이 사진 찍은데 아닌가?"

심리상담가가 다급하게 말을 끊었다.

"네네 네네네~"

심리상담가는 어이없다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모임장을 쳐다봤다.

제발 조심 좀 하라는 뜻.

왜 조심하지 못했냐면 나는 어제 저기서 사진을 찍은 적이 없다.

그저께였고 저기도 아니었다.

모임장은 또 묻지도 않은 해명을 내가 아닌 심리상담가에게 토했다.

"너무 자주 만나서 그런가 그저께 만난 게 어제 만난 거 같고 막 그래요"

주의하지 못해 미안하다는 뜻.

내게 그 상황은 그렇게 인식 됐다.


7회 차 수업.

수수한 여자는 몸집이 워낙 조그맣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뒷모습만 봐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옆에는 또래로 보이는 남자 한 명이 두리번거리며 낯선 장소를 경계하고 있었다.

수수한 여성과는 수업이 끝날 때까지 눈 한 번 마주치지 않았다.

어차피 가서 오랜만이라며 말을 걸어도 분명 대화를 피할 것이다.

그녀는 내가 어떤 거짓말로 세팅되어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나와의 섣부른 대화는 매우 위험하다.

'내가 눈치채면 어떡하려고 겁도 없이 이런 상황을 만들어놨지?'

상황 설계가 너무 허술해 속아주기도 짜증이 난다.


"우리 노트 가져와야 되는데"

모임장이 내게 노트를 가져와 달라는 부탁을 했다.

어제 둘의 노트를 끼워둔 곳의 위치를 기억한다.

가장 오른쪽 끝.

역시나 위치가 바뀌어있다.

중앙에서 조금 왼쪽으로.

노트를 가져와 모임장에게 하나를 주고 내 걸 펼쳤다.

"그거 어디 갔지? 어제 설문지랑 그림?"

노트에 끼워둔 설문지와 그림이 사라졌다.

"그거 거둬가는 거라고 하던데?"

모임장이 마치 잘 안다는 듯이 설명했다.

이미 열어볼 것이라 예상했음에도 순간적으로 화가 치밀어 올랐다.

다만 '탐탁지 않다' 정도로 그 강도를 억제하여 표출했다.

"노트를 열어봤다고?"


수업은 김창옥 강사의 영상을 편집해 보여주며 시작됐다.

영상 속 김창옥 강사는

"내가 고개를 '끄덕끄덕'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세요"

라며 공감과 위로를 전하는 사람을 만나라며 가르쳤다.

'끄덕끄덕'

너희의 의도를 잘 알겠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세뇌의 기본은 반복이다.

계속해서 우리처럼 좋은 말 해주는 사람을 믿으라는 은유를 던진다.


수업이 더 진행되자 허무에 대해서 설명을 하기 시작한다.

우리 인생은 영원히 끝나지 않는 고통이며,

아무리 노력해도 그다음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고 말한다.

책임져야 할 것들이 추가되면서 휴식은 점점 부족해지고 이 모든 걸 감당할 실력을 보유했다고 할지라도,

당장 내일 죽을지 모른다는 불확실성으로 허무함은 없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이것을 '마음의 구멍'이라며 설명하는데,

이것을 채우기 위해선 변하지 않는 것을 채워 넣어야 하는데,

돈 같은 물질적인 것은 변하는 것이라며,

영원히 불변하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뿐이고 성경은 6000천 년의 역사동안 불변했다고 설명한다.

이런 말이 아주 근거 없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들을 때마다

'일단 나한테 억만금이나 줘놓고,

그때도 내가 허무를 느끼면 믿을 텐데'

라는 생각이 든다.

마치 공부 못 하는 아이가

"공부가 인생의 전부는 아니잖아욧!!"

이라며 부리는 앙탈이 생각나지 않는가?


수업은 모두가 지켜주길 바란다며 에티켓을 설명하며 마쳤다.

총 네 가지였는데 심상치 않다.

1. 나에게 집중하기 - 열린 마음으로 수업에 임하기

2. 서로서로 지켜주기 - 수강생끼리 연락처, SNS 교환하지 않기

3. 지식재산권 지켜주기 - 수업내용 촬영, 유포 금지

4. 스스로 믿어주기 - 주변의 말에 휩쓸리기 않기


내가 직접 체감한 그들의 등급은 이렇다.

나 : 일반인, 포교 대상

포섭원 : 일반 신도, 일반인을 대상으로 같이 수업을 들어주며 소위 '단짝'행세를 한다.

전도사: 신천지 직원, 포섭원의 지인으로 접근하여 수업장소까지 유도한다.

전담강사 : 신천지 직원, 총 6~7개 팀 정도를 배임받는 걸로 보이며, 어느 정도 의문에 대응 가능.

센터장 : 센터 총괄, 수업 진행 강사, 전담 강사들을 진두지휘하고 최종 보고를 받는다.


수업이 끝나면 전담 강사와 2차적으로 수업이나 대화시간을 갖게 된다.

전담 강사는 나 포함 6~7개 팀을 다른 방으로 옮겨 우물 안 개구리 일화를 소개했다.

당연하게 모두가 알고 있는 우물 안 개구리 일화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모임장이 전담 강사가 든 그림을 보며

"근데 개구리 귀엽다..~"

라고 말하기에 내가

"저 그림 잘 안 보여? 개구리가 뱀을 먹고 있는데?"

우물 안 개구리의 착각이었다는 결말이었지만,

우물 안 개구리가 누군지.

뱀을 먹고 있다고 착각하는 게 누군지.

연상이 되는 훌륭한 일화였다.


저번 시간과 동일하게 설문지를 넘겨받았다.

마음의 구멍에 대한 설문지였다.

전담 강사는 다른 테이블에서 대화를 가지다 마지막에 우리 테이블로 왔다.

내가 작성한 설문지를 읽어보더니 설명을 요구하며 물었다.

"마음의 구멍이 왜 생겼는지에 대해서 '채우기 위해서'라고 적었는데 이게 무슨 뜻이에요?"

"마음의 구멍 같은 건 그냥 나 스스로 만들어 냈다는 의미죠.

스스로 뭔가 부족하다고 느껴야 발전이 있을 테니까요"

"그럼 마음의 구멍이 다 채워지면 어떻게 될 것 같으세요?"

나는 속된 말이라 민망하다는 투로 말했다.

"재수 없는 거 같은데요"

"제가 재수가 없다고요?"

"아뇨 스스로 마음의 구멍이 없다고 여기는 사람이 재수가 없다고요"

"아니에요~ 마음의 구멍이 다 채워지면 더 훌륭한 사람이 되죠~"

"제가 본 사람 중에 스스로 부족함 없다 여기고 사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재수가 없더라고요"

언쟁이 조금 지속되자 의외로 모임장이 중재에 나섰다.

"얘는 겸손하게 살자는 의미인 거 같아요."

사막에서 꽃이 폈다.

내가 무시했던 사람이 내 주장을 나보다 더 핵심을 잘 정리하여 제시했다.


내 닫힌 태도 때문일까,

전담 강사는 나중에 넷이서 카페에서 대화를 한 번 하자며 물러갔다.


다행히 이번엔 노트를 사수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세 번의 탈취 시도가 있었다.

전담 강사가 떠난 후 모임장이 1차로

"노트 내야 되는데"

라며 낌새를 보이길래 즉시 노트를 가방에 넣어버렸다.

그리고 밖으로 나가는 문 앞에서 2차로

"아 맞다 노트 안 냈다"

라며 노트를 든 손을 나한테 내밀었다.

"뭐 갖다 놔줘?"

"아니야 내가 내면 돼"

그걸 본 심리상담가는 다시 3차로

"너 어차피 가져가도 안 보잖아"

라며 쳐다보길래

"집에 가서 정리해야죠"

3번의 거절 끝에 집으로 글감을 가져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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