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임
흔히 심심풀이로 하는 질문들이 있다.
죽는 이유 알기 vs 죽는 시간 알기.
이 질문을 진지하게 생각하려면 전제가 필요하다.
‘죽는 시간, 혹은 이유를 알아도 죽음이라는 결과를 바꿀 수 없다’
그렇지 않으면 ‘어떤 능력이 죽음을 피하는 데 유리한가’라는 엉뚱한 논쟁으로 변질될 수 있다.
사고의 범위를 정해야 주제를 생각할 수 있다.
이것을 ‘프레임 이론’이라고 한다.
고등학생 시절 역사시간에 위화도 회군에 대한 찬반토론이 열렸다.
결과는 찬성파의 승리.
추후 다른 반에서도 모두 찬성파가 승리를 거뒀다고 들었다.
승패의 원인은 고려의 부패였다.
찬성 파는 고려가 몰락하고 있음을 악어처럼 물고 비틀었다.
보다 못한 역사 선생님께서,
‘고려도 느리지만 온건한 개혁을 계획하고 있었음’
을 설명하며 반대파를 독려했지만 소용없었다.
나중에 든 생각이지만 이때 난 찬성파의 프레임에 갇혀있었던 듯하다.
고려의 부패는 혁명의 정당성이지 위화도 회군의 정당성이 아니었다.
위화도 회군 자체의 정당성을 따지기 위해서는 이후에 일어날 혁명을 제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위화도 회군 이후에 혁명을 일으키지 않았어도 위화도 회군은 옳은가?’
그때 나는 결과를 제거해 보는 ‘다른 프레임’을 세워 대응했어야 했다.
상대가 만든 프레임에 들어간다면 별로 이길 가능성이 없는 것이 당연하다.
이단 상담소 4회 차
4-1 성경교육
이번에는 키 큰 남성이 들어왔다.
본인을 부목사라고 소개했다.
나에 비하면 큰 권위와 체격, 기죽기 딱 좋은 상대다.
내가 청년이기 때문에 청년예배를 주도하는 부목사가 일부러 이곳에 들어왔다고 한다.
나에 대한 정보도 미리 전해 듣고 왔다고 한다.
‘특별관리대상은 아니겠지?‘
앞전의 강사가, 나의 의문 가득한 태도를 전했고 부목사가 직접 나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저번 시간에 했던 몇몇 발언들은 교회 입장에서 민감할 수 있다.
거기에 부목사가 특별히 수업내용을 준비해오지 않았다는 점은 내 의심을 가중시켰다.
부목사는 준비내용은 없고, 내가 질문을 하면 답변을 해주겠다고 말했다.
‘질문의 수위를 어느 정도로 설정해야 하는가’
내가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고 계속 고민만 하자,
부목사는 지금까지의 수업내용을 설명해 달라고 말했다.
나는 있었던 일을 주욱 설명하다가
‘예수 이전의 사람들도 예수에 대한 예언을 믿고 구원을 받았다’
라는 내용이 이해가 불가능했다는 설명까지 가게 됐다.
부목사 “그게 질문이네요”
나 “맞습니다”
부목사 “그건 인간의 사고체계가 시간개념 안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중략)”
다 알고 있는 설명이다.
인과를 벗어난 믿음은 대단하다고 할 수 있지만,
나쁘게 말하면 ‘근거 없는 믿음’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나 "만약에 결정론이라서 그렇다고 한다면 문제가..."
(결정론이라서 순서 상관없이 사건이 서로 상호작용한다면, 이 세상 모든 것에 적용되는 인과의 법칙은 어떻게 되는지 물으려 했다)
부목사 “결정론이 아닙니다. 지금 철학적으로 해석해 보려고 노력하시는 건데, 저도 철학을 공부했고 잘 알지만 신앙에 몸 담은 입장에서 모든 교육은 성경 안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성경은 신의 의지가 골조 되어 역사를 이룬다는 뜻이지. 모든 것이 이미 결정되어 있다는 결정론이 아닙니다."
‘똑같은 말 아닌가?’
라는 의문이 들었지만 의문제기가 방금 차단당했다.
반론은 성경에 근거한 것만 받겠다는 선언.
내가 성경을 알아봐야 얼마나 알겠나.
프레임이다.
부목사 "한 번에 이해되지 않는 게 정상입니다. 계속해서 공부를 해야 이해가 갈 거예요"
나 "차라리 신앙에는 논리가 적용되지 않는다고 설명하면 그렇다 치고 넘어가겠는데, 이걸 논리적으로 이해하려고 하니까..."
부목사 "아니요, 논리적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성경구절 찾아볼까요. 요한복음...(중략)"
아무리 성결구절을 뒤져서 보여줘도 거기에 인과의 역설을 해명하는 부분은 나오지 않는다.
저번 시간 강사가 보여준 구절들과 크게 다르지도 않았다.
나 "일단 이해할 순 없지만 만약 구약시대 사람들이 예언을 믿고 구원을 받았다면 예수는 왜 온 거죠?"
부목사 "구원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오신 거죠”
나 "어차피 예언만 믿어도 구원을 받는데, 예수가 몇만 년 뒤에 왔어도 상관없는 거잖아요. 하필 그때 왔다면, 의도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부목사님 설명에서는 그 의도가 느껴지지 않아요”
부목사 “하나님이 하신 모든 일들은 의도가 있죠. 아직 그 의도를 알기는 조금 어렵긴 합니다.”
나 "제가 이해하기론 이렇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고 지켜보다가, 율법에 의해 세상이 야박해지는 것을 안타깝게 보고 예수를 보내 믿음이라는 새로운 지표를 준거죠. 이렇게 생각하면 충분히 의도가 느껴지거든요."
부목사 “지금 여태껏 살아오면서 쌓아온 세계관이 꽤 확실하신 것 같아요. 제가 볼 때는 신천지에 딱히 빠지지 않았던 것도 그런 세계관이 이미 두껍게 자리 잡고 있어서 그런 것 같은데요. 어쨌든 신앙이라는 목적을 갖고 여기에 오신 거잖아요?"
그러면서 하나의 표를 보여줬다.
지 - 복음, 지식
정 - 마음, 믿음
의 - 행동, 실천
부목사 "지금 신앙의 목적을 가지고 행동에 나섰지만 아직 복음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지 때문에 믿음이 없는 상태예요. 의만 있고 지, 정은 없는 상태죠. 올바른 의가 나오려면 복음과 믿음이 선행적으로 필요합니다."
나 “사실 마음이라는 부분에서 신앙생활에서 어려움을 겪긴 했어요. 아무리 교회를 나가도 도저히 마음이 동하지 않았습니다."
부목사 “그렇다면 사실 아직까지 제대로 된 복음을 듣지 못한 겁니다. 제대로 된 복음을 배우면 반드시 마음으로 믿게 됩니다”
나 "그럼 제가 끝까지 마음이 생기지 않으면.."
부목사 “제가 모자란 거겠죠”
‘배우러 왔으면 배워라’
사실 맞는 말이다.
부목사 "다음 시간에는 질문들 생길 때마다 적어뒀다가 챙겨 오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나 “그러면 꽤 많을 텐데요..."
부목사 “괜찮습니다. 성경 안에서 다 대답해 드릴 수 있어요”
4-2 이단교리파훼
수업이 끝난 줄 알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다, 강사가 들어와 다시 자리에 앉았다.
강사는 수업 시간을 짜 맞추다 보니 순서가 바뀌었다며 양해를 구했다.
수업 주제는 가장 기다렸던 ‘모략포교’에 관한 내용이다.
그런데 기대와는 반대로 불쾌감이 컸다.
아예 내용 이해가 가지 않았다.
여러 성경구절 속 거짓말의 사례들(하나님, 예수까지도).
그리고 '모략'을 권장하거나 옹호하는 글들.
강사가 열심히 보여주고 설명했지만
‘고작 저런 문장 몇 개에 갇혀, 죄책감 없이 사람을 속인단 말인가'
이런 생각은 사실 이 교회에선 부적절하다.
다수의 개심한 신천지 신자가 이 교회에 다니고 있다.
신천지를 욕하되 신천지에 속은 사람을 바보취급하는 것은 금기시될 것이다.
내 혐오 섞인 반응에 강사가 일일이
'누구라도 거기까지 가면 당할 수밖에 없다'
는 논조의 해명을 덧붙인 것을 보면 확실히 알 수 있다.
우리는 무엇이든 선택을 한다.
각자 나름 숙고의 과정도 거칠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 숙고 끝에 선택을 하는 건 결국 직감에 의하여 이루어진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방대하고 합리적인 논리가 있다고 해도 직감의 벽을 넘지 못하면 그 논리는 선택받지 못한다.
나에겐 그게 모략포교다.
아무리 설득하고 권장해도 내 직감이 그것을 허락할 것이라는 생각이 도저히 들지 않는다.
“그래서 세뇌라고 하잖아요”
내 생각을 간파한 것인지 강사는 우려하며 말했다.
직감을 통과해도 실력의 문제가 남는다.
죄책감 없이 거짓말을 할 수 있다고 해도 잘할 수 있는 것은 실력의 영역이다.
나는 내가 거짓말에 소질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강사는 그렇지 않다며 반박할 수 없는 사례를 하나 제시했다.
“신천지인 거 모르는 척하고 다닐 때 상대가 눈치채던가요?”
내가 모른 척 그곳에 나갈 때 그들은 내 거짓말을 눈치채지 못했다.
원인은 두 가지다.
1. 내 행동에 당위성을 가졌고 당당히 행동했다.
2. 핵심적인 부분을 말하지 않는 것으로 속이기에 충분했다.
여기에 신천지는 여러 사람들이 단 한 사람만 속이면 되기에 훨씬 속이기 유리하다.
무리를 지었을 때 주는 안정감도 있을 것이다.
속이고자 마음만 먹는다면 속이기는 어렵지 않은 것이다.
마지막 난관은 부작용이다.
이미 교리에 완전히 빠져버린 경우를 제외한다면,
속아서 들어온 사람이 그 사실을 알게 됐을 때,
그 사람의 분노를 뒤집어쓰게 된다.
"화나면 쉽게 못 말리는 사람도 있잖아요. 그런 사람한테 걸리면 꽤 위험할 것 같은데 그런 경우는 없었나요?"
강사는 오히려 그런 식으로 갔다가 무리한테 얻어맞고 돌아온 사람은 있다고 설명했다.
"화가 난 사람보다 종교의 틀에 갇힌 사람이 더 극단적으로 행동합니다"
돌아오는 길은 늘 생각이 많다.
운전 중에 중요한 글감이 떠오르면 잊지 않기 위해 애를 쓰기도 한다.
익숙한 모습의 집 근처 교회를 지나쳤다.
티 없이 반듯한 모습이 불쾌감을 자아낸다.
굉장히 큰 교회지만 한 번도 사람이 드나드는 모습을 본 기억이 없다.
간판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
'이걸 왜 지금까지 몰랐지?'
몰몬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