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근 모임에 나갔을 뿐인데 18

데칼코마니

by 황인섭

세계 2차 대전이 끝나고 세계는 둘로 나뉘었다.

어떤 나라는 동-서, 남-북으로 나뉘었고,

심지어 동족상잔의 참극을 맞이했다.

두 사상은 양립할 수 없다는 듯 대립했고 지금까지도 당시의 구도가 남아있다.


각각 자유와 평등을 가치로 내세웠지만 시간이 지나며 이런 사상의 색은 옅어졌다.

TOP 2를 제외한 세계국가들은 인종이나 지리가 가깝다는 이유로,

혹은 경제나 안보에 유리하다는 이유로 진영을 선택했고,

TOP 2는 서로를 베끼며 이념적 색을 희미하게 만들었다.

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

국민의 요구는 사상을 가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쩌다 자유와 평등이라는 두 사상으로 대립하게 되었을까?

누구는 산업화가 그 이유라고 하고,

누구는 프랑스혁명이 그 이유라고 한다.

그리고 나는 그 이유가 기독교로부터 이어져 온다고 생각한다.


기독교엔 두 가지 가치가 있다.

선행과 믿음.

선행에는 자유가 필요하다.

본인 의지로 행한 일만이 착하다 칭송받을 수 있다.

그리고 그 의지는 개인별 편차가 있을 수밖에 없다.

평등주의자들은 이 점을 참을 수 없었다.

자유는 인간의 착각이며,

오직 믿음만이 구원의 길이라고 주장했다.

자유가 착각이라면 내가 하는 모든 일은 가치가 없다.

모든 인간이 무가치한 인생을 보낸다면 비로소 평등하다곤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단상담소 4회 차.

4-1 이단교리파훼.


겨우 주차자리를 찾아냈다.

교회는 지상 외에도 지하주차장이 존재했는데 딱 한 자리가 비어있었다.

지하에서 올라오며 상담방으로 걸어가다 보니 무언가 접수하려는 사람들이 일렬로 앉아 있다.

모든 접수원의 시선은 정면 15도 위 모니터를 향해있었다.

모니터는 목사의 설교를 띄워주고 있었다.

일렬로 넋 나간 표정들이다.

낯익은 강사도 그 대열의 일부였다.

“오늘 무슨 날인가요?”

“아 오늘 합동 교육이 있어서요”


강사는 칠판에 주제를 적으며 초림과 재림에 대해서 들어봤는지 물었다.

“아뇨 못 들어 봤어요. 신천지에선 지금을 재림시대라고 한다는 것만 강사님한테 들었죠.”

”그렇죠. 그럼 왜 재림했다고 하는 건지 오늘 알려드릴 겁니다 “

진도가 꽤 빠르다고 느꼈다.

교주를 신격화하는 데 성공하면 사실상 끝난 일 아닌가?

“먼저 비유풀이부터 알아야 합니다. 구름과 애굽인데요. 여기서 그들은 구름=영, 애굽=이라고 비유풀이합니다. 성경구절 볼까요 “

여호와께서 빠른 구름을 타고 애굽에 임하시리니 - 이사야 19장 1절

“이 구절로 비유풀이 하는 건데요. 인간이던 예수의 몸에 하나님의 영이 깃들었다는 해석을 하기 위함입니다.”

“그렇게 해석하면 문제가 되나요?”

“신천지 교주에게도 똑같은 일이 일어났다는 주장을 하기 위해서죠”

신천지 교주는 누가 봐도 우리와 같은 인간임을 알 수 있다.

인간의 몸에 신의 영이 깃들 수 있다는 관점을 새기는 과정이다.

계속해서 여러 구절과 비유풀이를 보여줬다.

“애굽=몸이면, 성경에서 애굽이란 단어가 많이 나오는데 거기 전부에 적용시키기 힘들 텐데요.”

“그렇죠. 애굽과 구름이 하나의 비유라고 해석하면 다른 곳에서 오류가 생깁니다.”

그리고 정통적 해석을 알려줬다.

(애굽을 심판할 것이라는 내용)

사실 비유가 아닌 해석도 납득하긴 어렵다.

조금 더 낫기는 했지만.

앞으로 수업이 더 진행돼야 알 수 있지만,

이 내용을 포함해서 교주와 예수의 유사성을 계속 강조한다고 한다.

”거기다 예수가 받은 핍박을 신천지도 똑같이 받고 있다고 가르치기 때문에 욕을 먹어도 소용없는 거죠. “

“다 똑같이 되면 교주도 곧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야 되는 거 아닌가요?”

“저도 그랬으면 좋겠네요 “

왜 예수와 교주의 일생이 똑같지 않은지,

그 차이점들을 보여주며 수업은 끝이 났다.

상담소의 설명은 그리 나쁘지 않았지만

'그럼 정말 똑같으면 그 사람은 재림예수라고 할 것인가?'

라는 의문으로 귀결됐다.

'굳이 똑같을 이유가 없지 않나?'


4-2 성경교육

질문이 생기면 적어오라는 말 때문에 여러 개를 준비해 갔다.

아쉽게도 숙제를 내준 부목사가 아닌 다른 강사가 들어와 앞에 섰다.

간단한 인사를 마치고 내게 첫 질문을 던졌다.

“그동안 어느 교회를 다니셨어요?”

"성인 되고 안 가긴 했지만, 성결교였을 겁니다."

강사는 과한 활기로 칠판을 두들기듯 써 내려갔다.

초대교회, 가톨릭, 종교개혁, 장로교, 성결교...

여러 교단들의 설명을 늘어놓고,

그중 초대교회를 계승한 것은 장로교가 유일하다는 설명을 했다.

하지만 장로교도 다른 교단과 교류하며 많이 혼재 돼있다고 한다.

다행히

'장로교도 오염됐다. 우리 교회만이 유일한 정통이다'

라는 말까지는 나오지 않았다.


처음부터 너무 열을 냈다며 나에게 질문이 없는지 물었다.

준비한 질문 중 하나를 끄집어내 뱉었다.

"신앙생활은 고난의 길인가요? 행복의 길인가요?"

강사는 씁쓸하게 웃더니 나에게 역질문을 던졌다.

"스스로 죄인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그렇다고 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죄인까지는 모르겠지만 스스로 착하진 않다고 생각한다.

“사실 많은 신도들이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믿음으로 의인될 수 있게 하셨으니 그건 잘 못 된 생각이죠.”

“그럼 아직까지 전 죄인이 맞긴 하네요. 저는 믿음이 없거든요”

“그럴 수도 있죠. 쉽게 되진 않습니다. 처음으로 돌아가가자면 신앙은 행복의 길입니다 “

예상과 같고 기대와 다른 답변이다.

“저는 고난의 길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왜 그렇게 생각하시는데요?”

“저는 하기 싫은 일을 할 때 양심이 충족되는 걸 느끼니까요. 사실 이 상담도 저한테 고난인 거죠.”

강사는 숨을 크게 한 번 삼켰다.

설득의 시위를 당기는 모습이다.

“양심은 하나님의 증거 중 하나죠. 양심은 ‘선’이잖아요?. 스스로 죄인이라 여기는 사람은 당연히 신앙을 고난이라 여기는 거죠.”

논리는 이렇다.

[죄인(-)] x [하기 싫은 일(-)] = [양심, 신앙(+)]

[의인(+)] x [하고 싶은 일(+)] = [양심, 신앙(+)]

믿음을 통해 의인으로 거듭난다면 신앙은 하고 싶은 일이 되고 양심도 충족되며 결론적으로 행복의 길에 서게 되는 것이라는 것.

상당한 달변이고 요설이다.


“그런데 교회 하시다 보면 중간에 안 나오는 사람도 있잖아요. 그런 사람은 의인이 하고 싶은 일을 한 걸 텐데 왜 신앙을 그만둔다는 결과가 나오게 되나요? “

“의인이 아니었던 거죠”

논리적 오류는 없지만 서늘한 평가다.

심하게 싸우다 보면 이게 내 피인지 상대 피인지 모를 수 있다.

스스로 비판하는 대상을 닮게 되는 것은 조심해야 할 것이다.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싸움 중 스스로도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우리가 괴물의 심연을 오랫동안 들여다봤다면, 그 심연 또한 우리를 들여다볼 것이기 때문이다."프리드리히 니체, 선악을 넘어서


4-3 수요예배

교회 근처를 차로 배회했다.

저번처럼 교회 앞에 주차했다가 신도들의 비아냥을 듣고 싶진 않다.

교회 옆 산비탈 골목길은 아파트 단지를 순회하도록 되어 있다.

사실상 신도들과 화물차 기사들의 주차장으로 쓰이는 골목길이다.

아파트 단지 담장 곳곳에는

‘축대 및 지형 무너짐, 건너편에 주차하세요'

라는 안내문이 붙어있다.


대강당 문 앞에서 쭈뼛대며 내부를 살폈다.

찬송이 한창이었고 벌써부터 사람이 많이 와있었다.

나를 발견한 낮 수업의 강사가 넉살 좋게 인사하며 나를 강당 앞자리로 이끌었다.

찬송을 부르는 찬양단과 신도들의 머리가 동기화되어 좌우로 동요한다.

상당수는 작은 박수도 보태 리듬을 맞춰가고 있다.

10년 넘게 교회를 다녔던 경험이 무색하게 이 분위기, 장소는 목을 비트는 압박처럼 느껴진다.

입고 있는 티셔츠가 뜨겁게 느껴진다.

‘남들 하듯이 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을 겨우 견뎠다.


설교내용은 놀랄 만큼 낮의 수업내용과 유사했다.

죄인과 의인, 행복과 고난.

가능한 한 빨리 믿음으로 의인이 되어 행복한 신앙의 길을 걸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기 위해서 교회를 떠나지 말라고.

교회로 온 야곱이 받은 ‘절대적 구원의 약속’이 신도들에게도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기독교에선 이런 식으로 성경과 똑같은 행동을 하면 똑같은 일이 벌어진다고 믿는 것이 기본인 듯하다.

오늘의 이단교리파훼 수업에서

‘같을 필요 없음’의 방식이 아닌

‘같지 않음’의 방식을 전개한 것도 이 원리 일 것이다.


꽤 착잡한 기분으로 친구와 긴 통화를 했다.

처음엔 종교이야기로 시작했다가 점점 다른 주제가 전개됐다.

그러다 통화 막바지에,

앞으로의 미래를 걱정하는 친구에게 나는 이런 말을 했다.

”곧 기술발전 특이점 하나만 터지면 영원히 일 안 해도 먹고살고 즐기는 시대가 온다고, 심지어 영생할지도 몰라 “

친구는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내가 볼 때는 너나 그 사람들이나 똑같이 사이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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