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근 모임에 나갔을 뿐인데 19

Jettison

by 황인섭

‘법 없이도 살 사람’.

흔히 하는 표현 중 하나인데,

흔한 표현과 다르게 주변에서 그런 사람을 찾기란 쉽지 않다.

나의 경우는 한참을 떠올려봐도 두 명 정도가 한계다.

그런 사람은 그저 살아가기만 해도 주변 사람에게 영향을 주는데,

가끔은 존경을, 가끔은 경외를 품게 한다.

그런 사람조차 무언가 규칙을 어기면서 살아갈 것이다.

운전하면서 한 번도 규칙을 어기지 않은 사람이 존재할까?

모든 규칙을 숙지하는 것조차 불가능할 것이다.

운전도 인생도 실시간이다.

당장 닥친 급박한 상황을 모두 적법히 대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Jettison cargo!

제티슨은 항해사라면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용어다.

선박이 급박한 위험에 처했을 때,

최악의 상황을 피하기 위하여 화물을 버리는 선택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꼭 화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고,

절박한 위험을 피하기 위하여 규칙을 어기는 것을 총칭하는 비유로도 널리 쓰인다.

이런 것들은 규칙은 완전하지 않고 최종목적이 안전에 있음을 상기시켜 준다.

'국제해상충돌예방규칙 1장 2조 (b)항'


이단 상담소 5회 차.

5-1 이단교리파훼 (이중아담설)

아담 이전에 사람이 있었을까?

질문은 하는 사람은 먼저 질문 자체가 논리를 포함하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데드볼을 던졌는데 안타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강사는 내게 에덴동산 이야기를 진심으로 믿는지부터 물어봐야 했다.

먼저 신천지 측 주장이다.

"아담 이전에도 사람들은 자연인으로 살고 있었으며, 아담은 신과 대화한 최초의 인간을 의미합니다."

진화론을 수용했지만 성경의 자의적 해석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 해석 자체만으로는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이를 통해 아담부터 노아, 모세... 계속해서 신은 인간 중 하나를 택하여 신의 영이 깃들게 했고 현재에 와서는 교주가 선택된 사람이라는 결론을 낸다.


다음은 기독교 측 주장이다.

"아담은 성경의 문자 그대로 최초의 인간이 맞으며, 진화론은 거짓이다."

이어진 강사는 설명은 지금껏 했던 반론들 중 가장 초라한 근거뿐이었다.

진화론을 잘 모르는 사람도 창세기의 동화적 이야기를 진실로 믿기는 힘들다.

바다가 짠 이유가 소금이 나오는 맷돌을 빠트려서 그렇다느니,

호랑이를 피해 동아줄을 타고 올라간 남매가 해와 달이 되었다는 이야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


가장 현실적으로 본다면 창세기의 이야기는 농경사회 진입 시기를 동화로 썼다고 볼 수 있다.

강의 범람과 홍수로 비옥해진 땅 위에 농사를 지어 문명을 건설했고,
당장 배가 고프지 않아도 1년 내내 일해야 했고,

공통의 문자와 법이 필요했다.

홍수설화가 있는 것은 주기적인 범람이 있는 곳이어야 농사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현대 한국에선 황사가 문제지만, 비료가 없던 옛날엔 중국발 황사도 농사에 중요한 요소였다.)

유목생활을 하다가 농경사회를 만나 정착한 가족의 아이는 아버지에게 이렇게 물어봤을 것이다.

"왜 매일 일해야 돼요?"

문학적 소양을 타고난 몇몇 아버지들은 이렇게 답했을 것이다.

"우리의 조상이 선악과를 먹는 죄를 지었기 때문에 그 벌로 매일 일해야 한단다"


5-2 성경교육 (성경의 구조)


저번 시간 강사는 나를 하나님의 자녀로 확신한 것인지,

거의 매일 본인의 신앙고백을 1000자 내외의 메시지로 적어 보낸다.

장담하건대 그동안(혹은 지금도) 여러 사람에게 메시지를 보냈을 것이다.

세계적 석학이 역량을 동원해 풀어낸 대중서도 겨우 읽는 나에게,

일반인이 쓴 장문의 메시지는 상당히 버거울 수밖에 없다.

ChatGPT에게 고통을 전가시킬 수밖에 없었다.


강사는 특유의 열정을 뿜어내며 성경구조를 설명했지만,

초반부터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 튀어나와 진도가 막혔다.

율법의 목적은, 그걸 지키지 못했을 때 스스로 죄인임을 깨닫는 데에 있다.

율법을 지키면 율법주의자, 율법을 못 지키면 죄인.

지켜도 죄인, 못 지켜도 죄인.

"법을 다 지켜도 죄인이라고요?"

"율법을 다 지킨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죄를 깨달을 수 없기 때문에 구원받을 수 없어요"

"아니, 지키라고 내려준 규칙 아닙니까?"

"사회안정을 위해선 율법을 지켜야 하죠. 또 개인적 안정을 위해서도 지켜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분명히 모순적인 주장인데, 취약점이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한참 동안 관자놀이를 부여잡았다.

"차라리 외우라고 하면 넘어가겠는데, 납득해야 되니까 쉽지 않네요"

"외우면 안 되죠"

"뭐가 상상되냐면, 마치 저 지시는 일진이 백원주고 빵사오라는게 떠올라요. 부당지시인 거죠."

강사가 잠시 황당한 표정으로 응시하더니 칠판이 표적지인 양 마커로 두드렸다.

표를 가로로 그렸다가 세로로 그렸다가 도식화했다가 나열했다.

"제가 설명을 조금 이상하게 했던 것 같은데요. 스스로완벽한 존재가 아님을 깨달아야 한다는 거죠."


"율법을 못 지켜서 죄를 깨닫는 게 구원이라면, 착한 사람이 더 늦게 구원을 받겠네요?"

"율법주의자를 꼭 착하다고 할 수는 없죠"

"그럼 이렇게 하죠. 날 때부터 성향상 규칙을 잘 지키는 사람이 있고, 쉽게 어기는 사람이 있을 때, 잘 지키는 사람이 더 늦게 깨닫는 거 아닙니까?"

"그게 큰 차이가 있을까요? 아마 아무리 잘 지키는 사람이더라도 금세 율법을 어길 겁니다"

"만약 뛰어난 준법정신을 가진 사람이 있다고 치면요? 그 사람은 가장 늦게 교회로 오는 거 아닙니까? 아예 안 올 수도 있고요"

말하다 보니 머리를 맴돌던 모순이 풀렸다.

내가 느끼던 모순이 이 부분이었다.

나는 강사의 주장에서 착한 사람이 오히려 구원에서 배제되는 느낌을 받았다.

강사는 내가 말 한대로 칠판에 적더니 그걸 쳐다보며 말했다.

"이렇게 보니 조금 이상한 느낌이긴 한데, 제가 했던 설명이 뭔가 잘 못 된 게 있는 거 같아요"



"자, 이렇게 이해해 볼 수 있겠죠. 그 정도로 준법정신 있는 사람은 겸손하지 않을까요?"

"그렇긴 하죠"

"그렇죠. 그래서 착한 사람은 꼭 율법을 어기지 않고도 죄인임을 깨달을 수 있겠죠."

"저는 그래야 된다고 생각하는데, 어떤 사람은 양심에 자부심을 가질 수도 있잖아요. 그것도 잘 못 된 건가요?"

"양심에 자부심 가지는 사람도 사실 한편에 피어오르는 나쁜 생각에 대해 죄책감을 가지지 않을까요?"

"생각만 해도 죄라는 말입니까?"

"나쁜 생각이라면 그럴 수 있죠"

수천 년의 역사동안 쌓인 논리는 무식하게 견고했다.


차라리 나에게 율법은 그 당시 사람들에게 평화와 겸손을 주는 메시지였고,

지금 그걸 어떻게 받아들일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면 나는 즉시 납득 했을 것이다.

율법이나 규범에 목 매이지 말고 우리가 실천해야 할 것은 겸손한 마음과 이웃사랑이라고 했으면 박수를 쳤을 것이다.


암초와 충돌한 선박의 침몰을 피하기 위해서 Jettison을 실행한 선장이 재판장에 섰다.

재판장은 이렇게 말한다.

"규칙을 어기셨군요. 당신도 결국 형편없는 선장임을 인정합니까? 이제 바다의 지엄함이 느껴지십니까?"

선장은 이렇게 말한다.

"바다의 무서움을 다시 한 번느꼈습니다"

선장은 집으로 돌아와 사고지점에 암초표시를 추가했다.

다시 바다로 나가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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