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은혜롭네
아버지는 직계가족 중 두 명의 개신교인이 곁에 있었다.
아내와 누나, 나에게는 어머니와 고모다.
어머니가 떠나실 때 아버지는 말했다.
“하늘에서 필요해서 좋은 사람이 먼저 떠나는 거야”
고모가 떠나실 때 이렇게 말했다.
“그거 믿어서 된 일이 뭐가 있는데”
제사에 참여하더라도 절은 하지 않으시던 아버지는 고모가 돌아가실 때쯤 제사도 잘 참여하고 절까지 하게 됐다.
가족 중 나와 형은 아직도 종종 그에 반발하곤 한다.
나도 가끔씩 집에 머무를 때면 참여하곤 하는데 큰아버지는 매번 질타한다.
"너도 하는 일 잘 되게 해달라고 절 한 번 드려"
"그런 거 바라고 하면 무슨 의미가 있어요. 그리고 교회 다녔던 사람으로서.."
아버지는 이젠 교회 얘기만 나와도 발끈하신다.
"야, 교회 걔들이 돈 더 밝혀"
근무날도 한가할 때가 많다.
원칙상 그래도 자리를 지켜야 하지만,
오랜 경험에 의해서 문제가 없다는 것이 예상되면 적당히 시간을 보내다 돌아오곤 한다.
그날은 근무지를 이탈하여 교회 청년예배를 간 날이었다.
바빌론의 포로가 된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를 소개하며 예배가 시작됐다.
그리고 그중 군계일학이던 다니엘의 일화를 설명했다.
“그는 소신을 지키며 성경적 가치관을 끝내 바꾸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현재의 우리 또한 바빌론이라는 세속적 가치의 유혹을 이겨내야 한다고 말한다.
“다니엘에게 총리직을 제안하며 유혹했지만 다니엘은 거절했습니다. 그러자 총리가 되었습니다(?)”
세속적 가치를 버리자 오히려 풍요를 얻었다며 이것이 하나님의 복이라고 설명했다.
신앙에 몰두해야 물질적 풍요를 준다는 주장은 신도들에겐 적용되기 힘들다.
사람은 일에 몰두해야 풍요를 얻을 수 있다.
그리고 탐욕을 버리는 이유가 물질적 보상이라는 것도 모순적이다.
‘필사즉생필생즉사‘와 비슷해 보이지만 정반대 된다.
이들은 물질적 빈곤을 겪는 사람들을 믿음 없는 자로 일축하고 그들에게서 다시 일어날 투지조차 뺏어버린다.
본인들은 굶주리고 아파 본 적이 없으면서 간절한 사람들의 지푸라기 잡는 심정을 이용한다.
본인들은 생산적 활동을 하지도 않으면서,
영위하는 생활이 인간의 생산품인 것을 모르는 것인지 감사하지 않는다.
생선장수가 내어준 생선을 먹으면서
'오늘도 멋지게 훔쳤다'
라고 자찬하는 고양이의 꼴이다.
차량정비사가 일을 게을리했으면 교회에 다닐 수 있을까?
감히 누군가가 누군가에게 일보다 교회를 중요시하라고 할 자격이 없는 것이다.
무엇보다 세속적 욕망을 버린다면서 사실 세속을 원하고, 유치하기 짝이 없는 천국과 영생의 욕망을 가지는 것이 역겹다.
밤부터 진한 습기가 졌다.
다음 날 새벽엔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해무가 바다를 덮을 것이 예상된다.
해무가 짙어 시야가 제한되면 항구의 입출항은 통제된다.
주일날 퇴근시간에 정확히 출항작업이 걸렸다.
예배 중심으로 삶을 가꿔 나가야 하고,
또 그렇게 되도록 하나님이 도와준다던 강사의 주장과 상반된다.
그렇게 체념한 채로 채 작업시간에 맞춰 기상했는데,
이불의 습기가 심상치 않다.
기대반걱정반으로 바다를 내다보니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당장 미스트의 괴물이 등장해도 이상하지 않은 안개가 껴있다.
당연히 항만통제로 출항작업은 취소됐고,
제시간에 퇴근하여 교회에 갈 수 있다.
‘하나님의 은혜로구나!’
부활절을 맞이한 교회는 무수한 차들과 사람들이 안개보다 더 짙게 껴있다.
도저히 안개를 뚫고 들어가 차를 세울 수가 없다.
덕분에 동네 드라이브를 했는데,
동네 또한 범람한 차들로 수해를 입어 내가 보탤 덤이 없다.
아주 구석 웬 꽃농가 비닐하우스 옆 흙밭에 세우고 주인이 관대하기를 빌었다.
이단상담소를 운영하는 교회의 특성인지 이 교회는 교리를 상당히 중요시한다.
보통 다른 교회를 다니다가 왔다고 말하면 그런 줄 알고 넘어갈 텐데,
다니던 교회가 어느 교단인지 묻고,
그 교단의 교리해석의 오류와 폐단을 설명해 준다.
딱히 기분 나쁘지는 않지만,
이단도 아닌 타 교단조차 배척하는 모습은 인상이 찌푸려진다.
부활절을 기념으로 예수의 부활을 찬양하는 예배가 끝나고 목사는 광고말씀이라며 몇 가지 소식을 전했는데,
인근 초등학교 부지의 주차계약 성사,
며칠 뒤 열릴 행사 같은 것들이다.
“그리고 얼마 전에 사위랑 차를 타고 가는데, 어 박겠는데? 박겠는데? 박았네? 교통사고가 났습니다"
목사의 재치 있는 말솜씨에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그러데이션으로 커졌다 작아졌다.
다른 차량에 옆구리를 박혀 차는 반파되고 본인은 병원치료를 받고 있다고 한다.
“의사가, 차가 버텨서 망정이지 큰일 날 뻔하셨네요.라고 하더라고요”
여기까지 나는 사고를 당해 크게 다칠 뻔한 것을 하나님이 구해주셨다고 할 줄 알았다.
“그리고 차 수리 넣었는데 한 달 반 걸린대요. 그랬더니 장로 한 분이 저를 데리고 어디로 가더라고요 “
초창기부터 교회와 함께한 장로가 본인이 2500만 원을 댈 테니 벤츠로 새 차를 뽑으라고 했다고 한다.
“저는 그랬죠. 장로님 저 욕먹습니다. 그리고 보태주셔도 벤츠 살 돈 없습니다.”
장로는 겸손한 척해도 욕먹고, 좋은 차 타도 욕먹으니, 차라리 좋은 차를 뽑으라고 했다고 한다.
“그래서 안 됩니다. 하고 넘어가려는데, 청년들이 소식을 듣고 일어났지 뭡니까. 목사님 다칠 뻔했는데 차도 못 바꾸냐면서, 그렇게 한 푼 두 푼 모금이 돼서 제가 차를 마련할 수 있게 됐습니다. 소개하겠습니다. OOO전도사님.. OOO집사님...”
‘이런...‘(한 친구는 이런 행태를 듣고 7080년대의 촌지봉투 아니냐며 비판했다)
“하나님의 은혜는 줄 때 받아야 합니다. 여러분. “
참고로 원래 목사의 차량은 제네시스 G90으로,
이미 최고급 세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