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은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정확하게 모른다.
마음 편히 직장생활 하기 위한 고민
"홍프로 뭐 하고 있어~?"
어느 날 나의 팀장님이 내 자리 옆을 지나가면서 던진 질문이다. 대부분 저런 질문은 통상적인 안부인사 how are you와 같은 질문이긴 한데 그날따라 뭔가 느낌이 싸~ 했다. 이분이 정말 몰라서 물어본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얼른 일어서서 웃으며, 그리고 팀장님이 움직이는 방향으로 함께 걸어가면서 조근조근 설명을 드렸다. 그랬더니 "아, 그것도 홍프로가 지금 하고 있는 거였어!"라는 반응이 돌아왔다. 촉이 좋았다. 이때 설명하지 않았으면 팀장님은 내가 어영부영 놀고 있다고 생각할 뻔했다.
그동안의 경험 상, 팀의 규모가 10명을 넘어가게 되었을 때 각 팀원들이 하고 있는 일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팀장을 만나기는 쉽지 않았다. 해당 팀에서 오랫동안 실무를 해서 많은 경험을 가지고 있는 팀장의 경우에는 그래도 각 팀원들의 업무를 잘 파악하고 있었지만 그건 소수의 경우에 불과했다. 게다가 어떤 때에는 해당 팀의 업무를 충분히 알지 못하는 팀장이 꽂히는 경우도 있다 보니 그런 팀장일수록 팀원들의 업무를 세세하게 파악하기는 어려워 보였다.
팀장이 팀원의 업무를 파악하기 힘든 데에는 크게는 두 가지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첫 번째는, 조직의 기본적인 구조의 이슈로 보인다.
팀의 규모가 어느 수준을 넘어가게 되면 기본적으로 팀장이 실무를 하기보다는 팀원들의 업무관리, 조직관리에만 신경을 쓸 수밖에 없게 된다. 그것이 회사가 팀장에게 원하는 역할이기도 하고, 실제로 팀원들의 업무관리, 조직관리(라 쓰고 사람관리라 읽자)에 신경을 쓰다 보면 물리적으로 실무를 할 시간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쯤 되면 보통은 팀을 5명 정도의 더 작은 2~3개의 단위(예) 파트)로 나누어서 중간관리자를 두는 경향이 있다.
그렇게 중간관리자를 둘 경우엔 그 중간관리자를 통해서 업무를 분배하고, 진행사항을 보고 받는 것이 일반적으로, 이렇게 되면 팀장이 팀 내 각 파트에서 누가 구체적으로 어떠한 일을 하며 얼마나 기여하는지를 모를 수밖에 없다. 중간관리자에게 팀장이 해결이 필요한 업무를 이야기하면, 중간관리자가 알아서 업무를 분배하고 결과를 가져오는데 그것을 누가 했는지 팀장이 과연 관심을 가지고 일일이 물어볼까? 그렇게 되면 팀장은 각 개인의 업무에 대한 성과는 대부분 해당 중간관리자의 시선과 입을 통해서만 파악할 수 있게 된다. 결국 각 개인의 업무와 성과가 연말평가에 충분히 혹은 공정하게 반영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이것이 바로 조직의 기본적인 구조의 이슈이다.
그래서 이러한 구조적인 이슈를 바로잡기 위해서, 어떤 회사들은 가장 말단에서 실무를 하는 인력들의 바로 접점에 있는 그 중간관리자에게 1차 평가권을 부여하여 일을 한만큼 제대로 평가가 이루어지게끔 노력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게 중간관리자가 나의 1차 평가를 한다고 해서 그 중간관리자가 정말 내가 하는 업무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을까? 그래서 나의 노력의 가치와 성과가 충분히 인정해줄까?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여기에 팀장이 팀원의 업무를 파악하기 힘든 두 번째 이유가 있다고 본다.
팀장(혹은 중간관리자)의 팀원에 대한 관심이 충분하지 않은 것이 두 번째 이유이다.
팀장들은 대체로 일의 중간 과정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기본적으로 시작과 끝에만 관심이 있다. 옛말에 '꿩 잡는 것이 매'라는 표현이 있다. 난 처음에 그 말을 쓰는 팀장을 만났을 때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이해를 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한참을 지내보니 깨닫게 되었다. '아~ 중간 과정은 내 알 바 아닌데, 누구든 저 일을 해결하기만 해라'라는 소리라는 것을.
특히, 중간관리자의 경우엔 본인의 일을 함께 하면서 파트장의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 사실 본인 업무를 해결하기만도 바쁜 상황이라 후배들의 업무를 세세하게 챙겨 보기가 쉽지가 않다. 이것이 현실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팀원 된 우리들이 직장생활에서 서운함을 느끼게 되는 부분이 참 많다. 앞에서 말했듯이 기본적으로 내가 한 일에 대해서 정당하게 평가받지 못한다는 느낌이 있다.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무엇을 공정하게 평가하겠는가 말이다. 근데, 그것보다 더 큰 서운함은 따로 있다. 일을 하다 보면 결과가 좋을 때도 있고, 좋지 않을 때도 있다. 그래서 평가를 잘 받을 때도 못 받을 때도 있다.
다 이해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 실무자가 겪은 어려움과 힘듦을 전혀 공감해주지 않고 단순히 결과로만 평가를 하니 마음에 서운함이 크게 남는 것이다.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관리자의 자리에 올라가면 이전에 본인이 경험했던 일들을 잘 잊어버리는 것 같다. 실무를 할 때에 어떠한 부분이 어려웠는지 어떻게 극복했는지에 대한 기억이 희미해지는 것 같다. 물론 (내가 이렇게 평가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치열하게 본인 실력을 쌓아온 팀장의 경우엔 그 기억을 선명하게 가지고 있는 것 같고 그래서 후배들을 더 잘 이해하고 잘 대해주는 것 같다. 하지만 어디 팀장 자리에 실력으로만 올라가나? 운도 실력이라는 표현을 기초로, 그 실력에서 운을 빼고 남은 실력을 따졌을 때 진짜 실력자라고 할 만한 하지 않은 사람도 팀장 자리에 않기도 하는 것을 많이 보았다. 그런 사람들이 주로 앞서 언급한 공감이 부족한, 관심이 부족한 팀장의 모습을 많이들 보였다.
하지만, 실력이 있다 하더라도 즉, 충분한 경험을 하고 팀장의 자리에 올라갔다 하더라도 팀 내에 있는 모든 업무를 경험하고 팀장이 되는 것은 아닌 것이 대부분이다. 그렇다면 이전에 본인이 경험해 보았던 일들도 기억에서 희미해져 가는데, 솔직히 해보지 않았던 일들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상황을 이해하기가 어려운 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이리라. 또한, 내 옆에 있는 동료도 업무 상 나의 어려움과 그것을 극복 하기 위한 노력과 고민을 알 수가 없고, 나 역시 내 옆에 있는 동료의 그러한 점을 백 프로 공감을 못해주는 판국에 위.에. 계.신. 팀장이 당연히 알 수가 없지 않을까?
내 팀장은 그렇지 않다고?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잘 알고, 내 개인사도 잘 안다고? 그렇다면 당신은 엄청난 행운이다. 그런 상사, 팀장을 만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있을 때 잘하고, 그 시간을 즐겁게 보내길 바란다.
지금까지 팀장이 혹은 상사가 왜 내가 하는 일을 모르는지에 대해서 같이 살펴보았다. 부당하다, 팀장으로서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 수 있다. 일면 그 생각이 맞기도 하다. 그런데, 그 의무를 다하지 않은 것에 대한 책임은 팀원인 내가 물을 수는 없다. 회사라 그렇다. 언젠가 회사에서 그리고 내 팀장의 상사가 묻겠지. 다만 나는 팀장이 다하지 않은 그 의무의 영향을 고스란히 감내해야 하는 위치다.
회사가 제도적으로, 조직적으로 해당 문제를 해결해주면 당연히 좋다. 그래서 최근에는 상사가 부하를 평가하는 전통적인 방식 이외에, 부하도 상사를 평가하는 평가 제도를 도입하는 회사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아직은 그것이 그렇게 실효성이 있지는 않다. 해당 제도는 '인기투표'라는 한계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나는 우리가 처한 상황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조금이나마 마음 편히 직장 생활하기에 필요한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지금부터는 팀장이 구체적으로 내가 하는 일을 모른다는 것이 나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같이 생각해 보도록 하겠다.
일단, 팀장이 나의 일을 모른다면 평가에서 불이익을 받을 확률이 높다.
불이익이라는 표현을 쓴 이유는, 내가 투입한 노력 대비 원하는 만큼의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는 의미를 살리고자 그랬다. 팀장 머릿속에 있는 일이 바로 중요한 일인데, 그 머리밖에 있는 일을 하고 있다면 팀장은 나를 중요한 일을 하고 있지 않는 그런 평범한 팀원으로 인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차피 하루에 8시간을 일한다면 이왕이면 내가 속한 조직에서 중요한 일, 의미 있는 일, 즉 팀장이 인지하는 일을 하는 게 좋지 않을까? 팀장의 기억에 남는 중요한 일을 배정받는 것이 좋은데, 그게 안된다면 이번 장 서두의 나처럼 팀장 기억에 남겨드리는 것도 좋은 방법이 아닐까? 다만 팀장의 기억에 남기기 위해서는 약간의 스킬이 필요하다. 자연스러움. 너무 과한 어필이 아닌 자연스럽게 아~ 홍프로가 이런 일을 하고 있고, 이런 것을 어려워하는 구만~ 이 정도 수준이면 된다. 기회가 왔을 때, 촉이 왔을 때 잘 이야기를 해보자. 그런데 이 이야기도 평소 본인의 업무를 잘 꿰고 있어야 줄줄줄 나오지, 그렇지 않으면 뭐 하고 있냐고 물었을 때 선뜻 대답하기가 쉽지 않다. 만약 그 타이밍에 적절한 대답을 하지 못하면, 팀장은 우리가 정말 놀고 있다고 생각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팀장이 나의 일을 모른다면 연말 인사이동에서 원하지 않는 이동이 있을 수도 있다. 팀장이 나의 일을 모른다는 것은 팀 내에서 나의 역할과 가치에 대해서 모른다는 것과 동일하다. 연말에 회사에서 인력들을 순환배치해야 할 때 혹은 팀의 규모를 줄여야 할 때 누구를 가장 먼저 떠올리겠는가?
평소에 존재감 없는,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는 그 사람을 먼저 떠올리지 않을까? 가끔 보면, 어떤 친구들은 아무런 보고를 하고 있지 않는 상태를 즐기면서 좋아하는데 그렇게 좋아할 만한 상황은 아니다. 물론 조직 내에서 본인이 주니어의 위치에 있다면 한동안은 그럴 수 있지만 보고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결국 상사에게 무슨 일을 하는지 설명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설명하지 않으면 상사들은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절대 모른다.
회사에서는 대부분 본인이 진행하고 있는 일을 보고자리를 통해 설명하는데 그 설명하는 양을 모아 보면 상당하다. 팀장 혹은 상사는 이미 충분히 본인의 기억력과 어쩌면 이해할 수 있는 역량을 넘어서는 보고를 받게 되는데, 보고하지 않는 업무와 그 사람에 대해서 누가 왜 안 하고 있는지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기억력을 다 써버려서 보고하지 않는 누군가의 존재는 완전히 지워질 수도 있는 것이다. 즉 보고하지 않는 상태에 있다면 위기감을 가져야 한다.
또한 팀장이 나의 일을 모른다면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또 다른 일이 추가로 더해질 수도 있다. 즉 지금 맡은 일만 해도 피곤한데 더 피곤한 상황이 만들어질 수도 있다. 무엇을 하는지 모르다 보니, 어떤 새로운 일이 생기면 '홍프로가 요새 무엇을 하고 있더라?' , '아~ 뭐 바쁜 일은 없겠지~' 이렇게 대충 생각하면서 그 일이 나에게 떨어질 수가 있는 것이다. 물론 그제야 "아니요, 저 이런이런 일들로 굉장히 바쁩니다."라고 설명해서 새로운 일을 받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 거절에 대해 팀장이 감정적으로 자연스럽게 납득할지는 의문이다.
결론적으로 팀장이 내가 하고 있는 일을 모른다는 것은 나는 직장생활의 큰 위기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냥 허탈하게 웃어넘기거나, 단순히 서운한 기분만 느끼고 넘어갈 상황은 아닌 것이다. 앞서도 잠깐 설명했지만, 리더십 평가라는 어떤 제도를 통해서 팀원인 우리가 리더들에게 철퇴를 내리는 상황을 많이들 상상하고 기대하지만 실제로 그런 일들이 많이 일어나지는 않는다. 회사 입장에서는 엄선하여 팀장이라는 자리에 앉혀 놓았는데 단기적인 조직관리 등의 이슈로 해당 팀장을 경질하는 것은 조직의 결정이 잘못되었다 시인하는 것과 다를 바 없기 때문에 좀처럼 그렇게 하지 않는다. 팀장이 팀원에게 무관심해서 리더십 교체라는 결과가 나오기 이전에, 팀장이 내가 무엇을 하는지 알지 못해 나의 평가와 연봉이 주저 않는 것이 더 빠를 가능성이 높다.
팀장의 부족한 리더십을 탓하고 가만히 있기보다는, 나는 내가 하는 일을 설명해서 난 충분히 잘하고 있음을 설명하는 쪽을 선택하겠다. 나보다 10살은 더 많은 팀장의 생각과 행동이 바뀌는 것이 빠를까, 아니면 내가 행동하는 것이 빠를까? 나는 단연 후자라고 생각한다. 내가 원하는 것은 이왕 일한다면 재미있게 일하고, 그리고 내가 한 일을 인정받아 평가도 잘 받고 연봉도 많이 오르는 것이다. 팀장에게 꾸준히 신뢰를 형성하고, 내가 하는 일을 인지시켜드리는 것 그것이 내가 할 수 일이라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