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프로직장러 Oct 02. 2022

인정받는 일 vs 인정받는 사람

마음 편히 직장생활 하기 위한 고민

"선배님은 이런이런 일들을 반드시 하셔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내가 조직을 옮겨서 일을 하기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 가깝게 지내던 후배(그 후배는 그 조직에 오래 있었다.)가 사석에서 나에게 해준 이야기다. 이후 다른 선배도 그런 비슷한 이야기를 나에게 해준 적이 있다.


다들 조직에서 가장 인정받는 일이 특정한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고, 그래서 나에게 '너도 나이가 있고 직급이 있으니 빨리 인정받아야지' 라며 좋은 마음으로 이야기를 해준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감사한 일이다. 보통 새로운 사람이 오면 기존에 있던 사람들 입장에서는 경쟁자로 느껴질 법도 한데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그런 조언을 해 주다니 말이다.


내가 그 일을 하면 기존에 그 일을 하고 있던 누군가는 그 일을 못하게 될 텐데, 그 누군가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고 이야기를 건넨 것을 보면, 그들이 나를 아끼는 마음에 그랬던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물론 '그렇게 좋은 일이면 왜 자기가 하지 않고 새로 온 사람한테 하라고 이야기하지?' 하는 그런 생각이 드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라고 해서 그런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은 아닌데,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 직장생활이 너무 피곤하다. 기본적으로 회사에서는 나에게 맡겨진 일만 하기에도 힘들고 피곤한데, 위와 같은 복잡한(?) 생각에 에너지를 쏟을 여력이 없다. 그래서 나는 그런 생각은 가능하면 하지 않기로 했다.


한편, 앞 챕터에서 '인정받는 일' 같은 표현을 잠시 썼던 적이 있는데, 거기서 이 '인정받는 일'이라는 것을 자세히 이야기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인정받는 일'이라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 앞서 언급된 선후배들이 이야기해 준 것과 같은 그런 일이 정말 '인정받는 일'인가 하는 근본적인 의문이 있기 때문이다. 그 인정받는 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 보고자 한다.




나는 직장생활을 하면서 항상 양가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하나는 '편하게 지내고 싶다. 눈에 띄고 싶지 않다.'라는 마음이고 다른 하나는 '인정받고 싶다. 튀고 싶다.'라는 마음이다. 사실 지금도 그렇다.


다들 잘 알겠지만, 직장인인 이상 아무리 편하게 지내려고 해도 그건 쉽지가 않다. 월급 루팡이 꿈이라는 웃지 못할 농담이 인터넷 밈으로 돌아다니는 것은 그렇게 루팡처럼 거저먹는 일을 하는 것은 현실에는 없는 꿈만 같은 일이기 때문일 것이라 생각한다. 실제로 회사에서는 상사들 뿐만 아니라 동료들도 내가 노는 것을 가만히 둘리가 없다. 그리고 나도 양심과 윤리의식이 있다 보니, 최소한 받은 만큼은 일을 해야 하지 않겠냐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고, 그래서 마냥 편하게 놀 수는 없다. 실제로 그렇게 지내본 적이 없다.


그렇게 편하게 지내고 싶어 하는 마음만큼이나 큰 무게를 가진 것이 바로 인정받고 싶은 마음인데 이것이 평소에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평소에는 조직에서 어필하려고 튀는 사람들을 보면서 속으로 '그래 너 잘났다.', '그렇게 까지 어필해야겠냐?' 이러면서, 나는 그런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것처럼 행동하는데, 정작 고과 시즌과 연봉 인상률이 발표될 때가 되면 긴장되고 두근두근 하는 것 보면 나도 그리 고고한 사람은 아니고, 내가 속으로 흉봤던 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인정받고 싶어 하는 사람 중에 한 명일 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앞서 다른 챕터에서 팀장과의 관계를 미숙하게 했던 경험을 나누었는데, 지금 위에서 설명한 저런 나의 마음 상태도 그것과 별반 다를 바가 없다. 내가 가지고 있는 인정받고자 하는 마음, 평가를 잘 받고 싶은 마음, 연봉이 많이 올라갔으면 하는 마음들을 솔직하게 인정하지 못하고 아닌 척하다 보니 이도 저도 아닌 상태가 되었던 것이다. 내 마음의 방향을 결정해서 그것에 따라 입장을 정해서 밀고 나가야 하는데, 시시때때로 다르게 생각하고 오만 눈치를 보니 뭐하나 딱 부러지게 '나의 것'을 챙길 줄 몰랐던 것 같다.


어쨌든 인정받고 싶어 하는 나의 마음 상태를 스스로 인정하고 나니 직장생활을 대하는 나의 태도나 마음이 조금은 편해졌다. 괜히 옆에서 이런저런 모양으로 인정을 받아가는 사람들을 시기 질투하거나 험담하는데 시간을 낭비하지도 않고 '너는 너의 길을 나는 나의 길을 가자' 하는 객관적인 혹은 조금은 관조적인 마음을 가질 수 있게 된 것 같다.


이전에는 '아니 저렇게 해서까지 평가를 잘 받고 싶어?' 라며 험담하고 분노했는데,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그는 그렇게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고 나는 그것이 싫어서 하지 않았던 것인데, 굳이 나와 동일하게 행동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를 싫어하거나 험담할 필요까지 있었을까 싶다.




이전 조직에서 몇 년째 임원의 지근거리에서 임원과 긴밀하게 무언가 비밀스러운 일을 하는 친구가 있었다. 정말 아예 아무것도 모를 때에는 '아~ 저 친구가 일을 굉장히 잘하나 보다,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일을 오랫동안 저 친구에게 맡기네?'라는 생각을 했었고, 조금 더 조직에 깊이 관여하게 되었을 땐, '와 쟤만 저거 시키네? 쟤는 편하겠다. 지금 쟤가 하는 것이 뭐가 그리 중요하다고 쟤만 저 일을 시키고, 항상 평가를 챙겨주는 거야?'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하지만 더 시간이 지나고 나서는 '쟤는 어떻게 저 일을 계속하게 되었을까? 팀장은 왜 저 친구한테만 저 일을 계속 시킬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결국 도달한 결론은 '팀장은 그 친구에게 일을 시키는 것이 마음이 편하다'는 것이었다. 당시 나는 나 역시 스스로 한가락하는 팀원이라는 교만한 마음이 있었다. 그러다 보니 '왜 나에게 안 시킬까? 나도 잘할 수 있는데.'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아, 저 팀장이랑 나는 인간적으로 안 맞는데, 도저히 못 맞추겠는데.' 하는 생각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팀장과의 사이가 그렇게 긴밀하거나 원만하지 않았다.


평범한 팀원과 팀장의 사이를 넘어서는 신뢰를 형성하기가 쉽지 않았다. 즉, 나는 그 팀장에게 있어서는 최상위 평가를 주기엔 모자라고, 평범한 평가를 주기엔 좀 애매한 그런 계층의 팀원이었다. 나는 스스로 일을 잘한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남이 보기에도 그랬을까? 지금에 와서 솔직히 얘기하면 그 친구와의 실력의 차이는 어느 정도 있었다고 생각된다. 설령 그 친구와의 실력의 차이가 없었다 한들 팀장 입장에서는 이왕 같은 실력이면 본인 마음이 편하고, 본인이 평소에 신임하는 팀원에게 중요한 일을 맡기는 것이 자연스러운 행동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즉, 그 친구는 인간적으로도 믿을만하고 실력도 있으니깐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팀장은 그 친구에게 가장 중요한 일을 맡겼던 것이다.




불공정하다고 생각이 드는가?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할 때가 있기도 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공정할까?

회사에서 일을 하면 스탭의 경우는 대부분 정성적인 업무들이 많다. 기여와 성과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 업무들이 많다는 얘기다. 이럴 때에는 상사의 주관적 판단이 기준이 될 수밖에 없다. 동료평가와 같은 보조적 제도를 활용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 또한 인기투표라는 한계에 부딪히는 경우가 많다.


나는 이렇게 사람이 주관적으로 평가를 할 수밖에 없는 일들은 그 결과가 벽하게 공정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언젠가 평가 결과가 불공정하여 불만족스럽다는 사람이 직장인의 과반수가 넘는다는 설문조사 결과를 잡플래닛에서 발표한 을 본 적도 있고 말이다.


일이 끝나고 이미 드러난 결과를 가지고 평가를 하는 것도 불공정한데, 일을 나누어 주는 단계야 말할 필요가 없다. 일을 모두가 납득할 만하게 나누어 주는 것을 아직 보지 못했다. 내가 어느 조직을 가든 간에 항상 불만족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게 어떨 때는 나였을 때도 있고, 다른 사람일 때도 있었다.


본인 생각에 본인은 일을 잘하고, 말귀를 잘 알아듣는 사람일지 몰라도 팀장 입장에서는 팀장이 신임하는 팀원보다 본인이 일을 썩 잘하지는 것도 아니고, 말귀도 잘 알아듣는 팀원이 아닌데 왜 굳이 그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중요한 일을 맡길까? 그런 일은 없다. 직장 생활하는 이 글을 읽는 분들도 같이 조금 고민해보면 좋겠다. 왜 나에게 그런 기회를 주지 않을까? 팀장은 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할까? 항상 팀장이라면 응당 이렇게 해야지 이러면서 불평불만만 토로하지 말고, 가끔 혼자 있을 때 나는 팀장에게 어떻게 비췰지 한번 생각을 해보면 좋겠다.




나는 직장생활을 하면서 인정받는 사람이란 인정받는 일을 해서 인정을 받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사람이 먼저 인간적으로 인정(신뢰)을 받고 그다음에 인정받는 일을 받아 다시 인정받는 사람의 사이클을 완성했다고 생각한다.

먼저 인간 대 인간으로 팀장과의 관계를 구축해야 한다. '내 생각은 그렇지 않은데?'라고 하면 답이 없다. 내 생각이 그렇지 않지만, 나 아닌 누군가는 또 팀장이랑 인간적으로 원만한 관계를 가질 것이고 그러면 그 인정의 사이클은 그 친구에게 돌아가게 된다. 인정의 사이클을 만들지 말지는 순전히 내 결정에 달렸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보면 또 오해가 남을 수 있다. 마냥 팀장에게 손 비비며 아부하고 사는 것으로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동료끼리 데면데면하게 지내지 않고 잘 지내려고 노력하는 것이 보통의 직장인들이 가진 프로의식(?)이 아닌가. 그러한 관계의 틀에서 팀장은 굳이 왜 제외를 하는가? 우리도 언젠가는 팀장이 될 텐데, 그런 직장생활의 관계에서 소외되면 좋겠는가? 내가 그랬던 것처럼 유아기적 사고를 가지지 말고, 장성한 어른처럼 정상적으로 사회생활을 해온 사람은 팀장과 신뢰를 쌓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이해하고 있을 것이다.

하고 싶은 일, 인정받는 일을 하고 싶다면 먼저 인간적인 신뢰와 기본 실력을 가지고 그 일을 달라고 이야기해보자. 내가 팀장이라면 그런 사람에게는 중요한 일을 맡길 것 같다.


끝으로 인정받는 일이란 것의 실체에 대해서도 조금 더 이야기를 해보면 좋겠다.


가장 서두에 해당 조직에서 인정받는다고 여겨져 왔던 일을 내가 해야 하지 않겠느냐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그래, 대부분 조직에서 중요한 일은 작년이나 올해나 비슷할 수 있다. 그런데 보면 가끔은 꼭 그렇지 않을 경우도 많다. 팀장이나 상사의 관심이 아예 다른 곳으로 옮겨갈 때도 많고, 어떤 때에는 누가 일을 하느냐에 따라 상사가 관심을 가지기도, 그 일이 재조명받기도 한다. 그래서 고정관념처럼 '저 일이 가장 중요하고 인정받는 일이니깐 저걸 해야지' 이러면 여러 난처한 상황에 놓일 수가 있다.


괜히 내가 그 일을 가져오려고 하다가 다른 누군가가 피해를 보는 일도 생길 수가 있다. 물론 회사라는 무한경쟁 조직에서 굳이 남을 그렇게 배려할 필요가 있나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지만, 대체로 우리들 사회생활은 생각보다 아주 조금 더 인정적이다. 우리가 이런 식으로 조금씩 쌓아온 작은 배려가 그래도 서로의 사회생활을 덜 삭막하게 만들고 있다 생각한다. 또한, 중요해 보이는 그 일을 달라고 하여 받아왔지만 나의 평가는 이전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경우도 생길 수 있다. 앞서도 말했지만, 일도 중요하지만 누가 그 일을 하는지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주변에 진짜 일 잘하는 사람을 만나본 적이 있는가? 같은 일을 해도 그 사람은 뭔가 다르다. 일을 풀어나가는 방식, 결과 어느 것 하나 평범하지 않다. 그런 사람이 분명 주변에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이 하면 작은 일도 팀장은 크게 본다. 결국은 사람 그 자체인 것이다. 인정받는 사람이 되는 것은 인정받는 일을 해서 성과가 있는 것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사람이 항상 인정을 받는 상태에 있는 것이다. 그래서 까칠하게 일로만 승부 보려고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앞서 말했지만 우리가 스스로가 일을 잘한다고 생각해도 윗사람들이 보기에는 혹은 동료가 보기엔 별로 그렇게 대단해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염두에 두면 좋겠다.

일단은 상사와 인간적인 신뢰를 쌓고, 거기에 동료의 지지도 함께 포함해서, 인간적으로 인정받는 사람이 되는 것이 우선이라 생각한다.



이전 05화 논리 vs 감정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