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회사를 다니면서 직무를 바꾼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 주변 동료들이 나에게 한 이야기이다.
나도 좀 쉬엄쉬엄하고 싶다.이 일하는 스타일이라는 것이 워낙 개인적인 것이어서, 개인마다 일을 대하는 마음가짐, 태도 등이 너무 다를 수밖에 없다. 컨베이어 벨트에서 똑같은 작업을 하는 사람도 아마 완전히 똑같은 마음과 태도로 하는 사람은 없지 않을까? 나는 조금 강박이 있다. 일이 떨어지면 빨리 해결을 해야 한다. 주말에도 계속 생각난다. 그럴 때면 나 스스로에게 조금 짜증이 날 때도 있다. '아니 이게 내 회사냐, 남들처럼 그냥 조금은 천천히 하고, 잘못될 것도 크게 고민하지 말고 하면 안 되냐, 왜 스스로를 들들 볶으며 힘들게 사느냐' 하는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이러한 개인적인 성향과 별개로, 직무를 변경한 직후, 아니 정확하게는 변경하기로 결심하면서 나는 스스로 그런 생각을 했다. 늦게 이 직무를 시작한 사람으로서 같은 직무의 다른 사람보다 잘하기 위한 방법은 일단 많이 하는 수밖에 없다. 남들은 이미 저만큼 가서 걷고 있으니, 나는 빨리 달려서 따라잡아야 같이 걸을 수 있지 않겠냐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 보니 그렇지 않아도 일을 조금 열심히 하는 편이었는데, 더~ 열심히 했고 남들 보기에는 조금 오버하는 것처럼 보였던 것 같다. 그래서 위와 같이 이야기했던 것 같고 말이다.
아마 혼자 튀는 것 같이 보여 불편함을 끼쳤던 것 같다. 나로서는 새 직무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절박함이 있었는데 다른 사람들이 나의 입장에서 그것을 이해해 주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냥 불편했을 것 같다.
그렇게 최선을 다해 1~2년 하고 나니 일이 쉬워지기 시작했다.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을 처리하는 기준이 머릿속에 정리가 되었고, 어떤 사안에 대해서 선배에게 후배에게 물어볼 필요도, 기준집을 들춰볼 일도 줄어들었다. 그래서 직무를 변경하고 난 직후 전임자 및 사수에게 배운 방식 그대로 처리하는 것 자체가 쉬워졌다.
그런데 더욱 일이 쉽게 느껴지기 시작했던 것은, 내가 배웠던 방식대로 꼭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이전에는 꼭 B에게 연락해서 확인을 요청했던 것을 이제는 C라는 사람을 통하면 더 쉽게 확인할 수 있다는 것과 이전에는 직속 상사에게 보고하고 진행해야 했던 일들이 사실은 굳이 보고하지 않아도 큰 문제가 없고, 직속 상사조차 관심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는 등 해당 업무를 해결해 나가는 다양한 방법을 알게 되면서 업무에 담당자로서의 유연성, 전문용어로 '유돌이'가 생긴 것이다. 이것은 누가 알려줄 수 없다. 경험해야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1~2년 열심히 해서 내가 과연 멀리 가 있는 동료들을 따라잡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내가 하는 일은 쉬워졌고 나름 잘한다는 평가를 받았던 것을 보면 나의 그 생각과 방법은 유효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에도 우리 부서로 전입을 오는 후배들이 종종 있었다. 보통은 직무를 변경하는 경우였다. 그 후배들이 보기엔 내가 이 조직에서 이 직무를 엄청나게 오래 했다고 느껴졌던 것 같다. 물론 그것은 선배들도 똑같이 느꼈던 것 같다. 회식이나 사석에서 사람들과 이야기할 때, "나도 이 부서에 온 지 이제 2년이야."라고이야기하면 선후배 할 것 없이 "여기에 10년은 있었던 사람 같은데요" 라며 놀랐던 것을 보면 말이다.
어쨌든 직무와 부서를 변경했던 선배로써 후배들의 어려움이 너무 눈에 보였다. 일도 새롭고 사람도 새로우니 그저 힘들 수밖에. 그런 후배들과는 사무실 옆 탕비실에서 만나서 짧은 시간 원포인트 레슨도 종종 했었다. 솔루션은 동일했다. '빡시게 해라. 그러면 금방 쉬워진다.' 이 솔루션을 잘 따른 후배도 있고, 그렇지 않은 후배도 있다. 결과가 어땠겠는가? 해당 솔루션대로 일단 빡시게 한 후배들이 잘 적응하고, 일도 잘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일이 어려운 것은, 그 일 자체가 어려울 때도 분명히 있다. 세상에 없던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는 것, 참혹한 사고 현장을 수습하는 것, 첨예한 이해관계 대치 상황을 조율하는 것 등은 단순히 열심만 가지고는 해결이 되지 않는 어려움이 있다. 하지만 우리가 직장생활 하면서 일에서 겪는 어려움의 근원은 대부분 그 일 자체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익숙해지면 일이 쉬워지고, 쉬워져야 재밌게 할 수 있다.
내가 맡은 일이 쉬워지면, 마음에 여유도 생기고 그러면 주변에 사람도 보이기 시작하고, 선후배와의 관계도 좋아진다. 그렇게 되면 당연히 회사 다니는 것이 나름 재밌어진다.
반대로, 혹시 내가 일을 못해서, 그 일이 결국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게 되었을 때, 그 사람들의 표정과 기분, 그리고 그 사람들이 나중에 내가 없는 자리에서 나에 대해 할 이야기들을 상상하거나 지켜본 적이 있는가?
일을 못하면 단순히 '나만 그 결과를 감내하지 뭐' 이러면서 쿨 하게 넘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회사는, 조직은 해내야만 하는 일들이 있고, 그것을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는데 맡은 사람이 못했다고 해서 그 일을 미완성인 채로 놓아둘 수가 없다. 다른 누군가에게 반드시 다시 시켜야 한다. 그러면 일을 떠맡게 된 사람은 누구를 원망하게 될까? 팀장일까, 아니면 일을 못해서 떠넘긴 그 사람일까? 무조건 후자이다. ^^
회사 내에서 보면 어떤 일들, 특히 스태프의 일들에 대해서는 이런 통설이 있다. 한 직무를 3~5년 했으면, 다른 직무를 경험하라는 것이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일반적으로 한 가지의 일에 숙달되는데 3~5년 정도면 된다는 것이다.
첫 번째 해에는 일을 배우고, 두 번째 해에는 일을 제대로 해내고, 세 번째 해에는 앞선 두 해 동안 본인이 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비효율을 개선해보거나, 자신의 아이디어를 가미하는 식으로 숙달되어 가는 것이다. 만약 네 번째, 다섯 번째 해까지 그렇게 하면, 달인의 경지에 올라가게 되고 말이다. 공감이 되는 이야기이다.
배워서 제대로 혼자서 해내는 수준에 빨리 올라가야 이래라저래라 하는 사람도 줄어들고, 내가 생각한 스케줄에 맞추어 일의 완급과 완성도를 조정해가면서 할 수 있다. 이래야 일이 쉬워지고, 재밌어진다.
아주 쉬운 일도 누군가가 시켜서 하게 되면 별로 하고 싶지 않은 것이 우리들 본성이다. 이왕에 회사에 와서 하는 일이 재미있으려면 일의 주도권을 조금이라도 내가 가져와야 하고 그렇게 하려면 (새로운) 일에 빨리 적응해서 잘해야 한다. 조직에서의 인정은 그다음에 신경 쓸 일이다. 일단 내가 일을 즐겁게 느껴야지, 남들이 아무리 잘한다고 칭찬해 줘 봐야 내가 재미가 없으면 그것도 고역이다.
내가 지금 회사를 다니는 것이 따분하고, 재미없는 것이 일이 익숙하지 않아서 인지 한 번쯤은 생각해 볼만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