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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무나 Jul 27. 2021

불쾌지수를 0으로 만드는 초능력

연이어 30도가 훨씬 넘는 더위가 지속되다 보면 정말 이대로 지구가 멸망해 가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매년 더워지는 여름의 찜기는 그 정도의 위기감이 들 정도였지만 참다 참다 결국 에어컨을 켜는 수밖에 없었다. 

마스크를 쓰고 돌아다니는 일은 더하다. 인중에 고이는 땀과 마스크 안에 퍼지는 습기의 불쾌함, 장마보다 더 한 불쾌지수였다. 아이와 기세 좋게 출발했다가도 어딘가에 도착할 무렵에는 이미 지쳐서 이제 그만 가자를 몇 번 반복하기도 했다.


지친 기력이 여색 한 나와 달리 아이는 늘 에어지가 풀로 넘치는 것 같았다. 써도 써도 줄어들지 않는 저 힘의 원천은 역시 나이인 것일까. 아무리 더워서 온 몸이 끈적끈적한 젤리처럼 변해도 아이는 타인과의 거리감을 좁힐 줄 몰랐다. 하루에도 몇 번씩 엄마 안아줘 하곤 끈적끈적한 두 팔을 벌리곤 했다. 그럴 때 아이를 안아 들면 아이의 뜨거운 체온이 더위에 더해져 어쩔 줄 모르겠다. 행복한데 불쾌한 기분이라니.




"얘는 불쾌지수를 0으로 수렴하는 초능력이 있어" 

내 아이를 가르치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녹아내릴 듯한 더위도 눅눅한 장마도 아이의 짜증을 유발하기엔 부족한 녀석들이었다. 심지어 내 아이에겐 그로 인해 최대치를 찍은 내 불쾌지수도 0으로 수렴시키는 능력이 있었다.

끈적끈적 맞닿은 살이 찝찝하다가도 아이가 나를 향해 미소 지어 보이거나 심각하게 내 품에 안겨서 내 콧구멍을 관찰할 때 혹은 내 품에서 그대로 잠들어 버리는 순간 모든 불쾌감은 사라져 버리곤 했다.


그런 아이도 짜증스럽게 변하는 순간이 있다. 실은 하도 변덕스러워서 울었다 웃었다 하루에도 기복이 하늘과 땅을 오가 예측이 불가능하지만, 주로 아이의 불쾌감이 올라가는 순간은 내가 스마트폰에 고개를 박고 있을 때다. 나의 무관심과 방치에 아이는 온몸으로 저항하듯 짜증을 내고 울어버린다. 아이의 폭발과 함께 나의 짜증도 함께 폭발하곤 했다.

하루는 뭔가를 확인하다가 주변이 하도 조용하길래 고개를 들어보니 아이가 거실 바닥에 누워 등을 돌린 채 가만히 누워있었다.

"엄마가 미안해. 이제 다 끝났어"

아이에게 다가가 사과를 하니 아이는 기다렸다는 듯이 "엄마 다 끝났어?"라고 물었다. 

그 순간 기다린 아이에 대한 대견함보다는 아이가 학습하게 된 체념, 눈을 마주 보는 것보다 핸드폰 액정을 쳐다보는 것에 우선순위를 뒀던 것에 미안함이 더했다.


아주 단순한 자기반성으로 아이와 눈을 마주치는 시간을 의식적으로 더 늘리기로 했다. 액정을 더 많이 멀리 하기로 했다. 아이의 눈을 통해 초능력이 내게 옮아오기 시작했다. 하루가 맑아지기 시작했다. 맑은 날이 늘어가기 시작했다.




세상 모든 아이들은 제각각 많은 능력이 있다. 아이들이 웃는 세상이 아름답다는 말은 아이들이 그 능력을 십분 발휘할 수 있는 세상이란 말인 것 같다.

하루의 고난을 모두 등에 지고 현관문을 넘어설 때 등을 가볍게 만들어 주는 초능력, 주저앉고 싶을 때 다시 일어서게 하는 초능력, 다른 사람을 돌보게 하는 초능력, 차이를 인정하게 만드는 초능력, 내 스스로를 더 아끼게 되는 초능력, 내가 그은 선 밖으로 한발 더 디딜 수 있게 만들어주는 초능력, 이 외에 내가 알지 못하는 초능력들.


모든 아이들은 초능력자다. 아니 어쩌면 우리 모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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