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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엄마 Sep 04. 2023

나는 엄마다.

눈썹 아래 눈 달린 여자, 드디어 결혼하다.

“네 눈은 얼마나 높아 결혼을 못하냐?”는 말을 지겹게 들었다. 

그럴 때마다 “제 눈은 눈썹 밑에 있는데요.”, 

“제 눈이 높은 게 아니라 그들이 저를 못 알아보는 거예요.”라는 말을 수백 번은 한 것 같다.      

이런 대꾸도 지겨워지고 결혼 못한 친구가 이제 몇 안 남았을 때, 소개팅도 아닌 술자리에서 우연히 만난 그 남자와 나는 무엇에 홀린 듯 결혼을 했다.      

결혼이란 환상도 없던 나인데 왜 내 결혼은 이렇게 행복에서 멀어지는 걸까?

아주 잘 맞을 줄 알았던 다른 건 몰라도 대화는 잘 통할 거라 기대했던 남편과 소통이 불통이 되어갔다.

장남으로, 장녀로 집에서 귀하게 자란 남녀가 함께 살아가기란 어색함만큼 거리가 멀어졌다.

나란 사람은 결혼이란 걸 하면 안 됐는데 내 잘못된 선택으로 나, 우리가 행복하지 않구나 어떻게 해야 할까 되돌리고 싶다라고 후회할 때 나에게 아이가 찾아왔다. 


내가 엄마가 된다니 세상이 달리 보였다.

조리사 자격증, 보육교사 자격증, 그 외 자격증, 상담대학원, 내가 읽은 육아서들을 앞세우며 나는 준비된 엄마라고 그에게 큰소리를 쳤지만, 막상 아이를 만나니 나는 무엇 하나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없는, 모든 걸 글로 배운 엉터리였다.       

아이를 낳을 때 처음 느껴본 고통은 내 아이가 내 품에 안기자 씻은 듯 사라졌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육체적으로 힘들 뿐 아니라 절묘한 시점에 다양한 감정들까지 느껴져 마음을 다스리기 쉽지 않았다.      

그런데 아이는 엄마의 다양한 걱정 근심 고민과 다르게 매일 다른 성장을 보였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육체적 정신적으로 힘든 일이지만, 아이가 그 시절에만 엄마에게 줄 수 있는 그 기쁨이 있다. 

누워만 있는 아이가 팔을 뻗어서 올리고 눈으로 그 손을 한참을 바라보더니 엄지 손가락을 뻗어 아주 천천히 그 손가락을 입으로 가져가던 그 순간에 아이의 신체 발달이 신비로워 흥분했었다.      

매일 두 아이가 엄마 엄마 수도 없이 부르니 지금은 엄마라는 이름의 감격이 사라졌지만, 옹알옹알 대던 아이의 입에서 “엄마”라고 불렀던 감격의 크기는 무엇으로 잴 수 있을까.

엄마 없이는 큰일이라도 날 듯 행여 놓칠까 내 손을 꼭 부여잡던 아이 손의 따뜻한 온기도 점점 사라진다. 

아이와 있었던 일이라면 사소한 기억도 영원히 내 기억 속에 저장될 줄 알았는데 지금을 살아가야 하는 엄마에게 과거의 모든 날을 기억하는 것은 무리다. 이런 내가 참 낯설다.       

더 사라지기 전에 이제 우리의 이야기를 정리해 남기자.     

특별한 사람, 특별한 글감을 가진 사람만이 글을 쓰는 것이라 생각한 나의 고집스러운 생각의 틀을 벗어던지자. 나에게 쌓인 아이들과의 일상을 남기며 내 두려움의 알을 깨고 세상에 나를 던지자.      

물 주고 거름 주고 햇빛도 달빛도 내어주니 아이들은 스스로 잘 커간다. 아이들이 커가는 속도가 너무 빨라 곧 엄마가 뒤처지려 한다. 아이와 함께 성장하는 엄마가 되고 싶지만, 두려움의 알 안에 갇혀 도전하지 못하는 나다. 용기 내 나의 알을 깨고 세상에 나아가보자. 


엄마가 글을 쓰는 작가가 되면 좋겠다는 아이들에게 엄마의 도전기를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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