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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엄마 Sep 21. 2023

서로의 발을 닦아 주어요.

긴 방학, 싸움이 놀이가 되는 아이들

 

30일,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아이들의 여름방학이 계속이다.      

이사를 핑계로 이 지역에 적응해야 하기 때문에 학원도 다니고 싶지 않고, 방과 후 학습도 하지 않고 싶고, 그저 집에서 쉬고만 싶다니, 썩 내키지는 않지만 지금 이때가 아니면 언제 여유 있게 쉬라고 하겠는가 싶다. 

올여름도 매우 무덥다. 이렇게 더운 날 24시간을 붙어 있으니 남매는 웃다가 싸우다가 같이 놀다가 화내다가 누군가 아파하는 신음 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느지막이 일어나 아침을 먹고 돌아서서 점심을 달라 하고, 간식은 없는지 냉장고를 열었다 닫았다 바쁘다, 오늘 저녁은 무엇이냐만 물으면 덜했을 텐데 내일 아침은 무엇이냐까지 묻는 남매 덕분에 나도 더운 공기와 함께 들이마신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다. 

아마 세끼가 아니었다면 덜 했을지도 모르겠다.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줄줄 나는 날, 아이들의 하루가 못마땅해 보일 즈음 투닥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짜증 섞인 울먹이는 소리로 서로의 탓을 한다. 

이제 엄마가 개입할 때이다.     


“둘 다 이리 오세요!” 엄마의 냉정한 목소리에 아이들은 경직되며 눈치를 살핀다. 

“이리 와서 앉으세요!” 입술이 쭉 앞으로 나오며 기분을 얼굴로 표현하는 동생이 먼저 자리에 앉는다. 엄마의 눈치를 살피며 오빠도 동생의 옆에 앉는다.     

“무슨 일이야? 왜 서로 불편해하고 화내는 소리가 계속되는 거야?"

"아니 오빠가.. " "아니 동생이.. " 각자에게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어떻게 질문을 하고 아이의 말을 들으며 상황을 판단해줘야 할지 때로는 헷갈린다.    

  

엄마는 말이야. 가족은 서로 응원해 주고 지지해 주고 잘한다고 칭찬해 주면서 서로에게 힘을 주는 사이로 지내면 좋겠어. 

세상에는, 학교에만 가더라도, 내가 잘하면 잘한다고 칭찬해 주는 사람보다 시기하고 질투하는 사람들이 넘쳐나고, 어떻게 해서든 나를 무시하려는 사람들도 많이 만나게 될 거야. 그런데 집에 왔는데 집에서도 밖에서와 똑같이 나를 미워하고 내 탓만 하는 사람이 있으면 어떨까?     

힘든 상황들 속에서 내가 숨 쉬고 살아가려면 집에 왔을 때 가족들이 서로 따뜻한 말을 해주고 서로 위로해 주고 응원해 주고 잘할 수 있다고 응원해 주고 힘을 주면, 내 마음에 행복이 가득 찰 것 같아. 나를 신뢰하는 마음이 넘쳐날 것 같아. 그런 마음이 가득 채워지면 너희는 다시 학교에 가서, 엄마는 직장에 가서, 힘든 일, 힘든 상황을 이겨낼 힘이 생길 거야. 날 믿어주는 사람이 있으니까.      

우리는 집에서라도 서로를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응원해 주는 건 어떨까? 

우리는 서로 더 배려하고 사랑하면서 살아가면 좋겠어.      


엄마의 말이 길어질 때쯤, 서로의 눈을 바라보는 것도 시시해질 때쯤, 서로의 새까만 발바닥이 보였다. 

"어머! 까마귀 형님이 곧 오시겠네."


"우리 발도 더러운데 서로의 발을 닦아 주는 건 어떨까?"

엄마 세숫대야에 물을 받아서 방에서 닦아 주는 건 어때요? 아들이 묻는다.

"물이 방바닥에 튀기면 누가 닦지?" 아이가 멈칫하며 다시 생각을 한다.

"물 흘려도 괜찮은 목욕탕에서 샤워기로 닦아 주는 건 어떨까요?"

그게 좋겠다고 웃으면서 목욕탕으로 들어간다.     

 

"오빠는 누구 닦아 줄 거야? 나는 엄마."

“오빠도 엄마 닦아 줄 거야.” 

“그럼 나는 누가 닦아 줘?” 라며 딸이 오빠에게 묻는다. 

아이들의 대화를 듣는 것도 즐겁다. 

아이들이 서로의 발을 닦아주며 자연스럽게 화해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기를 원했지만, 둘 다 엄마의 발을 닦아 준다니 속없는 엄마는 헤벌쭉 기분이 좋다.     

엄마의 왼발은 오빠가, 오른발은 동생이 닦는 걸로 하고, 한 사람이 발을 닦는 동안 샤워기를 들어주기로 한다. 오빠가 엄마 발을 닦는 동안 샤워기를 든 동생이 샤워기를 잘못 들어 물이 사방으로 튄다.     

“앗 차가워.”라는 엄마의 한 마디에 아이들의 웃음이 커진다.      

그래. 울다가 웃다가 싸웠다가 화해했다가 그렇게 살아가면 되는 거지.

울다 보면 속상했던 감정도 잊히고 웃다 보면 좋은 감정이 마음속에 남겠지. 


아이들의 발을 닦아 주며 소중한 아이의 발에게 감사를 보낸다.

오늘의 따뜻함이 아이들의 가슴속에 오래 남아 서로가 서로를 응원해 주는 우리가 되길 바라본다.  쑥쑥 자라는 아이들을 보니 오늘 하루가 이 시간이 더욱 소중하고 감사하다. 

아이들의 방학이 더디 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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