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백보다 더 명품 선물로 기억될.
남편은 결혼을 위한 제대로 된 프로포즈도 하지 않았다.
연애 때도 남편이 나에게 늘 했던 말이
평생 해줄 거 아니면 애초에 안하는게 낫다는 주의란다.
연애가 길어져, 양쪽 집안 다 알고, 취직을 하게 되니 결혼식장을 예약하고
그냥 결혼도 어찌어찌 어영부영 한, 우리는 그냥 그런 부부다.
내게 딸아이가 아빠의 프로포즈가 뭐였냐고 물으면
다른 사람들이 하는 이벤트는 없었다고,
그래도 프로포즈가 아주 없었다고 하면 내 자신에게 너무 섭섭하니까
아직 대학생이었을 때
사귀기 시작한 지 반 년도 안되었을 때, 성탄절에 니 아빠가 18K 금반지를 준 게
그냥 엄마 스스로 프로포즈라고 생각하기로 했다고 대답한다.
그날 아빠는 가족들에게 엄마가 아니면 결혼을 안하겠다고 선언을 해서
할아버지, 할머니, 고모들의 비웃음을 샀다고 얘기를 해주었다.
(나도 피식 웃긴 했다.)
나에게는 나름 남편의 결혼 신청일인 셈이다.
그런대로 성실로 무장한 남편이기에 결혼 결심에는 별 이상이 없었지만
진짜 이제껏 살면서 이벤트로 생각할 만한 건 전혀 없었다.
그래도 가끔 스스로 위안을 한다.
이벤트는 없어도 나를 따뜻하게 해주는 사람이라 괜찮다고....
남편은 내가 무언가를 사야겠다고 하면
같이 쇼핑을 해 주긴 하지만, 스스로 생각해서 무언가를 사준 적은 없다.
그래도 가끔 찡하게 감동이 되어 지금도 생각나는 일들이 있다.
10년 전쯤인가
내가 헬스장에 다니고 있었는데, 한겨울이었다.
주말에 헬스를 하고 친구를 만나러 가겠다고 하니,
'잘 만나고 와. 그런데 헬스하고 나서 샤워하면 머리 완전히 잘 말려야 돼.
완전히 안 말리면 감기 걸려'
5년 전 쯤인가
미용실에서 파마를 했는데 하루만에 다 풀려서
가서 다시 해달라고 하고 싶은데 혼자서 따질 용기가 없었다.
'자기야 나 미용실에 다시 갈 건데, 같이 가주면 안돼?'
- (픽 웃으며) 혼자서 따지기가 좀 그래?? 알았어, 같이 가자.
미용실에 도착해서 내가 얘기하기도 전에
'이 머리가 어제 한 머린데 이렇게 됐다고.' 남편이 딱 한마디만 했을 뿐인데
나는 곧바로 두말없이 파마를 새로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두 시간을 미용실에서 기다려 주었다.
그리고 어제.
어제 일을 생각하면서 옛날 따뜻했던 남편이 생각나서 이 글을 쓰게 되었다.
남편이 버스로 출근을 해야 해서 나와 함께 집 앞에서 버스를 탔다.
사람이 많아서 어찌어찌 하다보니 인사도 하지 못한 채
내가 먼저 버스에서 내리게 되었다.
버스에서 내린 후 길을 건너려고 횡단 보도 앞에 서서 신호 바뀌길 기다리는데
내가 탔던 버스가 지나가고 있었다.
문득 고개를 들어 그 버스를 보는데
남편이 환하게 웃으며 버스 안에서 나에게 열심히 손을 흔들고 있었다.
나에게 입 모양으로 '잘가'라고 크게 소리없는 말을 건넸다.
신호등 앞에서 갑자기 찡했다.
나이 50이 넘어서 창피한 줄도 모르고, 버스에서 나를 위해 손을 흔들어 주는 남편.
10년 후에도 기억 될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