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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벌이 엄마로 산다는 것

이제는 육아 종료. 그때로 돌아간다면..

by 쭘볼 니나

공무원 되고 둘째를 가졌을 때,

선배 공무원 언니가 '라떼는 출산휴가가 두달이었어. 요즘은 석달이니 얼마나 좋아.'

그때 그 얘길 들으면서 출산 휴가가 석달이라 좋은 시절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냥 애 낳고 두달만에 어찌 나오나? 그 시절을 한탄하였을 뿐.


나는 첫째 돌잔치 지나 공무원이 되었으니 첫째 출산 휴가는 공부로 떼웠고,

둘째는 경제적 여건상 출산 휴가 후 바로 복직하였다.

그때부터 진정한 헬 육아의 시작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공무원 직업을 가진 엄마는

가정과 직장 생활을 하기 수월한 편이라고 여겨져 왔다.

그런데 나는 늘 우리 아이들을 어린이집에서 꼴찌로 데려왔다.


나름 남편과 번갈아 18시 칼퇴를 해서, 거의 19시 전에 도착하는데도 늘 우리 애들이 꼴찌 하원이다.

도대체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일찍 하원을 시키는 걸까?

늘 그게 궁금증이었다.

다행이 우리 아이들은 꼴찌 하원에 큰 스트레스가 없고,

오히려 넓은 어린이집과 선생님을 독차지 하는 것이 좋았던 것도 같다.

물론 꼴찌를 면하는 날을 더 좋아하긴 했지만 말이다.


저녁 7시 넘어 아이들을 집에 데려오고

저녁 먹고, 씻기고, 재우고, 책 한두권 읽어주다 보면 하루가 끝이다.


학교에 입학하면 엄마노릇이 좀 수월해 지려나 싶었는데

학부모 노릇은 맞벌이 엄마를 '을'로 만들었다.

초등 1학년 학부모 반모임을 3월 말쯤 참석한 적이 있었는데

엄마들끼리 친목이 두터워져 서로 언니 동생이라 불렀다.

처음 나온 나는 어느 무리에 낄지 몰라 뻘쭘하니 이방인 같았다.


1학년 반모임 때...둘째가 친구들과 놀다가

자기가 잘 모르는 게임이 시작되면서 이제 그만 집에 가자고 했다.

나는 이왕 친구들과 노는 자리인데 왜 벌써 가냐고 아이를 달랬다.

나중에 들어보니

이미 아이들 사이에서 엄마들과 모일 때마다 역할과 루틴이 정해져 있어서

우리 아이는 낄 자리가 없었던 거다.


그날 밤 이놈의 직장, 뭐하러 다니는지

애들 친구도 못 만들어 주고, 애가 학교 생활을 어떻게 하는지 파악도 못하면서

돈은 뭐하러 버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직장 생활을 해야 하는 지금 이 상황에

너무 짜증이 났던 것 같다.


그리고 고등학생이 된 아이들의 학부모 총회에 참석하니

다 쓰잘데기 없었다. 그저 그냥 다 성적.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인근에 좋은 학원 찾아보고

무얼 하고 싶은 건지 물어보는 것 정도였다.

아이가 집에 오기 전에는 절대 먼저 잠들지 않았고

12시 넘은 시각에 집에 도착하면 허기질 것 같아 약간의 간식을 준비하는 정도였다.


아...하나 더 있다.

고등학교 때는 6시쯤 학원을 가는데, 내가 그 시간엔 퇴근이 안되니

아침에 미리 세칸짜리 반찬통에 반찬 도시락을 싸두었다.

따뜻한 밥을 떠서 도시락 반찬통과 꼭 같이 먹으라고 신신당부하였다.


마른반찬, 김치는 고정으로 담고, 햄이나 불고기 같은 오늘의 반찬 딱 한가지만 즈그들 입맛으로 준비하니

라면이나 빵으로 안 떼우고 제법 잘 먹어 주었다.


다른 동료들한테 들으니

그렇게 차려놓고 나와도 먹는 아이들 별로 없다면서

우리 아이들이 착하다고 칭찬해 주었다. ^^~~


이제 둘다 대학생이 되고 보니

내 인생의 20년이 뚝 떼어져 사라지고, 늙음에 가까워진 나만 남은 느낌이 든다.

이제 시간의 여유, 마음의 여유가 생겨서 이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는 걸까.


육아시간을 쓰며 근무를 하는 여직원을 보니

운동도 하고, 나름 개인 취미 생활도 즐긴다.

요즘은 맞벌이 엄마도 내가 키울 때와는 다른 모습이다.


일반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은

공무원이나 그런거 찾아 먹는다고 욕할지도 모르겠지만


육아시간, 가족돌봄휴가, 긴 육아휴직의 제법 많은 휴직급여가 너무 부럽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엄마이기는 하지만

아직 해볼 수 있는 것들이 많은 30-40대였는데

내 30-40대는 오로지 아이들과 직장 밖에 생각나지 않는다.


억울한 것은 아니다. 아쉽다.


그런데도 요즘 4-5살 꼬마의 손을 잡고 가는 여직원을 보면

아무리 힘들어도 다시 키우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생활에 치여서 다정하지 못했던 엄마,

사랑만 주기에도 아까운 시간들이었는데, 매일매일 버럭한 엄마.


우리 아이들에게 그저 포근하고 사랑스러운 안식처로 생각될

아이들의 어린 시절 최고의 엄마가 되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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