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동 거리를 가면 참 많은 생각이 든다. 학창 시절 막연하게 뉴스로만 접하던 인사동 거리를 멋모르고 방문해 생전 처음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룬’ 경험을 한 것. 첫 언론사 수습기자 시절 현장 르포 취재차 방문해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유령거리가 돼 버린 현장을 바라본 것.
오늘 인사동 거리는 학창 시절 때만큼 인산인해는 아니지만 코로나19 팬데믹만큼 상권이 죽진 않은 딱 중간의 모습을 보는 듯 했다.
현대건설 계동 본사가 보인 초입을 지나 쌈지길이 있는 중간 지점으로 들어서면서 점점 팔을 안으로 굽힌 경우가 많아졌다.
남자 직원들이 중국·일본어로 주의를 끌며 꿀타래를 파는 상점을 지나면 옛 장신구와 붓, 도장, 한복, 캐주얼 옷이 가득한 골목으로 들어서게 된다.
젊은 국내 관광객뿐만 아니라 히잡을 쓴 여인, 프랑스어를 쓴 백인, 영어로 ‘저쪽으로 가야 한다’는 말을 부인과 자식에게 하는 흑인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골목 곳곳에 전시된 물품과 기념품, 먹거리를 구경했다.
점심 교회서 먹은 컵라면과 김밥이 다 내려갔는지 노점상서 파는 꿀 호떡이 자꾸 눈에 들어왔다. 마침 대기줄이 없어 가방에 비상용으로 갖고 다니던 지폐 몇 장을 주고 호떡 하나를 샀다.
호떡이 나오길 기다리며 사장님께 ‘요즘 손님들 많이 와요’라고 물었다. 사장님은 ‘숨통은 트였어. 그래도 코로나 때보단 낫지 뭐’라며 호떡 하나를 종이컵에 넣어 건넸다.
사실 인사동 꿀 호떡은 근 10년 인사동 골목서 불경기를 직격으로 맞은 아픈 변천사가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전엔 각종 TV 프로그램과 기사에 실려 10m가 넘는 줄을 서야 먹을 수 있었다. 학창 시절 땐 20분 이상 기다려야 간신히 사 먹을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2019년 코로나19 팬데믹 후 사회적 거리두기와 일정 인원 이상 집합 금지 명령이 떨어지며 꿀 호떡 노점상은 하나둘 줄어들었다. 지팡이 아이스크림 노점상도 이즈음 전부 문을 닫았다.
2022년 첫 언론사 수습기자 입사 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직격탄을 맞은 인사동 상권을 취재하게 됐다. 나는 이 때 인사동 골목 분위기를 아직도 잊지 못한다.
종로3가역 출구서 낙원상가를 지나면 인사동 골목 중간 지점 부근에 도착하게 된다. 중간 지점에 도착하자마자 ‘폐업 정리’ 현수막이 걸린 상점을 보게 됐다.
현수막 촬영 후 좌우를 살폈는데 아무리 눈을 씻고 봐도 문을 연 가게가 채 10곳이 되지 않았다. 5곳 중 2곳에 ‘폐업’, ‘임대’ 현수막이 붙어 있었고 화가나 사진작가가 작품을 전시하는 공간은 대부분 텅텅 비어 있었다. 전시장 안내 간판이나 현수막은 없다시피 했다.
문을 연 곳에 있는 상인들 표정도 좋지 않았다. 인터뷰 요청을 한 7곳 중 5곳이 취재를 거부했다. 대부분 ‘그 기사 나가면 뭐해. 정부가 안 듣는데’, ‘아픈 얘기 꺼내는게 힘들어서 미안해요’라며 취재를 고사했다. 내가 싫어서가 아니라 지금 처한 현실이 너무 힘들어서 차마 입밖으로 꺼내는 게 어렵단 말투였다.
쌈지길도 마찬가지였다. 슈퍼주니어와 소녀시대가 홍보 영상을 찍은 쌈지길엔 드문드문 거리를 유지하며 물건을 구경하는 채 20명이 되지 않는 관광객만 있을 뿐 이전의 인산인해 풍경은 온데간데 없었다.
고풍스러우면서 현대적 미를 담은 물건을 팔아 내가 자주 들렀던 상점 사장님도 취재 온 내게 ‘너무 힘들다’며 장부를 보여줬다. 스케치북처럼 가로로 넘기는 장부엔 하루 매출이 적혀 있었다.
3일간 매출이 하나도 없었던 내역도 보였고 2장을 넘기자 취재 오기 몇 주 전 내가 구매한 내역이 보였다. 매출이 하나도 없을 땐 장부에 날짜만 적기 때문에 수 주간 매출이 없으면 쓴 장부 장수도 적어진다.
내가 간 후 수 주간 매출이 발생한 날짜가 그만큼 적었단 의미다. 지금 그 상점은 없어졌다. 코로나19 팬데믹을 버티지 못하고 재작년 폐업했다. 이즈음 한겨레 등 국내 주요 일간지와 통신사도 상권이 죽은 인사동 골목을 보도했다.
2년 반이 지나고 코로나19 엔데믹(풍토병화)이 진행된 지금 인사동 골목은 점점 활기를 띄우고 있다. 인사동 골목 부근 종로 상권도 회복 기미를 보이고 있다.
인사동 골목을 벗어나 광장시장으로 향하자 노란 등을 켜며 손님 맞을 준비로 분주한 노점상들을 보게 됐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암흑만 가득했던 거리가 노점상 불빛으로 가득 채워졌다. 일상 속 피곤함과 반가움, 기쁨을 나누는 시민들의 벗이 다시 돌아온 듯해 반가웠다.
오늘도 누군가는 노점상으로, 손님으로, 관광객으로, 직장인으로 바쁘게 사회를 오고간다.
10년, 50년, 100년후 우리가 바쁘게 걷고 청춘의 열정과 만남의 기쁨을 나눈 장소는 한줌의 재밖에 남지 않은 공사판이 돼 있을지, 파리나 로마 부럽지 않은 세계적 관광지가 돼 있을지 그 누구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그 장소에 애환을 갖고 열정을 쏟으며 최선을 다하고 즐거움을 만끽하는 이유는 뭘까. 도대체 그 길가와 장소에 애환ㆍ애착을 갖고 다시 한 번이라도, 죽기 전에라도 방문해 근황이 어떤지 살피고 수많은 감정을 느끼는 이유가 뭔지 나도 모른다.
한 가지는 분명하다.
우리가 일상을 살아가며 느끼는 기쁨과 위로, 추억이 깃든 공간이기 때문이라고. 그 위로와 추억을 준 이들이 조금이라도 덜 아프고 덜 힘들며 행복을 느낄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이 큰 이유에서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