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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종현 Oct 10. 2024

세계 사형 폐지의 날에 돌아본 사법부의 암면

10월 10일. 오늘은 비정부단체기구(NGO)와 지방정부 연대체 세계 사형반대연합이 제정한 세계 사형 폐지의 날이다. 국가가 ‘사회 안정 유지’란 이유로 한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사형 제도 폐지를 촉구하는 차원서 제정됐다.


사형제 궁극적 목적은 사회 불안과 치안·안정·질서 위협을 조장하는 이들을 완벽히 사회로부터 분리시키고 범죄억지력을 키운다는 데 있다. 타인의 자유와 안전을 위협하면 생명권을 빼앗길 수 있단 경각심을 심어주는 것이다.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와 참여연대 등 10여개 단체는 오늘 오전 공동 성명을 통해 ‘국회와 정부가 생명 존중 가치를 다시 한번 깊이 새기고 사형제 폐지란 시대적 사명을 다해야 한다’며 사형제 폐지를 촉구했다.


이들은 ‘우리나라는 2007년 사형집행중단 10년을 맞아 국제 사회로부터 실질적 사형 폐지국으로 분류됐다. 단 한 번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사형 폐지안이) 임기만료로 폐기됐지만 제15대부터 21대까지 총 9개의 사형제 폐지 특별법이 발의됐다. 2019년 제기된 사형제 헌법소원에 2022년 공개변론까지 진행한 헌법재판소는 현재까지 묵묵부답’이라며 정치권이 결단을 내려야 한다 주장했다.



우리나라서 제일 유명한 사형 집행 사건을 꼽자면 단연코 지존파 살인 사건을 들 수 있다.


지존파 사건은 폭력 조직 지존파 두목과 일당 7명이 1993년 7월부터 이듬해 9월까지 5명을 연쇄 살인하고 유기·토막·소각한 사건이다. 부자들에 대한 증오가 커 이를 복수하기 위해 살인을 저질렀다는 게 그들이 밝힌 살인 목적이다. 그러나 이들에 의해 목숨을 잃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부유층이 아닌 평범한 서민들이었다.


해당 사건은 현 국민의힘 국회의원으로 재직 중인 김은혜 전 대통령실 홍보수석이 MBC 기자 시절 특종으로 보도하며 사회에 알려졌다.


1994년 9월 여느때처럼 서초경찰서를 출입한 김은혜 기자는 이 당시 상황을 MBC 무릎팍도사서 자세히 설명했다.


지금은 그런 관례가 없어졌지만 언론사 기자들이 경찰서를 출입하면 형사들은 기자에게 물을 나눠줬다. 그런데 이 물을 받아 즉석서 마신 기자는 없다시피 했다. 물을 마시면 특종을 놓친다는 일종의 징크스가 있기 때문이었다.


경찰서 내부 기밀이나 보안적 문건을 기자에게 보여 특종거리를 주게 되면 관련 형사는 경찰서 내부서 따가운 눈초리를 받곤 했기 때문에 형사들은 기자들에 ‘특종 찾지 말고 조용히 있다 가라’는 암묵적 메시지로 물을 나눠줬다.


그런데 김은혜 기자가 서초경찰서를 출입한 날 형사과장은 출입기자단에 물이 아닌 자양강장제를 주며 ‘빨리 집으로 가시라’고 말한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김은혜 기자는 서초경찰서 내부를 돌아다니던 중 불이 꺼지지 않은 한 강력반 사무실을 발견한다.


사무실 문 틈 사이로 귀를 기울인 김은혜 기자는 ‘묘지, 부자, 카드, 인육’ 단어를 듣게 됐고 해당 강력반 형사과장을 통해 지존파 일당 살인사건 전말을 듣게 됐다. 김은혜 기자는 해당 내용을 정리해 1994년 추석 연휴 첫날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잔혹하면서 끔찍한 살인 사건을 특종으로 보도한다.


보도 후 전국적 관심을 받은 지존파 사건은 일당 6명에 대한 사형 집행으로 마무리됐다.


지존파 사건처럼 타인을 함부로 죽이고 극악무도한 짓을 벌인 이들에 사형이 집행된 건도 있다. 그러나 죄가 없음에도 국가가 정치적 목적으로 사형을 선고한 사건도 있다. 인민혁명당 재건위원회(인혁당 재건위) 사건이다.


중앙정보부는 1974년 유신체제 반대 투쟁을 벌인 전국민주청년학생연맹(민청학련)을 수사하며 배후·조종세력으로 인혁당 재건위를 지목했다. 인혁당 재건위가 북한 지령을 받은 남한 내 조직이며 민청학련 배후서 학생시위를 조종하고 정부전복과 노동자, 농민에 의한 정부 수립을 기도했다 주장했다.


남편이 사형을 당한 한 피해유가족은 당시를 이렇게 표현했다.


‘그날 남편은 목욕탕에 다녀오겠다 했다. 며칠이 지났는데도 돌아오지 않았다. 청천벽력같은 일이 벌어졌다. (목욕탕에 가겠다던) 남편이 신문에 나온 것이다. 그러던 어느날 어딘가로 끌려가서 다른 피고인 아내들처럼 강제로 각서를 썼다. 내 남편은 간첩이라고. 그런 각서를 썼단 죄책감으로 자살을 택했다. 그런데 아이들과 쥐약을 먹으려는 모습을 친정어머니가 봤다. 나와 내 아이들은 죽음을 면할 수 있었지만 친정어머니는 그 충격으로 한 달 뒤 눈을 감으셨다.’


인혁당 재건위 사건 피의자로 지목돼 사형을 당한 고 하태완씨 아내 이영교씨는 ‘남편을 살리려고 언론에 손톱만큼이라도 기사를 내달라고 애원했지만 철저히 외면당했다. 동네 아이들은 막내아들 목에 새끼줄을 묶고 총살 놀이를 하더라. 빨갱이 자식이라 놀리면서. 이웃들은 그 모습을 보고만 있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출처=사법살인]


이후 대법원은 1975년 4월 8일 인혁당 재건위 관련자 8명에 대한 사형을 확정했다. 판결 후 18시간 뒤 국방부는 기습적으로 사형을 집행했다. 지금은 사형 집행 시 법무부장관 결재가 있어야 하지만 박정희 대통령 재임시만 해도 대통령 결재가 있어야 집행이 이뤄질 수 있었다. 대법원 판결 후 박정희 대통령이 수 시간 내에 사형을 결재한 것이다.


유신·군부정권 시절을 지나 1987년 민주화가 이뤄지고 1993년 문민정부가 들어서며 인혁당 재건위 사건이 민주화운동 탄압을 위한 유신정권 용공조작이라는 의혹이 본격적으로 제기됐다.


2000년 독재정권에 저항하다 희생된 의문사를 밝힐 목적으로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출범했고 의문사진상규명위는 2002년 9월 12일 인혁당 재건위 사건이 중앙정보부 조작극이라 밝혔다.


인혁당 재건위 사건 대법원 판결이 내려진 지 32년이 지난 2007년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인혁당 재건위 사건 관련 8인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당시 진술은 고문, 구타, 협박으로 허위 자백을 한 것으로 인정되므로 증거능력이 없다’며 판결 이유를 설명했다.


서울중앙지법 판결로 무죄를 인증받은 후 인혁당 재건위 사건 피해유가족들은 법원을 나오며 오열했다.


수십 년간 억울한 죄를 뒤집어쓰며 남편을 잃고 받지 않아도 될 차별과 편견, 억압을 참아낸 그들은 어느새 중년의 나이를 바라본 노인이 돼 있었다. 국가가 정치적 이익을 위해 벌인 짓이 애꿎은 수십 명의 꽃다운 청춘과 인생을 비참하게 보내게 한 것이다.


서울중앙지법 무죄 판결 후 인혁당 재건위 피해유가족들은 남편 사형이 집행된 곳을 찾아 흰 국화를 놓았다. 1975년 사형이 집행된 지 30여 년이 지나서야 억울한 영혼을 위로할 수 있었다.


사법부는 사회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한 최후의 보루다.


사법부마저 국가 권력과 돈에 굴복해 정의롭지 못한 판결을 내린다면 우리 사회는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바람 앞의 등불’과 같은 상황에 놓이게 된다.


법과 질서를 지킴으로서 서로의 자유와 권리를 존중하고 지켜주는 게 불가능한 ‘통제불능’의 상황에 놓일 수 있다.


지금 재판이 진행 중인 사안이라 언급하기 조심스럽지만 양승태 전 대법원장 사법농단 사건은 21세기 대한민국에도 1975년 대법원과 같은 사법부가 존재할 수 있단 여지를 남긴 ‘최악의 사건’이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사법농단 사건은 양승태 대법원장이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행정부와 입법부에 불법적 로비를 하고 도입에 반대하거나 비판적인 법조계를 전방위로 사찰·외압했단 의혹서 불거진 사건이다.


2019년 1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사법 농단 사태로 구속됐다. 전직 사법부 수장이 사법부에 의해 구속 필요성이 인정된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구속 이튿날 김명수 당시 대법원장은 출근길 법조계 출입기자단 앞에서 ‘참담하고 부끄럽다. 국민께 작은 위안을 드릴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도 없다’며 고개를 숙였다.


현재 관련 2심이 진행 중이라 섣불리 말할 수 없지만 사법부가 전직 사법부 수장의 구속 필요성을 인정한 것 자체만으로도 충격 그 자체라 말할 수 있다.


사법부는 3권 분립의 한 주체 요소다. 대통령이 있는 행정부는 탄핵 심판으로 견제할 수 있고 입법부는 제출한 법안이 기존 법이나 헌법과 충돌할 소지가 있는지를 들여다 보고 위헌인지 아닌지 판단할 수 있다. 행정부와 입법부를 동시에 견제할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다.


일개 언론사 기자로서 말하는 것이지만 사법부가 권한만큼 막중한 책임감을 갖고 일하고 있는지 한 번 뒤돌아 보는 시간을 가졌음 한다.


전직 사법부 수장이 사법농단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부끄러운 전례를 다시 남기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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