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아버지와 회를 사기 위해 강서수산물시장을 방문했다. 한 수산집서 광어와 우럭을 구매하고 회가 나오기를 기다리던 중 사장님이 회를 써는 모습을 보게 됐다. 일반 칼이 아닌 일식용 칼로 비스듬히 생선 살을 신속히 자르며 횟감을 완성하는 모습서 수십 년 내공이 느껴졌다.
횟감이 거의 완성될 무렵 사장님께 ‘얼마나 일하셨어요’라고 물었고 20년 이상 했단 답을 들었다.
‘프로시네요’라고 말하자 사장님은 ‘지금은 그렇지만 처음 배웠을 땐 많이 힘들었어요. 선배한테 맞으면서 배웠으니깐요. 잘 못 썰면 칼을 집어 던지기도 했어요’라며 살짝 웃는 미소를 보였다.
20년 했으면 수산시장이 아니라 대로변에 횟집을 차려도 되지 않겠냐고 하자 사장님은 ‘여기 시장분들 돈 다 잘 벌어요. 평균 일당이 20만 원이 넘어요. 오후 시간 일할 직원이 일이 생겨서 내가 잠깐 하는 건데 여기 시장분들 전부 집, 차 다 있어요’라고 말했다.
여기서 충분히 버는데 굳이 그렇게 일을 벌릴 필요가 있겠냔 말이었다.
광어 횟감을 완성하고 우럭을 집어든 사장님은 거침없이 생선을 손질했다. 목과 내장을 분리한 뒤 일식용 칼을 다시 들고 우럭 살을 썰었다.
척 보기에도 일반 칼보다 수십배 날카로워 보인 일식용 칼로 우럭 살을 먹기 좋게 썰며 아버지께 ‘계산 카드로 하실거죠’라는 말까지 건넸다.
칼은 칼을 얕보는 자를 얕본단 말이 있을 만큼 사용 시 온 신경을 집중해야 한다. 사장님은 그 경지를 넘어선 것 아닌가란 생각도 들었다. 20년 넘게 숙달된 기술로 가장으로서, 사회인으로서 자신 있게 말하는 사장님을 보며 대단하단 생각이 들었다.
수산시장 사장님 사례서 알 수 있듯 기술 경쟁력은 일반인이 경제적 문제 없이 정상적으로 사회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필수 요건이다.
국가라고 예외는 아니다. 기술은 우리나라 경제를 지탱하는 핵심 중의 핵심 요소다. 원자재도 없고 석유나 천연자원도 없거나 적은 우리나라가 국제시장서 살아남기 위한 최후의 보루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해 기준 국내 기업 중 시가총액 300조 원을 넘는 곳은 삼성전자가 유일하다. 2위 SK하이닉스가 100조 원을 넘고 3위 LG에너지솔루션이 90조 원을 넘는다. 이들 공통점은 원자재를 가공해 완성품으로 만들어 해외에 수출하는 ‘기술 경쟁력이 뛰어난’ 기업이란 것이다.
수많은 취준생이 선망하는 대기업 삼성전자가 만들어 수출하는 반도체는 국가를 먹여살리는 ‘산업의 쌀’로 불릴 만큼 국내 경제에 미치는 영향·파급력이 엄청나다.
여기서 문득 궁금해 지는 것이 있다. 삼성전자는 처음부터 반도체를 생산·수출해 국가 경제에 이바지하는 기업이었냐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니다. 삼성전자가 본격적으로 반도체를 육성한 건 2대 회장인 고 이건희 회장서부터다.
장·차남 형들을 제치고 선대 이병철 회장으로부터 회장 직위를 물려받은 이건희 회장은 40대 젊은 나이에 회장에 취임한 직후 세계 삼성 작업장을 돌아다녔다.
세계서 삼성의 경쟁력이 얼마나 되는지, 성과는 제대로 나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은 차원서다.
결과는 참혹했다. 해외 창고서 먼지를 뒤집어쓴 삼성 제품 재고가 칸칸이 쌓여가고 있었다.
해외 순방을 마치고 돌아온 이건희 회장은 삼성의 생존을 위한 미래 먹거리 발굴에 나섰다. 그 일환으로 지목한 게 산업의 쌀 반도체다.
이건희 회장은 개인 사비로 파산 직전의 국내 반도체 기업 ‘한국반도체’를 인수한다. 이후 일본으로 건너가 반도체 기술자들을 직접 면담했다. 어떤 기술은 훔치듯 배껴왔다.
일본 기술자를 (일본) 회사 몰래 데려와 삼성 기술자들에게 밤새 반도체 기술을 배우게 했다. 당시 삼성전자 직원들은 반도체의 ‘ㅂ’자도 모른다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사실상 백지 상태서 관련 기술을 접목하고 배웠다.
당시 삼성전자 반도체 개발팀에 있던 한 직원은 2020년 이건희 회장이 타계했을 당시 한 방송국과 인터뷰서 ‘창피한 얘기지만 (반도체가) 뭔지 몰랐다. 메모리 반도체 64k D램이라는 게 있는데 그걸 개발하게 된다더라는 얘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다른 직원은 ‘저걸 하는게 제정신인가. 진짜로 할 건가 보다’는 생각을 했다고 털어놨다.
일본으로부터 반도체 기술 베이스를 도입하고 조 단위의 공격적 투자를 감행한 삼성전자는 마침내 일본 기업을 제치고 메모리 반도체 사업 부문서 세계 1위에 오를 수 있었다.
기술은 빠른 시간에 가장 정확하게 수요자가 원하는 물건을 생산해 낼 수 있는 능력이다.
어떤 제품을 어떻게 가공하고 어떤 원자재를 어떻게 넣고 어떻게 완성하는지에 대한 정보를 습득해 빠른 시간 내에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무형(無形)의 자산이다.
보유 여부에 따라 기업 생존이 좌지우지 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경제 요소다.
이전에도 있었지만 최근 대기업 직원이 퇴사 후 회사 기술을 해외에 유출하거나 팔아먹는 건이 심심찮게 보도됐다.
기술을 팔아먹고 그들이 받는 돈은 적게는 수십 억원서 많게는 수백 억 원에 달한다. 한 가정이 일평생 쓰기 버거울 정도의 돈을 받는다.
개인이 자신만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소속된 단체에 장기적으로 이익이 될 수 있는 기술을 팔아먹는 것이다.
그 대가는 혹독하다. 직원을 믿고 채용하고 관련 기술을 공유한 회사는 수천억 원의 매출·영업 손실을 각오해야 한다.
유출된 기술보다 더 나은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개발 계획 시점을 앞당기고 더 많은 돈을 투자한다. 5년 기간을 목표로 한 기술 개발을 3년으로 단축시키고 이를 위해 더 많은 자본과 인력을 투입하는 식이다.
회사도 손해지만 국가도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국내 대기업들은 실적에 비례한 세금을 국가에 납부한다. 법인세란 명목으로 한 해 많게는 수십조 원을 국가에 바친다.
만일 해당 기업 실적이 부진하거나 적자를 기록하게 되면 국가는 수십조 원의 ‘세수 펑크’를 맞이하게 된다. 이 때문에 국가정보원은 기술을 해외로 유출하는 ‘산업 스파이’를 간첩, 좌익사범, 범죄단체만큼 중대 범죄자로 규정한다.
기술 유출자, 산업 스파이가 다시는 이 땅에 없었으면 한다. 그들이야말로 21세기 진정한 매국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