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늦잠도 자고 집 소파에서 뒹굴하다가 평소 궁금했는데 가보지 못한 가락농수산물시장을 갔다.
지하철로 1시간 반을 달려가서 가는 내내 지락실 영상만 열심히 쳐다봤다.
농수산시장은 역에서 도보로 5분 거리에 있었는데 예상보다 햇빛이 너무 뜨거워서 얼굴을 가린 채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1층엔 수산물 코너가 있었는데 고무 치마를 입은 아주머니와 남성 사장님이 꽃게와 광어를 쳐다보는 나에게 ‘뭐 필요한거 없어요?’라며 말을 걸어서 보고 있다고 답하고 다른 수산물을 유심히 구경했다.
멍게, 바지락, 우럭, 도다리, 참돔 등 다양한 물고기가 있었는데 크기가 제법 컸다. 노량진이나 강서수산물시장에 있는 물고기는 광어, 참돔 외엔 대부분 크기가 작은데 여긴 우럭도 4자(40cm) 이상 되는 것도 제법 있었다. 내가 우럭 회랑 매운탕을 너무 좋아해서 한 마리 사갈까 생각도 했지만 가다가 상할 것 같아서 유심히 쳐다만 보고 왔다.
과일과 농산물을 파는 곳은 지하 2층에 있다길래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갔다. 우리나라, 서울에선 과일 시장으론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곳이라 다양한 과일을 볼 수 있을 거란 기대감을 갖고 갔다.
에스컬레이터 1층 초입에 내리자 노란색 참외와 푸른 초록빛을 띤 수박이 눈에 들어왔다. 상인분들이 과일 옆에 조명을 켜놔서 그런건지 과일이 전부 파릇파릇 싱싱해 보였다.
과일 가게 옆 한 구석에 앉아 채소를 파는 아주머니를 봤는데 백발의 할머니가 손에서 지폐 몇 장을 건네고 상추와 나물을 받았다. 대부분 상태가 좋아 보였지만 수분기가 빠진 시들은 나물이 몇 개 보여서 아무 말 없이 옆으로 지나갔다.
그런데 백발의 할머니께서 갑자기 ‘청년 어디서 왔어’ 라고 물으셔서 서울 사람이라고 답하니 ‘훤칠하네. 젊은 사람 여기 잘 안오는데 왜 왔어?’라길래 평소 가보고 싶었는데 시간이 안되서 못갔다고 말씀드렸다.
이후 바로 앞 과일부스를 보며 참외를 구경하는 나를 보더니 ‘사진 찍어줄까?’라고 하셔서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휴대폰을 건네 드렸다.
가로 세로로 몇장 찍으시더니 ‘봐봐 잘 나왔나’라길래 사진을 보고 만족스럽다고 말씀드리니 ‘잘 가. 오랜만에 젊은이 봤네’라며 휙 가버리셨다.
시장은 이런 매력이 있다. 내가 생전 처음 보는 분이지만 정겹게 인사하고 말 나누고 필요한 것을 사며 인정을 느낄 수 있는 곳. 집 근처 가게 물품보다 싸면 ‘여기 왤케 싸요’ 한 마디로 상인분들 얼굴에 웃음을 피울 수 있게 하는 곳. 물건이 너무 필요해 많이 사면 덤으로 귤이나 감자 하나를 건네며 ‘다음에 또 와요’라는 웃음을 느낄 수 있는 곳.
아직도 내가 다큐3일이나 고독한 미식가를 보며 꿈을 키우는 이유기도 하다. 바로 옆 우리 목소리를 글로 녹여내 세상에 알려 공감을 이끌어 내는 것. 오늘 내가 한 생각, 힘듦, 아픔, 기쁨이 결코 나만 느끼는 것이 아닌 우리 사회 모두가 느끼며 공감하는 것. 그러나 이를 연결해 줄 고리가 없어 느끼지 못한 것일 뿐 우리는 모두 마음 속에 무언의 공통 분모를 갖고 살아간다는 것.
오늘도 많은 것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