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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 Karl Oct 30. 2022

6. 아담 스미스를 잘못 독해한 결과

1.

어제처럼 로열 마일을 오르며 질서 있게 프린지를 즐긴다. 페스티벌 출발점은 트론 교회Tron Kirk다. 1950년대까지 교구 역할을 하던 17세기에 건축된 교회는 여기 랜드마크라 할 만하다. 이후 50년간 쓸모를 찾지 못하다가 최근에 관광안내소 등으로 제 역할을 맡았다. 프린지 기간에는 더 쓸모가 많아진다. 음악과 코미디 공연은 물론 카페로도 쓰인다. 


교회 앞 거리에는 어제 없던 간이 무대가 생겼다. 공식 초청된 공연단들이 쇼케이스를 하는 공간이다. 사각프레임의 단순한 무대가 50센티 높이 단상 위에 놓여 있다. 30여 미터 간격으로 무대 3개가 나란히 섰다. Lower, Middle, Upper Stage라는 평범한 이름을 가졌다. 무대 앞에는 오전 11시부터 저녁 6시까지, 20분 간격으로 쇼케이스하는 공연팀과 공연명을 빼곡히 적어 놓았다. 


마침 Lower Stage에서 첫 쇼케이스가 시작된다. 음악의 역사The History of Music, 제목이 거창하다. 중년 브라스 밴드가 무대에 썼다. 트럼펫과 트롬본, 호른 같은 금관악기로만 구성된 밴드다. 영국 상원의원 가발을 쓴 퍼포머가 공연이 한창인 무대에 오른다. 나무 지팡이를 들고 우스꽝스러운 춤을 추며 호응을 이끈다. 연주자들도 머리, 어깨, 허리, 엉덩이를 맞춰 흔든다. 제목이 음악의 역사인 이유는 끝내 찾지 못하겠다.  


브라스 밴드 소리를 뚫고 낯익은 가락이 귓가에 닿는다. 어제 만난 한국 팀이 Middle Stage에 나타났다. 외국에선 없던 애국심도 생기는 법이다. 단박에 걸음을 옮긴다. 한국팀 공연에 네 명의 환호와 박수를 보탠다. 오늘은 하얀 고깔을 쓴 여성과 쟁반을 돌리는 남성도 등장했다. 무대 앞에선 상모를 크게 돌리고 있다. 맛보기로도 풍성한 볼거리다. 상모를 돌리던 출연진 하나가 준하준서를 알아본다. 그리고 티켓을 건넨다. 쇼케이스에서 나눠주는 프로모션용 티켓이라며 꼭 오라고 당부한다. 어셈블리 홀에 메인 홀 공연이다. 스케일 남다른 공연임에 틀림없다. 


2.

쇼케이스 무대에 오르지 못한 퍼포머들 무대는 그 너머다. 모든 거리가 그들을 위한 무대다. 경계가 사라진 로열 마일은 공연하는 사람과 구경하는 사람이 서로 뒤엉켜 한덩어리가 되었다. 프린지(주변)란 이름에 걸맞게 주변부가 중심부로 바뀐다. 진한 스모키 화장, 타이트한 검은 셔츠와 타이즈를 입은 여성들이 거리를 누빈다. 춤추다가 누웠다가 노래하다가 당최 종잡을 수가 없다. 좀비 분장을 한 일군의 퍼포머들도 있다. 지나가는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상호작용한다. 대화도 하고 몸짓도 나눈다. 저런 순발력이면 연극팀이 분명하다. 


쇼케이스 무대보다 더 많은 관객을 모은 공연도 꽤 있다. 농구 퍼포머는 그 중 압권이다. 현란한 농구 스킬에 입담을 장착한 유쾌한 흑인 청년이 대중들을 무장해제 시킨다. 공 하나에서 네 개로 점점 난이도를 높이는 드리블 기술은 독창적이고 드라마틱하다. 공연이 끝나자 사람들은 너나없이 동전과 지폐를 투척한다. 도네이션은 관객이 느낀 즐거움과 놀라움, 감동과 비례하는 법이다. 청년은 마치 셀럽처럼 관객들과 사진도 찍고 이야기도 나누며 노련하게 응대한다. 


둘째는 몇 걸음 앞에서 벌어진 풍선 퍼포밍에 푹 빠졌다. 강아지나 칼 같은 흔한 풍선 마술과는 차원이 다르다. 미키마우스, 미쉐린 캐릭터 같은 난이도가 높은 창조물들이 순식간에 탄생한다. 스파이더맨을 만들어낼 때는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진다. Creative Dolphin이라는 소속명이 셔츠 끝에 새겨져 있다.  


3.

로열 마일 길가는 빽빽이 들어선 건물들에 막혀 있다. 그 중 한 공간이 열린다. 의회 광장Parliament Square이다. 광장 입구에서 만나 동상이 관심을 끈다. 뜻밖에도 아담 스미스Adam Smith다. 흄 동상과는 다른 의미에서 예상 밖이다. 가발을 쓰고 제복을 입은 모양부터 낯설다. 천을 걸친 것도 이상하다. 바닥에는 긴 막대기 두개가 튀어나왔고, 볏짚 같은 것 위로 둥근 공같은 것이 올려져 있다. 내가 본 동상 중에는 가장 요소가 많고 복잡하다. 흄은 딱 봐도 신고전주의 풍인데, 아담 스미스는 사조 구분조차 어렵다. 다행히 동상 뒤에 뒷이야기가 적혀 있다. 


긴 막대기는 농업경제를 상징하는 쟁기다. 볏짚 같던 것은 벌통이다. 당시 벌통은 산업발전을 상징하던 기호였다. 오른 손이 감싸는 둥근 공은 지구본이고, 가운은 그가 경제학자이자 철학자임을 드러내며, 미국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의 가발과 토마스 제퍼슨의 목도리를 두른 것은 미국과의 자유무역을 강력히 주장한 경제학자임을 드러낸다고 풀이해 놓았다. 너무 많은 것을 담으려다가 아무 것도 아닌 그저그런 동상이 되어버렸다. 동상을 제막한 날짜도 기가 막힌다. 2008년 7월 4일이다. 날짜가 우연히 맞았을 리는 없다. 아담 스미스 동상은 미국 독립기념일을 기념하는 동상이 확실하다. 


내 생각에 저 동상은 아담 스미스를 잘못 독해한 결과다. 단순히 시장주의자로 아담 스미스를 만들어 놓았다. 실제로 ‘보이지 않는 손’은 초등학생도 알만큼 유명하지만, 그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아담 스미스는 각자 이익을 추구하는 행위가 사회의 전체 이익과 조화를 이루는 방향으로 나아간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여기에는 중요한 전제가 있다. 인간의 착한 성품에 대한 무한한 신뢰, 그것이다. 


아담 스미스는 <도덕감정론>에서, 이기심과 반대되는 공감능력을 강조한다. 인간은 제3의 입장에서 대상을 평가할 수 있다는 이 능력은 행위의 도덕성을 스스로 인식하게 만든다고 주장했다. 요컨대 아담 스미스는 모든 개인이 도덕적 판단을 갖고 행동한다는 전제에서 ‘보이지 않는 손’이 공리주의 이상을 실현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그가 <국부론>에서 자본의 독점과 집중을 가차없이 비판한 이유도 자본주의의 사회적 관계라는 것이 이기심에 기초할 수밖에 없음을 간파했기 때문이다. 오늘날처럼 인간의 이기심이 극대화된 시장에서 ‘보이지 않는 손’은 소수의 이익에 복무하는 이데올로기로 전락하고 말았다. 신자유주의 같은 시장만능주의를 옹호하는 논리로 아담 스미스가 언급되는 현실은 개탄스러울 따름이다.


4.

인간에 대한 이런 아담 스미스의 시각은 흄에게 크게 영향을 받았다. 이미 옥스포드 시절, 금서로 지정된 <인성론>을 읽고 크게 감명받는다. 학위도 마치지 않고 에딘버러로 돌아온 그는 흄과 상당한 교분을 나눈다. 편지가 주요한 메신저였다. 스코틀랜드 국립도서관은 흄이 아담 스미스에게 보낸 편지를 여태 보관 중이다. 1759년에 쓰여진 편지에는 <도덕감정론>에 대한 흄의 견해가 담겨 있다. 


두 거인의 친교는 유럽의 계몽주의와 구별되는 스코틀랜드 계몽주의라는 새로운 사조를 잉태하는 계기가 되었다. 당시 유럽은 이성중심주의라는 유령이 배회하던 시기였다. 그럼에도 두 거인은 인간의 도덕성과 윤리적 행동이라는 전혀 새로운 사회적 논의에 불을 지폈다. 인간 본성에 대한 새로운 인식론은 이후 스코틀랜드 경험주의Scotland Enlightment라는 거대한 사상적 흐름에 원천이 되었다. 


열 살 이상 차이나는 둘은 상반된 측면도 많았다. 흄은 인기가 많았지만 논쟁적이었다. 반면, 아담 스미스는 다소 논쟁적일 수 있던 그의 지적 모험을 조신한 사회적 처신으로 부드럽게 넘기는 재주를 지녔다. 덕분에 흄은 끝까지 한번도 얻지 못했던 교수 자리를 오랫동안 유지했다. 아담 스미스 동상에서 오십여 미터 떨어진 흄 동상을 본다. 그들이 천착했다는 인간 본성에 대해 생각한다. 아담 스미스처럼 살겠다고 다짐해도 결국 흄처럼 살게 되는 사람들이 있다. 본성은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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