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an Karl Oct 30. 2022

5. 최고법원 앞 데이비드 흄

1. 

오늘은 프린지 페스티벌 첫날이다. 아침 일찍 서둘러 길을 나선다. 그래도 로열 마일 근처는 차를 댈 곳이 없다. 성 주변을 무작정 돌다가 오래된 장로 교회 주변에 어렵게 주차한다. 스타벅스가 주차장 건너에 보인다. 스코틀랜드에서는 처음 본다.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내가 사랑하는 더블샷 바닐라는 없다. 나는 아메리카노를, 아내는 오늘의 추천 메뉴를 주문한다. 레몬 바닐라 프라푸치노. 국적 없는 맛이다. 맛이 시고 달다. 아내는 아이들이 주문한 망고와 오렌지 쥬스를 탐한다. 


스타벅스 밖이 소란스럽다. 교회 앞이 춤과 노래로 들썩인다. 아프리카 민속 복장을 한 사람들이 거리를 공연장으로 바꿔버렸다. 생소한 악기들이 점점 흥을 돋운다. 길가던 사람들을 멈춰 세우고, 노래에 맞춰 발을 구르며 박수를 치게 만든다. 한바탕 유쾌한 공연이 끝나고 자신들을 소개한다. Soweto Gospel Choir. 남아프리카공화국 흑인 거주 지역인 소웨토 지역을 중심으로 결성된 남아공을 대표하는 유명한 합창단이다. 


넬슨 만델라의 90세 생일을 축하하는 대형 자선 콘서트(46664 Music Concert)에서 첫 주자로 공연했고, 2010 남아공 월드컵 조추첨 행사에도 참여했던 굉장한 팀이다. 숫자 46664는 넬슨 만델라의 죄수 번호다. 로벤 섬 감옥에 1964년 466번째로 갇혔다는 의미다. 이후 46664는 넬슨 만델라의 또다른 이름이 되었다. 아침을 먹고 숙소로 가는 길에 즉흥적으로 벌인 길거리 버스킹이었다는 인사를 남기고 연신 땡큐를 외치며 사라진다. 


2.

합창단이 총총히 사라진 공간이 본래 모습을 되찾는다. 골목길 끝에 그레이프리아스 교회Greyfriars Kirk가 보인다. 골목길이 시작하는 양쪽에는 보비Bobby라는 이름을 같이 쓰는 기념품샵과 펍이 자리를 잡았다. 펍에 적힌 보비 이야기를 읽는다. 일단, 보비는 개다. 골목 끝 교회에 살았다. 어느 날 주인인 존 그레이 목사가 세상을 떠난다. 그후 보비는 14년 동안 주인의 무덤 곁을 지킨다. 1872년 결국 보비도 죽는다. 시민들은 교회 앞뜰 그레이 목사 곁에 보비를 묻어 준다. 


그레이프리아스 교회는 종교개혁 직후인 1620년에 세워졌다. 스코틀랜드에서는 거의 최초에 속하는 유서 깊은 교회다. 그럼에도 500년 교회 역사보다 충견 보비 이야기가 하나님 권세를 이끌고 있는 사실은 아이러니다. 교회는 물론 샵과 펍까지 죽은 보비가 여러 사람들을 먹여 살리는 형국이다. 그림에 남은 보비 모습은 흡사 우리나라 삽살개를 닮았다. 정식 품종명은 로얄 스카이 테리어Loyal Skye Terrier다. 


3.

에딘버러 성을 이정표 삼아 로얄 마일을 향한다. 18세기 에딘버러를 걷는 듯한 거리에서 건물 하나가 번쩍 손을 든다. 모던하면서 클래식하다. 형용모순이지만, 더 나은 표현을 찾기 어렵다. 스코틀랜드 국립도서관National Library of Scotland이다. 멋진 계단을 오른다. 눈높이에 있던 바닥이 점점 시선 아래로 떨어져 1층 바닥 저 끝에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과 절묘하게 겹친다. 도서관 안은 일방적으로 고전적이다. 


1925년에 설립된 스코틀랜드 국립도서관은 여러 건물로 나뉘어 있다. 여기는 Georgy IV Bridge로 1956년에 지은 메인 빌딩이다. 무려 1689년에 설립된 법률도서관, Advocates Library가 소장하던 장서와 콜렉션을 그대로 물려받았다. 런던 대영도서관처럼 제대로 보려면 하루가 온전히 필요하다는 견적이 바로 나온다. 하지만 오늘 목적은 프린지다. 1층 Public Area만 빠르게 둘러본다. 


도서관 출판물과 문방구를 파는 북샵 그리고 카페와 기념품샵이 한쪽에 몰려 있다. 전시회가 열린 다른 쪽을 먼저 훑는다. 제목이 신선하다. ‘뚜껑을 올려라Lifting the lid’, 부제는 ‘400 years of food and drink in Scotland’다. 지난 4세기(1600년대부터 1940년대까지) 동안, 스코틀랜드 사람들이 먹고 마시는 것이 어떻게 변하고 진화했는지를 보여준다. 


수백 년이 넘는 레시피를 적은 책, 가계부와 상인들 전표, 광고, 요리 기구 같은 흥미로운 자료들이 쏠쏠한 재미를 선사한다. 이런 섬세한 생활사 자료들이 이렇게 온전히 보존되고 있다는 것이 놀랍다. 400년의 시간이 담긴 전시를 단 10분만에 압축적으로 감상하고 다시 길을 나선다. 


4.

낮은 언덕을 가볍게 오른다. 드디어 로열 마일이다. 아직 이른 시간이지만 어제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몰려나왔다. 흘러가는 사람들 뒤로 묵직한 동상 하나가 시선을 끈다. 데이비드 흄David Hume이다. 내 머릿속 흄은 노인이다. 그런데 동상의 흄은 무척 젊다. 게다가 흄이 앉은 건물은 스코틀랜드 최고법원High Court이다. 이미지와 인식이 혼란을 겪는 와중에 옛날 대학원 시절을 떠올린다. 훔의 ‘Passions’을 어떻게 독해할 것인가를 두고 논쟁하던 기억이 스친다. 


당시는 ‘인식은 곧 이성’이라고 믿던 데카르트의 시대였다. 이에 흄은 ‘인상과 관념이 곧 인식’이라고 선언해 버린다. 인상은 보는 것이고, 관념은 생각하는 것이다. 경험에서 얻은 인상이 관념을 만들고, 인식은 그 결과물로 형성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경험론(경험주의)의 뿌리로 흄의 인식론이 소환되는 이유다. 지금 관점에서는 전혀 새로울 것이 없다. 보지 않은 것은 생각할 수 없고, 경험하지 않은 것은 인식할 수 없다. 누가 동의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당시에는 아주 급진적인 주장이었다.  


또한 흄은 ‘이성reason이란 정서passions의 노예slave’라고 단언한다. 인간 행동은 이성이 아니라 정서에 지배받는다는 주장이었다. 당시 이런 논점은 신의 영역에 관한 문제로 논쟁적일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신이란 경험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신에 대한 인상이란 인간 이성이 만들어낸 이미지인 것이지, 경험으로 완성되는 관념은 아닌 까닭이다. 이런 주장은 18세기 사회통념과 정면으로 대치되는 주장이었다. 결국 흄은 무신론자라는 의심을 받으며 에딘버러나 글라스고 대학 어디서도 자리를 얻지 못했다. 


그럼에도 흄 인식론은 서구 지성사에 크게 기여했다. 비슷한 시기를 살았던 칸트는 흄의 저작을 읽고 이성이라는 독단의 잠에서 깼다고 고백한 바 있다. 이성을 관념에서 퇴출시킨 최초의 인간이 흄이었다. 더불어 홉스가 사회계약설에서 주장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을 비판하고, 만인의 이익이라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면서 공리주의의 문을 열었다. 이것은 아담 스미스 <국부론>으로 연결되는 중요한 철학적 배경이 된다. 


당대 철학에 날린 또 다른 하나의 불주먹은 인과관계에 대한 인식론이다. 어떤 대상에 대한 원인과 결과 사이에는 그것을 확정할 수 있는 확실한 지식은 없다는 것이다. 예컨데, 오늘 해가 떴으니 내일도 해가 뜬다는 인과관계의 필연성은 예측이지 확실한 지식은 아니라는 것이다. 누구도 내일의 태양을 증명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어떤 대상에 대한 명확한 지식은 알 수 없으므로 아무 것도 확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인식론적 방법론은 모든 증거 자료를 공판에 집중시켜 사안의 실체를 심판한다는 오늘날 공판중심주의 원칙의 인식론적 출발점이기도 하다. 스코틀랜드 최고 법원 앞에 있는 철학자 흄 동상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이유다.  


흄 동상 오른발 끝이 여름 햇살에 금빛으로 빛난다. 발가락을 만지면 행운이 온다는 관념이 인식으로 자리잡으면서 전세계 여행자들의 손길이 닿은 결과다. 스페인 세비아 대성당에는 콜럼부스의 관을 든 사람들의 발이 반짝인다. 부자가 된다는 말의 힘을 믿는 수많은 사람들의 인식이 만든 성실한 실천의 결과다. 경험으로 축적된 인상과 관념이 인식을 만든다는 흄의 생각을 이해하는 좋은 본보기다. 두 사례의 공통점은 가장 쉽게 만질 수 있는 위치에 가장 보편적인 바람을 담았다는 사실이다. 


이전 04화 4. 빈티지한 스콧 기념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