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일찍 잠이 깬 아침, 어제 사진들로 감동을 곱씹는다. 구비치는 협곡과 험준했던 세자매봉, 다른 세상 같았던 란노치 무어가 다시 살아난다. 아이들은 어제가 힘들었는지 침대에서 꿈쩍도 않는다. 웨스트 하이랜드 웨이 96마일을 온전히 지나며, 마을도 걷고, 등산도 하고, 공놀이도 하고, 강가도 산책하고, 밤길도 배회했으니 당연하다.
웨스트 하이랜드 웨이는 철도도 유명하다. 웨스트 하이랜드 라인West Highland Lines도 글라스고에서 포트 윌리엄을 지나 말리그까지 간다. 264킬로미터 라인도 하이랜드 습지와 호수, 산과 계곡, 협곡과 봉우리를 가른다. 그래서 영국 뿐 아니라 유럽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철도노선에 꼽힌다. 글렌코 풍경을 기차로 즐기는 상상으로도 아드레날린이 분비된다. 언젠가 여길 다시 찾는 날이 온다면 반드시 철도를 타겠다.
스코틀랜드 여행을 준비하며 글라스고 여행에 할당한 시간은 원래 하루였다. 하지만 아무리 따져봐도 견적이 나오질 않았다. 결국 전체 일정을 다시 조정하며 하루를 더 늘렸다. 이 도시에 무리수를 둬가며 하루를 보탠 이유는 내가 좋아하는 문제적 인간 중 하나인 매킨토시Charles Rennie Mackintosh 때문이었다. 바로셀로나가 가우디의 도시라면, 글라스고는 단연 매킨토시의 도시다.
2.
그래서 글라스고 첫 방문지는 글라스고 예술학교Glasgow School of Art다. 매킨토시의 모든 것이 시작된 곳이다. 그 출발점으로 차를 몬다. 백 년을 견딘 작은 벽돌 건물을 현대적인 글라스 빌딩이 품고 있는 인상적인 건물 앞에 차를 멈춘다. 글라스고 예술학교가 바로 길 건너다. 작은 벽돌 건물과 같은 질감을 가진 커다란 벽돌 건축물이다. 가파른 경사길과 다투지 않고 조화를 이루고 있다.
매킨토시에게 국제적 명성을 안겨준 걸작이지만, 그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건축을 시작한 것은 1896년이다. 그리고 1909년에 마무리된다. 그러나 실제로는 1897~99년과1907~09년, 십년이라는 뚜렷한 간극을 두고 공사가 이뤄진다. 자금 부족 사태를 겪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것은 매킨토시에게 기회였다. 그 시간은 오래된 관습과 새로운 변화를 결합시키고 숙성하며 스스로를 완성하는 충분한 시간을 제공했다.
매킨토시 디자인의 원천은 전통적인 스코틀랜드 양식에 기반하고 있다. ‘동화 속의 성fairy tale castle’을 상상할 때 떠올리는 크고 호화로운 이미지를 생각하면 된다. 스코틀랜드 바로니얼 스타일Scottish Baronial Style로 불리는 이 전통양식에 20세기 건축 재료와 기술을 결합하면서 새로운 상상력과 형식미를 부여하는 것이 매킨토시 디자인의 핵심이다.
십년의 시간 동안, Mackintosh Rose Motif라는 독특한 스타일을 완성한 것은 최고의 성과였다. 강철로 만든 직선과 곡선으로 구성한 절묘한 꽃무늬 장식은 매킨토시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가장 강력한 비주얼 요소다. 스코틀랜드 전통 양식 건축물에 적극적으로 사용된 꽃무늬 장식이 강렬한 대비를 이룬 글라스고 예술학교는 최초로 매킨토시 스타일이 적용된 대작이다.
건축물은 한마디로 기묘하다. 한번도 만난 적 없거나 만나지 못하던 이질적인 것들이 만나 낯선 강렬한 에너지를 분출하고 있다. 컬러도 이채롭다. 건축물은 노랗고 강철로 만든 현대적인 큰 창과 유려한 꽃무늬 장식은 시커멓다. 한 세기가 지났는데도 여전히 새롭고 현대적이고 감각적이다. 글라스고 예술학교로 완성한 매킨토시 스타일은 지금 글라스고 스타일Glasgow Style로 통한다. 글라스고에서 매킨토시 이름값을 평가하는 이보다 명확한 기준은 없을 것이다.
3.
매킨토시는 건축회사에서 견습생으로 일했다. 매킨토시 인생의 대전환은 예술학교에 야간 수업을 등록하면서 벌어졌다. 그의 재능을 알아본 교장을 만나고, 아내 마가렛과 인연을 맺은 것도 여기다. 아내의 여동생 프랜시스와 학교 동료인 허버트 맥네어와 교류한 것도 빼놓을 수 없다. 넷은 더 포The Four라는 예술가 그룹을 조직했다.
더 포는 가구와 금속공예, 그래픽 아트 같은 실험적인 활동을 함께 펼쳤다. 19세기 후반 건축과 장식예술 부문에서 글라스고가 세계적 평판을 얻는데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요컨대 글라스고 예술학교는 매킨토시가 자신의 스타일을 연구하고 다듬고 적용하는 중요한 공간이었다. 나중에는 교수로도 오래 재직했다.
매킨토시 갤러리로 간다. 예술학교에서 대중에게 개방되는 유일한 곳이다. 말년에 집중적으로 그렸다는 수채화가 다수 전시된 곳이다. 그런데 분위기가 꺼림직하다. 사람이 아무도 없다. 갤러리 입구에 안내문이 걸려있다. 화재 발생으로 재개장을 준비 중이라는 글이다. 쓸쓸히 갤러리 건물을 빠져나간다. 이럴 땐, 운명을 탓할 수밖에 없다.
유리로 마감된 건물(The Reid Building)에 있는 방문자 센터를 방문한다. 출입문에 독특한 포스터가 붙어있다. 기하학적 문양이 가득한 예술적인 포스터다. 오늘 6시 론칭 파티를 알린다. 가만히 보다가 살짝 놀란다. 프린트가 아니라 핸드메이드 작품이다. 오늘 초대된 사람들이 이 포스터를 본다면, 자기가 한층 가치 있는 일에 참석한다는 자부심이 저절로 생길 것 같다. 다소 기이한 손잡이를 밀고 들어간 센터 안엔 예술학교와 매킨토시 관련 전시품과 기념품을 팔고 있다. 힐끗 보다가 별다른 소득없이 돌아 나간다. 갤러리 폐쇄 소식에 의욕이 한풀 꺾였다.
4.
조지 거리W George St를 지난다. 글라스고 풍경이 멋진 거리다. 빅토리아 시대 건축물이 길가에 줄지어 있다. 흐릿한 하늘에 그려진 스카이 라인이 예술적이다. 멀리 큰 길 아래에는 성 조지 교회St George’s Tron가 도로 중앙에 터를 잡았다. 거리는 심한 내리막으로 시원하게 뻗어 있다. 샌프란시스코 롬바드 거리가 생각난다.
교회를 지나면 숨어있던 조지 광장George Square이 모습을 드러낸다. 도심 안에 이렇게 탁 트인 넓은 공간이 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광장 가장자리에는 붉은 깃발을 심었다. People make Glasgow, 익숙한 슬로건이 바람에 나부낀다. 광장 끝에서 코너를 돈다. 글라스고 대성당Glasgow Cathedral이 바로 앞에 버티고 섰다.
마치 공간이동이라도 한 것처럼 성당은 전원적이고 고즈넉하다. 도심이 지척이란 생각이 들지 않는다. 글라스고 대성당은 스코틀랜드 본토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이다. 그리고 글라스고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12세기에 지어진 그대로 한자리를 지키고 있다. 성당 외벽은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불에 그을린 것처럼 거무스름하다. 성당 안은 반전이다. 높은 천장과 거대한 스테인드글라스에 흠칫 놀란다. 밖은 소박한데 안은 화려하고 또 웅장하다.
성당 중앙에 불쑥 튀어나온 파이프 오르간도 인상적이다. 유럽 성당들을 제법 많이 섭렵했지만, 이런 배치는 처음 본다. 천장도 특별하다. 귀족 가문을 상징하는 문양 같은 것들이 별처럼 천장에 박혀 있다. 마감을 나무로 한 것도 독특하다. 덕분에 디테일이 예술이다. 자리를 잡고 앉아 고개를 젖힌다. 가만히 오래 시선을 고정시킨다.
5.
재단 앞에 작은 포스터가 붙어 있다. 생뚱맞은 헤드라인(Need some ‘still’ time?)과 심플한 촛불 그림에 호기심이 발동한다. 포스터 아래를 더 읽고 싶게 만든다. 피터와 폴의 기도 공간을 방문하라는 메시지다. 끝에 있는 계단을 이용하라는 깨알같은 글씨도 읽는다. 포스터가 일으킨 욕망을 거부하지 못하고 계단 아래 공간을 천천히 내려간다.
산 자가 기도하는 공간과 죽은 자가 누워있는 공간이 함께 있다. 글라스고 대성당을 세운 문고St Mungo라는 성인 무덤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글라스고 성인으로 추앙 받는 인물이다. 6세기경 그는 다른 지역에 주교였다. 하루는 들개 두 마리가 퍼거스 성인 시신을 수레에 끌고 나타난다. 들개들에게 신이 정한 곳으로 가라고 하자 대성당이 있는 이곳으로 수레를 끌고 왔다는 것이다. 문고 성인이 이 자리에 수도원을 지으면서 대성당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다른 무덤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비교적 가까운 시기일수록 더 그렇다. 예컨대, 뜰이 보이는 창문에는 이런 글이 적혀 있다. The window replaces an earlier window presented by john robertson reid. In memory of his father francis reid and his mother jean robertson who died 5th march 1833. 부모님 죽음을 애도하며 유리를 교체했다는 내용이다. 이런 이야기들이 미로같은 지하 공간에 가득하다. 1860년에 중국에서 살해당한 누군가의 이야기도 있다.
글라스고 대성당은 스코틀랜드에서 유일한 중세 성당이다. 스코틀랜드에는 중세 고딕 건축물이 잘 없다. 대부분 종교개혁을 거치며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대성당은 장로교를 일시적으로 채택하며 살아남았다. 누군가는 치욕적인 처사라고 비판할지 모르지만, 지금 스코틀랜드 중세 건축물을 눈으로 목도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우리 같은 여행자들에게는 더욱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