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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 Karl Oct 30. 2022

26. 라이트하우스에 가면
글라스고가 보인다

1.

에딘버러 사람이 거실에서 차를 음미할 때, 글라스고 사람은 부엌에서 위스키를 마신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단순히 선호의 문제를 넘어, 두 도시의 전혀 다른 성향을 상징한다. 에딘버러가 스코틀랜드 역사와 문화 중심지라면, 글라스고는 현대 산업 중심지다. 이처럼 두 도시는 정체성과 성장 배경이 상이하다. 그만큼 자부심이 강하고 그만큼 지역 감정도 거세다.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사이만큼 에딘버러와 글라스고 사이는 서로에 대한 자존심이 대단하다.  


오늘은 젊고 역동적인 글라스고의 개성을 느낄 수 있는 곳들을 둘러볼 예정이다. 물론 매킨토시는 빠지지 않는다. 조지 광장 근처에 주차한다. 광장 가운데 스콧 기념탑은 멀리서도 쉽게 광장 위치를 알려준다. 높이가 80피트나 된다. 에딘버러 스콧 기념탑보다 앞선 1837년 도리아 양식으로 세워졌다. 광장은 원래 주택가였다. 산업혁명이 절정에 달한 1800년대 중후반, 글라스고는 스코틀랜드 최대 산업도시이자 국제도시였다. 주택가가 지금 모습으로 바뀐 것도 그 즈음이다. 


아침부터 사람들이 붐빈다. 한쪽에선 행사를 준비하는지 바쁘다. 부산한 광장을 떠나 퀸즈 거리Queen’s St를 걷는다. 19세기와 21세기 빌딩들이 반반씩 골고루 섞여 있다. 사거리 한 켠에 글라스고 현대미술관Gallary of Modern Art을 발견한다. 고대 그리스 신전을 닮았다. 18세기에는 대저택으로, 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도서관으로, 그리고 1996년부터는 미술관이 되었다. 모던 아트로 포인트를 준 전면부가 인상적이다. 오래된 건축물이 현대적 감각을 입었다.  


미술관 앞에 에딘버러 국가기록원 앞에 있던 똑 같은 기마상이 서 있다. 머리에 주황색 콘을 뒤집어쓴 것도 판박이다. 에딘버러나 글라스고나 이런 악취미는 서로 통하는 모양이다. 미술관을 끼고 오른쪽을 돈다. 멀리 작은 아치 너머에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보인다. 라이트하우스The Lighthouse가 있는 부카난Buchanan 거리가 분명하다. 


2.

작은 아치에는 머천트 시티Merchant City라고 쓴 쇠 장식이 걸려 있다. 역시 예쁜 폰트다. 쇠 장식 배경에 파란 하늘이 말갛다. 여기는 글라스고가 부유한 상인들이 세운 도시임을 증언한다. 거리는 담배 창고가 밀집했던 19세기 골격을 그대로 유지하며 새롭게 재탄생했다. 19세기를 정점으로 1930년대부터 쇠락기를 맞았던 글라스고는 1990년대에 이르러 다시 르네상스를 맞고 있다. 


1990년대, 글라스고가 주목한 것은 스타일이다. 매킨토시라는 존재가 있어서 가능한 선택이었다. 19세기에 이미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공존하는 스타일을 선보인 매킨토시와 함께 글라스고는 화려하게 부활했다. 세계적인 도시 재생 성공사례로 꼽힌다. 세련되고 감각적인 건물, 개성 만점 부티크와 재기발랄한 폰트는 글라스고 스타일로 재구성된 매킨토시의 유물들이다. 스티브 잡스가 자신이 만든 창조물에 ‘매킨토시’라고 이름을 붙인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애플 매킨토시Macintosh가 글라스고 매킨토시Mackintosh에서 유래했다는 증거는 없다. 오히려 사과 품종(Mclntosh)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애플 매킨토시가 누구나 손쉽게 사용할 수 있는 컴퓨터라는 모더니티 이상을 품었다는 점, 단지 대중적 기대를 뛰어 넘는 아름다운 디자인의 정점을 추구했다는 점, 어디에도 없는 폰트에 집착했다는 점 등, 이 모든 것이 글라스고 매킨토시를 연상시킨다는 것만은 부인할 수 없다.


머천트 시티는 글라스고 스타일이 집약된 거리 전시장이다. 부카난 거리는 활력이 넘친다. 버스킹하는 사람, 맥주를 따르는 사람, 차를 마시는 사람, 대화하는 사람, 기다리는 사람, 공연하는 사람과 구경하는 사람, 어딘가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이 뒤섞여 있다. 또 여기는 런던 옥스포드 광장 다음으로 두번째로 큰 쇼핑거리다. 명품 브랜드 상점과 대형 백화점, 쇼핑센터가 즐비하다. 가장 현대적인 것들이 빅토리아 시대 건물들에 들어앉은 모습도 또다른 볼거리다. 근대화 과정에서 오래된 것은 모두 몰아낸 서울 거리에는 없는 아우라를 부카난 거리는 가지고 있다. 


3.

유명한 차 브랜드 Whittard 가게와 휴대폰 판매점 사이에 윌로우Willow 티룸 간판이 걸려있다. 매킨토시가 디자인한 윌로우 티룸은 토탈 아트, 즉 모든 응용미술이 공간 연출에 유기적으로 복무하도록 구현한 곳으로 유명한다. 탁자와 의자, 유니폼과 작은 소품들도 매킨토시가 직접 디자인했다. 윌로우 티룸은 완전히 새로운 디자인 개념을 소개하는 일종의 실험실이었다. 1904년 오픈 당시, 엄청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지금도 윌로우 티룸은 당시 모습 그대로 운영되고 있다. 그런데 위치가 좀 이상하다. 내가 알기로는 여기서 제법 떨어진 곳이다. 여기는 분점일 가능성이 크다. 작은 간판에 사용된 강렬한 폰트만큼은 확실히 매킨토시적이다. 


색소폰 소리에 이끌린다. 전자 기타와 색소폰, 다소 생소한 듀엣 공연이 펼쳐지고 있다. 점점 사람들이 모여든다. 그런데 공연하는 연주자 뒤로 우리가 찾던 길쭉한 라이트하우스 간판이 보인다. 네온싸인으로 반짝이는 THE LIGHTHOUSE도 자유분방한 폰트를 사용했다. 2미터 남짓한 작은 골목이 등대 불빛에 반짝인다. 


4.

라이트하우스는 1895년에 지어졌다. 매킨토시가 글라스고 예술학교에 입학하기 전이다. 그는 건축회사 직원 신분으로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건물을 제대로 보려면 미쉘 가Michell St에서 봐야 한다. 사각 건물 한 귀퉁이 모서리만 둥글게 다듬어져 있다. 둥근 모서리에서 둥근 구조물 하나가 건물을 뚫고 솟아 있다. 그 모양이 등대를 닮았다. 


처음은 신문사 사옥이었다. 등대처럼 사회를 밝히는 빛이 되라는 의미였을 것이다. 그러나 건물은 1980년에 버려진다. 시가 다시 매입한 것은 1994년이다. 지금 모습으로 리모델링한 것은 1999년이다. 100년된 건물에 현대적 디자인을 접목한 라이트하우스는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이 만나는 매킨토시 스타일을 글라스고 스타일로 받아들이는 상징적인 건축물이다. 이 곳에 스코틀랜드 건축디자인 센터Scotland’s Centre for Architecture, Design가 자리잡은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센터 입구는 매킨토시 기념품점과 연결된다. 이 건물의 진짜 주인이 누구인지 확실히 보여준다. 파란 조명을 뿌리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건물을 오른다. 아일랜드ISLAND라는 제목을 가진 전시실이 앞에 있다. 혼자 들기 버거운 돌덩이들이 열 지어 있다. 작고 노란 건축물 모형이 돌덩이 위에 자그맣게 놓여 있다. <아이언맨>에 나온 해안가 절벽 집이 생각난다. 아인쉬타인 글귀가 벽면 한쪽을 가득 채웠다. A Person who never makes a mistake never tried anything new.(실수하지 않으면, 어떤 새로운 것도 시도할 수 없다). 


3층은 The Mackintosh Interpretation Centre다. 말 그대로 매킨토시의 삶을 이해하는 공간이다. 그의 작품과 관련 영상 자료를 감상할 수 있다. 글라스고에 있는 매킨토시 건축물 위치와 사진, 그리고 간단한 설명을 곁들인 공간도 있다. 건축 모형도 설치해 놓았다. 매킨토시 투어를 계획하는 사람들에겐 꼭 필요한 정보들이다.


복도 한 켠에는 라이트하우스 역사를 연대순으로 펼쳐 놓았다. 향긋한 커피향이 계단을 타고 내려온다. 5층 Doocot Cafe에서 커피와 달달한 음료를 주문하다. 게일어로 doocot는 비둘기집이다. 카페 위엔 멋진 글라스고 전경을 보여주는 루프톱이 있다. 6층임에도 도시 구석구석이 한눈에 보인다. 신축보다 리모델링을 선택한 글라스고 시당국의 현명함 덕분이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라이트하우스를 내려간다. 자연채광을 최대한 품도록 공간을 분할한 메커니즘이 쉽게 이해된다. 밖에서는 꽉 찬 것처럼 보이는 등대 한쪽 모퉁이를 텅텅 비워 놓았다. 그 공간에 열과 횡을 맞춘 에스컬레이터를 겹겹이 쌓았다. 그리고 건물 위로 솟은 둥근 공간 안에는 나선형 계단이 숨어 있다. 등대를 건물 속에 제대로 심었다. 신문사는 사회의 등대여야 한다는 건축가의 신념을 보는 것 같다. 콧수염이 인상적인 잔망스런 캐릭터 티셔츠 한 장을 손에 쥐고 등대를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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