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존하지 못하는 어느 가족 이야기
푸른 초원의 끝자락,
가젤 엄마 ‘리나’는 저녁 햇살 속에서 풀을 뜯고 있었다.
그때, 바람 사이로 약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바위 그늘 밑에,
작고 떨리는 노란 털의 새끼가 있었다.
점박이 무늬, 날렵한 얼굴… 치타였다.
리나는 순간 멈칫했다.
“이건… 가젤을 잡아먹는 아이잖아.”
하지만 너무 작았다. 너무 약했다.
그 눈빛은 아직 세상을 모르는 투명한 아기였다.
리나는 가만히 다가가 속삭였다.
“괜찮아, 내가 지켜줄게.”
그날 이후, 치타 아기는 ‘루’가 되었다.
루는 리나의 품에서 자랐다. 젖을 먹고, 풀밭에서 함께 뛰놀았다.
리나는 루의 부드러운 몸을 핥으며 행복해했다.
루의 눈은 언제나 반짝였다.
그들의 눈빛은 사랑이었다.
계절이 바뀌고, 루의 이빨이 자라났다.
리나는 처음엔 귀엽다고 웃었다.
루가 장난 삼아 엄마의 다리를 물 때마다
리나는 부드럽게 말했다.
“아야, 루. 그래도 괜찮아.”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장난은 점점 더 아파졌다.
루의 발톱은 날카로워지고,
리나의 다리에는 상처가 생겼다.
피가 스며들어 풀잎이 붉게 물들었다.
리나는 웃으려 했지만, 그 웃음엔 두려움이 섞여 있었다.
“루는 그런 아이가 아니야…”
그러나 루는 태생이 사냥꾼이었다.
어느 날, 루의 장난이 지나쳤다.
리나의 옆구리 살점이 뜯겨 나갔다.
고통이 번개처럼 온몸을 스쳤다.
루는 놀라 울음을 터뜨렸고, 리나는 피투성이가 된 채 숨을 헐떡였다.
그날 밤, 리나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생각했다.
“이 아이를 이렇게 두면… 나는 죽겠지.
하지만 버릴 수도 없잖아.
이 아이는 내 품에서 자란 아인데…”
눈물 끝에서, 결심이 맺혔다.
다음날 새벽, 리나는 조심스레 루를 눕혔다.
아직 잠든 얼굴은 천사 같았다.
리나는 떨리는 발굽으로 루의 작은 입을 열고,
이빨을 하나씩 뽑았다.
그리고 발톱도 하나씩 잘라냈다.
“미안해… 루야.
이건 네가 나를 죽이지 않게 하기 위한 거야.”
루는 깨어나 울었다.
“엄마… 아파…”
리나는 울먹이며 그를 끌어안았다.
“이제 괜찮아. 이제 아프지 않아도 돼.”
그 후로 루는 더 이상 리나를 물지 않았다.
온순해졌고, 조용해졌다.
하지만 그 눈빛 속의 불꽃이 사라졌다.
사냥을 할 수 없으니 배가 고팠고,
고기를 먹을 수 없으니 점점 야위었다.
리나는 풀잎을 씹으며 루에게 속삭였다.
“조금만 버티자. 엄마가 먹을 걸 찾아올게.”
하지만 루는 고개를 떨구었다.
하루, 또 하루.
루는 시름시름 앓았다.
마지막엔 리나의 품속에서 힘없이 눈을 감았다.
그렇게 루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리나는 그 작은 몸을 꼭 안으며 흐느꼈다.
“미안해, 루야…
내가 살려고… 널 망가뜨렸구나.”
그날 이후, 초원의 바람은 유난히 서늘했다.
리나는 여전히 살아 있었지만,
마음 한켠은 깊게 찢겨 있었다.
밤이 내리고, 별빛이 초원 위를 덮었다.
리나는 하늘에 흩어진 별 하나를 바라보았다.
그 빛이 루의 눈처럼 반짝였다.
그녀는 눈을 감고, 숨을 내쉬었다.
“결국 루와 나는... 함께 살지 못하는 거였어.”
풀잎이 흔들리고,
리나는 다시 한 걸음을 내디뎠다.
그 걸음은 슬펐지만, 여전히 살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