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를 알리는 빨간 석죽과 주황 장미, 그리고 골든볼
며칠 따뜻하더니 다시 부쩍 추워졌네요. 칼바람이 두꺼운 외투를 파고들 정도예요. 본격적인 추위가 시작되는 12월은 언제나 설렘 반 아쉬움 반인 것 같습니다. 잠시 올 한 해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볼까요? 올해도 여전히 마스크 너머 미소를 보기는 힘들었습니다. 누구를 만나고, 함께 밥을 먹고 어울리면서도 찜찜함을 거둘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깝기도 했어요. 그렇지 않아도 '함께'의 의미가 점점 약해지는 기분이었는데, 그 속도가 가속화되었어요. 너무 우울한 이야기만 하면 아쉬움이 커질 테니, 이번에는 새해를 그려볼까요? 언제나 새해 다짐은 힘차게, 희망 가득. 이루어질지 아닐지는 벌써부터 걱정하지 않기로 해요. 새로운 다짐은 그 자체만으로 행복하잖아요. 적어도 우리 잠깐이라도 행복할 수 있는 기회는 허락하자구요. 올해를 일주일 남짓 남겨두고 어김없이 꽃시장에 방문했어요. 겨울 아침 공기는 코가 뻥 뚫리도록 상쾌하더군요.
상쾌한 공기 머금은 크리스마스 맞이, 지금 바로 시작합니다.
구입처 : 남대문 꽃 도매시장
**평일, 토요일 05:30~17:00 / 공휴일 05:30~14:00 / 일요일 휴무
**꽃시장 영업시간이 위와 같이 변경되었어요!
총지출 : 48,000원
-클라란스(주황) 장미 : 1단 20,000원
-심비디움(연핑크) : 1단 10,000원
-석죽(레드) : 1단 8,000원
-골든볼 : 1단 6,000원
-유스커스 : 1단 4,000원
**월, 수, 금은 새로운 꽃이 들어오는 날이에요. 다른 날보다는 좀 더 신선한 꽃을 만날 수 있어요.
월수금 방문 장/단점 : 싱싱함, 다양한 종류 / 가격이 상대적으로 비쌀 수 있음
화목토 방문 장/단점 : 세일 판매가 있을 수 있음 / 덜 싱싱함, 전날 판매량에 따라 종류 적어질 수 있음
지난달에는 눈물을 머금고 돌아왔다면 이번 달은 오래간만에 성공적이었어요. 꽃 상태가 전반적으로 괜찮았어요. 다만 장미는 머리가 크고 싱싱한 것을 찾기 힘들었어요. 게다가 크리스마스 시즌이라고 사람들이 빨간 장미를 많이 사가서 빨간 장미만 유독 값이 더 나갔답니다. 다른 색깔 장미와 두 배나 차이 나는 경우도 있었어요. 그리고 겨울에는 꽃값이 대체적으로 오르는 것까지 고려해야 해요. 가을에 비해 들여오는 양은 비슷하면서 지출이 늘 수밖에 없는 이유...(눈물)
이번에 방문했을 때는 보라색이나 파란색 꽃도 꽤 많았어요. 지난달 컨셉으로 잡았던 푸른 겨울을 다시금 도전해볼 기회가...! 하지만 12월은 크리스마스 컨셉으로 정했기 때문에 푸른 겨울은 1월이나 2월에 다시 도전해봐야겠습니다. 특히 파란 델피늄이 엄청 기대돼요. 이번에는 종류는 적지만 알차게 데려왔어요. 주황 장미가 너무 튀지 않을까 싶었지만 다행히 다른 꽃들과 잘 섞이더군요. 아주 성공적이에요!
점점 꽃 손질에도 요령이 생기고 손이 빨라지고 있어요. 예전에는 장미 손질할 때 지레 겁먹었는데 이제는 휙휙 잘도 집어 든답니다.
1. 줄기가 단단한 꽃(국화 등 대부분의 꽃)은 줄기를 자를 때 사선으로 잘라 주세요. 표면적이 넓어지면 물올림이 더 잘 된답니다.
2. 줄기가 무른 꽃이나 속이 비어 있는 꽃(거베라 등)은 물에 담겨 있으면 더 빨리 무르기 때문에 사선보다는 직각으로 잘라 주시는 게 좋아요.
3. 꽃병에 물을 다 채울 필요는 없어요. 어차피 물은 자주 갈아줘야 하고, 물에 담긴 만큼 세균이 번식되기 때문에 줄기 끝이 4~5cm 정도 잠길 만큼만 채워 주세요.
4. 물에 잠기는 부분은 꽃잎을 깨끗하게 제거해 주세요. 꽃잎이 물에 들어가면 물에 절여(?)지고 금방 물이 지저분해져요.
5. 장미나 국화류 등 줄기가 단단하고 굵은 꽃들은 열탕 처리를 해주면 더 오래 감상할 수 있어요. 70도 정도 되는 따뜻한 물에 줄기 끝을 5분 정도 담그면 돼요.
12월 꽃꽂이 컨셉은 무조건 크리스마스로 해야지, 생각했어요. 원래 월초에 다녀오려고 했는데 12월은 바쁘기도 하고 도저히 타이밍이 안 맞아서 이제야 다녀왔네요. 처음 구상한 그림은 빨간 장미에 초록 잎을 많이 곁들이고, 골든볼이나 염색 천일홍으로 오너먼트 같은 포인트 주기였습니다. 하지만 꽃시장 상황에 따라 변수가 생길 수 있어요. 오늘도 그랬답니다. 빨간 장미가 비싸기도 하고, 머리 크고 싱싱한 게 거의 없었어요. 그래, 꼭 빨간 장미가 아니어도 되니 더 예쁜 조합을 찾아보자! 크리스마스 덕분에 꽃시장에서 행복한 고민에 빠졌네요.
그렇게 탄생한 첫 번째 꽃병. 오늘은 유독 꽃시장을 많이 돌아봤어요. 평소 같으면 두세 번 돌아보고 첫 꽃을 들였는데 이번에는 대여섯 바퀴 돌고 나서야 품에 안을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메인이 될 장미는 가장 마지막에 들였어요. 빨간 장미는 아무리 봐도 마음에 쏙 드는 게 없었는데, 돌다 보니 머리 큰 주황 장미가 저 멀리서부터 눈에 확 띄는 거예요. 오늘 제가 본 장미 중에 제일 머리가 컸어요. 얘네만 수북하게 꽂혀 있는데 꼭 '나를 안 들이고 못 배길걸?'이라고 속삭이는 것 같았어요. 다음 블록으로 넘어가 구경할 때도 기억에 남더라고요. 머리 작고 상태 안 좋은 빨간 장미와 가격도 비슷하니 차라리 머리 큰 주황 장미를 들이는 게 낫겠다 싶었습니다. 그래도 크리스마스 분위기에 잘 어울려서 만족스러워요. 그리고 스프레이 카네이션과 비슷하게 생긴 붉은 석죽! 석죽은 패랭이꽃이라고도 불립니다. 생각보다 아주 붉은 꽃은 많지 않아서 한참을 둘러봤는데 이 친구가 제일 귀엽더라고요. 골든볼도 크리스마스 분위기에 딱이에요. 잎 꽃은 원래 블랙잭 유칼립투스를 들일 생각이었는데 어제 다 나가고 없다고 하더라고요. 결국 차선책으로 깔끔하고 오래가는 유스커스로 선택.
두 번째 꽃병은 오직 심비디움. 이름도 어쩜 심비디움일까요? 참 잘 어울리는 이름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한 가지 놀란 점은, 보기보다 줄기가 무거워요. 정말 무거워요... 겉보기에는 거베라만큼 줄기가 연약할 것 같은데 엄청 단단하고 묵직하답니다. 그래서 낮은 꽃병에 꽂아 두니 자꾸만 쓰러지는 거예요. 하는 수 없이 길고 좁은 맥주잔에 꽂았습니다. 심비디움 꽃잎은 꼭 목련 같아요. 목련이 작아지고 핑크빛으로 물들면 이런 느낌이겠구나 싶어요. 심비디움은 크리스마스 컨셉으로 데려온 건 아니에요. 정말 홀린 듯이 데려왔습니다.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지는 것 같아요. 단아한 매력도 있고요. 심비디움 하나만으로도 줄기 길이를 달리하면 이렇게 깔끔하고도 풍성한 작품이 된답니다.
세 번째 꽃병은 남은 클라란스 장미로 채웠습니다. 머리가 크다 보니 몇 송이만 꽂아도 가득 찬 느낌을 주네요. 풍성한 느낌을 더하기 위해 일부러 잎을 다 떼지 않고 한두 장씩은 남겨두었습니다. 장미는 참 종류가 다양해서 좋아요. 크기나 색도 가장 다양하고요. 가격대는 다른 꽃에 비해 나가는 편이지만 그만큼 매력이 무궁무진합니다. 저는 클래식한 빨간 장미도 좋고, 연보랏빛이 은은하게 올라오는 오번가 장미도 좋아해요. 그리고 노란 장미도 좋아해요. 노란 장미는 신기하게 머리가 커도 귀여운 매력이 있어요. 아마 색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렇게 색이 진한 장미는 백장미나 화이트 리시안셔스로 바탕을 깔고 포인트로 넣어도 깔끔하고 좋을 것 같아요.
마지막 꽃병은 석죽을 짧게 다듬어 촘촘하게 연출해보았습니다. 남은 골든볼도 같이 꽂았더니 귀여움이 배가 되네요. 석죽은 줄기가 얇고 연약한 편이라 조심히 다뤄야 해요. 한 줄기씩 살살 빼내어 손질해야 합니다. 장미처럼 쑥쑥 집었다간 목이 홱 꺾여버릴 수도 있어요. 흰색 석죽도 보았는데, 아주 깨끗한 느낌이었어요. 흰 꽃은 대부분 깨끗한 인상을 주지만 석죽은 유독 강하게 느껴졌어요. 흰꽃 하면 머리 큰 꽃만 보다가 아기자기한 꽃을 보니 새로웠나 봅니다. 작품에 귀여운 느낌을 더하고 싶다면 석죽을 섞어보는 건 어떠신지요?
일할 때보다 더 부지런히 일어나서 다녀온 꽃시장. 돈을 벌러 가는 게 아니라 쓰러 가는 것인데도 그저 즐거워요. 깊게 몰입할 수 있는 취미가 있다는 건 참 좋은 것 같아요. 그것도 수동적인 취미가 아닌, 생산적인 취미라면 더욱. 내 생각을 눈에 보이게끔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 행복이 느껴집니다. 그리고 몰입하는 과정에서 많은 깨달음도 얻을 수 있어요. 저도 꽃을 바라보는 태도가 많이 바뀌었습니다. 이제는 지는 꽃을 보아도 아쉽다는 생각보다는 경이롭다는 생각이 먼저 들어요. 긍정적인 변화예요. 독자분들도 저마다의 취미로 잠시 힘든 일을 내려놓고 행복을 느끼실 수 있길 바랍니다.
12월의 꽃꽂이는 여기서 마무리합니다. 한 해 마무리 잘하시고, 내년에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