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채화 같은 하늘색 장미와 보라 소국을 이용한 색다른 연출
요 며칠 날씨가 제멋대로네요. 지난 주말에는 늦여름인가 싶을 정도로 햇볕이 따뜻했는데 다음날은 또 어마무시하게 춥더라고요. 감기 안 걸리는 게 이상할 정도예요. 그래도 피부에 닿는 공기가 제법 쌀쌀한 것을 보니 겨울이 오긴 왔는가 봅니다. 가을이 금방 지나가버려 아쉬워요. 바닥에 아무렇게나 흩어진 낙엽과 앙상해져 가는 나무를 보며 스쳐간 가을에게 손을 흔들었습니다. 동시에 다가온 초겨울을 생각하며 이번에도 꽃시장으로 걸음을 옮겼어요.
아쉬움 많았던 겨울맞이, 지금 바로 시작합니다.
구입처 : 남대문 꽃 도매시장
**월~목 03:00~15:00 / 금~토 03:00~16:00 / 공휴일 오전 영업 / 일요일 휴무
총지출 : 44,000원
-장미(블루 염색) : 1단 10,000원
-해바라기 : 1단 6,000원
-보라 소국 : 1단 6,000원
-유나 소국(흰색) : 1단 4,000원
-옥시페탈룸 : 1단 6,000원
-과꽃(보라) : 1단 5,000원
-유칼립투스(블랙잭) : 1단 7,000원
**월, 수, 금은 새로운 꽃이 들어오는 날이에요. 다른 날보다는 좀 더 신선한 꽃을 만날 수 있어요.
이번 꽃시장 방문은 정말이지 슬픈 일의 연속이었습니다. 원래는 11월 첫째 주 토요일에 가려고 했어요. 매번 월초에 가기로 했거든요. 그런데 그 이틀 전 남대문 꽃시장에 확진자가 나와 임시폐쇄되었습니다. 그렇게 열흘을 기다린 끝에 11월 15일부터 영업을 재개했어요. 하지만 꽃값이 무섭게 치솟았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겨울 꽃값은 비싼 편인데 꽃시장이 열흘 동안 문을 못 열었으니... 게다가 아직 모든 가게가 문을 연 것도 아닙니다. 꽃 종류도 임시 폐쇄 전보다 확연히 줄었습니다. 덕분에 11월은 유독 지갑이 가벼워졌어요.
수요일은 꽃 들어오는 날이라 기대하고 갔는데 아무리 둘러봐도 상태가 썩 좋은 곳이 없었어요. 자주 가던 곳도 그렇고요. 염색 장미는 수입산이라 비쌀 수밖에 없다 쳐도, 다른 꽃들도 가격이 어마무시하더라고요. 특히 국화류와 스토크 가격 듣고 놀랐습니다. 평소 같았으면 한 단에 2~3천 원이면 들일 텐데 아무리 저렴해봐야 기본이 5천 원이더군요. 이번에 들인 데코용 블랙잭 유칼립투스도 썩 마음에 들지는 않습니다. 사장님도 이번 아이들은 별로라고 하시더라고요. 여태 블랙잭을 활용해본 적이 없어서 이건 꼭 들여야지 하고 갔는데... (눈물)
지난 달이었으면 이번에 지출한 금액으로 사진에 보이는 양의 2배는 들였을 거예요. 재료가 한정적이지만 나름 열심히 손질해봅니다.
1. 줄기가 단단한 꽃(국화 등 대부분의 꽃)은 줄기를 자를 때 사선으로 잘라 주세요. 표면적이 넓어지면 물올림이 더 잘 된답니다.
2. 줄기가 무른 꽃이나 속이 비어 있는 꽃(거베라 등)은 물에 담겨 있으면 더 빨리 무르기 때문에 사선보다는 직각으로 잘라 주시는 게 좋아요.
3. 꽃병에 물을 다 채울 필요는 없어요. 어차피 물은 자주 갈아줘야 하고, 물에 담긴 만큼 세균이 번식되기 때문에 줄기 끝이 4~5cm 정도 잠길 만큼만 채워 주세요.
4. 물에 잠기는 부분은 꽃잎을 깨끗하게 제거해 주세요. 꽃잎이 물에 들어가면 물에 절여(?)지고 금방 물이 지저분해져요.
장미나 국화류 등 줄기가 단단하고 굵은 꽃들은 열탕 처리를 해주면 더 오래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70도 정도 되는 따뜻한 물에 줄기 끝을 5분 정도 담가 주시면 됩니다. 저는 생략했어요.
11월 꽃꽂이 컨셉은 10월부터 생각해뒀어요. 겨울의 차가움을 표현할 수 있도록 파란 꽃들로 조합해보자는 것이었지요. 그러나 꽃 종류가 많지 않으니 흔하지 않은 파란 꽃은 더더욱 없을 수밖에. 제가 원하던 코발트블루 같은 쩅한 파란색은 아예 보이지 않았습니다. 염색된 카네이션과 장미 몇 종류가 전부였어요. 이번 컨셉은 다음으로 미루고 다른 컨셉으로 꽃을 들일까 생각도 했지만, 생각보다 꽃꽂이 컨셉을 짜는 데에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에 즉석에서 다시 생각하긴 어려웠어요. 막연한 생각으로 꽃을 들이다 보면 예산도 초과되고 이게 내가 생각했던 그림이 맞나 싶기도 하거든요. 그냥 예정대로 들이기로 했어요.
완성된 첫 번째 꽃병. 중간중간 보라색은 과꽃입니다. 과꽃은 컨디셔닝 하려고 풀어 보니 줄기가 거의 물에 절여지다시피 물러 있어서 정말... 울고 싶었어요. 이 사진을 찍고 나서는 과꽃은 뺐습니다. 처음에는 과꽃을 어떻게든 활용하고 싶었어요. 그러나 이 꽃병에는 파란 장미와 해바라기, 블랙잭만 두었을 때가 가장 조화로운 듯합니다. 사진에서는 잘 안 보일 텐데 파란 장미는 파란 물을 먹여서 만든 색이라 실제로 보면 수채화 같아요. 정확하게는 하늘색 물감을 묻힌 붓을 깨끗한 물에 풀었을 때 퍼져나가는 푸른 줄기 같달까. 그리고 중간중간 물이 조금 덜 들어서 청록빛을 내기도 해요. 오묘한 빛깔이랍니다. 제가 원했던 쨍한 파란색은 아니지만 나름의 매력을 가졌어요.
이 사진에서는 장미의 색감이 조금이나마 잘 느껴지네요. 장미 손질할 때에는 조심스레 잎을 하나하나 먼저 떼어내고 가시를 제거해 주세요. 손질 시간은 더 길지만 저는 이 시간이 좋아요. 아무 생각이 없어지거든요. 줄기를 정리하는 일에 몰입해서 그럴 수도 있고, 그 행위 자체로 생각을 비울 수 있어 그럴 수도 있습니다. 단순한 일이 생각 비우는 데에는 최고라고 하잖아요. 꽃을 정리하고 다듬는 일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한 생명을 제 손에 쥐고 있다는 사실도 꽃을 손질하는 시간을 더욱 즐겁게 만듭니다. 꽃시장도 어느 정도 안정화되고 요동치는 꽃값도 조금 내려가면 다음에는 꼭! 제대로 된 파란 컨셉을 실현해 보고 싶어요.
두 번째 꽃병입니다. 파스텔색의 유니콘이 생각나는 독특한 빛깔의 보라 소국과 아기자기한 유니 소국을 활용했어요. 보라 소국은 가장 마지막에 들였어요. 항상 몇 바퀴씩 돌면서 꼼꼼히 보는데 왜 이걸 마지막에서야 알아봤을까요? 진작 봤다면 벌써 들였을 텐데. 파란색도 아니고 보라색도 아닌 정말 특이한 색이에요. 소국은 종류도 많고 모양도 다양하고, 가장 기본적이지만 가장 재미있는 꽃입니다. 예정에는 없었으나 어떻게든 파란색 컨셉을 실현하고 싶어 들인 옥시페탈룸도 있어요. 그래도 옥시는 지난번보다 색도 선명하고 컨디션이 좋았습니다.
가까이서 보면 이런 느낌이에요. 보라 소국 색깔이 정말 예쁘죠? 옥시페탈룸은 손질은 번거롭지만 너무나도 귀여운 꽃이에요. 참고로 많은 꽃을 손질해야 한다면 옥시는 가장 마지막에 손질하길 추천드립니다. 옥시는 잎을 떼어내거나 줄기를 꺾으면 하얀 진액이 맺혀요. 그게 엄청 찐득거려서 골치 아프거든요. 또 하나, 옥시는 금방 시드는 꽃과는 되도록 엮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과일에는 사과가 있다면 꽃에는 옥시가 있어요. 뿜어내는 에틸렌 가스가 주변 꽃을 금방 시들게 합니다. 그럼에도 귀여움으로 승부하는 꽃.
이번 꽃시장 방문기는 슬프고, 또 슬프고... 슬펐지만 여전히 꽃은 아름답습니다. 꽃을 손질하는 동안 생각을 비우고 오롯이 그것에 집중할 수 있는 것도 좋고, 활짝 피어 있는 꽃을 보며 지루함을 떨쳐내는 것도 좋아요. 꽃꽂이를 끝낸 오늘, 벌써 12월 컨셉을 생각하고 있어요. 크리스마스의 달이니 빨간색과 초록색을 메인으로 다른 색을 더 얹어볼 생각입니다. 그때는 꽃시장이 안정화되길 바라며...!
11월의 꽃꽂이는 여기서 마무리합니다. 12월에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