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렬한 와인색 소국과 빛바랜 맨드라미의 매력
가을이 점점 짧아지는 것 같아 아쉬운 요즘입니다. 더운 여름을 떠나보내고 이제 슬슬 긴팔을 꺼내볼까, 싶더니 확 추워지더라고요. 10월인데 아침저녁으로는 패딩을 입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어요. 이러다 단풍도 못 보고 겨울이 오지는 않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나무는 예쁘게 물들고 있습니다. 찰나의 가을이 모습을 쏙 감추어버리기 전에 마음껏 반겨주자고요.
집에서 즐기는 울긋불긋 가을 꽃놀이, 지금 바로 시작합니다.
구입처 : 남대문 꽃 도매시장
**월~목 03:00~15:00 / 금~토 03:00~16:00 / 공휴일 오전 영업 / 일요일 휴무
총지출 : 25,000원
-메리골드(주황색) : 1단 5,000원
-소국(와인색) : 2단 6,000원
-스토크(흰색) : 1단 3,000원
-스프레이 장미(아이라이너) : 1단 3,000원
-맨드라미 : 1단 3,000원
-유스 커스(초록 잎) : 1단 3,000원
-스프레이 카네이션(연핑크) : 1단 2,000원
-서비스로 받은 달리아 : 1단 0원
**마감 시간 1시간쯤 전에 가면 이렇게 서비스 꽃을 끼워주신답니다.
그래도 두 번째 방문이라고 나름 점찍어둔(?) 집도 생겼고 어느 집에 어떤 꽃이 싱싱한지 조금 감이 잡혔어요. 그래도 꽃 종류가 늘 바뀌기 때문에 최소 두 바퀴 쭉 돌아보는 건 필수! 이날은 전체적인 색감을 가을스럽게 잡았습니다. 빨간색, 주황색, 노란색 등 따뜻한 컨셉으로 구상했어요. 그런데 마냥 강렬한 색으로만 가을을 표현하면 2% 부족할 것 같았어요. 그래서 조금 연한 색감을 조합하여 빛바랜 컨셉도 하나. 제가 생각하는 가을의 색으로 온전히 채웠어요.
베이스가 되는 꽃은 어디든 만능으로 끼워 넣을 수 있는 소국. 레퍼런스를 쭉 둘러보다가 와인색 소국에 확 꽂힌 거 있죠. 이번에 꽃시장에 가면 무조건 이것부터 들인다, 하는 마음으로 걸음을 옮겼어요. 그리고 포인트 꽃으로 메리골드를 생각했어요. 그런데... 메리골드는 아무리 둘러봐도 상태가 좋은 곳이 없더라고요. 그나마 상태 좋은 곳에서 들여왔지만 기대했던 것보다 아쉬움이 큰 꽃이었어요.
장미는 가시 제거가 어느 정도 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잔가시가 남아 있기 때문에 조심히 다뤄 주셔야 해요. 메리골드는 국화류보다 훨씬 더 줄기가 굵고 단단하기 때문에 손질할 때 주의하세요.
1. 줄기가 단단한 꽃(국화 등 대부분의 꽃)은 줄기를 자를 때 사선으로 잘라 주세요. 표면적이 넓어지면 물올림이 더 잘 된답니다.
2. 줄기가 무른 꽃이나 속이 비어 있는 꽃(거베라 등)은 물에 담겨 있으면 더 빨리 무르기 때문에 사선보다는 직각으로 잘라 주시는 게 좋아요.
3. 꽃병에 물을 다 채울 필요는 없어요. 어차피 물은 자주 갈아줘야 하고, 물에 담긴 만큼 세균이 번식되기 때문에 줄기 끝이 4~5cm 정도 잠길 만큼만 채워 주세요.
4. 물에 잠기는 부분은 꽃잎을 깨끗하게 제거해 주세요. 꽃잎이 물에 들어가면 물에 절여(?)지고 금방 물이 지저분해져요.
메리골드는 꽃 상태도 좋지 않았지만 꽃꽂이 하기는 더 좋지 않았어요. 줄기가 아주 제멋대로고 억세거든요. 줄기가 하나 같이 Y자로 주욱 벌어져서 예쁘게 꽂기 힘들었어요. 제일 기대하고 데려왔건만 활용을 못하는 나... 그래요, 메리골드는 잘못 없어요. 원래 그렇게 태어난 걸 어떡해.
그렇게 완성한 첫 번째 꽃병. 와인색 소국이 제일 마음에 들어요. 분위기가 확 달라집니다. 아이라이너 장미는 머리가 작은 게 매력이에요. 작지만 충분히 포인트가 될 수 있어요. 저 화살촉, 혹은 여우꼬리 같이 생긴 바랜 색 꽃은 맨드라미입니다. 가을과 딱 어울리는 색으로 들여왔어요. 꼭 잘 익은 곡식이 생각나네요. 뒤쪽으로 유스 커스로 데코 겸 지지대를 세워줬더니 전체적으로 자리가 잘 잡혔습니다.
두 번째 꽃병은 첫 번째와 비슷한 색감으로 가되 연핑크색 스프레이 카네이션을 섞어 주었어요. 카네이션도 종류가 참 많아요. 머리가 크고 풍성한 카네이션도 예쁘지만 스프레이도 아기자기한 매력을 가지고 있어요. 메리골드는 이 꽃병에 더 많이 꽂혀 있네요. 위에서도 언급했듯 줄기가 제멋대로라서 한 송이 한 송이 원하는 위치에 꽂으려면 줄기 길이가 짧아질 수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짧은 꽃병에 더 많이 담겼네요.
유스 커스는 여기서도 지지대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어요. 유스 커스는 정말 정말 튼튼하고 오래간답니다. 한 달이 지난 11월까지도 혼자 멀쩡히 푸릇푸릇한 잎을 유지하고 있어요. 데코용 잎 꽃은 두세 줄기만 꽂아도 충분하니, 유스 커스 한 단만 들이면 어디든 조합할 수 있어요. 정말 추천드려요.
세 번째 꽃병은 순백의 스토크와 연핑크색 스프레이 카네이션으로 채웠습니다. 스토크는 향이 정말 좋아요. 흔히 말하는 생화 향, 꽃집 향과 더불어 시원함이 숨어 있는 꽃입니다. 머리도 한 줄기에 오밀조밀 모여 있어서 조금만 꽂아도 풍성해 보여요. 또 스토크는 연한 색이 매력이에요. 연보라색, 아이보리색 등등. 딱 한 가지 단점이 있다면... 시들 때 냄새가 심해요. 스토크도 줄기가 여린 편이라 며칠 물에 담가놓으면 줄기가 절여지듯 흐물흐물해지면서 시들기 시작하는데요. 이때 처음 그 꽃향은 온데간데없고 물비린내가 심하게 나요. 며칠간은 예뻤지만 그 후 며칠은 비린내로 고생했던 꽃이에요.
스프레이 카네이션은 여기서는 포인트라기 보단 전체적인 색감을 이루는 역할을 하네요. 오히려 이 조합에서 포인트는 맨드라미라고 할 수 있어요. 맨드라미만 없으면 봄에 어울리는 색감인데, 빛바랜 맨드라미가 가을 분위기를 살려주네요.
마지막은 자투리 꽃을 모아 만든 꽃바구니. 오랜만에 찬장에 잠들어 있던 머그컵을 꺼냈는데 마침 색이 딱 어울리네요. 유독 머리가 큰 맨드라미가 있어요. 그런 아이들은 여기에 꽂아서 맨드라미가 메인이 될 수 있게 했어요. 소국과 함께 베이스를 이루고, 중간중간 스토크를 꽂아 톡톡 튀는 느낌을 더했어요. 손질하다가 짧아져버린 꽃이나 의도치 않게 목이 꺾인(?) 꽂들은 이렇게 모아서 머그컵 꽃꽂이로 활용해보세요. 긴 꽃병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답니다.
두 번째 꽃시장 방문기도 참 즐거웠어요. 첫 방문보다는 한산한 분위기였어서 조금 여유롭게 둘러볼 수 있었습니다. 10월 초에 갔던지라, 그땐 아직 단풍이 들기 전이었어요. 단풍 들기 전에 집을 먼저 단풍색으로 물들였네요. 이날 꽃꽂이하면서 벌써 11월 꽃꽂이 색감 생각하고 있었다는 건 안 비밀... 아무튼 빠르게 지나가려는 가을을 붙잡고 꽃과 함께 생각을 흘려보낸 하루였습니다.
10월의 꽃꽂이는 여기서 마무리합니다. 11월에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