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의 상반기를 마치며
2023년의 상반기가 쏜살같이 지나갔다. 나는 무얼 쥐고 무얼 버렸는가. 무언가를 쥐기보단 버리기 위해 친구들과 여행을 다녀왔다. 친한 동생 S의 고향인 소안도에서 친구들과 함께 3박 4일 동안 정신없이 떠들고 움직이고 먹고 놀고 잤다. 장마철이라 조금씩 비가 온 날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름 맑은 날이 지속됐다. 무언가를 사색할 겨를도 없이 S가 준비한 소안도의 액티비티는 끊임없이 이어졌다. 통발낚시를 하고, 무인도에 가서 바다수영을 하고, 배에서 라면을 끓여 먹고, 갯벌에서 조개도 잡고, 무엇보다 완도 전복을 원 없이 먹었다. 소안도는 눈앞에 보이는 모든 곳이 바다와 갯벌과 항구인 섬이었다. 우리는 시답잖은 얘기들을 땔감 삼아 쉬지 않고 웃음을 발화했다. 그렇게 며칠을 소안도의 식객처럼 놀고먹다 보니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했다.
어릴 때부터 난 인생이란 목표를 정하고 그것을 이뤄내고 성취해 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10대 때는 대학이라는 목표를, 대학교 다닐 때는 시험과 매 분기마다 올리는 작품을 목표로, 20대 후반에는 계속되는 오디션을 목표 삼아 그것을 성취해 내기 위해 달려왔다. 그게 예술가의 인생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올해 들어 나는 알게 되었다. 예술가는 목표를 향해 걷는 사람이 아니라 ‘그저’ 걷는 사람임을. 공연을 위해 연습하는 게 아니라 그저 매일매일 연습을 하다가 공연이 있으면 공연을 하는 사람임을.
글을 쓴다는 것은 나에게 행운이었다. 처음엔 내 마음대로 내 감수성이 따라가는 대로 글 쓰는 것이 즐겁고 유쾌했다. 내 기억 저편의 어떤 것들을 끄집어내 지금의 시각으로 풀어나가는 것이 재밌었다. 그러다 글을 쓰는 것은 나에게 위로가 되었고, 글쓰기는 나를 회복시켰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글은 내가 지치고 쓰러질 때도 이 삶을 쉬지 않고 걸어 나가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었다. 삶을 계속해서 걸어 나가는 것은 때로는 무섭고, 때로는 막막하고, 때로는 슬프고, 때로는 아프다. 어딘가를 목표 지점 삼아서 걸어 나가는 것도 물론 의미 있지만, 인생이란 멈추지 않고 걸어 나가는 것 자체가 의미롭다.
한 때 나는 내가 원하는 목표지점에 도달해야만 작품이 된다고 믿었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내가 걸었던 모든 순간순간이 작품이었음을 이제야 깨닫는다. 이 길의 끝에서 내가 우주의 아주 작은 한 점에 불과한 것이었음을 깨닫는다 하더라도, 나는 이제 그 작은 점마저도 사랑해야지. 무언가가 되기 위함이 아니라 그저 내가 나로서 충분한 삶을 위해 살아가야지. 그러나 살아가는 동안 나를 또 뜨겁게 담금질해야지. 그리고 계속해서 걸어 나가야지. 그렇게 한 해의 상반기를 보내고 또 새롭게 걸어 나갈 준비를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