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와 인정
어제는 오랜만에 혼밥을 하러 한적해 보이는 순대국밥집으로 들어갔다. 피크타임이 지나서인지 가게엔 손님이 많이 없었다. 내 건너편 자리에는 나이가 지긋한 여성 두 분이 앉아있었다. 인상이 굉장히 세 보이는 여성과 호리호리하고 목이 살짝 굽은 여성. 둘은 국밥을 한 숟갈 뜨는 그 순간부터 티격태격 대기 시작했다. 호리호리한 여성은 몸이 좀 불편해 보였는데 밥을 한 숟갈 뜰 때마다 국물이 너무 뜨겁네 김치가 너무 짜네 하면서 끊임없이 혼잣말을 했다. 마주 보고 앉은 인상이 센 여성은 인상을 잔뜩 쓴 채 밥을 먹고 있었다. 혼자서 중얼거리며 불평하는 일행의 말에, 대충 먹으라며 한 마디씩 툭툭 뱉던 인상이 센 여성은 기어코 입 좀 다물라면서 큰 소리로 호통을 치기 시작했다. 호리호리한 여성은 이에 지지 않고 더 큰 소리로 내가 알아서 한다며 반격하더니 이내 둘의 소리는 조금씩 사그라들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호리호리한 여성은 다시금 물이 너무 차서 먹기가 어렵다며 중얼거리기 시작했고 인상이 센 여성은 포기했다는 듯이 숟가락을 내려놓고 눈을 질끈 감았다. 누군가가 수도 없이 다녀간 길이 큰 행로가 되듯, 그녀의 이마에는 아주 깊고도 진한 주름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인상이 센 여성은 결국 자리를 일어나 먼저 가게를 나섰다. 친구일까? 가족일까? 오래된 사이일까, 아니면 안 지 얼마 안 된 사이일까? 나이가 들어도 관계는 어렵구나 생각이 든 나는 문득 사람이 사람을 버티게 하는 힘은 무엇일까 궁금해졌다.
결혼식 행사 일을 자주 뛰는 나는 남들이 쉬는 주말이 되면 결혼식장으로 출근을 한다. 꽤 적지 않은 결혼식에 가서 매 주말 여러 쌍의 신랑신부를 보다 보면, 생전 관심도 없던 결혼이란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되곤 한다. 비단 결혼이 아니더라도 애인이든 가족이든 친구든, 사람이 다른 사람을 만나 서로의 생각과 감정을 나누고 부딪히기도 하며 관계를 이어나가게 만드는 힘은 대체 무엇일까.
한 때 나는 그것이 ‘이해’라고 믿었다. 상대가 어떤 생각을 하며 사는지,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어떤 것을 싫어하는지 ‘아는’ 것이 나는 사랑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이해만으론 사랑을 이어나갈 수 없었다. 누구보다 서로를 잘 알고 있다고 믿던 관계도 어느 날 너무나도 쉽게 깨지곤 하니까.
어쩌면 이해를 넘어 사랑을 이어나가게 만드는 것은 ‘인정’이 아닐까. 내가 아닌 타인을 버티고 포용하게 만드는 것은 인지의 부분인 ‘이해’가 아니라, 그저 상대가 존재하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인정’인 듯하다. 나 자신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는 이 세상에서 나 자체 그대로를 인정해 주는 사람을 만날 수 있기를 나는 늘 소망한다. 그리고 나 또한 소중한 타인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사랑할 수 있기를 언제나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