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 나로서 살고 싶다는 결심

경계선 인격장애

by 혜성

나로서 살아간다는 건


나로서 살아간다는 건 무엇일까.
그 결심이 없었다면, 나는 아마 죽었을지도 모른다.
‘나로 살아가고 싶다’는 그 한마디는, 결국 살아남기 위한 마지막 본능이었다.


학생 시절, 나는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는 한 명의 문제아였다.
학교는 나가지 않았고, 술과 담배는 어디서 배워왔는지도 모른다.

집에서는 가출이 일상이었고, 가족과의 관계는 파국으로 치달았다.

지금와서는 매일이 폭언과 폭력, 의심과 분노로 뒤덮인 ‘사랑’이었다고 생각된다.


그런 내가 버티지 못해 찾아간 곳이 정신과였다.
“약이라도 먹어야겠다”는 마음으로.


의사는 내게 말했다.
"중증 경계선 인격장애입니다."


나는 세상과 나 사이의 경계를 잃은 채, 타인의 말 한마디에 휘둘리며 살고 있었다. 그때 처음으로 내 고통을 똑바로 바라보았고, 고통의 뿌리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21834_14541_3411.jpg 가볍게 해보면 좋다. 나를 아는 건 언제나 도움이 된다.



시간이 지나 성인이 되었다. 나름 괜찮아졌다고 착각했다.

하지만 매일은 쳇바퀴 같았다. 내세울 학력도, 경력도 없었다.

이루고 싶은 목표도 없이, ‘그냥 살아지는’ 삶이었다.

스마트폰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알바로 출근하고, 퇴근하고, 다시 폰질. 잠들기 전엔 술.


거기에 내 의지, 내 의미는 어디 있었을까. 웃고, 울고, 화내는 감정조차 내 것이 아니었다.

그건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한’ 감정이었다. 내 안에서 우러난 마음이 아니라, 타인의 기대와 시선이 빚어낸 가면일 뿐이었다.


성인이 되어 사회생활을 하고, 소위 정상적인 틀 안에 들어오며 병이 나았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건 그저 상처를 흙으로 덮어놓고 ‘괜찮다’며 정신승리하던 나였다.

그날도 평소처럼 술로 하루를 마감하고, 담배를 피우며 생각했다.


"왜 살아야 하지?"

"죽는 것과 지금의 삶이 뭐가 다르지?"

그건 포기가 아니었다. 내 마음을 다시 살려낸 작은 불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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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진짜로 하루에 한 번쯤은 진심으로 웃고, 울고 싶었다.
하루를 내 의지대로 살아보고 싶었고, 꿈이라는 걸 가져보고 싶었고,

인정을 구걸하는 게 아니라, 내 안에서 꺼내고 싶었다.


많은 사람도 그러지 않나. 하루가 버거워 “살기 힘들다”라고 말하고, 혼잣말처럼 “왜 살아야 하지?”를 반복하며 살아간다. 그 질문에 맞서는 작은 결심, 그게 내 출발이었다. 소망이었고, 의지였다.

지금 나는 말할 수 있다. 나는 나로서 살아가고 있다. 우울하든, 불행하든, 그 감정조차도 내 것이다.


지금 돌아보면, 결심 없는 삶은

공기 가득 찬 비닐봉지 같다.
출근길에 떠밀리고, 말 한마디에 무너지고,
밤이면 스스로를 주워 담는다.

하지만 결심을 하자, 그게 바로 내 삶이었단 걸 깨달았다.


세상에는
나처럼 살고 싶은 사람,
나처럼 아파본 사람,
나처럼 나로 살고 싶은 사람이 정말 많다.

어쩌면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그럴지 모른다.


누군가의 기준에 휘둘리며,
그저 ‘살아지는 삶’을 견디고 있지는 않은가?

그렇다면, 당신도 결심해야 할 때다.
세상에 휩쓸려 사라지지 않기 위해,
당신을 건져 올릴 단 하나의 결심이 필요하다.



“힘들다”는 말, 그건 단순한 푸념이 아니다.

그건 살고 싶다는 의지이고,
당신 안의 불씨다.


죽고 싶다는 말은 쉽게 나와도,
정작 “살고 싶다”는 말은 마음 깊숙이 묻어둔다.
그러나 진짜 강한 사람은,
죽고 싶다 대신 ‘나로 살겠다’고 말하는 사람이다.


그러니까,
지금 조용히 한 번 말해보는 건 어떨까.

“나는, 나로서 살고 싶다.”




매거진 말고 연재하기 위해 다시 발행합니다.

불편드려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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