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나에 대한 인정부터.

인정을 행동으로 바꾸는 방법.

by 혜성

먼저, 인정부터 하겠다. 나는 타인의 시선을 갈구한다. 그걸 부정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이용한다. 그건 이상한 게 아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그렇다.


나는 지금부터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어떻게 극복했는가를 말하려 한다. 정확히 말하면 '극복'은 아닐지도 모른다. 왜냐면 지금도 나는 누군가 봐줬으면 하는 마음이 있다. 이렇게 글을 쓰는 것도 결국 누군가의 눈길을 바라는 마음이니까.


그런데도 왜 극복이란 말을 꺼냈을까? 그 눈길에 목을 매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천천히 들어봐라.



우리는 타인에게 관심을 갈구하도록 진화했다.


일단 우리, 사람이라는 생물은 타인의 관심에 목숨이 달려있었다. 전 편에서 말했듯 사람은 관계에서 도파민이 잘 나온다. 도파민이란 쾌락적인 호르몬인데, 계획 - 노력 - 보상이란 체계로 나오는 신경전달물질이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타인의 관심이 우리에게는 보상이라는 말이다. 이렇게 우리는 타인의 관심을 받는 것을 좋아하는 게 디폴트 값이다. 원시인류는 타인의 관심을 받아야지만 살아갈 수 있었기에 그렇게 진화하게 되었다. 관심 = 보상 = 생존이라는 공식이 나온다.


생각해 보자. 돌도끼 들고 우가우가 하던 시절부터, 사냥과 수렵으로 살아가던 우리 조상들은 병에 걸리거나 다치면 어떡했을까? 그때는 당연히 외과수술이나 항생제도 없다. 자연회복만으로 그 상황을 극복해야 하는데 10이면 9는 죽는 상황이 발생했다. 다치고, 병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밥이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그래서 그런 문제를 어떻게 이겨냈을까? 남이 대신해 주면 된다. 그리하여 관심을 잘 받아야지 살고, 나를 돌봐줄 만큼 남들이 나를 이뻐하면 되는 것이다. 이렇게 남의 관심을 잘 받아야지만 생존확률이 올라갔기에 우리는 이렇게 진화했다. 이것을 부정하면 안 된다.


내 관심은 남의 목숨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러니 엄한 데 가서 악플을 달거나 남의 목숨 물어뜯는 짓 하면 안 된다.



관심받고 싶어 하는 날 인정하되, 그 관심에 마음을 내주어선 안된다.


그러면 이렇게 물어볼 수도 있을 것 같다. 혜성님 글에서는 타인에게 벗어나고 자신으로서 살아가야 한다고 주장하셨으면서 지금 와서는 타인에게 기대어살 아야 한다고 번복을 하는 건가요?라고. 당연한 궁금증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전혀 다르다. 예전의 나는 타인의 인정을 받지 못한다면 죽고 싶어 질 만큼 마음이 나약했다. 어느 정도였다면 내가 공부를 열심히 했는데 성적이 나오지 않아 집에서 질책을 들었다고 하면 진짜 1주일 동안은 눈물을 흘리며 잠에 들지 못했다. 또 회사에서 맡은 프로젝트를 잠을 쪼개가며 준비했었는데, 그것을 공개적인 자리에서 무시당했을 때 옥상에서 줄 담배를 피우며 자책을 했었기도 했다.


뭐, 결국에 어찌저찌 살아지기는 하지만. 당신도 그러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열심히 한 결과가 타인에게 인정받지 못했을 때 서글픈 마음.

나도 서글프면 이 표정 나온다.


지금의 나도 타인에게 인정받는 것을 좋아한다. 여기에는 아주 큰 차이가 있다. 이 차이를 알겠는가? '인정받지 못한다면'과 '인정받는 것을 좋아한다.'라는 점이 다르다.


이 차이는 어디서 생긴 걸까? 바로 자신에 대한 인정에서 나온다. 저 간극을 풀어보자면 ‘인정? 받으면 좋고, 아니어도 그만.’이라는 태도가 장착되어 있다. 그런 태도는 또 어디서 나온 걸까?


돌고 돌아 나 자신에 대한 인정에서 나온다. 내가 나 자신을 먼저 인정하게 된다면 타인의 인정은 부차적인 문제가 된다. 내가 공부를 통해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 성적에 일희일비하지 않아도 된다. 내가 맡은 프로젝트가 무시당하더라도 내가 그 안에서 얻은 것이 있다면 무시당해도 된다. 이렇게 자신의 기준이 생기면 자신의 인정은 따라오게 된다.


기준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내 전글 ‘조각난 하루가 남긴 것들.’을 읽어보길 바란다. (박수소리가 절로 날 것이니, 좋아요를 누르면 더 좋다.) 허튼 자신의 행동값이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깨달으면 자연스레 자신을 인정할 수 있다.



내가 아무리 이상한 사람이더라도 누군가는 날 좋아하고, 누군가는 날 싫어한다.


이건 명확한 사실이다. 간단한 예시로 길거리에서 스트리밍을 하는 민폐 방송인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막 소리도 지르고, 행동을 과하게 한다. 누가 봐도 눈살이 찌푸려질 만하다. 하지만 그 사람도 수요가 있기에 그런 방송을 하는 것이 아닌가? 누군가는 좋아해 주기 때문에.


한강 몸통시신 사건의 장대호를 아는가. 흉악한 범죄를 저지를 살인범이지만 누군가는 통쾌하다며, 잘했다며 그런 장대호를 지지하기도 한다. (내 생각으로는 살인은 어떠한 이유에서든 정당화될 수 없다. 신이 죽고 난 후(주 1) 우리는 살인에 대해 반항해야 할 의무가 있다.(주 2))


누군가 좋아해줄 걸 아니 이렇게 뻔뻔해질 수 있는거다.

이렇게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누군가는 날 좋아하고, 누군가는 날 싫어할 것이다. 그 반대가 될 수도 있겠지. 하여간 결과는 같다. 내가 무엇을 하던 이렇게 변덕스러운 세상에 자신을 내어주면 안 된다. 내 인정은 나에게 나오는 것이며, 그때서야 타인의 인정을 ‘즐기는 상태’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넘어서 타인의 인정 또한 ‘필요 없는 상태’에 놓일 수 있다.



타인의 인정을 내 연료로 삼을 수 있다.


위에 내가 했던 말처럼 타인의 인정을 즐길 수 있는 상태에 오게 된다면 그 인정을 오히려 이용할 수도 있다. 처음에도 말했지만 나는 타인의 인정을 받고 싶어서 이 글을 쓰는 동기가 되게 크다. 나는 원체 행동력이 적은 사람이다. 행동해 본 경험이 적다고 해야 옳겠지.


내가 나로 산 지 얼마 안 되었기에 내 의지로 무언가를 해본 경험이 적다. 그런 내가 지금은 글도 쓰고, 독서모임도 주최하게 되었으며, 일과 알바를 병행하며 진심으로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꾸준하게 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이런 나를 너무 대견하게 생각하며, 멋있다고 생각한다. (젊을 때 열심히 해야지, 체력딸리면 모든 게 다 힘들다. 지금도 간간히 느끼고 있다.)


그저 시킨 일만 하던 내가 어떻게 변할 수 있었을까? 답은 타인에 대한 인정을 내 열정으로 치환한 것이다. 나는 항상 당당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런 사람들을 유심히 관찰하고 행동을 분석했으며, 내가 그 사람을 보고 느낀 감정을 타인이 나를 통해 느꼈으면 했다. 그런 기준점을 가지고, 내가 타인의 시선을 신경 씀을 인정하니 나 자신에 대한 인정이 설 수 있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나에 대한 인정이 완성되었기에 타인이 날 좋아하지 않더라도 낙담하지 않고, 꾸준히 이어갈 수 있는 힘이 생겼다는 것이다.


다들 쿠키런이란 게임을 아는가? 쭉 달려가다 보면 갑자기 스피드업을 시켜주는 아이템이 나오는데, 그것을 먹으면 장애물도 다 무시하며 무시무시한 속도로 달려 나갈 수 있다, 잠시동안만. 타인에 대한 인정욕구는 그런 느낌인 것이다. 아이템 같은 것. 그것을 먹지 못한대도 우리는 계속 달려 나가야 한다.

다들 이 게임 모르나 ? 죽기 전까지 열심히 뛰어야 한다. 우리도 그렇다.

자신을 인정하는 모습이야말로 타인에게 인정받기 가장 좋다.


역설적이게도 그렇다.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자신의 길을 개척하는 사람들을 보면 우리는 뭐라고 할까? 일단 ‘멋있다’라는 소리가 절로 나오게 된다. 부정적인 사람이면 ‘왜 혼자 튀지?’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근데 비판이라는 것도 그 사람에 대한 시선이 있기에 나오는 법.


눈치 안 보고 뚝심 있게 행동을 하는 사람을 보면 언제나 멋있다. 역사에 이름을 남긴 영웅이나 성현들을 보면 언제나 그래왔다. 자신만의 확고한 기준과 정답. 그것으로 세상의 시선을 끌어왔다. 오히려 이런 모습이야 말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모습이지 않을까.

랄프 월도 에머슨이다. 자기확신에 찬 눈빛이 보이는가.

타인에게 시선을 뺏길 것인가. 뺏을 것인가!


여기까지 읽은 당신이라면 그런 건 사실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그런 태도야 말로 타인의 시선을 빼앗는 가장 큰 힘이 되는 법이다. 중요한 것은 내가 나를 실현하는 것이며, 그게 타인의 인정을 뛰어넘을 진정한 나에 대한 인정이다.


자아실현이 된다면 인정욕구는 중요한게 아니게 된다.



주 1) 니체, 도스토예프스키

주 2) 알베르 카뮈



세상과 나의 경계 - 월 발행

웹소설로 배우는 인생 - 수 발행

세상과 나의 경계 - 목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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