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평화란 부동심에서!
오늘 발행한 글은 어제 발행하였던 글과 이어지는 글이다. 안 읽고 이것을 본다면 뒤로 가기를 해서 전 편을 읽고 오는 걸 추천한다. 사실 전 편을 읽지 않아도 이해할 순 있으니 뒤로 가기 해서 안 올 거라면 그냥 읽어주기를 부탁한다. (글의 분량이 너무 많아 혹자들의 편의를 위해 두 편으로 나눴다.)
전 편을 안 본 사람들을 위해 전 편을 요약하자면
1. 세상은 조금만 둘러봐도 통제할 수 없는 것투성이다.
2. 그런 세상을 통제하려 들면 내 마음만 힘들어진다.
3. 세상에게서 마음을 지키는 방법 소개!
이렇게 구성되어있다. 흥미가 생기는가? 그렇다면 읽고 와라. 라이킷도 당연 눌러주겠지?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 시작하겠다. 오늘은 바위와도 같은 마음에 대한 글이다.
타인에게 쉽게 흔들리는 동심은 안된다.
동심이란 다들 생각하는 어린아이의 마음을 말하는 줄 알겠지만 그게 아니다. 여기서 말하는 동심이란 부동심의 반대말이다. 어떤 의미일까? 천천히 설명해 주겠다.
내가 만약 타인에게 호의를 베풀었다고 쳐보자.(만약이 아니라 나는 자주 호의를 베푼다.) 그러면 사람은 자연스럽게 상대가 고마워하는 반응을 상상한다. 하지만 반대로 왜 그랬냐고 나에게 되려 호통을 친다. 그렇다면 내 마음은 어떻게 될까? 굉장히 슬프고, 화가 나고, 서운할 것이다. 또 다른 예시로, 내가 면허를 취득하려 면허시험장에 갔다. 멋지게 도로에서 달리는 날 상상하며, 당연히 붙겠지 하고 시험을 쳤는데 필기에서 떨어져 버렸다. 운전하는데 법은 또 왜 이리 많은지. 일주일은 굉장히 속상할 거고, 한 달 동안은 도로만 보면 자책감이 스멀스멀 올라올 것이다.
이렇게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들에 마음을, 감정을 담다 보면 세상 살기가 너무 팍팍해진다. 내 뜻대로 하고 싶은데 되는 건 하나도 없다. 이 글을 보는 당신도 위와 같은 경험을 한 적이 반드시 있을 것이다. 내가 모든 일에 일희일비한다면 내가 희를 보일까, 비를 보일까 항상 불안에 떨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한 감정은 결국 나를 무너트릴 것이며, 주변에도 그런 파괴를 뿌리고 다니게 될 것이다. 정신질환과 부정적인 감정은 전염성이 짙다. 주변에 우울한 사람이 있다면 힘이 쭉 빠지지 않나. 나는 그렇다. 이런 것이 잘 움직이는 마음, 즉 동심이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에 마음을 걸어놓고 흔들리는 것.
그래서 나는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불행만을 생각하며, 내가 행동할 수 있는 불행만을 받아들인다. 나는 정말로 화내고 슬퍼하는 것 외에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이고 싶지 않다. 이해하지 못한다면 존중해 버리는 게 더 타당하다. '원래 이렇구나.'라며. 나름의 패배주의지만 휘지 않으면 부러진다. 나를 부수지 못하게 하는 강인한 방식이다. (부러지면 위에 말한 정신질환을 얻게 되고, 그건 전염병이 되어버린다.) 산들바람에는 흔들려도 된다. 나무가 굳세어야 할 때는 태풍이 불 때뿐이다.
예시로 내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치렀는데 부정이 있어서 한 계단 차이로 떨어졌다고 생각해 보자. 정말 억울하고 슬프고 분할 것이다. 몇 달간은 눈물로 밤을 지새우겠지. 그렇게 혼자 슬퍼할 바에는 언론에 제보도 좀 해보고, 투서도 써보고 하며 할 거 해보고, 안 바뀐다면 ’역시 부정부패가 판을 치는구나.‘라고 생각하고 던져버리는 게 낫다는 말이다.
그래야지 회복탄력성도 생기는 것이고, 마음에 골병도 안 들고, 그런 것에 영향을 안 받는 열정을 가질 수도 있는 것이다. 열정의 목적이 세상이 아니라 나 자신이라면 절대 꺼지지 않을 불꽃이 되는 법이다. 메모해라. ‘나는 화내는 것 외에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이 되면 안 된다.’ 당신도 이러한 마음으로 살기를 바란다.
감정을 안 담는다는 것은 ‘무심’이 아닌 ‘부동심’이다.
사람을 가장 사람답게 만드는 것은 바로 감정이다. 그런 감정이 없는 것을 ‘무심’이라고 하고, 그 무심은 기계에게나 있는 것이다. 해탈에 오른 싯다르타 또한 무심이 아닌 부동심을 깨우친 것이다. 과정이 어찌 됐던.
이렇게 우리는 감정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단단하고 무겁게, 부동심을 만들어 타인이 쉽사리 가져갈 수 없게끔 만들어야 한다. 말은 쉬운데 해보면 참 어렵다. 내가 그랬다. 온갖 고생을 다 했었지. 감정의 기변은 무의식이기에 내 생각만큼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아무리 긍정적인 사람을 보아도 그 사람도 우울한 마음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것을 직시하고 관찰하였기에 오히려 더 긍정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는 양가적인 감정을 항상 품고 살아가야 하며, 감정이 문제가 아닌 해소와 표출 방법에 따라 우리가 얼마나 성숙했는지 나타내는 지표가 되어준다. 당신도 성숙한 사람이고 싶지 않을까? 난 그런데.
그래서 우리는 부동심을 단련해야 한다. 내가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필수고 이것을 잘하는 사람은 주변마저 행복하게 만든다. 내가 타인에게 영향을 받는 것이 아니라, 타인에게 영향을 줄 수 있을 정도로 무거운 마음을 가지는 것을 목표로 하면 좋다. 그것에 가장 좋은 것이 스토아철학에서 말하는 감정을 담지 않는 법이다. 나만 봐도 나름 너스레를 떨며 아픈 과거 얘기를 잘하지 않나. 재미가 없다면 유감이다. 더 분발할 테니 구독도 하고 지켜봐 줬으면 한다.
전 편에서 언급한 스토아학파에는 가상의 모델이 존재하는데, 이름은 ‘현자’다. 멋있지 않은가? 현자라는 모델은 고문을 당하여도 ‘이건 나의 몸이 고통받는 거지, 마음은 고통받지 않는다.’라고 생각을 할 정도의 부동심을 가지고 있다. 사실 말이 안 되긴 하지만, 그러니까 실존인물이 아니라 가상의 인물이겠지. 우리는 이러한 부동심을 가지려 노력해야 한다. 목표란 높을수록 좋은 것 아니겠나, 오르지 못할 나무를 쳐다라도 봐야지. 안 보면 나무 서운해한다. 위에서 말한 '감정을 담지 않는 방법.'의 관찰자 역할이 비어있다면 이 현자란 분을 모셔도 좋다. 지금 미친 세일을 진행 중이라 인건비가 0원이다. 펑펑 혹사시켜도 합법. 일이 많으면 좋아하는 워커홀릭이시다.
이렇게 우리는 통제할 수 없는 것에 끌려다니는 것이 아닌, 통제할 수 없는 것은 자연스레 보내주는 단단한 마음이 필요하다. 물은 물이요, 산은 산이로다. 나는 나로서 있어야 한다. 내 손안에 쥘 수 있는 것은 내 마음 밖에 없다. 다들 나와 같은, 나보다 더 평화로운 평화를 얻기 바란다. (사실 내가 제일 평화롭기를 바란다. 이상한 놈이라고 생각하지 마라, 당신도 이러한 마음으로 살길 바란다.)
월 - 세상과 나의 경계 (18:00 발행)
금 - 세상과 나의 경계 (18:00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