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시간은 어디로 갔을까.

킬링 타임의 진정한 의미.

by 혜성

자, 전 편까지는 전직 경계선 인격장애가 지금 세상을 살아가기 위한 마인드셋에 말해보았다. 그러면 이제 뭐가 필요할까? 그 마인드셋을 외부로 꺼내 힘으로서 작용시켜야 한다.


앞으로의 4개의 글은 그러한 방법에 관한 글을 쓸 테니 읽고 유용하게 사용하길 바라겠다. 진심으로 인생이 180도는 아니어도 120도 정도는 변할 것이라고 장담한다.


시간을 죽이는 건 나를 죽이는 것이다.


다들 킬링타임이라는 용어를 아는가? 이건 말 그대로 시간을 죽인다는 의미다.


그렇다.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자원을 땅바닥에 버리겠다는 말과 다를 바 없다. 우리가 일을 하는 행위는 결국 내 시간과 화폐를 교환한다는 얘기다. 물론 자신이 금수저 씹어먹을 다이아몬드 티타늄 수저라면 듣고 흘려도 괜찮다.


요즘 유튜브를 들어가 보면 항상 이런 영상들이 있다. '킬링타임용 드라마 요약본!', '킬링타임 최적화된 워킹데드 몰아보기!' 같은 영상들 말이다. 다들 오다가다 한 번쯤 봤을 것 같다.


필자는 이러한 영상제목을 볼 때마다 나라를 잃은 충신처럼 비통한 마음을 금치 못한다. 무교이지만 머릿속에는 자동으로 신을 찾게 된다. 이렇게 인간은 나약한 존재다.


저런 영상들이 항상 추천 동영상에 뜬다. 왜? 사람들이 많이 찾아보니까. 드라마 요약본? 좋다, 이거야. 근데 왜 꼭 킬링타임을 제목에 붙일까?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시간을 죽이길 원하기 때문이다. 그런 수요가 있기에 저런 제목을 꼭 쓰는 거다.


요즘 세상이 많이 팍팍하고 살기 힘들다. 그저 맨 정신으로 시간 보내기가 힘들어 저런 시간이 휙휙 지나가버리는 자극적인 영상을 찾아보게 된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기엔 너무 불안하고 후회스럽고, 두려우니까.


실상은 어떨까? 아무런 인사이트도 없고 그저 시간만 죽이고 난 후, 스마트폰을 덮고 나면 오히려 더 커진 후회와 공허를 볼 수 있다. 자신에게 남는 것은 친구한테 이 드라마 이랬다더라~ 얘기할 수 있는 스포일러만 남는다.


그러면 또 그것을 피하려고 다시 우리는 스마트폰 안에 들어가게 된다. 내 시간을 죽일 것을 간절한 마음으로 찾으면서, sns나 유튜브, 또 요새 가장 심각한 숏폼 영상들을 하염없이 보게 된다.


이렇게 바로 악습의 굴레에 빠지게 되는 거다. 오호통재라. 결국 시간을 죽인다는 건, 나를 죽이는 것과 진배없다.


이 영화에서는 진짜 시간이 돈이다.(수명=화폐)


이제 우리는 가장 주요한 우리의 문제를 직시해야 한다.


스마트폰은 현대판 바보상자다. 그것을 넘어서 '바보제조기'다.


우리는 예전에 텔레비전을 바보상자라고 부르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왜 그런 말이 생겼을까?


'그러니 제 말 듣으십시오. 똑바로 들으십쇼. 텔레비전은 진실이 아닙니다! (Television is not the truth!) 텔레비전은 놀이 공원이란 말입니다! 서커스이고, 카니발입니다! 무용수와 이야기꾼과 가수와 춤꾼과 저글러와 괴물과 사자 조련사와 축구 선수가 놀아납니다! 지루함을 달래서 돈을 쓸어담을 뿐입니다! 그러니 진실을 원하신다면 하나님에게 가십시오! 상담을 받으십시오! 자기 자신을 돌아보십시오! 오직 그렇게 할 때만 진실에 다가갈 수 있는 것입니다!' - 영화(네트워크 1976)


위의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가 그렇게 부르는 데에는 이유가 다 있다. 그저 재미와 유흥만을 위해 우리는 텔레비전을 시청한다.


뉴스를 본다고 하는 사람들도 조심해야 한다. 뉴스는 우리에게 부정적인 정보만을 우선으로 보여준다. 우리 뇌는 부정적인 정보를 강하게 받아들이는 부정편파적 성향이 있다. 자신만의 기준이 없이 주는 대로 다 흡수하다 보면 우리는 세상을 굉장히 부정적으로 보게 된다. 그 부정적인 정보 또한 자극이다.


내 생각을 첨언하자면, 텔레비전을 보게 되면 우리는 세상이 주는 정보만을 습득하게 된다. 정권이나 여론에 따라 세상이 보여주는 이미지는 다르다. 우리가 그것을 진실이라고 믿게 된다면, 우리의 자아는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오히려 텔레비전이 천재상자로 보일만한 '바보제조기'가 등장하였으니.


그것은 이름하야 '스마트폰'이다.


이것을 통해 우리는 타인과 항시 연결되어 있으니 세상에 도래한 유토피아나 다름없다. (유토피아의 뜻은 세상에 존재할 수 없는 장소이다.)


업무도 다 이 조그마한 바보제조기로 해결하게 되며, 문화생활도, 여유를 위해 듣는 음악도, 예전에는 책으로 사두던 요리 레시피도. 다 이 바보제조기에 들어가 있다.


이렇게만 말하니 얼마나 축복받은 물건인가! 진정 외계인이 우리에게 준 선물인가? 하겠지만, 그건 엄청난 착각이다.


단언컨대, 이건 외계인이 우리를 지배하려 최면을 거는 신비로운 매개체다.


우리는 어디 뭐, 외계인에게 최면이라도 당한 듯 하루 종일 스마트폰만 보며 살아간다. 그게 없으면 극심한 불안에 떨게 되며, 알람이 오지도 않았는데 불안장애에 걸린 듯 수시로 폰을 확인하게 된다.


시간만 생겼다 하면 바로 폰부터 켜, 시간을 죽일 콘텐츠들을 찾아다니게 된다. 심지어 볼 일을 볼 때도, 씻을 때에도 말이다. 밥 먹는 시간은 예삿일도 아니지. 음.


우리 사회는 이런 걸 가리켜 중독이라고 부르기로 합의하였다. 이거에 대한 내용은 다음 글에서 자세히 다루도록 하겠다.


하여간, 이건 정부차원에서 막아야 하는 극심한 사회문제라고 생각된다. 나이가 좀 드신 분들이야 어느 정도 자제력은 있겠지만 이제 막 말랑말랑한 뇌를 가진 어린 학생에게는 얼마나 큰 문제일까.


예시로, 고1 학생 A는 하루 6시간 이상 스마트폰을 쓴다. 수업 시간 10분만 지나도 손이 근질거려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고, 30분 이상 집중이 필요한 수학 문제를 풀지 못한다. 결과적으로 성적은 중하위권으로 추락, 자기 효능감은 무너지고 우울감과 회피만 늘어간다.


스마트폰 중독 청소년은 집중력이 40% 이상 저하된다는 연구 (서울대 2022)


많은 어린 친구들이 이러한 문제를 만들어가며 살아간다. 이건 명명백백히 사회문제라고 감히 말할 만하다.


이렇게 우리는 바보가 되어가고, 바보가 정상인 세상에서 살아간다.


애꾸나라에서는 눈이 두 개면 비정상이다.


우리에게는 걸리버가 정상이겠지만, 저 기선 아니다.


이러한 세상에서 나를 구해낼 수 있는 특급비법을 공개하겠다. 고마우면 라이킷과 구독으로 마음을 표해주길 바란다.


시간은 내가 끌고 다녀야 한다.


처음에 말했듯 현대사회에서 시간은 귀중한 자산이다. 그걸 절대로 바닥에 버릴 순 없다. 그리고 시간은 또 공짜다. 이걸 아껴 쓸 이유가 도대체 어디에 있을까.


필자는 자신만의 시간에 대한 철학이 좀 있는 편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시간은 우리를 죽일 수 없다.


이렇게 말하면??? 이 자동으로 나오겠지. 우리는 시간이 흐르면 죽는다는 게 정설 아니겠나.


하지만 내 생각에는 시간도 내가 관측해야지 의미가 있는 것이다. 내가 죽고 난 후면 내 시간도 같이 죽음을 맞이하는 거다. 제안하기를 눌러 메일로 담론을 요구해도 좋다.


이렇게 우리는 시간과 평생 함께하는 동반자이며 영혼의 파트너라고 감히 칭할만하다. 하지만 알게 모르게 우리는 시간에 끌려다니는 삶을 살고 있다.


하루를 예시로 들어보자. 아침에 눈을 떠 비몽사몽 출근 준비를 한다. 감히 우리 바쁜 현대인에게 아침밥이라는 것을 먹으라고 요구할 순 없다. 그러곤 팔 척 귀신에 빙의하여 회사로 출근을 한다. 출근하는 대중교통에서는 반드시 주요 뉴스와 지인들의 sns를 확인한다. 우린 언제나 트렌드세터여야 하니까.


회사에서는 업무메일에, 미팅요청에 정신이 하나도 없다. 그리곤 점심시간. 휴, 한 숨좀 돌릴 겸 어제 새벽까지 보던 드라마를 2배속으로 틀어놓고는 밥을 입으로 먹는지, 코로 먹는지 모르게 먹고 난 후 다시 전쟁터 입성.


퇴근 후에는 열심히 하루를 살았으니 이제는 뒹굴 타임이 필요하다. 어디서 봤는데 보상심리가 중요하다고 하였다. 음, 그러니 나는 내일을 열심히 보내기 위해 지금은 힐링이 필요하다.


인간 대자가 되어서 드라마도 보고, 유튜브도 보고, sns도 잔뜩 해준다. 어? 언제 새벽 2시가 다 됐지? 자야겠다. 하고 폰을 끄고 누워도 잠은 안 오고 신경은 답장이 오지 않은 친구의 메시지에 쏠려있다.


자, 방금 내가 말한 하루에 자신의 시간은 어디에 있을까? 내가 무언갈 얻어갔던 시간은 어디에 있지?


우리는 세상에게 자신의 시간을 전부 다 가져다 바쳤다. 경건하고 또 신성하게 말이다. 우리는 이런 세상을 살고 있다. 또 그런 신을 섬기고 있다. 우리의 하루는 너무나 경건하다 못해 니체도 크리스천이 될 지경이다.


나를 나로서 있게 하는 시간은 당연 고독이라는 시간이다.


내가 집에서 혼자 늘어져있고, 사색거리가 충분한 예술을 접하며, 마음을 평화롭게 만드는 음악을 즐기며, 나를 위해 내가 친히 음식을 대접해야만이, 반드시 세상과 떨어져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야만. 나로서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이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고대부터 내려오는 진리이다.


한글로 된 최초의 소설 구운몽은 조선의 문관 김만중이 유배지 남해에서 고독을, 병든 몸을 씹다가 집필한 소설이다.


즉, 세상의 무상함과 권력의 허망함을 벗어나려는 영혼의 몸부림.


푸르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혼자서 천식과 신경쇠약을 이겨내며, 방음처리한 방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숙성시켜 나온 결과다.


즉, 10년간의 자신과의 싸움. 고독은 그의 유일한 스승이었다.


반 고흐는 사회에서, 심지어 동생 외엔 가족에게서도 버림받은 고독한 영혼. 아를의 노란 집에서 고독, 광기, 절망 속에 밤하늘과 해바라기를 그려왔다.


즉, 그 고독이 없다면 우리는 오늘 그의 별이 빛나는 밤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이렇듯 우리는 세상과의 연결을 잠시 끊어 자신으로 돌아가는 시간을 가져야만 한다. 세상과 항상 연결되어 있는 유토피아를 살고 있는 우리는. 도대체 어디에 자신이 있을까. 남 좋다는 것은 다 따라 하며 내가 되고 싶은 것은 하나도 없는 세상이다.


이럴수록 우리는 세상과의 연결을 끊어내어 나 자신으로 돌아와야 한다. 요즘 시대에는 그것이 제일 강한 힘이다. 다시 말해 '고독해라.'


당장 폰 내려놓고 30분만 고독해봐라. 자신의 형체가 느껴지는 감각이 척수를 타고 뇌를 때린다.


오우, 짜릿해.



독서모임 속닥속닥


속닥속닥은 한 달에 두 권의 책을 통하여 얻은 인사이트를 서로 공유함으로써 더 깊은 책과 나의 이해와,

타인을 통한 넓은 세계의 확장을 도와드리고 있습니다. 모든 대화는 익명으로 진행됩니다.


2기수) 주제 '당신의 어떤 목소리를 가지고 살고있나요?'


장소 : 부천시 원미구 신중동역(7호선) 인근


7월 12일 토 저녁 7시 30분 - 10시

7월 26일 토 저녁 7시 30분 - 10시


비용 : 한 기수당 6만 원.

비용은 운영에 필요한 기획비, 장소대여비 등 사용됩니다.


참여를 원하신다면 아래 링크를 통해 연락 부탁드립니다.

사전인터뷰를 진행 중이니 참고 바랍니다.(온, 오프라인 선택)


http://pf.kakao.com/_xfxhqB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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