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은 지옥이다 - 현실 편

도파민중독에 대한 역설.

by 혜성

다들 ‘타인은 지옥이다’라는 콘텐츠를 알고 계신가? 간단히 설명을 하자면, 우리에게는 네이버 웹툰과, 드라마로 알려져 있다. 꽤나 흥행을 하였던 작품이며, 동일한 제목의 영화도 있지만 원작과는 상관이 없다.


저 제목의 원문은 장 폴 사르트르의 희곡 '닫힌 방'에서 나온 문장이다. 뜻은 '우리는 자유의지를 가지고 세상에 던져졌지만, 결국 타인에 의해 실존할 수 있으며, 타인을 항상 신경 써야 하는구나.'라는 의미를 지옥에 빗대어 표현하였다.


이렇게 장황하게 설명하지 말고, 어서 본문이나 보여달라고?


그러면 시작해 보겠다. 타인은 지옥이다 - 현실 편을.

도파민 중독으로 현실에 도래한 지옥에 대한 얘기를.



우리의 지옥문은 가깝고, 가볍다. 바로 스마트폰.


이렇게 말하니 혹자들은 내가 스마트폰 혐오자인 줄 알 거다. 예전부터 꾸준하게 '스마트폰은 악이다.'라고 말을 하니.


답을 하자면 절대 아니다. 이것만큼 우리에게 유용한 물건이 없고, 스마트폰이 없는 현대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없으면 브라운관이라도 머리에 이고 다니겠지, 우리는.


근데 내가 왜 항상 이런 얘기를 하느냐. 이렇게 친근하고, 또 시나브로 우리 곁으로 다가온 스마트폰이 사실은 모르핀(마약성 진통제)과 같은 마약이기 때문이다. 반드시 경계하며 사용해야 하는 양날의 검이란 말이다.



전 편에서 말했듯 우리는 이 스마트폰을 통해 타인과 항상 연결되어 있는 세상을 살고 있다. sns나, 메신저를 통해서 말이다.


타인이 우리에게 카톡을 하나 보내면 당장이라도 답장해야만 하는 기분에 감싸이곤 한다. 누가 쫓아오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심지어 우리 어머니는 내가 답장이 늦으면 예의가 없다고 혼내기까지 하신다.


바야흐로, 밥상머리 예절을 넘어선 스마트폰 예절의 시대가 도래했다. 공자도 한 수 거드겠다고 무덤에서 벌떡 일어날 소리다.


각설하고, 이 스마트폰으로 링크하고 지내는 우리는 그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 중독되고 만다. 도파민의 출몰지 제1 구역은 타인의 관심이다.


항상 타인에게 관심을 받고, 관심을 보내고, 보낸 관심에 또 답장을 받고. 그럼으로써 우리는 가랑비에 젖어가는 줄도 모르고 타인에게 슬슬 중독되고 마는 것이다.


고작 SNS(브런치도 하나의 SNS다.) 좋아요 하나에 하루를 살 수 있는 이유가 되며, 구독취소에 살아갈 이유를 잊어버리기도 한다. 우린 이렇게 나약해져 있다.


위에서 ‘타인은 지옥이다’의 문장을 설명하였듯 우리는 항시 타인을 신경 써야만 감히 실존하는 사람이라 칭할 수 있다. 그게 아니면 호모 사피엔스 정도겠지, 나무에서 바나나 먹는.


하지만 저런 스마트폰은 우리에게 실존을 너무나 쉽게 줘버린다. 진실된 실존이란 내가 선택하고 나를 보며 인정하는 것인데 SNS는 어떨까? 좋아요 하나에 실존을 담는다. '물론' '너무나' '당연하게도' 가짜다.(중요 3 중첩이다.)


우리의 뇌는 구별 못한다. 저게 내가 만들어 낸 실존인지, 타인이 적선하듯 준 실존인지 말이다. 진짜 실존은 내가 나를 증명할 때 생기는 것이다. 타인의 인정으로 생긴 실존은 허구다.


또 그것에 너무 취약하게 중독돼버리고 만다. 우리 빨리빨리의 민족, 자랑스러운 단군할아버지의 후예의 치명적인 약점은 바로 스마트폰이란 말이다.


요즘은 누구나 다 알겠지만 5G 시대다. 우리 한민족은 이상형을 만나기라도 한 듯, 열과 성을 다 해 스마트폰을 사랑하게 된다.


자, 예시로 직장인 C 씨가 있다. 퇴근 후 힐링타임이라며 한두 시간 스마트폰을 즐기는데, SNS, 유튜브, 웹툰, 쇼핑을 다양하게 즐긴다. 어느새 시간은 두세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할 일은 당연히 미뤄지며 ‘내일 해야지.’ 라며 꽤나 성숙한 자기 방어기제를 보여준다.


한데 합리화의 클리셰는 무엇일까. 바로 고쳐지지 않고 반복된다는 점이다. 하루의 남는 시간은 주식 추가매수 하는 것처럼 더 더 스마트폰에 헌납하게 되고, 가족들과 대화도 줄어든다. 하지만 ‘난 중독은 아니야, 남들도 다 이렇게 하잖아.’ 라며 평균 낮추기 스킬을 곁들인 합리화의 끝판을 보여주게 된다.


여기서 이 글을 보고 찔린 사람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한국사람 기준 중독의 비율은 23%다. 이 글을 본 사람 중 4명에 한 명꼴로 중독이라는 말이다. (물론 단순 계산이다. 딴지 걸면 걸려주겠다.)


위와 같은 하루를 보내면 남는 것은 공허밖에 없다. 느낀 적 있을 것이다. 정신없이 폰 하다가 내려놓고 나서 느껴지는 허무란 지옥을.


지옥문을 통해 마주한 타인은 당연히 지옥일 수밖에 없다.

지옥문을 향해 가는 우리의 모습이다.


또 우리는 그 지옥을 맞이한 나머지 더 깊은 지옥으로 기어들어가야만 한다. 강한 자극을 갈망하는 기생충이 몸에 자리 잡았기에.



지옥의 가장 아래, 9층에는 숏폼 구덩이가 있다.


단테의 신곡, 지옥편에는 9개 층의 지옥이 있다. 아래일수록 더 지독한 지옥이 기다리고 있다. 그중 9층 '코키투스' - 배신자들의 지옥 안에 ‘유다 구덩이’가 존재한다.


루시퍼는 이 층의 중심에 얼음이 되어 고통받고 있다. 루시퍼가 날개를 퍼덕일 때마다 찬 바람을 일으켜 자신과 주변 죄인들을 더 깊은 얼음으로 뒤덮는 자전적 형벌을 받고 있다.


이 지옥이 현실에도 다가왔으니, 이름하야 ‘숏폼 구덩이’이다.


자, 우리는 중학생 때쯤 다들 겪었던 사춘기에는 '난 특별해'병에 걸린 채로 살아가게 된다. 어릴 적 꿈을 잊지 못한 탓인지, 우리는 저 유다 구덩이의 주인공인 루시퍼가 되는 길을 걸어가고 있다.


숏폼이랑 루시퍼랑 뭔 상관이냐, 서문에 말했듯 루시퍼는 자신의 날개를 퍼덕일 때마다 자신과 주변을 얼음에 가두는 형벌을 겪고 있다. 이게 숏폼과 아주 유사하다. 천천히 들어봐라.


숏폼은 우리의 뇌를 살살 녹아내리게 만드는 콘텐츠이다. 여름이라 아이스크림이 너무 좋은 나머지, 우리는 자신의 뇌마저도 살살 녹여버리게 된다.


숏폼이 어떠한 방식으로 우리를 좀 먹을까? 일단 우리는 유사인류 이래에 항상 도파민의 노예였다.


근데 숏폼은 도파민 자판기다. 도파민의 정상적인 작동기제는 노력-보상인데 숏폼은 보상만 냅다 때려 박는다. 내가 손가락 휘적휘적 만 하는 노력을 들이면 도파민을 준단 말이다.


우리는 원래 100의 노력으로 10의 도파민을 얻도록 설계되어 있다. 하지만 숏폼의 작동방식은 1의 노력으로 1의 도파민을 준다. 정말 획기적인 교환비 아닌가!


이걸 듣는 혹자는 그러면 좋은 거 아니야?라고 할 테지만, 저기에 중독이 되면 우리는 더 이상 2 이상의 도파민을 얻지 못한다. 왜? 노력하는 법을 잊어버리기 때문에.


우리는 중독이 되어간다. '10분만 쉬어야지~' 하고 핸드폰을 킨 당신이 어느새 2시간이 흘러가있는 것처럼 말이다. (한국인에게 숏폼은 쥐약이다.)


그렇게 스마트폰이 암전 되고 나면 남는 건 공허와 허무다. '아, 내가 뭔 짓을 한 거지?'. 그렇지만 이미 중독되어 버린 뇌의 오작동과, 그 허무에서 도망치고 싶다는 마음이 합쳐져서 다시 숏폼세계 탐방을 떠나게 된다.


이게 내가 말한 루시퍼의 자전적 형벌이다. 여기서 빠져나오려면 누군가 구해주는 것이 아닌 자기 스스로 날갯짓을 멈춰 세워야 한다.

1833d1ef-6794-4ca1-9ceb-1253b7398b09.jpg 우린 저런 존재가 되어간다.


숏폼이 우리에게 중독을 가져다주는 방식에 대해 말해보았다. 결국 자전적 형벌이었고, 이제는 그 형벌이 우리에게 어떤 결말을 주는지 설파해보려 한다.


자, 일단 우리의 집중력은 어린아이 수준으로 퇴화한다. 그걸 넘어서 원숭이 정도로 퇴화된다.


원숭이가 집중할 때는 자극이 꽂힐 때 밖에 없다. 음식이나, 성욕 같은 것 말이다. 원숭이가 집중을 다 해 작업하는 걸 본 적이 있나? 있다면 그건 돌연변이다. 원숭이계의 아인슈타인이나 뉴턴정도 되겠지.


고작 숏폼 좀 보는데 집중력이 그 정도가 된다고? 오버 떠는 거 아니야?라고 혹자들은 말할 테지만, 잘 들어주길 바란다.


숏폼은 우리의 뇌 중 전두엽 신경회로를 퇴화시킨다. 우리가 운동을 오랫동안 안 하거나, 움직임이 적다면 온몸의 근육이, 근신경이 퇴화한다는 걸 알 거다. 심지어 우리 아래세대는 딱딱한 음식을 씹을 일이 없어서 유치가 안 빠진다고 한다. 이렇게 사용이 적으면 퇴화가 되는 것이 당연한 자연의 순리다.


숏폼 콘텐츠는 평균 7초에서 15초로 굉장히 짧은 콘텐츠이다. 뇌는 반복적으로 짧은 자극에 노출되면 주의집중 신경회로가 퇴화된다. 또 이러한 자극을 한 번 접하면 다시 집중에 들어가기 까지가 23분가량 소요된다고 한다. (캘리포니아 대학교 어바인 글로리아 마크교수 연구)


즉각적 보상만 냅다 뇌에 때려박다보면 딥워크 신경망이 억제된다. 디지털 소비가 늘수록 우리의 딥워크 능력은 크게 저하된다. 2000년도에는 12초였는데, 지금은 6초 정도로 금붕어보다 짧다. (마이크로소프트 캐나다 연구소 2015)


이렇게 우리는 집중에 들어가기도 힘들어지고, 들어가 봤자 깊은 집중을 할 수 없다. 원숭이와 금붕어의 컬래버레이션이다.


또, 숏폼세계에 흠뻑 빠져들어 도파민 스파이크에 중독이 되었다면 현실감각이 무뎌지고, 현실이 무가치해진다는 점이다. 예전에 이런 위험 때문에 부모들이 어린아이들 게임을 못하도록 막지 않았나.


뇌의 기대기준이 상향되어 현실감각이 무뎌진다. 즉각적인 보상이 꽂힘으로써 도파민 민감도가 하향되고, 우리는 초연한 노인과도 같은 감각을 가지게 된다. 어린아이의 집중력에 노인과 같은 민감도라니. 정말 스펙터클하지 않나. (Knutson et al., 2001)


2021년 스마트폰 중독 클리닉에 있었던 실제 내용으로 사례를 들어주겠다. 이 남성은 코로나 시기에 대학생활을 겪으며 비대면으로 수업을 진행하였고, 집에서 생활하는 도중 틱톡, 유튜브, 릴스 다양하게 골고루 3대 영양소를 챙기는 꼼꼼함을 보여주었다. 하루에 평균 6시간가량 말이다.


수업은 10분 넘어가면 집중을 못하고 무조건 2배속 재생을 한다. 당연히 머릿속에 수업내용이 남을 리가 없지 않나. 또, 과제하려 워드를 켜면 3분도 못하고 그새 핸드폰을 켜 또 맛있고 건강한 숏폼세계를 탐방하기 시작한다. 건강한 청년이라면 빠질 수 없는 덕목이다. 물론 독서는 완전 불가능이다. 책 한 페이지를 읽는데 5분 이상 걸리며, 기억은 고사하고 이해도 못한다. 결국 성적은 매 학기마다 바닥을 찍고, 바닥인 줄 알았더니 지하도 있다는 진리를 몸으로 깨닫고 만다.


클리닉 중 핵심 멘트는 이거다. '더 이상 집중 못해요. 하기도 싫고요. 다 지루해요. 그냥 자극적인 것만 보고 싶어요...'다. 이로서 도파민 신의 사도가 되어 돌아온 우리 청년에게 안수기도를 올려주도록 하자.


이건 게으름과 나태라기보단 숏폼에 길들여진 소비패턴이다. 정답을 알았으니, 우리는 우리를 배신해선 안된다.

4ff5dbbe9fab8f38d61570134f26376c_xXKMaELdJ.jpg 문제가 지속될 경우, 우리도 이렇게 될 수 있다.


우리는 스스로 만든 감옥 안에서 이렇게 큰 고통을 맞이하게 된다. 이게 지옥에 있는 유다 구덩이와 무엇이 다를까. 유다 구덩이는 배신자들의 지옥이다. 숏폼을 소비하는 것은 자신을 배신하는 것과 진배없다.


우리는 인세에 지옥을 스스로 불러들이고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만 한다. 자신의 지옥을 멈출 수 있는 건 자신밖에 없다. 날갯짓을 멈춰라, 지옥문을 닫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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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모임 속닥속닥


속닥속닥은 한 달에 두 권의 책을 통하여 얻은 인사이트를 서로 공유함으로써 더 깊은 책과 나의 이해와,

타인을 통한 넓은 세계의 확장을 도와드리고 있습니다. 모든 대화는 익명으로 진행됩니다.


2 기수) 주제 '당신의 어떤 목소리를 가지고 살고 있나요?'


장소 : 부천시 원미구 신중동역(7호선) 인근


7월 12일 토 저녁 7시 30분 - 10시

7월 26일 토 저녁 7시 30분 - 10시


비용 : 한 기수당 6만 원.

비용은 운영에 필요한 기획비, 장소대여비 등 사용됩니다.


참여를 원하신다면 아래 링크를 통해 연락 부탁드립니다.

사전인터뷰를 진행 중이니 참고 바랍니다.(온, 오프라인 선택)


http://pf.kakao.com/_xfxhqB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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