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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에덴 1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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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헌용 Nov 18. 2022

꼴랑

1

 여자는 붓질을 멈추고 하늘을 올려다본다. 

 잔뜩 흐린 하늘은 남자가 칠해놓은 색을 닮았다. 손수레를 전부 검게 칠하고서 남자는 뒤판에 동그라미를 그렸다. 

 저거이 뭔주 아는가? 

 금색의 동그라미 안에 그려진 것은 선풍기 날개 같기도 했고 배 스크루 같기도 했다. 고개를 갸웃둥거리다가 여자가 마지못해 말했다. 

 선풍기를 뭘라고 그린다요? 

 쯧쯧, 남자는 여자를 보며 혀부터 찼다. 자네는 이것이. 말을 이으며 손수레를 바라보던 남자도 고개를 갸웃둥거린다. 허, 그 참. 그 참말로이. 남자는 너스레를 떨며 말을 이었다. 

 이게 선풍긴가? 선풍기여? 이래봬도 이거이 벤츠여, 벤츠. 마르, 머시기, 마른지, 메루친지 암튼 세계적인 명차 아닌가벼. 인자 보소, 나가 이 벤츠 다 만들면 이, 자네 태우고 꽃구경도 가고이, 글고 나가 이 벤츠로, 이. 

 말을 얼버무리는 남자의 얼굴이 사슴 빛으로 달아올랐다. 허엄, 허험. 헛기침을 하고 남자는 부엌으로 들어가 맥주 한 병을 들고 나왔다.

 자네도 한 잔 할랑가? 

 고개를 흔든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남자는 낮부터 마시는 술이 계면쩍어 괜시리 묻고는 했다.  

 아따 밭에 센 것이 야챈디 왜 하필 꽃을 먹는다요, 참말로.

 남자는 양귀비 잎을 뜯어 우적우적 안주로 씹었다. 

 공공근로를 다녀온 여자가 심은 꽃이었다. 자네 미쳤는가, 그게 뭐라고 여기에 심는가? 징역 가네이, 징역 가. 남자가 말렸지만 여자는 몰래 숨겨온 꽃을 기어이 밭 한쪽에 심었다. 남자가 그렇게 배포가 적어서 어디에 쓴다요? 꽃이, 꽃이 참말로 곱지라이. 근디 이 미친 놈덜, 세금이 허천나는지 이걸 새만금인지 개만금인지 그 마라톤 안 있소, 이. 그때 한 번 보여줄라고 심었다가 인자 다시 뽑아버린다요. 이렇게 예쁜데. 아직 이렇게 예쁜데······ 안 아깝소? 남자는 여자를 더 말리지 못하고 일어나 물을 떠다주었다. 꽃은 그러나 오래 살지 못하고 시름시름 시들어버렸다. 꽃망울을 맺지 못하고 시들어 죽었다고 생각했던 꽃이 새싹으로 돋아난 것은 해가 바뀐 봄이었다. 서너 송이 가져다 심은 꽃 가운데 어느 것이 꽃씨를 남겼는지 넓은 밭 이곳저곳에 양귀비 새싹이 지천으로 돋아났다. 그것이 무서워 여자 몰래 어린 새싹들을 뽑던 남자는 어느 날 여자에게 들켜 지청구를 듣고서야 더 어쩌지 못하고 안주로 잎이나 씹을 뿐이었다.

 글고봉게 나 어렸을 때는이, 시름시름 앓는 소한테 이걸 먹이면 소가 벌떡 일어나고는 했구만이. 글고 입맛 없을 때 잎을 쌈도 싸먹고 안했는가. 그래서 그런가 나가 요즘 힘이 참 좋네이. 

 갯벌 한쪽에 밤이면 밤마다 몇 대의 차들이 조용히 다녀간다는 소문이 마을에 돌았다. 마을이라고 해도 몇 남지 않은 사람들뿐이었다. 새만금이 시작되고 모두들 보상을 받고 하나둘 마을을 떠난 뒤였다. 모두가 대처로 떠나고 몇몇 갈 곳 없는 사람들만 남아 마을을 꾸렸다. 포구가 버려지고 물길이 닿지 않는 갯벌은 깡마른 땅이 되어버렸다. 그런 갯벌에 밤이면 소리 없이 차들이 하나둘 다녀간다고 했다. 올 때는 전조등도 켜지 않은 차들이 으슥한 어느 곳에서 들썩들썩 춤을 추다가 갈 때는 불을 환히 밝히고 서둘러 꽁지를 빼고는 했다. 마을 또래들과 차 구경을 다녀온 뒤로 남자는 손수레에 색을 칠하기 시작했다. 힘이 좋네이, 힘이 좋네이. 양귀비 어린잎을 뜯어먹으며 그런 시답잖은 소리를 시작한 것도 그 무렵부터였다. 무얼 보았는지 차구경을 다녀온 뒤로 밤이면 남자는 은근슬쩍 여자에게 다가와 젖가슴을 주무르고는 했다. 자시오이, 괜히 서지도 않는 걸 가지고 사람 약 올리지 말고요. 말에 가시를 욱대기면서도 여자는 은근히 남자를 기다렸다. 돌아오는 건 한숨뿐이었다. 기세등등하던 남자는 물이 들지 않는 갯벌처럼 시르죽어 허엄험 헛기침만 뱉어냈다. 나가 차가 없어서 그러네, 이. 나가 차가 있음 말여. 니미, 그게 참. 침만 꿀꺽 삼키고 다시 험험 헛기침을 뱉어낸 뒤 남자는 이내 코를 골았다. 그런 밤이면 여자는 뜨거워진 몸을 어쩌지 못해 어쑤어쑤 찬물을 온몸에 끼얹고는 했다. 그래도 열이 식지 않는 밤이면 달빛 아래 밤바람을 맞고는 했다.      


 미련 곰탱이 같으니라고. 

 여자가 속말을 삼키며 돌아섰다. 속이 답답하고 어질머리가 돈다고 남자가 말 했을 때 여자는 그것이 양귀비 때문이라고만 생각했다. 우적우적 안주로 먹어치운 양귀비 어린 싹이 여남은 포기였다. 그게 남자를 몽롱하게 만든다고 여겼다. 그러게 그걸 뭘라고 먹는다요, 타박을 놓으며 여자는 양귀비를 뜯는 남자의 손등을 철썩 때리고는 했다. 꽃이 하나둘 피기 시작할 무렵에도 어질머리는 가라앉지 않았다. 가까운 약국에서 약을 지어다 먹을 뿐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먹는 약이 늘어날수록 남자의 어질머리는 점점 심해졌다. 남자가 어설픈 벤츠를 아직 다 만들기 전이었다. 

 바람에 황사가 잔뜩 섞여 있다. 손등을 들어 이마를 닦고 돌아선 여자의 얼굴이 꽃 지기 시작한 밭처럼 알록달록이었다.

 주, 죽는 당가?

 택시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멍하니 창밖만 바라보는 여자에게 남자가 물었다. 목소리가 잔 파도로 일렁였다. 

 죽긴 누가 죽는 다요? 벽에 똥칠할 때까정 산 다요. 그러게 그놈의 꽃은 뭐한다고 그렇게 씹어쌌더만. 당신이 소요, 염생이요? 

 여자는 버럭 소리를 지르고는 한 동안 아무런 말도 못하고 아랫입술만 앙물었다. 차창 밖으로 매지구름이 낮게 흘렀다. 

 인자 보시오. 오늘 가면 그 꽃들을 나가 다 뽑아벌라요. 징역 간다고 당신이 벌벌 떨던 그 꽃 말이요이. 

 괜한 꽃을 탓하며 여자는 마른 하품을 만들어 하품인양 슬며시 눈물을 찍었다. 

 아아, 안 죽는 당가?

 여자가 말을 메지 놓지 못하자 남자가 다시 한 번 물었다. 

 안, 죽는다지? 나가 수한무랑 동문디······ 

 부러 너스레를 떨었지만 남자의 목소리에 여전히 잔 파도가 일렁거렸다.

 근디 자네 미쳤다고 택시를 탄당가. 어매 무섭게. 나는 또 나가 죽는다고 이런 호사를 누리나 했네. 택시비가 얼만디이. 돈이 참말로 말이 많네 그려. 

 눈치 빠른 남자가 이미 모든 걸 다 알고 있다는 사실을 여자는 알 수 있었다. 그럼에도 서로가 서로를 속이며 서로를 안심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여자는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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