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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에덴 1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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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헌용 Nov 18. 2022

꼴랑

2

 남자가 손수레 벤츠를 만들어 무엇을 하려는지 여자는 또 알고 있었다. 젖가슴을 주무르며 잠들던 남자가 무슨 일인지 용을 쓰며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남자의 물건이 제법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여자는 혹여 하는 마음으로 남자를 받아들였다. 입을 맞추는 남자에게서 달큼한 술 냄새가 배어나왔다. 

 자, 자 잠깐만요, 예. 

 문득, 낮에 닭똥을 풀었다는 생각이 여자의 옆구리를 쿡쿡 찔러왔다. 

 잘 있다가 무담시 근당가? 

 몸을 빼는 여자를 남자가 거칠게 잡아끌었다. 

 낮에, 밭에, 거, 거름을 줘서, 온, 온몸에······ 

 아랑곳 않고 젖가슴을 주무르는 남자의 손길에 여자의 말이 뚝뚝 끊어졌다. 

 괜찮어, 이. 괜찮당게. 나, 나는 이. 당신, 이 냄새가 참말로 좋네. 

 남자가 다시 한 번 여자를 잡아끌며 더 깊은 곳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남자의 거친 손길이 오랜만에 여자를 달뜨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뿐, 남자는 바람이 서너 번 부는 사이에 금세 작아져 여자에게서 내려왔다. 

 넨장, 꽃잎 먹고 힘이 좋아졌다고나 말던지. 힘은 무슨 개뿔이라요. 토끼라면 모를까, 토끼. 

 군소리를 몇 흘리고 부엌에 들어가 찬물을 몇 바가지나 끼얹어도 뜨거워진 몸은 쉬 사그라들지 않았다. 여자는 또 여느 때처럼 밭에 나가 어기적어기적 잡초들을 뽑아냈다. 멀리서 밤바람을 타고 우우 달빛이 몰려들었다. 달빛이 몰려드는 곳으로 차 한 대가 슬며시 미끄러졌다. 세상에 믿지 못할 것이 남자들의 농 짓거리란 걸 알면서도 여자는 궁금증을 버리지 못했다. 저 좁은 디서 어떻게 그 짓을 한다는 지, 참. 생각하면서도 여자는 조심조심 달빛을 밟았다. 밟고 보니 에구머니나, 남자가 벤츠 벤츠하며 양귀비 어린잎을 뜯어 먹는 까닭을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 

 좁기는 쥐뿔, 좁은 차 안에서 이리저리 잘도 움직거리며 남녀가 한데 엉켜들었다. 차창에 비쳤다 사라지기를 되풀이하는 커다란 궁둥이가 꼭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아 여자는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하다가 엉덩방아를 찧었다. 

 에구, 에구머니나.

 여자가 토해놓은 소리에 들썩거리던 차가 아주 잠깐 멈추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내 차는 다시 들썩거렸다. 돌렸던 발길을 다시 돌려 여자는 슬금슬금 차에 다가갔다. 참말이지 저거이 사람이당가. 여자의 입이 하품하는 하마처럼 크게 벌어졌다. 차 안에 깔려있던 계집이 사내에게 올라탔다. 운전대가 있는 곳이었다. 계집은 운전대 좁은 틈을 피해 허리를 잔뜩 세우고 이지저리 몸을 잘도 움직이며 요분질을 해댔다.  

 어마, 어마, 어마마.

 놀란 토끼눈으로 또 한 번 서너 걸음 뒷발을 놓았다. 마음속으로 불어오는 바람을 어쩌지 못해 여자는 그대로 주저앉아 숨을 골랐다. 하늘에 달이 붉었다. 돌아가야지 마음을 먹었는데 발맘발맘 여자의 발길이 절로 움직였다. 

 넘사스럽게 이게 뭔짓이데, 참말로…… 마음을 다그쳤지만 마음은 이미 몸을 이기지 못했다. 

 아, 아, 아파. 아파요. 아프다니까. 나, 쥐, 쥐. 쥐난다, 응. 자기야, 자기가 올라와요, 응.

 고양이 같은 콧소리가 여자의 귓속으로 날아들었다. 좁은 디서 지랄을 헝게 그렇지 이년아. 여자는 한 걸음 더 다가가 차안을 살폈다. 허리를 곧추세웠던 계집이 몸을 돌려 옆자리에 앉는 순간 그만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아악. 자, 자기야. 저기. 귀, 귀신. 

 계집이 소리를 질렀다. 

 뭐, 뭐, 뭐야, 씨발. 

 사내가 고개를 쭈욱 빼며 소리를 질렀다. 차안이 한바탕 요란이더니 경적소리가 빠아앙 울렸다. 엉거주춤 멍하니 서 있던 여자가 그 소리에 정신을 못 차리고 걸음아 널 살려라 꽁무니를 놓기 시작했다. 차는 전조등도 켜지 않고 부아앙 엔진소리를 키우며 순식간에 멀어졌다. 마른 갯벌에서 일어난 흙 바람이 여자에게 바투 달려들었다. 손에 호미가 들려 있다는 사실을 여자는 돌아오는 길에야 깨달았다. 호미를 얼굴께로 가져다가 차안을 살폈으니 달빛에 비친 그 모습이 두억시니 같기는 했을 터였다. 그뿐인가, 봉두난발 마르지 않은 머리를 하고 잠결에 대충 걸쳐 입은 옷 꼬락서니가 귀신도 꼭 상귀신일 터였다. 

 젠장, 차안에서 그짓하는 연놈들은 뭐 제 정신으로 그짓한당가. 지들이나 나나 귀신이면 다 같은 귀신이고 사람이면 다 같은 사람이제, 니미. 

 아무도 듣지 않는 지청구를 늘어놓으며 여자는 길을 재촉했다. 뒤뚱거리는 여자를 쫓는 달빛이 콜록거렸다. 


 병원에 다녀온 뒤로 남자는 멍하게 앉아 있다가 스르르 잠드는 날이 많아졌다. 

 아프다고 말 한 마디 하지 않았지만 남자가 혼자서 이를 악물며 낑낑거리다는 걸 여자는 잘 알고 있었다. 얼마나 이를 앙다물었는지 잠든 남자의 윗니 세 개가 숨을 쉴 때마다 들썩거렸다. 여자는 잠든 남자를 보고 있기가 안쓰러워 무담시 밭으로 걸음을 놓았다. 어린 양귀비들이 하나둘 꽃을 피워 밭에는 붉은 물결이 하늘거렸다. 붉은 물결 속에 버려진 남자의 벤츠가 유난히 검게 보였다. 여자는 물감을 사다가 검은 손수레에 초록색을 덧씌웠다. 그 위에 알록달록 꽃을 그려 넣었다. 제비꽃도 그리고 달맞이꽃도 그리고 민들레꽃도 그렸다. 양귀비를 그리고 한쪽 구석에 할미꽃을 그릴 때 남자가 지팡이를 짚고 다가섰다. 

 이놈의 여편네가 기어이 내 벤츠를 팔아먹었구만이. 허, 거참. 

 유달리 정신이 말짱했다. 여자는 말없이 씨익 웃고는 아직 피지 않은 꽃송이에 살며시 바람을 밀어주었다.   

 이쁘지라?

 이쁘긴, 내 벤츠라믄 모를까? 근디, 자네는 뭘라고 손수레에 그림을 다 그려쌌는가?

 아나고도 아니고 뭘라고는 또 뭐가 뭘라고요? 당신이 그려놓은 선풍기가 영 시원찮아서 하냥 그려봤지라. 이래봬도 내가 화가 지망생 아니었소이. 당신이 그 탕수육 사줌서 꼬시지만 않았어도······

 화가 지망생? 예끼, 이 사람아. 그게 꽃이당가 배추당가? 당최 알아볼 수가 없구만 지망생은 무슨. 자네도 그림 참 못 그리네이. 허허. 그나저나 자네하고 나하고 산지가 얼마나 됐는가?

 몰라요. 그래도 당신이 그린 선풍기 보다믄 안 낫소. 사람이, 이. 쯧쯧. 저렇게 무드라고는 없는 사람을 나가 뭐가 좋다고 사십 년을 넘게 살았을꼬. 막내가 지금 서른셋인가 넷인가 하마 사십년은 더 안 살았소이.

 음매, 벌써 그렇게 되었는가. 아따 오래 살았네. 고맙네. 고마워이.

 이놈의 영감탱이가 죽을 때가 되었소 왜 안허던 말을 하고 그란다요.

 남자가 헛소리를 시작한 것은 여남은 날 앞이었다. 밭일을 하다 들어가 보니 방안이 온통 깍두기판이었다. 쏟아진 주전자에서 물이 넘쳐 흥건했고, 차려준 상이 엎어져 방 구석구석에 김치며 밥 알갱이가 나뒹굴었다. 

 남자는 지팡이를 치켜들고 어어어, 횟배 앓는 소리만 뱉어냈다. 눈동자는 풀려 어디를 바라보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왜, 왜 근다요? 당신, 왜 근다요오!

 여자의 목소리에 남자의 눈이 아주 잠깐 맑아졌다. 

 저 아줌마가 왜 저러고 있당가, 저기 저 아줌마가 어찌 머리 풀고 날 째려보고 있당가? 가라고 하소이. 가라고 하소이. 

 떨리는 목소리로 애원하듯 말하던 남자가 마침내 주저앉아 울음을 터트렸다. 여자는 흙 묻은 손을 털 생각도 못하고 주저앉은 남자에게 달려가 머리를 꼬옥 껴안았다. 나,나, 나가 있는디 뭐가 걱정이다요. 당신, 나가 있는디 뭐가 걱정이라요. 걱정 마시오. 나가 자식 새끼도 잘 키우고 당신 밭도 잘 지킬텐게요. 그러나 말이 되어 나오지 않았다. 여자는 약봉지를 뒤져 사탕처럼 생긴 약을 남자에게 내밀었다. 약을 먹고나서야 훌쩍거림을 멈춘 남자가 흰자를 반이나 내보이고 약에 취해 잠든 것도 아니고 잠이 들 듯 말이 없었다. 그제야 붉게 달아오른 여자의 얼굴에 한숨이 맺혔다. 잠든 남자의 몸에서 똥냄새가 떠올랐다. 옷을 벗기고 보니 똥오줌이 질펀했다. 아직 찬바람이 다 물러나지 않았는데 남자를 닦는 여자의 몸에서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잔뜩 오므라든 아랫도리를 조심스레 닦아내던 여자가 그대로 남자의 허벅지에 얼굴을 묻었다. 나, 아직 준비가 안되었소. 나, 아직은 당신 없인 못살거소이. 당신, 아직 못보내겠다 말이요. 그러나 역시 말이 되어 나오지 않았다. 갑자기 눈두덩이가 뜨거웠다. 여자는 서둘러 일어나 어지러운 방안을 치웠다. 어쑤, 어쑤, 여자의 입에서 파도가 흘러나왔다. 

 막걸리 한 잔 할라요?

 막걸리. 왠 거란가?

 아따, 당신이 지난 참에 나가 당근 거 먹고잡다 안했소, 참말로이.

 오메, 긍가. 긍가이. 글믄 한 잔 해야지. 언능 내오소.

 남자의 눈이 사탕을 바라보는 아이처럼 맑아졌다. 붓을 내려놓고 일어나는 여자를 쫓아 바람이 슬몃 불었다. 바람이 제법 익어있었다. 혼자 남은 남자가 물끄러미 꽃단장한 손수레를 바라보더니 피식 웃음을 흘려놓고 붓을 들었다. 손수레 구석진 자리에 아주 조그맣게 동그라미 하나 그려놓고 그 안에 날개 세 개를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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