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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에덴 1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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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헌용 Nov 18. 2022

꼴랑

3

 막걸리 몇 잔에 불콰하게 얼굴을 붉히고 남자가 노래를 불렀다. 불러봐아도 울어봐아도 못오실 어머니를······ 지긋이 눈을 감고 그 소리에 맞춰 여자는 고개를 흔들며 장단을 맞췄다. 지독히도 못 부르는 노래, 그래도 남자가 노래를 부를 때면 여자는 행복했다. 힘든 하루하루를 노래로 달랬고 싸움을 하다가도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면 싸움이 끝이 났다. 

 자네도 한 곡 하소. 자네가 그래도 전국노래자랑 출신 아닌가이.

 남자가 마이크 대신 들고 있던 숟가락을 여자에게 건넸다. 

 안할라요. 대낮부터 듣는 사람도 없이 무슨 노래를······

 말을 그렇게 하면서도 여자는 어험어험 목부터 가다듬었다. 

 참을 수가 없도록 이 가슴이 아파 와아도 여자이기 때문에 말 한 마디 못하고. 콜록콜록. 아따 안 할라요. 

 여자가 갑자기 노래를 멈추고 밭은기침을 여남은 번이나 뱉어냈다. 

 나도 한 잔 주시오. 어찌 사람이 그리 야박허요, 이.

 남자가 뭐랄 틈도 없이 여자는 남자 앞에 놓인 잔을 가져다가 막걸리를 콸콸 따라 마셨다. 어험어험, 다시 목을 가다듬고 나서 여자가 새로운 노래를 불렀다. 

 손대면 토옥하고 터질 것만 같은 그대 봉선화라 부르리 더 이상 참지 못한 그리움을······

 얼쑤 좋다, 남자가 일어나 덩실덩실 춤을 추기 시작했다. 바람이 고춧대를 흔들며 장단을 맞췄다. 울면서 혼자 울면서 사랑한다 말해도 무정한 너는 너는 알지 못하네, 여자가 흥에 겨워 목소리를 키웠다. 주책 맞게도 방정 맞은 눈에서는 눈물이 몇 방울 흘러내렸다. 여자는 남자가 눈치 못채게 부러 방긋 웃으며 노래를 끝냈다. 남자가 박수를 치며 다가와 여자에게 막걸리를 한 잔 건넸다. 

 아따 좋네이. 자네 노래는 언제 들어도 좋아. 글고 봉게 자네한테 처음 반했을 때가 거기 우리 부산 공단서 소풍 갔을 땐디. 자네가 그때 뭔 노래를 불렀더라······

 남자를 처음 만난게 부산이었던가? 곰곰 생각해보아도 떠오르지 않았다. 전라도 남자를 만나 전라도로 와서 살다보니 어느 사이 고향 말투도 다 잊어버리고 살아왔던 터였다. 고향이 경상도 밀양이라는 것이 여자는 새삼스러웠다. 

 그랬다요?

 암만, 그러고 말고. 덩치는 커다란 사람이 노래를 얼마나 곱게 부르던지 그 모습에 내가 안 반했는가. 그래서 나가 자네 탕수육 산준다고 안 꼬시고 그랬는가?

 글고봉게 그러요이. 근디 그때는 당신도 참 다정했는디······

 말꼬리를 늘이며 여자는 남자의 얼굴을 가만 들여다보았다. 열 아홉이던가, 스물이던가, 그때 처음 만났던 남자의 모습이 떠오르지 않았다. 남자 따라 서울로 올라와 살던 시절들, 남자가 노름빚에 쫓겨 밤봇짐을 싸던 기억들, 배부른 여자를 위한답시고 밤 늦도록 술 마신 뒤 쇠고기 한 근 끊어 들고 우우 몰려들던 동무들, 남자의 전처가 쳐들어와 이혼은 절대 해줄 수 없다며 머리채를 잡아끌던 어느 밤, 하늘에 떠 있던 작은 눈썹달. 그러나 남자의 젊었을 적 모습은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언제부터고 이렇게 늙어만 있던 느낌이었다.      


 다 늙어빠져서 뭐에 욕심이 그리도 많은 것인지, 넘사스러운 줄도 모르고. 여자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두억시니 되어 돌아온 아침, 이른 새벽잠 깨어 남자가 슬금슬금 다시 여자 품속을 파고들었다. 등 대면 아침이더니 그날은 잠이 통 오지 않았다. 이리 누우면 운전대 좁은 틈에 끼인 듯 불편했고 저리 누우면 커다란 엉덩이가 가슴을 짓누르듯 답답했다. 아, 아파, 엄살을 떨던 계집의 콧소리가 귓속을 후벼파서 여자는 늦도록 뒤척거렸다 새벽에야 겨우 잠이 들었다. 남자의 손길이 반가울리 만무시리였다. 

 품속으로 들어오는 남자의 팔을 저만큼 밀쳐내고 여자는 부러 크게 하품을 했다. 남자는 알아듣지 못하고 여자의 가슴으로 손을 밀어 넣었다. 손등을 꼬집히고서야 남자는 허험 헛기침을 뱉었다. 

 왜긍가? 이리 좀 오소, 지난 밤에 안 좋았는가?

 좋기는 쥐뿔이랍디다. 행여나, 행여나.

 좋음시롱 왜긍가이. 어제는 그래도 한 이삼십 분은 우리가 궁합을 맞췄지 싶은디이. 

 이삼십 분이요, 에이구 그 집 시계는 아주 기차 바퀴를 삶아 드셔나 보구려. 이십 분이요, 이쪽 시계는 정직해서 그런지 이 분은커녕 이십 초나 갔는지 모르겄소이. 저리 비키시오. 나 잘라요. 아침부터 또 사람 싱숭거리지 말고. 

 이상하다. 그게 한두 시간은 끄떡없다고 했는디이. 어이, 어이?

 여자의 지청구에 벌떡 일어나 앉으며 말을 잇던 남자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여자를 흔들었다. 

 아, 왜요?

 그제야 여자도 몸을 돌려 남자를 바라보았다. 또 무슨 사단이 나려는지, 왼쪽 아랫입술을 살며시 물고 고개를 왼쪽으로 삐뚜름히 틀은 채 끄덕거리는 모습이 영락없이 싸움 나가는 폼이었다. 여자는 잠을 털고 일어나 앉았다. 

 왜 또 그요? 잘 자다 일어나서 무슨 봉창이요?

 가만있어 보소이. 참말로요이. 똥만금을 가져다가 삼다수로 팔어먹을 자식을 보게이. 어이, 참말로, 어제, 이삼, 분도, 우리가, 궁합을 못 맞췄는가? 참말로이.

 아따 이 양반이. 당신 남자 못 느낀게 새만금 막히고서 부턴디 새삼 왜 근다요. 그나마 어제는 서기는 헙디다. 쯧쯧.

 말하고 보니 꼭 그랬다. 새만금 간척사업이 끝나고 배를 내어주면서 남자는 십 년 가뭄 만난 나무처럼 시무룩시무룩 힘을 잃었다. 남자자 갑자기 일어나 옷을 꿰입었다. 

 아따 이 새벽 참에 또 어디 갈라고 그라요? 

 여자가 건성으로 물었다. 사람들이 아직 많이 남아 있을 때는 크고 작은 일에 이저리 강아지마냥 쫓아다니던 남자였다. 사람들 모두 떠나고 심심타 심심타 말을 하면서도 막상 갈 곳이 없어 집에만 머무르는 모습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가만 있어보소이. 나가 어제이. 아 참. 이게 말로 할 수도 없고이. 나가 어제이. 아 참. 이게 말로 할 수도 없고이. 

 더 말하지 못하고 댓바람에 달려나가는 남자를 여자가 붙잡았다. 

 도대체 무슨 일인디 그라요. 참말로, 이 새벽부텀서.

 씩씩거리며 한참을 망설이던 남자가 기어이 입을 열었다. 참말로이, 한 번 먹었다하면 하루고 이틀이고 불끈불끈 뿌리가 솟는다고 이······ 한참 동안 귀를 세우고 남자의 이야기를 듣던 여자가 어느 사이 깔깔깔 웃음을 터트렸다. 김일성이랑 김정일이 먹던 정력제라고 했다. 이만 원을 내어놓는 남자의 손은 또 얼마나 떨렸을까, 여자는 남자를 여린 눈으로 바라보았다. 염소똥만한 한약을 스무 알 사서 돌아오는 길 남자는 핑계 삼아 마을 가게에 들러 술을 마시고 돌아왔을 터였다. 

 영삼아제는 그게 또 어디서 났다요?

 아, 낚시 좋아하는 그 집 아들 안 있는가? 그 놈이 제주도에 낚시 갔다가 이산가족 만나서 싸게 샀다네. 자네가 요즘 하도 꽃만 봄서 한숨을 쉬길래 나가 사정사정 구했는디. 니미, 참말로. 근디, 나가 그리 형편 없었는가.

 아니오, 좋아어라. 좋아어요. 긍게 그만하고 좀 더 주무시오, 예.

 여자가 남자의 무릎을 가져다 베고 허리를 꼭 끌어안았다. 스르르 잠이 몰려들었다.     

 

 불러봐아도 울어봐아도 못오실 어머님의 손을 놓고 돌아설 때에 부엉새도 울었다오 나도 울었소, 평생 다를 게 없이 두곡 뿐인 노래를 손수레 끄는 남자가 흥에 겨워 부르고 나면, 손수레 짐칸에 앉아 커다란 검은 우산을 쓴 여자가 봉선화 연정도 부르고 목포의 순정도 부르고 네박자도 부르고 어머나도 불렀다. 늙어 조그맣게 오므라든 남자가 꽃그림이 잔뜩 그려진 손수레를 끌고, 짐칸에는 늙어 커다랗게 퍼진 여자가 우산을 받쳐 들고 있는 모습을 보며 지나가는 사람들이 킥킥거렸다. 

 아, 뭐가 우습다고 그려. 우리 낭군이랑 꽃가마 타고 소풍가는디, 좋기만 허구만이.

 마을 사람이 지나갈 때면 여자는 부러 큰소리로 외치고 다시 노래를 부르곤 했다. 아, 벤츠라니 그러네이, 그때마다 들리는 목소리가 정다웠다. 

 뜬금없는 소풍이었다. 막걸리 몇 잔에 기분이 좋아진 남자가 꽃구경을 가자고 했다. 

 꽃이 다 지고 어디 있다요, 여자가 말했지만 남자는 막무가내였다. 도리머리 흔드는 여자를 밭에 앉혀두고 남자는 손수레에 헌 이불 하나 가져다 깔고 커다란 검정 우산 하나 챙겨들고 물통에 막걸리 담고 냉장고를 뒤져 반찬 몇 가지 챙기며 이리저리 바쁘게 움직였다. 저러다 또 피식 쓰러지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었지만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남자를 보며 여자는 그저 웃을 뿐 도무지 말릴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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