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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에덴 0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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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헌용 Nov 17. 2022

살구, 개살구

3

  무슨 말이 오고 갔는지 궁금했지만 어머니에게도 아버지에게도 묻지 못했다. 아버지는 그 이후로 계속해서 똥을 먹었고 어머니는 무슨 까닭인지 나를 소 닭 보듯 했다. 

  어머니가 전화를 걸어 누나를 부른 건 단풍이 똥처럼 물들 무렵이었다. 뜬금없고 갑작스러웠다. 니 아버지가 나들이 가고 싶은가 보다, 혼자 오지 말고 애 아범이랑 애도 꼭 데리고 온냐, 내가 니들한테 꼭 할 말이 있으니까. 알았지? 그럼, 아침 먹고 열 시까지 집 앞으로 와라, 김밥도 좀 싸 오고. 저쪽에서 뭐라 대답할 틈도 없이 어머니는 할 말만 서둘러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아이의 울음에 잠을 설친 나는 눈을 비비고 시계를 보았다. 새벽 6시였다. 

  하늘이 맑았고 햇살이 따뜻했다. 바람이 살랑 불었다. 똥 먹기에는 더없이 좋은 날이었다. 우적우적 똥을 씹는 아버지와 눈이 마주쳤다. 아버지의 등 뒤에서 달려드는 햇살이 자꾸만 눈을 찡그리게 만들었다. 겨우 얼굴을 펴고 나는 애써 웃었다. 아버지가 똥을 들고 있지 않은 왼손을 올렸다 내렸다를 반복했다. 아버지의 손이 어여 먹으라고 말하고 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아버지의 눈길을 피해 태태 침을 뱉었다. 소태 씹은 것처럼 입안이 썼지만 서둘러 아버지 쪽으로 고개를 돌려 다시 히죽 웃어 보였다. 우적, 나의 눈길을 잡아끌며 다시 똥 하나를 씹던 아버지가 활짝 웃었다. 잇몸이며 혀끝이며 입안 가득 누러멀건한 똥이 는적는적 달라붙어 있었다. 이 사이에 붉은 찌꺼기 몇이 더러 보였고 입술 끝 찌꺼기가 검게 굳어 있었다. 아버지의 손이 수련으로 흔들렸다. 어쩔 수 없이 나는 무릎 앞에 놓인 김밥을 하나 들어 입안에 우겨 넣었다. 김밥이나, 굵은 똥이나. 문득, 김밥에서 똥냄새가 불쑥 달려들었다. 

  어머니가 몇 번이나 아버지를 어르고 또 때로는 으르면서 말려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아버지는 똥 먹기를 멈추지 않았다. 자신의 똥을 먹었고 기저귀에 싼 아기의 똥을 먹었다. 먹을 것을 찾아 민가에 내려온 멧돼지의 표정이 저럴까, 똥을 먹는 아버지를 보며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북새통을 몇 번 겪고 나서 우리 가족은 적어도 겉으로만은 안정을 찾은 것처럼 보였다. 아버지가 똥을 먹는 것 말고는 변한 게 없다고 모두들 생각하기로 했다.  

  개 몇 마리가 똥냄새를 맡고 킁킁거리며 다가왔다. 어, 어, 귀신 만난 강아지마냥 잔뜩 놀란 표정을 감추며 개주인이 개를 안고 종종걸음으로 멀어졌다. 신호라도 한 듯 그 뒤로 몇몇 사람들이 아버지가 먹는 것을 알아보고 혀를 쯧쯧 차며 돌아갔다. 에이구, 뭔 노망이래? 아이고야, 아무리 그래도 저걸 말려야지, 저걸. 더러 지청구를 놓고 멀어지는 이도 있었다. 그나마 나은 편이었다. 거, 저 어르신이 먹는 게 똥, 이, 맞습니까? 거참, 똥독 오를 텐데, 어떤 이는 그렇게 물었다. 잔뜩 걱정스럽다는 표정을 하고 아주 조심스레 괜, 찮, 아, 요, 묻기도 했다. 그래도 걱정 마시라, 사람들이여. 똥독 따위는 걸리지 않고 잔병은 오히려 똥냄새를 피해 십리 밖으로 달아났다. 그런 허풍이 아니고는 도무지 이 상황을 어떻게 견딜 수 있을지 나는 알지 못했다. 아, 정말이지 똥 싸고 짜빠지셨다. 괜찮을 리가 없잖아. 무슨 똥개도 아니고…… 소리 내어 말하지 못하고 속으로만 생각하다가 나는 생각마저 멈춰 버리려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아무리 후레자식이라고 해도 아버지를 똥개로 만들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어머머, 아이고야, 걱정스럽다는 듯 온갖 놀란 말을 다 토해 놓는 사람들의 얼굴에 담긴 것은 그러나 조롱과 경멸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모르지 않았다. 그나마 호기심으로 쳐다보는 이들은 나은 편이다. 하긴 똥 먹는 사람을 보면 누구라도 궁금할 것이다. 왜 그렇게 똥을 먹게 되었는지…… 아버지, 진짜 맛, 있어요? 도대체 왜 이러냐는, 그 비슷한 말들을 수만 번 넘게 생각하다가 나는 똥 먹는 아버지에게 그저 맛이 어떠냐고만 물었다. 아버지가 똥을 먹는 까닭이 궁금했지만 차마 물을 수 없었다. 아따야, 맛있다마다, 니 그거 아냐? 제비집도 맛있다고 안 허냐, 곰발바닥도 그러고이. 근디 그게 왜 다 맛있는지 아냐? 그거이 다 똥이 들어가서 그려, 제비가 지 똥이랑 침으로 집을 만등게 맛나고이, 곰발바닥은 오른손만 먹어야, 오른손으로 꿀통을 냅다 후려패서는 거기에 꿀이랑 벌침이랑이 배겨서는 그런다고 하지만이, 사실은 곰이 밑을 닦어야. 오른손으로 요로케롬. 아버지는 곰처럼 엉거주춤 일어나 손을 뒤로 돌리지 않고 앞으로 내려가게 해서 밑을 닦는 시늉을 했다. 긍게, 곰발바닥에이, 곰좆 꼬린내랑 똥냄새랑 배겨서는 맛난거여. 근디 그냥 똥은 오죽 맛있것냐? 왜, 니도 한 술 헐래? 누런 이를 활짝 드러내고 웃던 아버지는 그 뒤로 나만 보면 한 숟가락 할 것이냐고 물었다. 나는 더 이상 똥이 맛있냐고 묻지 못했다. 

  처음 한두 사람이 도리머리를 흔들며 지나갔을 때 누나는 이제 그만 일어나자며 어머니를 졸랐다. 나도 도왔다. 그러나 어머니는 오히려 당당했다. 누나가 어머니를 다시 한 번 조르는 사이 매형은 조카와 배드민턴을 치겠다고 공원 저편으로 멀어졌다. 이어 아내가 화장실이 급하다며 아이를 유모차에 태워 사라졌다. 오롯이 우리 가족들만 남아 똥 먹는 아버지를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똥을 다 먹은 아버지의 손이며 입 주위를 정성스레 닦고 나서 어머니가 가방 속에서 서류봉투를 꺼내 우리에게 하나씩을 나눠 주었다.      


  어머니가 우리에게 나눠 준 것은 아주 커다란 농담으로 만들어진 세계였다. 똥을 먹는 것 말고는 아무렇지도 않는 아버지의 유언장을 읽는 일은 생경스러웠다. 똥을 한 바가지나 먹고 잠든 아버지를 곁에 두고 누나와 나는 삐틀삐틀 써 내려간 글씨들을 오래도록 읽었다. 아내가 왔다가는 다시 멀어졌고 매형과 조카가 배드민턴 라켓을 내려놓고 슬며시 자리를 떠났다. 여섯 장의 종이마다 아버지의 지장과 어머니의 인감도장 그리고 법무사의 직인이 농담처럼 찍혀 있었다. 길게 써 내려갔지만 유언장의 내용은 매우 간단했다. 

  첫 번째는 당신이 똥을 먹는 것을 말리지 말라는 내용이었고, 두 번째는 마음껏 똥을 먹기 위해서 단독주택을 하나 사서 이사를 간 뒤, 세 번째는 똥 먹는 당신이 죽을 때까지 함께 사는 자식에게 전 재산을 남겨 준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이를 보증하기 위해서 상속권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어머니가 당신의 유언에 동의한다는 내용이었다. 

  너희 아버지가 당신 스스로 저리될 줄 알고 그랬는지, 아니면 일부러 저리되었는지, 그 야단을 부리고 나서 어느 날인가 나를 붙들고 법무사에를 갔더니라. 너희 아버지가 죽는 건 두렵지 않는데 월세 사는 아들한테서는 못 죽겠다고, 월세 사는 아들 집에서는 제삿밥을 못 얻어 자시겠다고 그러면서 나한테 성현이 집을 사 달라고 생떼를 놓드라마는, 나야 무슨 돈이 있니? 그에 시골땅을 팔았느니라? 근데 그 시골땅이 어떤 땅인지…… 성미야, 너는 알, 고 있지? 

  누나가 어머니를 빤히 바라보다가는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무얼, 알고 있었다는 것일까? 갑자기 바람이 차갑게 느껴졌다. 이제 이 나이 먹고 내가 뭐가 더 부끄럽겠니? 그래, 이 이제는 말이다, 어머니가 말을 이었고 누나가 어, 엄마, 도리머리를 흔들며 나를 바라보았다. 누나의 목소리에 바람이 담겨 있었다. 어쩌면 우리 가족들은 오래전부터 나만 모르는 비밀 하나를 간직하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내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속으로만 속으로만, 무서워서 차마 곁으로는 꺼내지 못했던 생각, 나는 어딘가 다리 밑에서 주워 왔다는, 혹은 아버지가 나를 다른 곳에서 낳아 왔다는 생각, 아무래도 그럴 것만 같았다. 어머니는 유독 누나를 챙겼고 외할아버지 댁을 찾을 때에는 언제나 누나만 데리고 갔다. 아버지가 낳아서 데리고 온 내가 어머니는 참 많이도 미웠을 터였다. 

  나무꾼이었던 아버지는 달빛이 하 밝아 밤이 깊은 줄도 모르고 나무를 하다가 호랑이 울음소리를 듣고 아뿔싸 걸음아 나 살려라 산에서 내려왔다. 근디, 이미 늦었는가벼, 오다가는 떡하니 호랑이를 만났는디야, 오매오매, 이놈이 집채보다 크더란 말여, 눈이 얼마 하냐면 말여, 그려 니 머리통만 한겨. 아버지는 어린 내 머리를 가만히 쓰다듬으며 그렇게 말했다. 돌 사진이 한 장 없는 걸 두고 어머니에게 투정을 부리던 나를 앉혀 놓고 아버지는 또 그렇게 농담을 늘어놓았다. 아따 나가 소도 맨손으로 때려잡는 놈이지만이, 무섭더만. 그 자리에서 꼼짝을 못혀, 근디 호랑이가 주둥이를 쑥 벌리고 나를 꿀꺽 삼키고 나서는야 이상하게도 외려 정신이 빠작 드는디, 근디이, 이미 늦었잖여이. 꼴까닥 디져 버린 거지 뭐. 허허. 나는 호랑이에게 물려 죽은 아버지를 한참이나 쳐다보았다. 다시 한 번 내 머리를 쓰다듬고 아버지는 말을 이었다. 근디 정신을 차린게 아적 나가 살아 있는겨, 그래서 에라이 이놈아 이빨로 아무러나 꽉 물어 버렸구만. 긍게 어마야 나 놀라라, 놀란 호랑이가 이, 깜짝 놀라 마구 달리기 시작했다. 슬쩍, 물고 있던 이에 힘을 빼면 호랑이의 걸음도 멈췄다. 아버지는 길게 큰 숨을 한번 들이마시고 나서 다시 그러나 더욱 꽉 호랑이의 뱃속 어딘가를 물었다. 호랑이가 다시 달리고 달리고 달리고 달리고 달렸다. 마침내 달리기를 멈추고 아버지를 토해 놓은 호랑이가 싹싹 무릎을 꿇고 아버지에게 빌었다. 

  “네 이놈! 한 번만 더 이 마을에 나타나서 사람들을 해코지하고 그러면 그때는 니놈을 진짜로 잡아먹을 것이구만. 알아 듣냐?” 

  천 년을 살아 사람보다 더 영민한 호랑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는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아 호랑이 이마에 꿀밤 한 대를 세게 놓은 뒤에야 호랑이에게 어여 가라고 손짓을 했다. 이야기를 들려줄 때마다 아버지는 내 이마에도 살콩 꿀밤을 놓았다. 아프지 않으면서도 나는 화드득 일어나 줄행랑을 놓은 시늉을 했다. 그러면 아버지는 사탕이나 과자 따위의 것을 어머니 몰래 꺼내 주고는 했다. 걸음아 날 살려라, 인자는 호랑이 차례구만. 나가 그렇게 손짓을 한게 호랑이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옳다구나 줄행랑을 놓았당게, 근디, 지금 생각해보면 이, 그때 나가 호랑이한테 너무 큰소리를 쳤는가벼. 긍게, 그때 삼팔선을 훌쩍 뛰어넘어 달아난 호랑이가 다시는 남쪽 땅을 밟덜 안혀. 아따미, 이. 긍게 나가 남한 땅에 호랑이 씨를 말린 장본인인디, 참말로 니들한테는 미안하구만이. 암튼 말여, 호랑이가 그렇게 떠나고 나니께 그제사 무서워서 참고 있던 오줌도 마렵고 목도 마르고. 가까운 나무에 살구 하나 잘 익었드나, 살구 하나 따묵고 몸을 부르 떨며 오줌을 싸는디…… 오줌이 얼마나 많이 나오던지 나도 깜짝 놀랐당게. 긍게 이놈의 오줌이 사흘 밤낮을 멈추지 않고 나오니께 이건 숫제 오줌이 아니라 강이여, 오줌이 강을 이루고 이루더만 산 아래 마을이 덮치는겨. 난리도 그런 난리가 아니었당게. 집도 사람들도 그 바람에 다 떠내려가고이. 근디, 용케도 집 하나는 무사하더만, 아따 겁나게 큰 집인게 겨우 반만 잠기는겨, 근디 문제는 그집 처자가 그 오줌을 흠뻑 마시고이, 아를 뱄어야. 그게 너이구만. 시집도 안 간 처녀가 사내 오줌을 먹고 아를 뱄응게 그게 옛날 어른들은 가만히 있을 수 없는 일이고이. 그랑게 느그 외할아버지가 니 어무이를 안 쫒아냈것냐. 긍게 느그 어무이는 내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날 책임지시오 하믄서 산중에 내 오두막에 찾아왔어야. 어찌것냐, 그날로 니 어무이랑 가시버시 연을 맺응게 바로 담날 니 어무이 배가 남산만 해서는 금세 니를 낳았당게. 니 울음소리는 또 얼마나 큰지 니가 울면 지진이 나고 산사태가 나고, 그랑게 마을 사람들이 또 더는 못살것다고 모두 땅을 버리고 떠났어야. 니그 외할아버지만 그 바람에 더욱 큰 부자가 되고이, 그 땅을 다 거둬들였응게. 그러다 봉게 니 누이도 생기고이. 

  그제야 아버지의 이야기 속에서 나와 누나가 태어난 날들이 뒤죽박죽인 까닭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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