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브런치북 에덴 07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헌용 Nov 17. 2022

살구, 개살구

2

  아야, 언능 그것 좀 이리 가져오랑게, 아따 참말로, 니 내 말이 시궁창 바퀴벌레만도 못혀지야. 니가 니 서방을, 그리 알더만 인자 나까지 그리 아는 갑다이. 

  아버지의 서슬에 아내가 종이기저귀를 말지 못하고 우물거렸다. 상을 물리고 일어난 아버지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아내에게 겅중겅중 다가가 기저귀를 낚아챘다. 그때까지 누나는 실금실금 웃으며 아버지에게 손뼉을 보냈고, 나는 저러다 말겠거니 고개를 푹 숙이고 나물에 젓가락을 가져갔다. 아버지는 그러나 밥상 위에 물렸던 숟가락을 다시 들더니 씨익 웃었다. 왼손에는 기저귀를 펼쳐 들고 오른손에는 숟가락을 들고 아버지는 사탕을 바라보는 아이처럼 반짝이는 눈을 하고 아기가 싸 놓은 누런 똥을 달게 바라보았다. 왼손을 들어 올리고 오른손을 아래로 내리며 마침내 똥이 숟가락에 담기려는 순간 더 두고 보지 않고 어머니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진짜, 당신, 왜, 그래요. 왜! 예, 왜 그러는 건데요? 아무튼, 당신, 그거, 그거, 손만 대 봐요. 예, 손만 대 보라고요?

  아버지 앞에서는 단 한 번도 싫은 소리를 하지 않았던 어머니도 그날은 큰 소리를 내질렀다. 이어 어머니는 아내를 불러 세웠다. 얘, 어미야 그만 일어나자, 어머니가 먼저 문을 나섰고 아내가 뒤를 따랐다. 그제야 누나가 나를 보며 왜? 무슨 일 있어? 소리를 감춘 채 입만 벌려 물었다. 나로써도 도무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그저 도리머리를 흔들며 젓가락을 내려놓고 어정쩡 겉옷을 찾아 입었다. 똥냄새가 난다고 아기를 타박했던 조카를 그제야 누나가 나무랐지만 바뀔 것은 없었다. 집안 분위기가 하도 싸늘해서 나는 우리를 초대해 놓고 갑자기 회사일을 핑계로 사라져 버린 매형이 오히려 고맙기까지 했다. 아버지는 그때까지 쩝쩝 입맛을 다시며 기저귀를 바라보았다. 

  차 안에서 속닥거리던 어머니와 아내는 내가 문을 열자 언제 그랬냐는 듯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넉살 좋은 아버지만, 아따 맛나것더만, 참말로이, 한두 마디 뱉어 놓은 뒤 창밖을 바라보며 우울려고 내가 왔던가, 우슬려고 왔던가,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슬며시 뒤를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돌리며 어머니가 혀를 찼다. 쯧쯧, 그 소리가 말벌이 되어 내 귓속을 헤집었다.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내 말들이 벌에 놀라 이리저리 머릿속을 찔렀다. 

  상쾌한 봄날, 온 가족이 도란도란 모여 앉아 즐겁게 식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미뤄 두었던 이야기를 어쩌면 꺼내야지 생각했다. 

  아버지가 마실 나간 어느 날 아이를 막 달래 재우고 앉아 한숨을 돌리고 있을 때 주인집 여자가 초인종을 눌렀다. 그 소리에 깨어난 아이가 앙앙 울음을 터뜨렸다. 주인집 여자에게 건성 인사를 건네고 우는 아이에게 달려가 토닥거렸다. 아이가 계속 더 칭얼거려 주기를, 그리하여 주인집 여자가 기다리다 말고 돌아가 주기를 바랐다. 이봐요, 이봐요, 애기 아빠. 나는 애써 모르쇠를 떨며 아이를 달랬다. 이봐요! 애기 아빠. 이봐요! 아이는 쉬 잠들지 않았고 주인집 여자도 쉬 돌아가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나는 아이를 안고 거실로 나왔다. 그때까지 현관에 서 있던 주인집 여자가 팔짱을 끼며 나를 노려보았다. 쯧쯧, 주인집 여자의 혀 차는 소리가 좁은 거실을 가득 메웠다. 그래, 어떻게 하실 건데요? 주인집 여자에게서 몇 번이나 전화가 왔을 때 나는 곧 연락을 준다며 서둘러 전화를 끊고는 했다. 전세 계약이 끝나가고 있었다. 주인집 여자는 전세금을 올려 달라고 했다. 그게 힘들면 그만큼 월세를 내든지 아니면 방을 빼 달라고 했다. 전화가 여러 번 걸려 오는 동안 단 한 번도 가족들에게 주인집 여자의 말을 전하지 못했다. 아버지에게 말을 할까 생각해 보았지만 아버지는 무능했고, 부쩍 신세 한탄을 많이 하는 어머니에게는 차마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번번이 기회를 엿보았지만 아내는 집에 들어오면 뻗어 잠들기 일쑤였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주인집 여자의 전화를 피하기 시작했다. 아이가 깨어나 울지만 않았다면 인터폰 속에 비친 주인집 여자를 보며 결코 문을 열어 주지 않았을 터였다. 

  돌아오는 길이 즐거웠다면 트럭을 한 대 사 달라는 이야기도 함께 꺼내 보려고 했다. 아이를 태운 유모차를 끌고 시장에 갔다가 우연히 만난 고향 친구 녀석 역시 한심하다는 듯 쯧쯧 혀부터 찼다. 술 한잔 할래? 내가 너한테 술 한잔 살 능력은 된다, 임마. 호기롭게 웃는 녀석의 얼굴에 담긴 것이 경멸과 우월감이라는 것을 모를 리 없었지만 나는 그날 밤 아이를 아버지에게 맡기고 녀석과 술을 마셨다. 시장 근처, 그래도 룸살롱이라고 이름 붙은 술집에서 녀석은 천재였던 어린 나와 바보가 되어 버린 지금의 나를 이야기하며 마냥 즐거워했다. 일찍 장가든 녀석은 딸이 서울에 있는 대학을 다닌다고 했다. 아직은 융자금이 남아 있지만 마흔 평 가까운 아파트도 마련했다는 자랑도 잊지 않았다. 친구의 자랑을 들으며 나는 그저 묵묵히 술잔만 털어 넣었다. 얌마, 그러지 말고 내가 노하우 전수해 줄게 너도 뻥튀기 장사라도 해. 이게 보기가 좀 그래서 그렇지 생각보다 제법 몫지다. 한 달에 오륙백은 그냥 나온다니까, 하하. 오륙백이라는 말에 귀가 번쩍 트였다. 그러나 개뿔 내게는 아무것도 없었다. 이게 밑천은 다 해 봐야, 음, 그깟 이천이면 된다니까. 녀석은 그깟이라고 말했지만 어머니나 아내의 도움 없이 나는 그깟이 아니라 이십 만 원도 마련하지 못할 터였다. 

  더블캡이라고 불리는 트럭을 살 생각이었다. 가까운 목공소에 가서 뒷자리에 일인용 침대를 하나 만들어 달라고 할 생각이었다. 좁디좁은, 그러나 오직 나만의 공간은 신기루 마냥 따스했다.  

  갑자기 똥을 먹겠다고 말한 아버지가 미웠다.      

  그러니까 똥을 먹겠다는 아버지의 말은 농담의 세계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진실의 세계 안에 있었다.   

  설마 진짜로 먹기야 하겠어, 모두들 그런 생각을 했지만 아버지는 진짜로 똥을 먹었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말을 진실로 받아들였을까, 그래서 평생 처음으로 아버지에게 큰 소리를 내뱉은 것일까? 

  누나네 집에서 돌아와 아버지는 며칠 아무런 말도 없이 방 안에만 있었다. 평소의 아버지라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루라도 조용히 있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 사람이 아버지였다. 오래지 않아 마실을 나간 아버지가 팔뚝만 한 나무 하나를 들고 들어왔다. 거실은 다시 농담의 세계 속에 들어섰다. 아야 갑돌아, 니 저 아래 과부댁 가슴이 왜 짝가슴인줄 아냐? 내가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해 우물쭈물거리자 아버지가 답을 들려주었다. 느그 엄마한테는 비밀이다이, 알았쟈? 실은 나 손이 짝손이어서 그려, 짝손. 몰랐쟈? 아버지가 두 손을 오므렸다 폈다를 되풀이하며 무엇인가를 감싸 안는 시늉을 했다. 아닌 게 아니라 아버지의 오른손에 비해 왼손이 참 작아 보았다. 나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니, 기억나냐? 아버지가 다시 말을 이었다. 니가 팽이 신동이었어야. 나가 꼭 이만 한 굴참 하나 주워다가 니한테 팽이를 만들어 준게이, 니가 오죽 팽이를 잘 돌리간. 어떨 때는 사뿐 뛰어서 빙빙 도는 팽이 위에 올라타기도 했당게. 그때는 이, 니가 어린놈이 잠지를 꼭 세우고 꼿꼿이 팽이 위에 서서이 온 동네를 돌아다니기도 했당게. 근디, 이놈은 잠지가 영 작어서이. 이번에는 잠들어 있는 아이의 고추를 슬쩍 따서 먹는 시늉이었다. 

  말을 마치고 아버지는 현관 턱에 기대어 앉아 나무를 깎기 시작했다. 부엌칼과 사무용칼로 아버지는 더디게 무엇인가를 만들었다. 사흘이 지나서야 겨우 윤곽을 드러낸 것은 숟가락이었다. 뭐, 하시게요? 내가 물었을 때 아버지는 그러나 씨익 웃으며 말을 아꼈다. 

  아버지가 가장 먼저 먹은 똥은 당신의 것이었다. 아직 아내가 회사일로 들어오지 않는 어느 밤, 화장실에서 나온 아버지 손에 까만 비닐봉지가 들려 있었다. 아버지는 나와 어머니를 안방으로 불러들였다. 구린 냄새가 진동했지만 설마 그것이 똥이라고 결코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나 어머니의 얼굴은 파랗게 질려 있었다. 다, 당신, 저, 정말 왜 이래요. 예? 어머니의 말에 아버지는 봉지 안에 담겨 있는 신문지를 꺼내 들었다. 신문지를 펼치자 검은 똥 한 무더기가 들어 있었다. 나를 향해 밝게 웃으며 안주머니에서 당신이 깎아 만든 숟가락을 꺼내 들더니 가타부타 말이 없이 아버지가 똥을 한 숟가락 가득 퍼먹었다. 나와 어머니가 어쩔 줄을 몰라 그저 멍하니 있는 동안 아이가 엉금엉금 기어 와 철퍼덕 손을 똥 무더기에 내려쳤다. 아이는 곧 제 손을 입으로 가져갔다. 나는 여전히 멍하니 입을 오물거리는 아버지를 바라보았고 어머니는 퍼뜩 정신을 차리고 아이의 손을 잡고 화장실로 달려갔다. 그사이 아버지는 몇 번이나 더 똥을 맛나게 퍼 먹었다. 아따야, 이것이요, 생각보다 맛나다이. 참말이랑게, 갑돌이 니도 한 숟갈 할텨? 어머니가 우는 아이를 달래며 다시 들어왔을 때 아버지는 숟가락에 맛있는 양갱이라도 가득 담긴 그런 표정을 하고 내게 내밀었다. 한쪽 손으로 아이를 안고 있던 어머니가 다른 한 손으로 아버지의 숟가락을 내리쳤다. 숟가락이, 그리고 숟가락에 담긴 똥이 사방으로 튀었다. 어머니가 주저앉아 목소리를 높였다. 

  정말, 정말. 정말로! 당신 끝까지 내 속을 긁어 놓을래요. 내가, 내가, 저, 정말, 죽어야, 주기라도 해야, 예? 

  어머니의 악쓰는 소리에 아이가 앙 울음을 터뜨렸다. 아버지는 그제야 주위를 둘려보며 경기 일으키는 아이처럼 놀랜 표정이 되었다. 아버지의 눈이 좀 멍해 보였다. 

  아이와 나를 떠미는 어머니의 손길에 밖으로 나왔지만 갈 곳이 없었다. 나는 그저 아파트 공원 벚꽃 아래서 맥주를 홀짝거리며 아내를 기다릴 뿐이었다. 

이전 06화 살구, 개살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