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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에덴 0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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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헌용 Nov 17. 2022

살구, 개살구

1

  아버지는 똥을 먹는다.    

  

  아버지가 가족들 앞에서 똥을 먹겠노라고 처음 말했을 때 우리는 모두 아무렇지도 않게 아버지의 선언을 받아들였다. 아버지는 그 즈음 알쏭달쏭한 표정을 지으며 알 수 없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여전히 건강하고 활기찬 노인네였다. 

  아따야, 나가 산해진미를 모다 맛보았는디 인자 그런 거는 영 생각도 없더만 저놈아 똥을 봉게, 나가, 미쳤을까. 참말 맛나 보인다이. 이리 줘 봐라, 한술 떠 보자. 인자, 나, 똥이나 먹고살란다. 

  이제 막 기어다니기 시작한 아들 녀석의 기저귀를 갈 때 아버지는 입맛을 쩝쩝 다시며 그렇게 말했다. 술과 농담을 적당히 즐길 줄 아는 아버지여서 우리는 똥을 먹겠다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흘려들었다. 그건 마치 무인도에 표류했던 어느 날, 하늘을 나는 날치 몇 마리 잡아타고 대서샹을 건너 육지로 왔다는 아버지의 농담 같았다. 심지어 누나와 조카 녀석은 아버지에게 손뼉을 쳐 주기도 했다. 똥이란 아버지에게 또 어떤 장난과 농담의 세계 가운데 하나일까를 나는 생각했다. 농담이란 게 대개가 그렇지만 아버지의 농담은 실없기가 그득해서 일테면 이런 식이었다. 

  느그 아부지는야, 긍게 너만 흘 때 아조 날아다녔어야. 근디 너는 어찌 지대로 앉어 있지를 못허고 그렇게 만날 벌렁덩 자빠짐서 울기만 혀냐. 긍게 느그 아부지가 너처럼 뽈뽈 기어다닐 때는 이런 거나 있간디, 하냥 줄로다가 기둥에 묶어 두지. 근디 느그 아부지가 참말로 영특해서 아직 걷지도 못하는 놈이 그 줄을 풀고 마당에 나갔어야. 나야, 술 한잔 묵고 잠들고 느그 할무니는 잠깐 마실을 갔는가벼. 암튼 니그 아부지가 돌보는 사람이 없응게 심심해서 그랬는지 아님 배고파서 그랬는지 줄을 풀고 마당에 나가 풀풀 기어다님서 흙이며 벌레며 그런 것들을 주워 먹었는가벼. 그러다가는 마당에 옹기종기한 병아리 한 마리를 어쩌다가 낚아챘어야. 긍게, 암탉이 꼬꼬꼬 울고불고 난리가 안 나겄냐? 또 긍게 마당을 지키는 장닭이란 놈이 다가와서는 꼬끼오 길게 울고불고 또 한바탕 난리가 났고이. 근디 장닭이란 놈은 이래저래 오긴 왔는디 사람 새낀게 무서워서 어쩌지를 못혀. 여차 하믄 나가 팍 지를 잡아먹어 블 참인디 그놈이 모른간디. 긍게 하냥 꼬끼오꼬꼬, 꼬기오꼬꼬, 느그 아부지 주위를 돌면서 울기만 할 뿐 아니겄냐. 근디 암탉은 다르더란게. 어느 순간에야 암탉이 부리를 꼭 들더만, 이……

  부리를 꼭 들었다고 말할 때 아버지는 이미 한 다리를 들고 두 팔을 잔뜩 펼쳐 한 마리 장닭처럼 아이 앞에 우뚝 섰다. 아이는 할아버지의 그런 모습이 신기한지 오뚝이처럼 기우뚱기우뚱 겨우 균형을 잡고 앉아 아버지를 올려다보았다. 아내가 올 시간이 되어서 나는 흠흠, 흐흠, 잔기침으로 말리려 들었지만 아버지는 이미 이야기 속에 빠져들었다. 

  아버지의 농담 끝에 아이가 한바탕 울음을 터뜨리고는 했고 그때마다 아내의 얼굴은 더욱 붉어지곤 했다. 아버지는 희극배우처럼 어느 즈음에는 온몸으로 이야기를 했던 것인데 그런 모습이 아내에게 좋게 보일 리 만무했다. 잔뜩 붉어진 닭벼슬을 하고 털을 잔뜩 세우고 암탉이 마당을 기어다니는 내 머리를 코콕 찍기 시작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품안에 병아리 한 마리를 꼭 끌어안고 마당을 기어다녔다. 흙을 파헤치며 지렁이 같은 것들을 주워 먹었고 가끔은 어린 병아리 입에 억지로 그것들을 쑤셔 넣기도 했다. 삐약삐약 병아리가 몇 번이나 울었고 그때마다 꼬기오 꼬꼬꼭 목청을 잔뜩 가다듬던 암탉이 마침내 날개를 펄럭이며 높이 날아올랐다. 아이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던 아버지도 팔을 휘저으며 펄쩍 하늘을 날았다. 꼬기오 꼬꼬꼬 꼬기오 꼬꼭. 아버지의 입에서 암탉 한 마리가 튀어나왔다. 사뿐 주저앉아 아버지는 한 손을 닭대가리처럼 오무려 아이의 머리를 콕콕 찌르기 시작했다. 으히히, 으히히, 아이가 신기한 듯 웃음을 흘렸다. 그러나 아버지의 손에는 사정이 없었다. 콕코콕, 콕콕. 곧추세운 아버지의 손이 몇 번 더 머리를 내리찍었고 으으음으음, 으으음, 으앙으앙 마침내 아이는 울음을 터뜨렸다. 아버지는 그런 아이가 재미있다는 듯 한바탕 허허 웃고 나서야 손을 멈추고 말을 이었다. 

  아따 참말로 느그 아버지는 안 그랬당게. 느그 아버지는 안 울고 싸움을 혔어야. 그놈의 닭이 하늘을 펄쩍 날아올랐다가 땅으로 부리를 콕 하고 박는디 말여, 그때까지, 아따 울지 말어야, 자꾸 울어싼게 나가 기억을 참말로 못혀것잖여. 긍게, 아따, 아범아, 아범아, 니 아들 좀 달래 봐라야, 어여. 

  나는 어쩔 수 없이 건성으로 보고 있던 티브이를 끄고 아이에게 다가갔다. 엉기둥기, 엉기둥기, 내가 아이를 달래는 동안 아버지는 흐흠흐흠 헛기침을 하며 마뜩한 얼굴로 우리 부자를 바라보았다. 애써 모르쇠를 떨었지만 아이를 울리는 아버지의 몸짓이 실은 내게 당신의 이야기를 들어 달라는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더 이상 모르쇠를 떨 수 없어 아이를 내 무릎에 앉히고 아버지 앞에 자리를 잡았다. 잠시 멈췄던 싸움이 다시 이어졌다. 그날의 전투는 참으로 치열했다. 

  펄쩍 날아오른 암탉이 사정없이 부리로 내 머리를 쪼았다. 나는 아주 잠깐 멍한 표정으로 암탉을 바라보다가는 병아리를 집어 던지고 암탉을 향해 엉금엉금 기기 시작했다. 온몸으로 땅을 헤치며 기어다니던 나는 그때부터 무릎으로 기기 시작했고 닭을 쫒는 속도도 빨라졌다. 암탉은 푸드득푸드득 날개를 펄럭이며 이리저리 피하다가는 기회가 될 때마다 나를 쪼아 댔다. 일방적으로 닭이 우세했다. 안 그래도 흙투성이던 속옷은 이내 걸레가 되었고 내 몸 여기저기에서 피가 흘렀다. 나는 패배를 인정하고 주저앉아 눈물을 그렁그렁 흘렸다. 그란디야, 아따, 니가 울덜 안혀. 울기는 우는디이, 긍게 눈물을 아조 줄줄 폭포마냥 흘리면서도 소리를 내지 않더란 말여. 나가 처음에는 그놈의 닭을 잡아 죽이겄다고 달려가다가 니하고 눈이 딱 마주쳤잖어야. 긍게, 그때, 니가 한눈을 파는 사이 암탉이 올타거니 다시 한 번 날아서 니 불알을 이…… 아버지가 이번에도 역시 내 무릎에 앉아 있는 아들 녀석의 불알을 곧추세운 손으로 똑 내리쪼았다. 앙하고 다시 한 번 아이는 울음을 터뜨렸지만 아버지는 낄낄거릴 뿐이었다. 아따이, 니는 참말로 잘 운다이. 니그 아부지는 당최 울더를 안했당게이. 긍게, 그 씨벌헐 놈의 암탉이 니 불알을 이렇게 딱하고 쪼았당게. 그때는 뭐, 번번허니 속옷이나 있었간디, 하냥 웃도리나 길게 입혀서 가리고 말지. 근디 그놈의 닭은 어찌 알았는지 말여이, 정확히 니그 아부지 불알을 냅다 쪼드랑게, 낄낄. 씨 떨어질 뻔했어야, 씨. 그러나 씨는 떨어지지 않았다. 갑자기 일격을 당한 나는 그제야 앙 울음을 터뜨리며 엉금, 엉금, 기어서, 그러나 장닭의 날개짓보다 힘차게 다가가 날개를 움켜잡았다. 꼬마 아이들이 싸우듯이 암탉과 내가 서로 엎치락뒤치락 거렸다. 그러다 어느 순간 승기를 잡은 내가 암탉의 날개를 바투 움켜잡고 등으로 올라탔다. 시골 마당에서 대여섯 해를 터줏대감으로 살아온 암탉은 어린 내가 올라타기에 충분했다. 푸드득푸드득, 닭이 온몸을 비틀며 나를 떨쳐 내려 했지만 그럴수록 나는 닭모가지를 잔뜩 그러잡았다. 나를 태우고 마당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던 암탉은 마침내 마당을 뛰쳐나갔다. 가만히 지켜보던 아버지가 달려 나와 나와 닭을 쫒기 시작한 것은 닭이 막 골목 어귀를 지나 사라질 때였다. 신도 신지 않고 달려 나온 아버지가 비틀거리며 온 마을에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소리를 듣고 나온 사람들이 닭 위에 갓난아기가 올라탄 신기한 광경을 쫓아 달리기 시작했다. 논두렁을 지나 이제 막 새로 놓인 철길을 지나 멀리 바다가 보이는 마을 뒷산 절벽에 올랐을 때는 등 뒤로 수천 명의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뒤를 쫓았다. 닭이 멈추고 사람들이 헉헉거리며 숨을 골랐다. 나만 아무렇지도 않은 듯 울음을 그치고 헤헤헤 실없이 웃으며 두 손에 힘을 주었다. 구경하던 사람들 가운데 먼저 정신을 차린 몇 사람이 내 곁으로 다가오며 구구구 닭을 불렀다. 닭은 잠시 고개를 돌려 사람들을 쳐다보다가는 꼬기오, 꼬기오, 길게 울었다. 어떤 장닭도 그렇게 멋지고 힘차게 울지 못했다. 뉘엿뉘엿 언덕을 넘던 해가 아주 살짝 고개를 들어 우리를 비춘 것은 그때였다. 사람들이 닭울음 소리에 취해 황홀경에 빠져 있을 때 암탉은 햇살을 받으며 절벽 아래로 뛰어내렸다. 사람들은 웅성거렸지만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어린 나는 그저 헤헤헤 신이 나서 웃을 뿐이었다. 멀리서 나를 부르는 술 취한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매어매 우리 갑돌이가 죽네, 우리 갑돌이가 죽네. 아버지는 그렇게 울부짖으며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 어느 샌가 술병을 꺼내 들고 병나발을 불었다. 아주 잠깐 밝았던 햇살이 다시 수그러들 때 사람들이 하나둘 돌아갔다. 차마 발길을 쉽게 돌리지 못한 사람들 몇이 어쩌지 못하고 발을 동동 구르는 사이 마침내 사방이 모두 어두워졌다. 수군수군 사람들이 돌아가고 아버지의 술병이 다 동이 났을 때 그러나 기적처럼 세상이 다시 밝아 왔다. 발길을 돌렸던 사람들이 다시 돌아와 올려다본 하늘에 봉황인 듯 꼬리털을 휘휘 날리며 암탉 한 마리가 하늘을 날고 있었다. 암탉의 작은 벼슬에서 햇살보다 밝은 빛이 쏟아졌다. 그리고 암탉의 등 위에 곧추서서 세상을 내려다보는 어린 내가 서 있었다. 

  긍게 아가야, 니 아부지가 그때부터 마을 사람들한테 봉황아이라고 불렸어야. 암만 봉황이지 말고이. 보통 닭이라면 그렇게 하늘을 날 수가 있간디. 그리고 보통 아이라면 봉황을 탈 수가 있간디. 긍게 니 아부지는 봉황의 자식이여. 뭐, 그때부터 아조 난리가 아이었구만. 사람들이 니그 아부지 얼굴 한번 보겄다고 우리 집에다가 괜한 쌀도 부려다 놓고이 돈도 부리고…… 그때부터 우리 집이 노가 났당게. 니그 할무니가 그때 어디 마실 갔다고 안혔냐. 실은 나가 만날 술 처묵고 니그 할무니를 두들겨 팽게 살 수가 있간디. 실은 하냥 도망갔단 말여. 근디, 느그 아부지 소문을 듣고 다시 돌아오더란 말여. 긍게 또 효자 아닌가벼. 암튼 그때부터 우리 집이 아주 부자가 되었당게. 사람들이 올 때마다 느그 아부지가 닭 위에 서서 휘휘 마당을 한 바퀴 돌믄 하냥 이 주머니 저 주머니에서 돈이 쏟아징게. 근디, 오래 못 갔으야. 느그 아부지가 금세 자라고이, 암탉은 늙어 죽어쁠고. 느그 아부지가 벌어들인 돈은 나가 또 노름해서 다 까믁고이…… 

  아버지는 다시 한 번 농담 끝에 자기 한탄을 덧붙였다. 암탉을 탔다는 그 전설 같은 이야기야 어쩌다 보니 아버지가 재미 삼아 만들기는 했을 테지만 어린 내가 제법 영특했던 것은 틀림없는 모양이었다. 나는 세 살 때 한글을 깨우쳤고 다섯 무렵 천자문을 읽었다. 마을은 물론 근동에서 영재가 났다는 소문이 돌았으며 이래저래 주변의 도움으로 우리나라에서 제일 간다는 대학을 수석으로 입학해서 수석으로 졸업했다. 나는 마땅히 사법고시에 패스해 우리나라의 법과 질서를 확립하는 인재가 되어야 했다. 그러나 번번이 이차 시험에서 떨어졌다. 그들이 풀어 놓으라는 시험문제를 나는 도무지 풀지 못했다. 생각들은 글이 되어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몇 해를 보내고 다시 몇 해를 보내는 동안 시루죽은 나는 집안에서 애나 돌보는 애기업개가 되어 버렸다. 모든 것이 귀찮아졌고 모든 것이 재미가 없었다. 세상이 그저 그럴 뿐이었다. 그럼에도 단 하나 궁금한 게 있었다. 

  아버지는 어떻게 저렇게 당당할 수 있는 것일까? 왜 아버지는 평생 어머니의 살을 갉아먹고 살면서도 저렇게 떳떳할 수가 있는 것일까? 내가 기억하기로 아버지는 평생 어머니가 벌어 온 돈으로 밥을 얻어먹었고 술을 받아먹었다. 아버지의 기억처럼 어머니는 내가 아주 어렸을 때 집을 나갔다가 내가 못내 애처로워 돌아왔노라고 했다. 어머니의 가출은 그 뒤로 몇 번 더 이어졌다. 어머니가 나가면 아버지는 오히려 물 만난 물고기처럼 더욱더 흥에 겨워 술을 마시며 즐거워했다. 열흘이 지날 즈음이 되어서야 아버지는 홀쭉한 얼굴로 나를 이웃에게 맡기고 어머니를 찾아오곤 했다. 어머니가 가는 곳이라고는 오직 외가뿐이어서 아버지는 어렵지 않게 어머니를 찾아오곤 했다. 그런 날이면 고기를 몇 근 끊어 와 오랜만에 가족들이 모여 앉고는 했다. 어머니는 어린 누나를 이끌고 아버지의 술주정을 핑계로 외가에 돈을 빌리러 간 것이었고 아버지는 그에 장단을 맞춰 외가 식구들을 찾아가 돈을 얻어 오고는 했던 것이다. 아버지는 그렇게 평생을 돈 한 푼 벌지 못하고 오직 어머니와 외가 식구들에 빌붙어 살아갔다. 그럼에도 아버지는 언제나 어머니에게 큰소리였다. 시장에 작은 닭집을 열어 어머니가 생계를 이어 가는 지금까지도 아버지의 큰소리는 줄어들지 않았다. 쯧쯧, 그렇게 너를 끼고 살더만, 하는 꼴이라고는…… 너나 니 아버지나 어찌 그렇게 한심이 지천이니, 내가 아주 니들 김씨들 때문에 등골이 다 휜다, 등골이. 아이구 인간 말종들 같으니라고…… 아버지가 친구와 같이 이웃한 박 마담 아주머니네서 외상술을 진탕 마시고 들어오던 날, 아버지 앞에서는 차마 말하지 못하고 어머니는 둥기둥기 애를 업고 있는 나를 보며 그렇게 말했다. 아버지와 나는 그러니까 어머니의 말마따나 여자들 등골이나 빼먹고 사는 인간 말종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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