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브런치북 에덴 04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헌용 Nov 16. 2022

물고,
기,

2

 진수 손에 들린 청둥오리처럼 축 처진 모습으로 여자가 티브이 앞에 앉아 있다. 머리를 긁적이며 가게 문을 여는 진수가 혀, 형수님 아, 안녕하시오. 어, 어찌 소, 손님이 없어라? 말을 건넸고, 언니가 아직 겨울인게 뭐 그러지라, 근디 아제도 참 정성이요, 이. 대답을 하고 또 여러 말들이 오가는 동안에도 여자는 모르쇠로만 앉아 있었다. 

 아따, 해경아! 니, 옻 안타냐고 안 묻냐? 

 어, 어. 옷, 응, 이뻐, 그래, 이뻐. 

 아이구야, 참말로 내가 미친다니까. 입는 옷 말고 먹는 옻 말여, 옻. 그 옻 안타냐고 진수 아제가 안 묻냐?

 옷 이쁘다니까, 왜 자꾸 그래, 으씨? 

 여전히 알 수 없는 대답을 건성 던지고 여자는 티브이 화면만 멍하니 바라보았다. 언니도 더 이상 묻지 않고 진수를 향해 말을 늘어놓았다. 

 약이 독해서 그란지 자가 병원만 갔다 오면 저려요이. 

 그, 긍게, 혀, 형수. 벼,벼, 병원에는 꼭 가야쓴당가요, 이? 하냥, 나, 남자 하나 마, 마, 만나 살믄.

 살믄 뭐어! 돈도 안 줄거면서. 으씨.

 여자가 별안간 소리를 지르며 진수의 말을 중동 잘랐다. 그, 그게. 말을 더듬는 진수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그, 그게, 그러니까, 해, 해경이, 니, 니하고 나하고 여, 여. 말이 쉬 떨어지지 않아 소주를 연거푸 서너 잔이나 들이켰지만 말문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그래도 여전히 바람에 흔들리는 벚꽃 잎으로 진수의 말은 한들한들 흔들렸다. 식당 쉬는 날을 미리 알아두었다가 진수는 기어이 여자를 택시에 태웠다. 너하고 나하고 하냥 가시버시로 살자, 용감하고 씩씩하게, 분분이 내리는 꽃눈을 맞으며 진수는 그 동안 담아났던 말들을 꺼내놓고 싶었다. 그러나 마음뿐이었다. 

 입 안 가득 통닭을 우겨 넣으며 여자가 진수의 말을 보챘다. 

 아이고. 아이고! 답답해라. 답답해. 여, 여, 뭐요?

 여, 여, 여기 무, 물도 있고, 매, 맥주도 있응게, 이것도 조, 좀 머,머, 먹으라고. 체, 체, 체하것구만. 

 연애하자는 말을 끝내 하지 못하고 진수가 얼굴을 붉히며 말머리를 돌렸다. 진수가 기어이 여자에게 연애라는 말을 꺼낸 것은 얼큰하게 취해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였다. 

 해, 해경아. 우리. 너, 너랑 나랑. 가, 가, 같이 살까? 그, 그게 싫으면 우리도 저, 젊은 사람들처럼 만나서 가끔 연애라도 함서.

 연애, 연애. 나 그거 좋아해. 좋아, 연애하자, 응. 우리 연애하자. 근데.

 차창 밖 구름을 좇던 여자가 몸을 돌려 진수의 손을 꽉 움켜잡으며 고개를 바투 세웠다. 진수도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여자를 향해 몸을 돌렸다. 

 근데, 그럼, 나 얼마 줄 거야?

 어, 어, 엉? 뭐, 뭐, 뭐라고?

 아니, 나랑 연애하면 얼마 줄 거냐고? 남자들, 연애하고 나면 돈 주잔아. 그거 얼마 줄건데? 

 눈을 말똥말똥하게 뜨고 여자가 진수를 바라보며 또박또박 말했다. 그렇게 또렷한 여자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진수는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하나 알 수 없었다. 여자의 손에 돈을 쥐어주고 택시를 돌려 여관으로 가야 하나, 꿀꺽, 진수는 마른 침을 삼켰다. 

 자, 자, 장난하지 말어. 나, 나, 지, 진짜 해, 해경이 사사사, 사, 사랑한다 말여. 

 ……

 저, 저, 태,태, 택시. 나 좀 내, 내려줘봐요. 예, 예.

 사랑한다는 말이 왜 그렇게 불쑥 튀어나왔는지, 엉겁결에 사랑한다는 말을 토해 놓고서 진수는 택시를 세웠다. 나, 나 좀. 드, 들릴 때가 있어서이. 머머, 먼저 드, 들어가더라구. 택시에 혼자 남겨진 여자가 우두망찰 먼 하늘만 바라보다가 문득 고개를 돌렸다. 쩔둑쩔둑, 진수가 꽃잎과 함께 멀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여자의 온몸에 까닭도 없이 열이 올랐다. 며칠 뒤에는 기어이 열꽃이 피웠다 졌다. 졌다가는 폈다. 밤새 밀물과 썰물이 쏴아아 쏴아아 여자의 온몸을 오가며 잠을 훔쳤다. 아랫도리에 냄새가 심하게 피어오르기 시작한 것도 그 즈음이었다. 

 아따, 무안케시리, 야, 이년아. 니는 무담시 진수 아제한테만 그리 승질이냐, 이. 아제가 이해하시오. 근디, 아제, 이거 천연기념물이람서 이리 잡아와도 괜찮소?

 무, 무안키는요. 해,해, 해경이는, 저,저, 저러는게. 허허, 허…… 차,차, 참. 이, 이거. 처, 천연기념물이래도 지, 지가 죽어서 떠밀려온게요이. 저그, 바, 바다가 죽은 뒤로는 새, 새들도 이리 많이 주, 주, 죽고 그런당게요, 이. 이, 이게 그래도 여자한테는, 최, 최, 최고라니께 오,오, 옻이랑 넣고 고, 고아서, 해, 해경이랑 드, 드셔라.

 아따, 참말, 대단한 애처 나셨소. 아제도 아제도 참말 지극정성이요. 근디, 저거는 지가 뭐라고 저리 우뭉을 떨어싼게요, 이. 

 아, 아, 아니요. 해, 해, 해경이 머, 먹으라고, 가, 가져온 게 아, 아 아니고, 혀, 혀, 형수 드시라고, 가, 가, 가져왔는디. 나, 나, 가, 가……

 진수가 말을 다 끝내지도 못하고 식당 문을 열며 달아나듯 멀어졌다. 

 귀신을 만난 것인지, 가위에 눌린 것인지. 머리를 잔뜩 풀어 헤치고 누렇게 바랜 옷을 나풀거리며, 사람 살려, 날 좀 살려, 두 팔을 꼭 붙들고 놓아주지 않았다. 벗어나려 하면 할수록 오히려 귀신은 잡은 팔에 힘을 더욱 더 주며 나 죽네, 나 죽네 소리쳤다. 나 죽네 소리치고 싶은 건 적장 언니였다. 꿈이려나 머리를 흔들면 소리는 더욱 크게 들렸다. 모른 척 고개를 파묻으면 팔뚝에 전해지는 힘은 더욱 커져만 갔다. 빌어먹은 영감탱이가 날 데려오라고 귀신을 보냈을려나, 아직 살아서 할 일이 많은데. 그러나 귀신은 쉬 물러날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귀신에게서 빠져나갈 길도 보이지 않았다. 식은땀이 등허리를 적시고 온몸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이대로 죽을 수는 없었다. 에라 모르겠다. 될 때로 되라고 언니는 야아아아아 소리치며 귀신의 팔을 뿌리치고 문을 향해 기어갔다. 걸음아 날 살려라, 너도 살고 나도 살자, 그러나 걸음은 벌써부터 저 혼자 살겠다고 도망을 쳤는지, 일어서지도 못하고 걸음아 널 살려라, 엉금엉금 기어 막 방문을 여는 순간 귀신이 다가와 언니의 발목을 낚아챘다. 

 에헤헤, 헤헤, 헤헤. 

 여자가 언니 손에 들려 있는 약을 낚아채며 웃음을 토했다.

 헤, 헤헤. 아, 아니, 언니, 헤헤헤, 언니는. 그렇다고 오줌을 싸면 어떻게 해. 에헤, 헤헤. 

 히죽히죽 박꽃으로 활짝 피던 웃음이 아니었다. 약기운이 남아 여자는 제대로 웃지도 못하고 그저 헤헤 거리며, 지난 새벽을 떠올리며 데굴데굴 식당을 굴렀다. 

 얼레리꼴레리, 오줌 쌌대요, 얼레리꼴레리, 오줌 쌌대요.

 겨우 웃음을 달랜 여자가 언니에게 낚아챈 약을 온몸에 바르며 흥얼거렸다. 

 에이구. 에이구, 이 화상을 이 화상을.

 언니가 긴 한숨을 토하고 말을 이었다. 

 이리내, 이 년아. 내가 발라줄텐게. 미친 년, 뭘 잘했다고 실실 웃고 지랄이여, 지랄이. 야, 이년아, 사람을 살살 흔들어 깨워야지 그리 꽉 잡으면…… 에이구, 내가 말을 말아야지. 

 근데, 언니, 그 불차 있잖여이. 그게 타 본게 참말, 좋데, 이. 우리 언제 또 타자, 응. 또 타자. 

 청둥오리가 탈이 났던 모양이었다. 진수 아제가 잡아온 청둥오리를 가마솥에 넣고 옻나무를 넣고, 솔잎 몇 줌 뜯어다 넣고, 찹쌀도 한 움큼 씻어 넣었다. 그래도 여자는 뭔가 서운하고 아쉬워 부엌을 뒤졌다. 야, 이년아, 이태나 지난 걸 뭐 헐라고 넣어야? 언니의 지청구를 들으며 먼지 낀 한약재를 팍팍 덜어 넣고서야 여자는 기분이 좋아졌다. 

 장작불을 바라보며 여자는 평상 끝에 쪼그려 앉아 무람없이 졸았다. 졸다가 깰 때마다 여자는 입을 크게 벌리고 멍한 눈을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봄이 오려는 것인지 바람에 꽃 그림자가 담겨 있었다. 발아래 깔렸던 여자의 그림자가 싸움 끝난 닭벼슬로 길게 늘어져 바람을 쪼았다 놓을 때쯤 가마솥이 팔팔 끓어 넘쳤다. 

 근데 언니, 골프장은 언제까지 쉬어? 왜 맨날 사람 새끼 하나 없어?

 왜, 너 굶어 죽일까봐?

 근데, 언니. 언니는 안 외로워?

 애, 외롭다, 이년아. 안 외로우면, 아이고 참말로, 이, 나가 좋은 방 나두고 뭐한다고 니랑나랑 하냥 이 식당 바닥에 이불 깔고 누워서 자고 그러것냐. 근디 왜, 니가 영감 하나 소개시켜줄래? 

 아, 왜 맨날 언니는 욕을 하고 그래. 진짜로. 욕 하지마! 

 손님 없는 빈 식당에서 푹 고은 청둥오리를 밥 삼아 안주 삼아 술을 몇 잔이나 걸치며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말들을 늘어놓았다. 여자도, 언니도, 금세 취해 해롱거리다가 대충 아무렇게나 식당 바닥에 이불을 깔고 드러누웠다. 오랜만에 잠이 달았다. 단잠 속으로 개미들이 스멀스멀 기어들었다. 수 억 만 마리의 개미들이 여자에게 달려들어 온몸을 갉아먹기 시작했다. 여자는 간지러움을 참지 못하고 온몸을 벅벅 긁었다. 간지러움이 잠시 멈추고 온몸이 따끔따끔 아파오기 시작했다. 아픔 때문에 긁기를 멈추면 얼마 지나지 않아 개미들은 다시 여자의 온몸을 갉아먹었다. 여자도 다시 손톱을 세워 온몸을 긁었다. 다시 온몸이 따끔거렸다. 손톱 사이에 피가 낄 때쯤에 아픔이 사라지고 숨이 헉헉 막혀오더니 온몸에 열이 들끓었다. 언니를 흔들어 깨우며 여자는 새된 목소리로 애원했다. 언니, 나 죽것네, 이. 나 좀 살려줘. 언니 사람 죽것네, 이. 사람 좀 살려줘. 날 좀 살려, 줘.

 잘 마시지도 못하는 술 때문일까, 잠귀 밝은 언니는 쉬 일어나지 못했다. 아픔을 견디려고 여자는 손아귀의 힘을 늘려 언니를 꽉 움켜주었다. 야아아아, 갑자기 언니가 소리를 치더니 엉금엉금 문 쪽을 향해 기어갔다. 언니, 나 좀 살려, 줘. 여자는 거친 숨에 묻혀 밖으로 나오지 않는 말들을 웅얼거리며 언니에게 다가가 발목을 움켜잡았다. 아아아아아아아아, 길게 이어지던 고함소리가 일순간 사라지면서 언니의 버둥거림도 멈췄다. 여자가 어쩔 줄을 몰라 멍하니 있다가 겨우 숨을 고르고 형광등 스위치를 찾아 눌렀다. 빛보다 먼저 지린내가 확 끼쳐왔다. 

 오래지 않아 구급차 한 대가 경보음을 울리며 긴 어둠을 달렸다. 

 옻독이 사그라질 때쯤 다시 까닭도 없이 몸이 달았다. 언니는 그걸 남자 생각이라고 했지만 여자는 남자 생각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하제 끝집에서 조금만 걸음을 옮기면 아스라이 섬이 보였다. 뭍이 되었다고 했다. 

 이제 영영 안온당게. 달아났어야, 저기 뭍으로 달아났어야. 

 죽어라 이년아. 욕을 한바탕 퍼붓고 나면, 니 어미 달아났어야, 달아났어야, 할머니는 후렴을 달았다. 그럼, 엄마 언제 온당가? 아주 조심스레 여자는 되물었다. 인제 안온당게, 왜 자꾸 묻고 지랄이여 이년아. 안와, 안온당게. 저그 저 바다가 육지라면 또 모를까. 파도소리에 한숨 한 번 섞고나서 할머니는 말을 이었던가. 썩을 년이 병신 같은 지 새끼 남겨두고, 육시럴헐 년. 쯧쯧. 혀를 차다가, 그려 그려 잘 나갔다, 이 지긋지긋한 섬에서 잘 나갔어야, 이 육시럴. 이 썩을 년아. 밥그릇에 가득 바다처럼 맑은 소주를 따라 할머니는 단숨에 들이켰다. 할머니 몸안에 파도가 일렁이면 또 까닭도 없이 매질을 할터였다. 할머니를 피해 섬 끝으로 달려 바라보았던 뭍이 이쯤이었을까, 바다가 육지가 되었응게 엄마가 돌아왔을까, 섬에 가면 엄마를 만날 수 있을까. 그러나 여자는 뭍이 되어버린 섬에 가는 방법을 몰랐다. 남자 생각이 뭐냐고 물었을 때 언니는 그리운 거라고 말했지만 여자는 그리운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할머니 뒈져버리랑게. 하냥 뒈져버리랑게. 기억에도 없는 엄마의 얼굴을 문득문득 떠올리다가 종국에는 엄마의 얼굴에 겹쳐오는 할머니의 그림자와 둘이 앉아 무담시 말싸움만 벌일 뿐이었다. 절뚝이는 걸음을 놀려 택시에서 멀어지던 진수 아제의 모습이 아주 가끔 생각나 까닭도 없이 히죽히죽 웃음이 나올 뿐이었다. 그런데 왜 언니는 자꾸만자꾸만 남자 생각 안나는 주사를 맞아야 한다고 하는 지 여자는 또 알지 못했다. 

 어,어, 어디 다, 다녀와?

 여자의 생각 속으로 더듬더듬 진수가 다가왔다. 자전거를 타던 진수가 내려 여자와 걸음을 맞췄다. 옻독이 아직 남아 있는 것인지 여자의 몸이 달아올랐다. 

 어디긴 어디야, 보건소에서 약 받아오잖아. 이씨, 아저씨가 가져온 거 먹고 병나서 죽을 뻔 했당게. 

 미, 미, 미안혀. 그, 긍게, 오,오, 옻 타냐고, 무,무, 물었잖여.

 옷을 어떻게 타아, 자전거도 아니고. 

 그,그, 그려. 미, 미안혀. 내, 내 자, 자전거 타, 탈텨?

 이씨, 누가 고물을 타아. 안 타, 그 고물. 밴, 밴, 밴치라면 모를까, 밴치.

 해, 해, 해경이. 너, 너는. 혀, 형님한테 배, 배, 배웠간디, 배, 밴츠여. 밴츠가. 차, 차, 참말로. 그, 그럼, 처, 처, 천천히 와.

 자전거를 타고 바람으로 멀어지는 진수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여자의 온몸이 간지러웠다. 옻독이 참 독했다. 

이전 03화 물고, 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