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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에덴 0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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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헌용 Nov 16. 2022

물고,
기,

1

 바지춤을 끌어올리다 말고 여자는 고무줄을 늘려 속옷을 바라보았다. 지나가는 남자 하나가 고개를 돌려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가는, 거참 허허, 헛웃음을 토하며 배시시 멀어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여자는 아랑곳없이 고개를 삐죽 내어빼고 제 속을 빤히 흘겼다. 

 아이고 내가 이놈의 상판 때문에, 상판 때문에, 이. 너 지금 길거리서 넘사스럽게 뭔 지랄이다냐?

 지청구를 듣고서도 여자는 한동안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속옷을 바라보았다. 

 언니, 언니! 내 빤쥬 말여이. 너무 촌스럽지 않어?

 바지 고무줄을 쭉 늘인 채 속이 보이게 해서는 여자가 언니를 향해 콩콩 토끼뜀을 하며 다가섰다. 

 아, 뭐혀, 이 년아? 

 여자의 손등을 찰싹 내리치고 언니가 말을 이었다. 

 야야, 니가 지금, 아이구 야. 이 썩을 년아, 니가 지금 놈자 생각 안나는 주사 맞으러 왔어야. 근디, 여서 꽃빤스 입고 의사 선생이라도 꼬실텨? 응, 꼬실테여? 아따 참말로, 니는 도대체가 언제 철이 들래?

 아이구아이구, 한숨을 토하며 걸음을 돌렸던 언니가 고개를 다시 돌릴 때까지 여자는 그대로 서서 속옷을 흘겼다. 아따, 언능 오랑게! 언니의 목소리가 구름을 흔들어도 여자는 닭목처럼 길게 늘인 고개를 갈무리할 줄 몰랐다. 아따, 이 년이 참말로. 언니가 손을 높이 치켜세우며 달려들고서야 여자가 겨우 바지 윗단에 두었던 손을 거두었다. 툭하고 이불 터는 소리를 내며 바지가 몸에 달라붙었다. 

 왜에! 왜, 자꾸 뭐라 그래? 촌스러 죽겠구만.

 야, 이 년아 병원서 누가 니 빤스보고 자빠졌대? 왜 자꾸 지랄이여 지랄이?

 그게 아니고 언니, 에이 몰라. 그래도 주사 맞을텐디 챙피스럽잖여…… 언니, 이따가이, 바로 들어갈텨? 시장에 좀 가자. 나 돈도 좀 뽑아주고, 응.

 언니의 팔짱을 거칠게 잡아 끼며 여자가 말꼬리를 흘렸다. 

 에이구, 참말로 내가 말을 말아야지. 돈은 또 왜?

 아니, 시장에서 빤쥬도 좀 사고, 응. 언니 것도 나가 살텡게, 응. 긍게 언니 나 돈 좀 찾아주라. 백만…… 원이면 되나? 

 미친 년, 무슨 금빤스를 입간디 백만 원이여. 몰러, 니 돈 니가 찾겄다는디. 이따가 십만 원 찾아줄거마. 나도 장도 볼거 있고이.

 구름을 벗어난 햇살이 여자의 얼굴을 비췄다. 식당을 처음 찾아왔던 날, 여자는 꼭 저런 얼굴을 하고 있었다. 예닐곱 해 전 어느 늦은 봄날, 여자가 슬며시 식당 문을 열고 들어섰다. 미주알고주알 말 한마디 없이 식당 주인을 향해 씨익 한 번 웃어 보이고 여자는 주방 개수대에 쌓여 있는 설거지를 하기 시작했다. 마을이 미군 부대에 편입된다고 하더니 사람들이 하나둘 떠나기 시작하더니, 식당에는 파미 마저 한 마리 날리지 않았다. 오늘이나, 내일이나, 어제나 오늘이나, 그래저래 문을 닫으려던 식당에 손님들이 다시 찾아든 것은 가까운 곳에 골프장이 생긴 뒤였다.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고막손이라도 빌려야할 판이었다. 여기저기 일손을 구한다는 말을 풀어놓아도 워낙 외진 마을이라 찾아오는 이가 없었다. 누군가 여자를 데려다 부리라고 했지만 마음에 놓이지 않았다. 바다에 나가 남편이 죽고, 몇 해 전에는 아들이 산에서 목매달아 죽은 뒤로 마음 한 곳을 먼 곳에 보내고 헤헤 웃으며 살아가던 여자였다. 그런 여자를 가게에 둘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커다란 눈을 망둥이처럼 치켜 뜬 여자를 주인은 차마 내칠 수가 없었다. 

 저기, 어, 언니, 나 여기서 일할래. 저기 복자 언니가 여기서 일하래. 사람 필요하다며. 맞지? 히이. 그치? 히이. 나, 그냥 밥만 먹여주라. 

 밥만 먹여주라던 여자는 그날 밤부터 식당 한쪽에 이불을 펴고 잠을 자면서 주인과 한 식구가 되었다. 

 송해경 씨, 송해경 씨 들어오세요.

 간호사가 여자의 이름을 불렀다. 여전히 히죽 웃고 있는 여자의 손을 붙들고 언니가 진찰실 문을 열었다. 미친 년, 병도 병도 지랄 같은 병을 가지고 저리 좋다거니, 이. 언니는 속으로만 생각하며 여자를 의사 앞에 앉히고 그 뒤에 섰다. 송해경 씨, 좀 어떠세요? 의사의 물음에 멀뚱히 앉아 있던 여자가 갑자기 버럭 소리를 질렀다. 

어떻긴 뭔가 어때! 병도 아니람서 맨날 똑같고, 암시랑도 안허담서 주사를 맞으라 하고. 나, 그거 안 맞을래? 

 지난 봄, 아픈 곳도 없이 여자의 몸이 화끈화끈 달아올랐다. 머리만 땅에 닿으면 세상 모르고 쿨쿨 코를 골던 여자가 며칠씩이나 잠들지 못하고 이리저리 온몸을 뒤척였다. 걷다가 걷다가 지쳐 쓰러지면 잠이 오려나, 여자는 온몸이 다 젖어들도록 밤안개 속을 걸었지만 정신은 외려 은하처럼 맑았다. 

 암시랑도 안허요. 그냥 주사나 한 대 맞고 가면 쓰겄네요. 

 언니를 남으라던 의사는 여자에게 그렇게 말을 했었다. 암시랑도 안허담서 주사를 맞고 가라는 의사의 말을 여자는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그건 마치 수수께끼와 같았다. 아침이면 다리가 넷이고 낮에는 둘이었다가 밤이면 셋이 되는 동물, 그것이 어떻게 사람일까, 여자는 알 수 없었다. 

 그럼 넌 아침에는 다리가 넷이 되는 거야.

 아니, 그게 진짜가 아니고, 수수께끼라니까, 수수께끼.

 묻고 대답하기를 여러 번 되풀이 하는 동안 여자는 동무들로부터 멀어졌다. 아침이나 낮이나 밤이나 여자의 다리는 둘이었다. 아침은 아기를 말하는 거잖아 바보야, 쯧쯧 혀를 차는 동무의 말을 어거지로 받아들이려 해도 지팡이를 발이라고 부를 수는 없었다. 지팡이는 분명 사람의 몸이 아니었다. 다만 어딘가에서 빌려 오는 것뿐이었다. 그런데도 아무렇지도 않게 발이 된다고 말하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그뿐이 아니었다. 글자들은 어떻게 하나가 되어 소리를 내는지, 또 그것들은 왜 세상의 모든 것을 함부로 종이 위에 옮겨올 수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여자에게 별은 작고 예쁜 무엇이었다. ‘별’이라 부를 때면 별은 어두운 밤하늘에서 슬며시 제 몸을 흔들며 반짝였다. 그러나 종이에 쓰인 별은 빛나지도 이쁘지도 않았다. ‘봄’이 오면 여자는 세상의 모든 것들이 보미보미 봄봄, 깨어나는 소리를 들을 수가 있었다. 그러나 종이 위에 아무리 많은 봄을 써봐도 일어나 기지개를 켜는 것은 없었다. 종이 위에 쓰인 글자들은 그저 어미말과 아기말 몇 개의 조합일 뿐이었다. 그런데도 동무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그것들을 읽고 쓰고 노래했다. 세상의 것들을 자꾸만 자꾸만 종이 위에 옮기려는 학교가 여자는 싫었다. 아침이면 학교에 가지 않고 선착장에 나가 섬 밖으로 떠나는 사람들을 무람없이 바라보았다. 종이에 ‘달’이라고 쓰는 법을 배우지 못한 여자는 달그림자를 가슴에 담아야 했다. 달그림자가 기우는 곳으로 떠나는 사람들을 따라 섬을 떠나고 싶었지만 마음뿐이었다.  

 순대 한 봉지, 과자 몇 개 사들고 집에 돌아와서야 몸에 무슨 병이 생겼는지를 들었다. 온몸에 열꽃이 피웠다 지는 것도, 잠이 안와 시간을 애벌레로 갉아먹는 것도, 아랫도리에서 한 달 삭힌 홍어 냄새가 나는 것도 다 병 때문이라고 했다. 

 근데 언니, 왜, 남자 생각허믄 안 되는 거야?

 몰러 이년아, 내가 너 때문에 넘사스러워서······ 

 여자를 타박 놓다가 언니는 흔들리던 작은 손수레가 생각나 얼굴을 붉혔다. 작은 손수레 하나 남겨두고 영영 가버린 영감은 하늘 어느 곳에서 또 바람을 피우고 있지나 않을까. 그, 그라믄, 성, 병은 아니지라. 그, 병이 냄새가 심하다고 해사요? 여자를 내보내고 언니가 조심스레 물었다. 아니, 아니, 성병은 아니고요. 오히려 남자랑 관계가없적어서. 음, 호르몬은 계속 분비가 되는데 그걸 해소를 못하니까, 그게 쌓여서 좀 냄새가 독하게 나는 사람들이 있어요. 일종의 암내라고 생각하면. 의사가 잠시 말을 멈추고 딱딱 볼펜을 책상에 찍었다. 그 사이 언니가 다시 얼굴을 붉히며 물었다. 그러면 남자하고 거시기 뭐냐, 긍게, 그, 서방 없는 여자들은 다 저런다요? 의사는 건방을 섞어 말을 받았다. 아니, 다, 그런 건 아니고, 그러니까 호르몬이 지나치게 많은 사람들이 간혹 있어요. 응, 그니까 그게, 음, 해소가 안 되니까 이런저런 부작용이 생기는 거지. 냄새도 그렇게 몸에 열도 그렇고 그게 다 부작용이거든. 뭐, 요즘 그딴 거 병도 아니에요. 두어 달에 주사만 한 대 맞으면 되니까. 근데 그게 보험도 안 되고 그래서 조금 비싸요. 어떻게 놔드릴까? 언니는 잠시 망설이다가는 고개를 끄덕였다. 

 언니를 두고 진찰실을 나서면서 여자는 섬을 떠나고 처음으로 마당 한 켠에서 바람을 견디던 산수유나무를 떠올렸다. 굽은 등으로 산수유 열매를 주워 강정을 만들어주던 할머니, 이제 다시는 먹을 수 없을 할머니의 강정을 생각하다가 여자는 침을 훔쳤다. 강정 말고는 달콤한 기억이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할머니, 걸핏하면 매질을 하다가는 저 혼자 울고불로 난리를 피우며, 죽어라 이 년아, 차라리 나가 죽어라 이 년아, 욕을 퍼붓던 할머니는 오래 전에 잘도 죽었겠지, 까닭도 없이 히죽히죽 웃음이 나왔다. 오랜만에 나온 나들이가 좋아서 여자는 주사가 아픈 줄도 몰랐다. 링거를 맞는 동안 그새 침대 옆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는 언니를 보며 여자는 또 히죽히죽 웃음을 흘렸다.

 그러나 그뿐 여자의 병은 쉬 치료되지 않았다. 남자 손님들을 보면 헤픈 웃으을 흘렸고, 잠결에는 슬금슬금 언니의 몸을 더듬고는 했다. 서너 번 달이 기울었다 차면 여자는 다시 병원에 다녀오곤 했다. 병원에 다녀오면 며칠씩이나 무담시 하품이 나오고 졸지 않으려 해도 눈은 자꾸만 감겼다. 죽어가는 낙지처럼 온몸에 힘이 하나도 남김없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디 뭐가 어떻긴 어뗘? 만날 힘만 빠지고. 병도 아니람서, 만날 아픈 주사만 맞고. 나, 그거, 안 맞을텨. 어, 언니. 나, 안 맞을래, 응?

 갑작스런 소란에 의사 보다 언니가 더 놀라 어쩔 줄을 몰라 허둥거리다가 여자의 손등을 꼬집었다. 아, 아, 아파. 왜 그래? 여자의 고함을 듣고서 이번에는 손등을 찰싹 내리치고 언니가 말을 꺼냈다.  

 아이고야, 이, 이년이요. 너, 그러면 돈이고 뭐고, 시장이고 뭐고 없어야. 알았어? 

 아, 알았어. 마, 맞으면 되잖아, 맞으면.

 그제야 여자는 시르죽은 강아지처럼 얌전해졌다. 의사가 몇 가지 더 묻는 사이, 어, 네네, 건성으로 대답하던 여자가 갑자기 얼굴을 붉히며 앉은 채로 바지 윗단을 늘려 누런 속옷을 바라보았다. 허험, 험. 의사의 마른기침 소리가 진찰실을 가득 메웠다. 여자의 얼굴에 붉은 꽃이 활짝 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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