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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에덴 0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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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헌용 Nov 16. 2022

에덴

2

  떡만두국을 다 먹고 나면 남자는 세 번째 여자와의 시간을 만들어야 했다. 그러나 더 이상 이야기가 떠오르지 않았다. 얼결에 죽였던 두 명의 여자와는 달리 남은 두 명의 여자를 어떻게 죽여야할지가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남자는 이야기를 잘 하지 못했다. 처음 만난 사람 앞에서는 한참을 더듬거려야 겨우 말본새를 갖출 수 있었다. 그나마 첫 번째 두 번째 여자는 조서를 꾸민다며 잠바가 몇 번씩이나 불러주었던 이야기였다. 서혜림이를 어쩌고 저쩌고 그렇게 니가 죽였잖아, 응! 그리고 육개월 뒤에 여론이 어쩌고 조용해질 때를 저쩌고 해서 길라임을 죽이고 말야. 이 씨발 새끼야, 응? 그때마다 남자는 절대 아니라며 고개를 흔들었고 어김 없이 잠바는 주먹과 욕소리를 날려보냈왔다.  

 떡만두국이 물러나고 남자는 다시 벌벌 떨며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아, 씨발 새끼가 또 지랄이네, 얼마 동안은 가만히 남자를 바라보던 잠바가 다시 일어나 남자의 머리통을 후러갈겼다. 목 안에 걸려 있던 떡 한 조각이 남자의 기도를 막았다. 한 동안 숨을 쉬지 못하고 컥컥거리며 사레를 몇 번씩이나 뱉어내던 남자의 머릿속에 문득 살인의 추억, 강원도의 힘, 올드보이, 홀리랜드, 괴뢰사, 그런 영화나 만화책들이 떠올랐다. 그저 심심풀이로나 쓰일까 쓸모라고는 없다고 생각했던 많은 것들이 남자에게 갑자기 큰 축복으로 다가왔다. 

 세 번째 여자는 기차에서 만난 것으로 하기로 마음 먹었다. 완행열차 역방향 통로에 앉아 남자는 멀어지는 시간들을 바라보며 맥주를 홀짝거렸다. 맥주를 탁자에 내려놓고 사진기를 만지작거릴 때 멀어졌던 밀차가 다가왔다. 여자가 그걸 부르려고 손을 뻗다가 맥주를 건드렸다. 콸콸콸, 남자의 바지에 남은 맥주가 쏟아졌다. 여자가 어쩔 줄을 몰라 손가방을 열어 휴지를 빼들었다. 이미 바지가 축축히 젖은 뒤였다. 화장실로 가서 남자는 바지를 벗고 살까지 스민 맥주를 닦아냈다. 까닭도 없이 아랫도리가 불끈 솟아올랐다. 수음을 하고 나왔을 때 여자가 손수건을 들고 다소곳이 서 있었다. 여자를 지나쳐 돌아왔을 때 자리에 아무렇게나 놓았던 사진기가 없어졌다. 


 더듬거리던 남자의 말이 그 즈음 슬슬 잘도 풀려나왔다. 이야기가 아니었다면 가장 아끼는 사진기를 그렇게 아무렇게나 내팽게칠 리가 없었다. 그러나 아무려나 좋았다. 잃어버린 사진기가 퇴직금을 받고 산 몇 백만 원짜리 사진기라 해도 그건 다만 이야기일 뿐이었다. 그 덕에 남자는 여자와 같이 기차에서 내리게 되었다. 승무원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사진기를 잊어버렸다는 말에 도난 등에 대한 모든 책임은 탑승객에 있다고 했다. 기차를 세울 수도 늦출 수도 없다고 잘라말한 승무원은 다른 객차로 걸음을 옮겼다. 기차가 정차했고 남자는 서둘러 짐을 챙겨들고 내렸다. 매표소로 달려갔지만 많은 사람들은 이미 매표소를 빠져나간 뒤였다. 모든 사람들이 매표소를 빠져나가고 나서야 남자는 뒤를 돌아보았다. 여자가 그곳에 서서 열차가 토해놓은 바람으로 흔들렸다. 

 죄, 송해요. 저 때문에.

 아니에, 요. 그냥, 뭐. 거기까지 말하고 남자는 한참 말없이 한숨만 토해놓았다. 그러다가 여자에게 불쑥 술, 좋아해요? 물었다. 여자는 우물쭈물 말이 없었다. 나가서 술이나 마셔요, 다시 말을 잇고 남자는 여자의 여행가방을 끌었다. 여자가 남자를 따라 내리지 않았다면 여자는 살아있을 터였다. 사랑에 웃고 이별에 울고 돈을 아껴 쇼핑을 했을 터였다. 그러나 바람으로 흔들리는 여자를 보며 남자는 여자의 벗은 모습과 벗은 여자 안으로 들어가는 남자와 마침내 태초의 상태로 돌아가는 숭고한 죽음에 대해서 생각했다. 

 야이, 씨발 새끼가. 아주 소설을 쓰네. 소설을. 얌마, 죽음이 숭고해? 그럼, 씨발 새끼야, 너 같은 놈 사형시키는 것도 숭고냐, 이 씨발 새끼야, 옛날 같아야 평생 강제 노역이나 시키지 씨발. 너 같은 놈 깜방에 가두고 밥 먹이고 사형 시키고 이런 모든 게 다 세금 낭비야 이 새끼야. 알아, 이 씨발 새끼야? 그리고 말야 새끼야, 그냥 한 번 따먹고나 말지, 죽이긴 왜 죽이냐고, 응? 아유, 그냥, 이 씨발 새끼를. 그, 그래서, 그래서, 여자 물건은 다 어디다 버렸어? 

 그, 그게······ 주먹을 들이대는 잠바의 물음에 남자는 쉬 대답하지 못했다. 그런 것들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지 않았다. 여자를 만나고 여자를 강간하고 죽이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그러고보니 왜 여자에게서는 범인의 디엔에이가 검출되지 않았을까? 여자와 함께 술을 마시고 가까운 여관에 들어가 몸을 탐한 뒤 죽였다고 남자는 말하려고 했다. 그렇다면 정액이 남아 디엔에이가 검출될 터였다. 그렇다면 더 정교하고 잔인한 살인자가 되어야 했다. 여자가 잠든 사이 여자를 목졸라 죽이려던 계획도 수정해야 했다. 죽은 여자를 끌고 낙동강 어느 곳까지 가기는 아무래도 무리일 터였다. 남자가 이저런 생각에 말을 잇지 못하자 잠바가 다시 서류철을 들어 남자의 머리통을 휘갈겼다. 잠바는 이어 문밖을 향해 누군가를 불렀다. 

 나 사우나 좀 다녀올테니까 이새끼 못 자게 지켜. 잠바는 또 다른 잠바에게 그렇게 말하고 나가버렸다. 사우나의 뜨거운 물이 남자의 머릿속에서 몽글몽글 피워올랐다. 아직 남자가 스스로를 대단하다고 생각할 때, 광고회사에서 밤을 세우고 나면 으레 사우나에 들어가 몸을 풀고는 했었다. 쪽잠으로 피로를 달랬던 날들이 꿈결처럼 아득하게 다가왔다. 찌든 땀을 마음껏 씻어낼 수 있었던 날들, 그런 날들이 행복이었을까? 나는 이제 어떻게 되는 것일까? 사형을 선고 받겠지, 그런데 내가 왜 죽어야 하지? 알리바이를 입증해줄 사람들이 없다는 것이 잘못이라면 잘못이었다. 직장에 다니고 매일매일 출근을 했다면 지금 이곳에 있었을까? 백 원짜리 동전을 빼기 위해 손가락에 힘을 주지 않았다면. 누군가 길거리에 할인점 카트를 버려두지 않았다면······      

 문득, 여자의 정액도 감출 수 있는 방법이 떠올랐다. 여자를 옮기기 위해서는 차를 훔치면 될터였다. 그 때 갑자기 또 다른 잠바의 발길질이 시작됐다. 

 웃어, 웃어! 좆만 새끼가 뭘 잘했다고 웃어.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남자는 콧물과 침을 범벅으로 흘리며 까닭도 없이 빌고 빌었다. 강간을 당하고 목졸려 죽은 여자도 자신과 크게 처지가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남자는 생각했다. 그리고 남자는 어서 빨리 잠바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죽기 전에 여자도 누군가를 기다렸을까? 누구였을까? 

 흔적을 지우기 위해서 남자는 여관 욕조에 물을 받아 죽은 여자를 담갔다. 차를 훔쳐 돌아왔을 때 여자는 퉁퉁 보기 좋게 불어 있었다. 여자를 옆에 끼고 남자는 여관을 빠져나왔다. 갈대숲이었던 낙동강 하구는 사대강 사업으로 제 속을 뒤짚어 놓았다. 굴착기가 훑고 지나간 땅은 파기도 좋았다. 남자는 여자를 쉬 땅에 묻고 돌아섰다. 여자의 물건들은 서울로 돌아와 서울역 노숙자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몇 번이나 들으며 남자는 지하도를 빠져나왔다.      

 이제 남은 것은 마지막 여자였다. 윤하나, 열여덟, 꽃처럼 아름다운 나이. 차라리 듣지 않았어야 했다. 세 번째 이야기를 맞쳤을 때 잠바가 다시 한 번 서류철을 들었다. 이 씨발 새끼, 다른 여자들은 그렇다쳐도 이 씨발 놈아 이제 열여덟짜리 그 어린 것은 또 왜 죽였어, 응? 남자는 말문을 잃었다. 지금이라도 아니라고 말할까, 모두 거짓이라고. 태양처럼 밝은 빛이 무서웠다고 말하면 어떨까. 무심히 달려드는 주먹질과 발길질이 무서워 거짓을 말했노라면 잠바는 어떤 행동을 할까? 남자는 상상하기도 싫었다. 정말이지 그 어린 나이에 여자는 왜 죽어야만 했을까? 무엇이 여자를 죽음으로 내몰았을까. 남자는 다시 생각하다가 뒷통수를 얻어맞았다. 

 이 씨발 새끼가 그래도 정신 못차리고 조내. 야야, 빨랑 끝내고 가자, 응.

 아침일까, 점심일까, 저녁일까, 며칠 만에 얻어먹은 따뜻한 한 그릇의 식사가 남자를 자꾸만 졸립게 만들었다. 남자는 다시 한 번 여자를 죽이기로 마음 먹었다. 여자가 어리지 않다고 해도 달라지는 것은 하나도 없을 터였다. 이미 여자는 죽었고 남자는 남아 그 여자의 이야기를 만들어야 했다. 원조교제를 했던 것으로 할까, 남자는 그러나 가난했다. 그렇다면 또 어디서 어떻게 그 어린 여자를 만날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뉴스에서 보았던 어느 자살 사이트가 떠올랐다. 인터넷 한 귀퉁이에서 만난 남자와 열여덟의 어린 그녀는 며칠 남지 않는 날들을 서로 사랑하기로 마음먹었다. 작고 부드러운 등을 남자의 등에 맞대고 어린 그녀가 참새처럼 재잘거렸다. 가끔은 하시시를 피우며 킥킥, 며칠씩이나 웃음으로만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모텔을 빠져나오는 두 사람의 몸이 나비처럼 가벼웠다. 하늘거리는 발걸음 사이, 꼴깍, 잠바의 침 삼키는 소리가 날아왔다. 남자는 잠시 말을 멈추고 하얀 방에 한숨을 더해놓았다. 웬일인지 잠바의 주먹이 날아오지 않았다. 다시 한 번 침을 꼴깍삼키고 잠바가 남자에게 물을 건넸다.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둘은 하릴도 없이 거리를 쏘다녔다. 어린 그녀 때문에 가끔은 술집에서 쫓겨나기도 했다. 그때마다 그녀는 입을 삐죽거리며 발을 세워 통통 딱딱한 땅을 두드렸다. 그녀가 교복을 입고 나온 어느 날, 바다를 보러가자고 했다. 우리 회 먹을러 갈래? 부산 가자. 남자가 말했고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고속열차는 시간을 쪼개 금세 남자와 그녀를 자갈치 시장에 데려다 놓았다. 회를 먹는 두 사람 사이에 벚꽃잎 몇이 날아와 떨어졌다. 그녀가 갑자기 크게 웃기 시작했다.

 시시해. 산다는 거 참 시시하다, 그치? 아저씨, 아저씬 사람 죽여봤다며, 기분 어때? 나도 죽기 전에 그 기분 알고 싶다. 아저씨, 내가 죽여줄까? 

 분분, 그녀가 흘려놓는 말들이 벚꽃으로 흩날렸다. 

 아저씨, 나 좋아하지? 나 사랑하지?

 밀물이 들 때마다 그녀도 밀물로 남자에게 들어섰다가 썰물을 따라 멀어졌다. 가끔씩 약에 취한 그녀가 웃음을 멈추고 그렇게 물었다. 남자는 대답 대신 작은 방에 큰 한숨을 더했다. 세상이 시시해서 죽고 싶다는, 사랑하는 사람을 죽이고 자기도 따라 죽을거라는 어린 그녀에게 남자는 마침내 죽음을 선물하기로 마음 먹었다. 두 사람은 갈대가 많은 낙동강 하구를 걸었다. 갈대 사이로 달빛이 쏟아졌다. 다시 한 번 밀물로 들어서는 남자는 어린 여자의 목을 맡겼다. 오래지 않아 남자의 온몸이 축 늘어지고 눈이 하햫게 풀렸다. 그럴수록 여자의 손에 한결 더 많은 힘이 들어갔다. 문득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온힘을 다해 목을 누르는 어린 그녀를 밀어냈다. 그녀의 손톱이 목덜미를 훑고 지나갔다.      

 달빛 아래 잠든 어린 그녀를 두고 돌아서면서 자백은 끝이 났다. 야야, 고생했어. 진작에 이랬으면 다 좋아잖아, 응. 잠바가 남자의 어깨를 두드리고는 잠시 방을 비웠다. 한숨을 토하며 남자는 하얀 방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태양처럼 밝게 빛나는 불빛들이 아프게 눈을 쪼았다. 단 한 명의 여자도 죽이지 않았지만 네 명의 여자를 죽여야 했던 남자는 자신의 남은 이야기가 쉬 떠오르지 않았다. 교도소에 갇혔다가 교수형에 처해지려나, 굵은 동앗줄이 목을 조르는 느낌은 어떤 것일까? 죽기는 싫은데, 아무리 시시해도 남은 이야기를 풀어놓고 싶은데, 아니 어쩌면 이쯤에서 이야기가 끝이 나는 게 좋을까. 남자는 덜덜덜 떨리는 손을 들어 자신의 목을 힘껏 졸랐다. 아득한 정신 속으로 잠바의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남자의 눈에 풍경 하나가 들어왔다. 남자를 사진 찍게 만들었던 낡은 흑백 사진 속에 허름한 풍경이었다. 야, 뭐야, 저새끼 왜 저래. 손 뗘, 손 띠라고······ 잠바가 뛰어들고 또 다른 잠바가 뛰어들고 또 다른 잠바가 뛰어들고. 

 낮은 언덕 위 카다란 나무 붉은 열매처럼 매달려 있던 여자들이 바람에 흔들리다 떨어지고, 떨어진 여자들이 다가섰다 멀어지고. 한 번도 본적이 없는 네 명의 여자들은 그러나 너무도 낯이 익은 모습으로 춤추며 다가섰다 멀어졌다. 웃고 있는 여자들, 꿈을 꾸고 있는 것일까. 저 꿈 속 어느 내가 여자들을 죽였을까, 남자는 생각했다. 켁켁거리던 남자가 의자와 함께 옆으로 고꾸라졌다. 





각주(밑줄 친 부분)


4) 국가안전기구의 기록과 남자의 진술에는 몇 가지 차이점을 보이고 있다. 땅에 여자를 묻고 왔다고 남자는 진술했으나 국가안전기구의 기록에는 낙동강 하구에서 여자를 발견한 것으로 나타난다. 사대강 사업 끝난 낙동간 현장은 이미 땅이 굳은 지 오래였고, 그곳에서 여자의 사체가 발견된 곳까지는 최소 14Km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사체에 대한 검시에서도 차이점을 보인다. 죽은 뒤 물에 담가졌다는 여자의 사체 어느 곳에서도 물과 관련된 반응은 보이지 않았다. 다만, 남자가 죄를 인정하기 이전인 국가안전기구 201811 -이브-김-32 이후 기록에는 남자의 진술과 같이 여자에 대한 부분이 변경 기록되었다. 남자의 범행을 입증하는 국가안전기구 측 증인들 역시 일반적인 증인들과는 많은 차이를 보인다. 일반 범죄의 경우 주민등록 등과 같은 국가 행적 기록이 조회되지 않는 노숙인을 증인으로 세우지 않는 것이 관례이다. 그러나 3명이 전부였던 국가안전기구 측 증인들은 모두 서울역 지하도 노숙인으로 밝혀지고 있다. 남자의 증언에 따라 이곳저곳을 탐문했으나 남자를 보았다는 증인은 나타나지 않았던 것이다. 이상 국가안전기구 에덴프로젝트 범죄인 기록부 201811 -이브-김-32, 국가안전기구 에덴프로젝트 범죄인 기록부 201811 -이브-김-46 비교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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