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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에덴 0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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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헌용 Nov 16. 2022

에덴

1

하얀 방에 버려진 뒤 시간이 멈춰버렸다. 하얀 어둠 뿐, 하루에 한 번 빵 한 조각과 물 한 잔이 쪽문을 통해 건네질 때 길게 혀를 빼어문 빛이 잠시 기웃거렸다. 남자는 그것으로 하루하루를 가늠했다. 며칠이 지났을까? 한 달, 보름, 닷새. 닷새를 세었나 이레를 세었나, 몰려드는 졸음 속에서 모든 것이 꿈결처럼 아득해지더니 마침내 시간이 지워졌다. 사나흘이 더지나면서 남자는 태양보다 더 밝게 내리쬐는 불빛 아래서도 졸 수 있게 되었다. 잠바의 주먹질이 시작된 것은 바로 그때부터였다. 

 참아야지 참아야지, 허벅지를 있는 힘껏 꼬집으며 마음을 다 잡아도 졸음은 자꾸만 밀물처럼 밀려들었다. 꾸벅꾸벅, 졸다 깨어 남자는 온몸을 고슴도치처럼 옹송그렸다. 기다렸다는 듯이 남자의 머리에 두꺼운 서류철 모서리가 날아와 박혔다. 이 씨발 새끼가 그래도 정신 못차리고. 잠바는 언제든지 또 다시 남자를 내리칠 수 있다는 기색으로 그렇게 말하며 손바닥을 들어 툭툭 남자의 얼굴을 건드렸다. 

 졸려? 이 씨발 새끼야, 졸리냐고? 팍! 쯧쯧. 그러니까 이 새끼야아, 그냥 빨랑 불고 우리 편히 가자, 응. 너나 나나 며칠 째 무슨 짓이냐고, 응. 나도 이제 집에 가서 마누라 얼굴도 좀 보고, 응.

 잠바는 머리를 긁적이고 나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자자, 다시, 응. 담배 연기에 한숨을 보태며 잠바는 말을 이었다. 남자는 잠바의 말을 모두 외울 정도였다. 그러나 도무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내가 정말 사람을 죽였을까? 정말 내가 여자들을 강간하고 낙동강 하구 어느 쯤에 버려둔 것일까? 남자는 생각했다. 여자가, 아니 여자들이 죽었다던 한 해 동안, 남자는, 그러나, 낙동강은커녕 가까운 한강에도 한 번 나가지 않았다. 남자는 어두운 방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거나 허름한 만화방에서 시간을 좀 먹을 뿐이었다. 아무리 말해도 잠바는 도무지 믿으려 하지 않았다.  

 자자, 이번이 마지막이야, 응. 김수철, 알았지? 그러니까 김수철 너는 말야, 낙동강 일원에서 일어난 총 네건의 강간 살해를 그냥 인정하면 된다 이 말이야. 자, 여기 국과수에서 보내온 증거도 있잖아. 응. 김수철, 니 디엔에이하고 부산 일원 강간 살해범의 디엔이에이가 완벽하게 일치하잖아. 그런데도 왜 자꾸 오리발이야, 응. 자, 이제 말해봐, 서혜림, 길라임, 김삼순, 윤하나, 이 여자들 왜 죽였어?


 왜 죽였을까? 남자는 다시 밀려드는 졸음을 참으며 생각했다. 국립과학수사대에서 보내왔다는 서류에는 남자의 디엔에이와 범인의 디엔에이가 일치한다고 나와 있었다.  

 아, 아니, 나, 그거 디엔에이인지 뭔지 조사하지도 않았잖아요. 어떻게 하지도 않는 디엔에이가 범인하고 이, 일치를 해요. 일치를.  

 남자가 말했을 때 잠바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의자에 앉아 있던 남자를 넘어뜨려 복날 개처럼 팬 뒤에 다시 입꼬리를 올리며 잠바가 말했다.  

 허, 허허. 이 씨발 놈아, 에이구 그래요. 한 번도 검사를 해 본적이 없어요, 이 씨발 새끼님. 당신 같은 분들 땜에 국안기가 있는 거라고요?

 남자는 고슴도치처럼 온몸을 말고 잠바를 쳐다보았다. 고슴도치의 가시에 찔린 것은 그러나 잠바가 아니었다. 온몸이 자꾸만 욱신거렸다. 남자는 가물거리는 정신의 끈을 기어이 놓고 말았다. 

 이봐 김수철 씨. 당신이 그 동안 어찌 숨어다녔는지 모르겠지만 말야, 이제 디엔에이가 있으니까, 응. 이 부인할 수 없는 결정적이고 과학적인 증거가 앞에서 김수철 씨 당신도 더 이상 어쩔 수가 없어요. 예, 알았죠, 김수철 씨. 

 남자가 일어났을 때 잠바는 양복을 입은 다른 누군가 뒤에 서 있었다. 양복은 잠바에게 몇 가지 묻고는 문을 열고 나갔다. 그리고 며칠 째, 혹은 몇 시간 째 잠바는 남자에게 같은 물음을 던져 놓았다. 잠바에게 남자는 틀림없는 범인이었다. 

 니가 죽인게 맞지? 왜 죽였어? 

 졸다 깰 때마다 잠바는 남자의 머리통을 북처럼 두드렸다. 그때마다 어쩌면 자신이 정말로 여자를 죽였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점점 커져갔다. 마침내 남자는 자신의 죄를 잠바에게 인정하기로 했다. 어서 빨리 이 지랄같은 상황에서 벗어나 천근 같은 눈꺼풀을 내려놓고 싶었다.


 오, 그래, 진작에 인정했음 우리 서로가 좋았잖아, 응. 

 잠바는 천사 같은 얼굴로 남자에게 담배를 내밀며 배고프지 않느냐고 물었다. 콜록거리며 남자는 떡만두국이 먹고 싶다고 했다. 

  응. 그래, 그럼 시작하자고······ 자, 김수철, 나이, 서른 넷. 직업은 무직.

 두 번째 여자를 목졸라 죽였을 때 떡만두국이 들어왔다. 낙동강 하구에서 남자는 다시 작은 방으로 돌아왔다. 만두를 두 조각으로 가르며 남자는 세 번째 여자를 또 어떻게 죽여야할지 생각했다. 네 명의 여자들이 강간을 당한 뒤 목졸라 죽었다고 했다. 정액은 검출되지 않았지만 네 번째 여자의 손톱 밑에 범인의 피가 묻어 있었다고 했다. 그 피에서 검출된 디엔에이와 남자의 디엔에이가 일치했다. 

 그러나 여자들이 죽었던 지난 일 년 동안 단 한 차례도 낙동강에 다녀오지 않았다. 하나로 뭉쳐버린 네 조각의 떡을 우겨넣으며 남자는 지난 일 년을 떠올렸다. 88만원 세대가 부러운 일 년이었다. 그래도 제법 잘나가는 광고회사에 취직해 사진을 찍었던 남자는 회사가 합병되면서 일자리를 잃고 말았다. 그때만 해도 남자는 퇴직금이 고맙기만 했다. 예술을 한답시고 남자는 서울 외곽에 스튜디오를 차려 사진을 찍었다. 남자는 그러나 일 년을 버티지 못했다. 예술도 삶도 남자에게 버겁기만 했다. 다시 또 일 년을 허송 세월로 보내야 했다. 일에서 손을 놓았던 남자가 다시 잡은 일은 외국 관광책을 만드는 영세 출판사였다. 남자는 대처로 떠도는 것이 좋아 일을 맡았다. 장비와 경비를 남자가 대고 프로젝트가 끝날 때 얼마간의 큰돈을 받기로 했던 조건이었다. 외국에서 반 년을 보내는 동안 남아있던 보증금에 빚까지 얻었지만 일을 마무리 짓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서른이 훌쩍 넘어 있었다. 다시 이력서를 쓰려고 했지만 남자의 나이는 이미 사원 모집에서 요구하는 최고령을 지나 있었다. 어쩌다 누군가 펑크낸 일자리를 하이에나처럼 쫓으며 남자는 하루하루를 견뎌냈다. 그러나 남자 보다 젊고 유능한 사람들은 하루가 멀다하고 늘어났다.      

 남자가 경찰에게 잡혔던 날에 선배로부터 갑작스레 전화가 걸려왔다. 아침부터 불콰하게 술에 절은 목소리로 결혼 사진을 찍을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일당 십 만원, 이삼십 만원짜리 일을 후배들에게 후려친다는 소문이 많은 선배였지만 아무려나 좋았다. 서둘러 장비를 챙기고 찬물에 샤워를 하고서야 남자는 보름이 넘도록 빨래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갈아입을 속옷이 없어 입고 있던 속옷을 다시 뒤집어 입으려다가 남자는 지릿하다 못해 비리게 달려드는 냄새를 맡아야 했다. 속옷을 빨래통에 집어 던지고 남자는 속옷과 크게 다를 것 없는 때낀 청바지를 입었다. 

 작업을 마치고 남자는 식권을 두 장 받아들었고 결혼식장 입구에 쪼그려 앉아 담배를 물었다. 오래지 않아 기다리던 친구가 며칠 씻지 않았을 모습으로 다가왔다. 두 사람은 뷔페에 들러 일을 맡긴 선배를 욕하며 간만의 만찬을 즐겼다. 선배에게 갔을 이십 만원을 생각하며 맥주까지 알차게 마셨다. 이차를 사겠다며 옮긴 술집을 나서며 남자는 몇 달 전에 정지된 카드를 무람없이 내밀었다. 당연히 결제는 되지 않았고 동무는 욕을 하며 비상금을 꺼내들었다. 홀로 집에 들어가기가 싫어 가까운 편의점에서 주머니를 탈탈 털어 깡통맥주 몇 개를 사들고 찬바람 아래서 술기운을 보탰다. 막차 끊길 시간이 다 되어서야 남자는 비칠거리며 걸음을 옮겼다. 

 집에 가는 마을 버스는 끊겨 있었다. 꿕꿕 트름을 토하며 걸음을 옮기는 남자의 눈에 대형할인점 카트가 보였다. 마트에서 제법 떨어진 큰길이었다. 카트를 지나쳐 걷던 남자가 걸음을 돌려 카트를 밀었다. 할인점에 카트를 가져다 줄 생각이었다. 깡충깡충 큰 걸음을 옮기던 남자의 눈에 백원짜리 동전이 들어왔다. 카트 자물쇠에 박혀 있던 것이었다. 아주 잠깐 걸음을 멈췄던 남자가 발길을 돌려 뛰기 시작했다. 할인점과 한블록 떨어진 길모퉁이에 와서 발길을 멈추고 남자는 엄지와 검지를 집게 만들어 백 원짜리 동전을 빼려고 온힘을 쏟아부었다. 백 원짜리 동전은 그러나 쉬 나오지 않았다. 경적 소리가 돕고 바람이 돕고, 별과 달이 도와도 동전은 나오지 않았다. 씩씩거리다가 남자는 그대로 카트를 끌고 집으로 향했다. 카트의 작은 바퀴가 덜컹거리며 장단을 만들었다. 덜크덩 덩덩, 덜크르르르, 소리에 맞춰 남자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조그맣게 시작된 노래가 점점 크게 골목을 누볐다. 그러다가 남자는 그만 경찰에 잡히고 말았다.     

 남자는 경찰에게 빌고 또 빌고 백 번을 넘게 잘못을 빌었다. 경찰도 백 원짜리 동전 하나를 빼기 위해 카트를 밀고 한 시간 넘게 걸었다는 남자를 훈방 조치하려고 했다. 남자는 그러나 속옷을 입지 않은 게 발각되면서 경찰에게 성범죄 예비 가능자로 몰려 마침내 철창 신세를 져야 했다. 이틀이 지나고 남자는 경찰로부터 가죽 잠바에게 넘겨졌다. 

 잠바로부터 네 명의 여자에 대해서 들었을 때 남자는 여자들의 시간을 더듬었다. 여자들이 강간을 당하며 죽어갈 때 남자는 혼자 어두운 방에 누워 수음을 했을 지도 몰랐다. 어쩌다가 주머니에 돈 몇 푼이 생기면 하루에 칠 천원짜리 만화방에서 만화를 보며 라면을 먹었을 지도 몰랐다. 밀린 방세를 받으러 오는 주인 아주머니를 피해 어두운 방 한쪽에 숨을 죽이고 있었을 지도 몰랐다. 모든 하루하루가 그림자로 일그러졌다. 남자의 시간이 살아난 것은 잠바에게서였다. 잠바는 자꾸만 목격자를 들먹이며 남자의 시간을 만들어나갔다. 그리하여 마침내 디엔에이라는 무시할 수 없는 증거 앞에서 남자의 시간은 남자도 모르는 사이에 새롭게 만들어졌다. 





각주(밑출 친 부분)


 1)국안기 : 정식 명칭은 국가안전기구이다. 2008년 3월, 대통령 령으로 창설됐으며, 종교적 · 도덕적 기반을 바탕으로 하는 국가의 최대 안전을 목적으로 한다.  주요 업무는 전 국민을 감시할 수 있는 시스템 구축에 있다. 그 첫 번째 작업이 국내에서 사용되는 모든 전화의 도청 주파수를 만드는 작업이었다. 다만, 효율적인 업무 수행을 위해 몇몇 요원들에게는 추적이 불가능한 대포폰 사용이 허락되었다. 두 번째 작업이 국내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의 디엔에이 기록화 작업이다. 이를 위해 2008년 8월부터 병의원을 찾는 사람들의 디엔에이를 채취하여 분석하고 기록하였다. 그러나 병원을 찾는 사람들이 많지 않아 이 기구는 국내에 프로논바이러스(pronon-virus)를 전염시키기도 했다. 이런 노력 끝에 2010년 4월 전 국민의 85%에 다다른 디엔에이 샘플을 채취하였다. 이 기구는 이후 미국 나노생명공학자 스티분 호킹 박사의 이론을 바탕으로 하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구성하고 있다. 호킹 박사에 따르면 범죄자의 디엔에이는 일반인들의 그것과는 다른 특별한 구성을 보인다고 한다. 따라서 디엔에이를 분석함으로써 예상 범죄자 관리가 가능하다는 것이 기구의 설명이다. 이 프로젝트의 이름은 <에덴>이다.     


2)남자의 부러움에 대해서는 국가안전기구의 기록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야, 이 씨발 새끼야, 너, 고속열차 타고 왔다 갔다 하면서 사람 죽이고 만화방에 들어가고 그렇게 알리바이 만드거 아냐? 잠바가 남자를 다시 한 차례 후려갈기고 나서 그렇게 말했을 때 남자는 난 케이티엑스를 탈 돈도 없다고 말했었다. 잠바는 남자의 경제능력기록을 살펴보았다. 남자가 지난 일년 벌어들인 돈은 총 3,278,000원이었다. 그 가운데에서 시골 노모를 비롯해서 가까운 지인으로부터 십만원, 이십만원 그렇게 빌리듯이 받은 돈이 총 2,100,000원이었다. 그러니까 지난 일년 동안 남자가 순수하게 벌어들인 돈은 총 1,178,000원에 지나지 않는다 - 이상 국가안전기구 에덴프로젝트 범죄인 기록부 201811 -이브-김-32 참조. 


 3)속옷을 입지 않았다고 사람을 구속할 수 있는 법은 우리나라 어디에도 없다. 그럼에도 남자가 구속된 가장 큰 까닭이 속옷을 입지 않았다는 것이다. 경찰 기록에 따르면 남자는 공연음란죄와 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에 대해서 특별 체포 조치를 받은 것으로 나온다. 남자가 속옷을 입지 않은 채로 노래를 불렀다는 것이 공연음란죄에, 신고를 하지 않고 거리를 행진하며 노래를 불러 사람들을 선동했다는 것이 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죄에 각각 해당한다. 절도죄는 남자에게 단순하게 추가된 죄에 지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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