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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에덴 0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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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헌용 Nov 17. 2022

물고,
기,

3

오른쪽으로 갈팡, 왼쪽으로 질팡, 여자가 가만히 서 있지 못하고 안절부절 어쩔 줄을 몰랐다. 바람이 창문을 거세게 흔들었다. 그때마다 목을 길게 빼고 창밖을 바라보아도 어둠은 쉬 물러나지 않았다. 아, 안자고 뭐해, 이년아. 아직 멀었응게 제발 자야. 벌써 몇 번이나 언니의 지청구를 들었지만 여자는 참지 못하고 식당 한쪽 불을 켜고 앉았다. 아 진짜, 저년이. 에이구, 내가 너를 어찌 말리냐, 이. 쯧쯧. 혀를 차는 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자는 지난밤에 닦아놓은 수저를 무담시 다시 닦으며 시간을 묵새겼다. 

 언니, 열 개씩이라고 했지? 근디 여근 하나가 없네. 어쩔까?

 뭘, 어쩌 이년아. 아, 그냥 자랑께.

 언니가 이불을 덮어쓰며 투덜거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여자는 주방에 나가 숟가락을 하나를 기어이 찾아놓고 다시 마른 행주를 들고 그것들을 닦았다. 식당 안에 모든 수저를 다 닦고 갈팡질팡 서성거리던 여자가 다시 수저를 닦았다. 다시 또 한 번, 그리고 또 한 번, 숟가락이 번쩍번쩍 빛이 날 때쯤에 새벽이 아주 조금 밝아왔다. 

 언니, 언니! 날샜다, 일어나, 응. 언니 날샜당게.

 아따, 참말로. 오늘 하루는 아무도 안 잡아간당게 이년아.

 이불을 잔뜩 끌어안고 누워 있던 언니도 더는 묵새기자 못하고 마른 하품을 하며 일어나 앉았다. 니, 화장했냐? 눈을 비비다 말고 다가와 언니가 물었다. 엉, 이쁘지? 여자가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병원에 갈 때는 아직 멀었는데 잠은 오지 않았다. 바람에 뒹구는 깃털처럼 이리저리 아무리 뒤척여도 소용이 없었다. 잠든 언니를 피해 살금살금 도둑고양이 걸음걸이로 주방 옆 쪽방에 들어가 여자는 눈썹도 그려보고 립스틱도 발라보았다. 

 야, 이년아. 좀 이쁘게나 하지 이게 뭐여. 아이고 꼭 두억시니멨고롬.

 언니가 다가와 손에 침을 묻혀 가며 얼굴 이곳저곳을 문질렀다. 안되겠다, 이거. 참말로 내가 너 때문에. 언니가 머리를 흔들고서 다시 말을 이었다. 다시 세수하고 와야. 내가 새로 해줄텡게. 언니의 말에 여자가 한 달음에 달려나갔다. 어푸어푸, 멀리서 아침이 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좋냐?

 오른쪽 눈썹을 그리고 언니가 물었고, 히죽히죽, 오랜 만에 활짝 웃는 모습으로 여자가 대답했다. 

 가면 누가 있기는 있냐? 니 살던 데 알아보겄냐?

 왼쪽 눈썹을 그리고 언니가 다시 물었다. 몰라, 그냥 가보는 거지, 뭐. 버스 타고 갈 수 있대잖여. 버스 타고. 이번에는 여자가 웃음을 거두고 눈을 동그랗게 뜨며 대답했다. 

 근디 해경아. 진수 아제가 아홉 시에 온다고 안했냐. 근디 뭘라고 이렇게 서둘러야, 서둘르기를. 

 립스틱을 바르고 거울을 건네주며 언니가 타박을 놓았다. 

 아니야, 빨리 준비해야, 빨리 온당게. 언니, 언니. 나, 이쁘다. 그치?

 여자가 고개를 이리저리 꺄웃거리며 싱글거렸다. 부지깽이 하나가 여자의 등짝에 날아들었다. 이이이, 이 육시럴 년이, 이이이, 이 화냥년이. 이이이, 이년이 지 어미처럼 화냥년 될 판여. 화냥년 될 판이냐고. 어린년이 벌써부터 화장을 하고 지랄이여, 지랄이.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거울을 바라보는 여자의 등짝을 사정없이 후려치던 할머니.

 언니, 할머니는 잘도 죽었겠지?

 미친 년 말하는 뽄새하고는. 그걸 니가 알것냐, 내가 알것냐? 

 언니는 대답하고 일어나 주방으로 나가버렸다. 여자만 혼자 남아 히죽히죽 까닭도 없는 웃음을 흘렸다.      

 아홉 시에 온다던 진수는 오지 않았다. 똥마려운 강아지처럼 여자는 이리저리 하제 끝집 주변을 서성거렸다. 십 분이 지나고 이십 분이 지났다. 삼십 분이 다 되었을 때에야 진수가 유행 지난 양복을 말끔히 차려입고 멀리서 자전거를 끌며 절뚝절뚝 걸어왔다. 여자가 한 달음에 다가와 진수의 자전거를 낚아챘다. 

 아저씨, 인제 오면 어떻게 해? 미워 죽겠네. 미워 죽겠어!

 미, 미, 미안혀. 바, 바람이 마, 많이 불어서어. 너,너, 넘어,저저,졌당게.

 바람이 불면 진작에 왔어야지, 이씨 내가 진짜 미쳐. 늦었잖아. 어떻게 할거야, 진짜.

 버, 버, 버스 타고, 가, 가, 가려면 아, 아직 시간 있어. 느,느, 늦지 않았당게. 

 두 사람이 실랑이를 하며 식당으로 다가왔다. 자전거를 한쪽에 세워두고 여자는 언니가 챙겨준 것들을 문 앞에 가져다 두기 시작했다. 간장게장이 하나, 고운 쑥 뜯어 만든 쑥떡 한 시루, 솔잎술 한 동이. 준비를 끝내고 여자와 진수가 자전거를 타고 길을 나섰다. 하제 끝집을 벗어나 큰 길에 들어설 즈음, 등 뒤에서 여자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참말로, 참말로 나 정신 좀 봐라이. 해경아, 잠깐만 이라 와봐라이.

 바람에 묻혀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곳으로 와서 언니가 여자에게 봉투 두 개를 건넸다. 

 니, 내일 안와도 됭께, 이. 이거 갖고 맛난 것도 사먹고 그래, 니 하고 싶은 것도 하고, 이. 알것쟈? 그리고 이거 받아야. 진수 아제가 자기가 주기가 넘사스럽담서 날더러 좀 주라더라. 

 이게 뭔데? 돈이야? 

 봉투 안에 든 돈을 보고 여자가 소리쳤다. 바람을 뚫고 여자의 목소리가 자전거 뒷바퀴를 흔들었다. 조용히 해야, 언니의 말에도 아랑곳 없이 여자는 목소리를 높여 말을 이었다.

 진수 아저씨가 왜 나한테 돈 줘?

 뭐긴 이년아. 니가 연애하믄 돈 줘야한다고 항게 진수 아제가 무안해서 직접은 못주고이, 나를 통해서 이렇게 미리 안 주냐, 이. 긍게, 이. 긍게, 아따 참말로. 내일은 안와도 된다게. 아따 참말로. 그나저나 니는 그렇게 돈이 좋냐? 암튼 연애하고 돈 달라고 하고 그라믄 못쓰는디이, 참말로 챙피스러워서.

 아니, 돈이 좋은 게 아니랑게 그려, 언니도. 에이, 진짜. 내가 돈이 좋아서 달라고 한게 아니고, 다들 연애하자고 해놓고서는 돈을 준당게. 참말이여. 참말이랑께.

 식당에 오기 전에 여자는 읍내 고기 집에서 허드렛일을 돌보며 끼니를 때웠다. 그때 남자들은 혼자 사는 여자에게 연애를 하자며 농을 던졌다. 섬 밖으로 시집 들라던 할머니의 말을 듣고 무작정 섬을 떠나왔던 여자는 연애가 무엇인지 잘 알지 못했다. 내가 인자부터는 니 서방이구만, 그렇게 말했을 뿐 남편은 연애를 하자거나 사랑을 한다거나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남자들은 달랐다. 연애를 하자고 달려들며 밥을 사주며 손을 잡았다. 은근슬쩍 엉덩이를 만질 때면 비싼 회라거나 그런 걸 사주기도 했다. 흠흠흠 헛기침을 하며 여관방으로 여자를 이끌기도 했다. 그런 아침이면 까닭도 없이 돈을 건네주었다. 여자는 돈이 좋았다. 먹고 싶은 걸 마음껏 사먹을 수 있어서 좋았고, 티브이에서나 보는 예쁜 화장품을 살 수 있어서 좋았다. 근디 언니 여그 온게이, 사람들이 연애하자고를 안혀잖어. 읍내서는 그래도 내가 인기가 많았당게. 옻오리를 먹던 날, 시덥지 않은 이야기 끝에 여자는 그렇게 말했었다. 니 병이 그게 좋은 사람을 못 만나서 생기는 병이란다, 긍게 연애를 합니, 돈을 받니 그런 말은 그만두고 좋은 남자 만나서 시집을 가던지 살림을 살던지, 이. 그런 말끝에 나온 말을 두고 언니가 타일렀지만 아무 소용 없었다. 아니여, 언니 나 시집 안 가고 연애만 할텨 연애만. 여자는 그렇게 언니의 말을 올라탔다.  

 어이구, 이 화상. 니가 연애가 뭔지나 아냐? 남자가 뭐가 좋은데?

 남자! 남자 좋지. 죽은 창욱이 아빠가 섬에서 날 데고 와갖고이 첫날밤에 나한테 오는디. 자꾸만 물고,

 여자가 잠시 말을 멈추고 히죽거렸다. 

 물고, 물고 뭐 이년아. 니 서방이 막 물고, 빨고, 그러더냐? 

 말들이 멈추고 잠시 침물이 흘렀다. 그 사이로 꼴깍, 언니의 침 너머 가는 소리가 어둠을 흔들었다. 

 아니, 그런 게 아니고이. 긍게, 이, 그게, 물고, 

 다시 또 말을 멈췄던 여자가 숨을 고르고 말을 이었다. 

 물고,

 기, 같잖여. 남자 거시기가 딱딱하게 서 갖고서는. 토실토실한 물고기 한 마리가 내 몸 안에 이리저리 왔다갔다, 막 헤엄치는 거 같더랑게. 그게, 히히. 히. 그게 그게 좋아서, 히히. 언니, 난, 있잖여. 그래서 남자들이 좋은디. 남자들은 막 헤엄치고 그려고 나서이, 돈을 준게. 

 에이구, 이 미친년아, 미친년아. 그게 다 널 갖고 노는 거지, 니가 좋아서 그런거냐?

 나도 알어, 내가 뭐 바보간디. 근디……

 근디 뭐 이년아. 

 그렇게 안흐면, 돈을 안 받으면 남자들이 한 번만 날 만나고 다시는 만나지 않더랑게. 근디, 모른 척 돈을 받으면 두 번도 좋고, 세 번도 좋고. 진수 아저씨한테는 그래서 돈을 달라고 혔을까, 내가. 

 내가 아냐, 이년아. 근디 진수 아제가 돈 주면 잘 거여? 연애할거냐고?

 그 밤 여자는 대답하지 않고 헤헤거리다 제풀에 쓰려져 잠이 들었다. 

 진수와 여자를 보내놓고 언니는 문득 그 밤이 떠올라 죽은 영감 사진 뒤편에 숨겨두었던 비상금을 꺼내들고 달려왔던 터였다.        

 바람 속에 진수의 자전거가 휘청휘청 흔들리며 조금씩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다. 마을을 벗어나는 언덕을 오를 때쯤에는 힘이 드는지 진수가 헉헉거렸다. 

 아저씨, 아저씨. 

 여자가 진수를 불렀다. 

 진수 아저씨, 저기 좀 보랑게. 인자 진짜 봄이 올려나, 이. 저기 저기. 인자 저것들이 가지마다 촛불을 다 커고 있네. 

 헉헉거리며 진수가 바라본 곳에 목련 나무 가지마다 하얀 봉우들이 바람에 흔들렸다. 비틀비틀, 언덕을 오르는 진수의 자전거가 바람 속에서 위태롭게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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