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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에덴 0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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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헌용 Nov 17. 2022

살구, 개살구

4

 어머니는 내가 얼마나 미울까? 굴러온 돌은 박힌 돌을 빼어 내고 통장을 독차지했다. 어머니에게 미운 자식일 테지만 아버지에게는 내가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유서는 내게만 유리하게 작성되어 있었다. 매형은 절대 처가 어른과 함께 살 만한 성격이 아니었고 회계사인 그에게 통장에 있는 돈은 푼돈이나 다름없을지도 몰랐다. 그러므로 그것은 차라리 유서라기보다는 똥을 먹어 가면서라도 당신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에게 돈을 넘겨주겠다는 협박이었다. 누나와 매형은 그 협박을 받아들였다. 떨어지는 단풍 밑에서 매형과 누나는 아버지의 유서 끝에 모든 상속권을 내게 넘긴다는 글을 더해 쓴 뒤 지장을 찍어 주었다. 어머니가 아직까지 비밀번호와 도장을 넘기지는 않았지만 통장을 보고 있노라면 헤헤 절로 웃음이 나왔다. 그 돈이면 작은 집 하나 사고도 트럭 하나쯤은 장만해도 좋을 터였다. 어머니가 쉬는 날이면 나는 아이를 맡겨 놓고 주위에 단독주택을 보러 다녔고 또 때로는 가까운 중고차 매매상을 기웃거리기도 했다. 아버지가 똥 먹는 날이 많아지면서 어머니가 일찍 집에 들어오는 날이 많아졌고 그럴 때면 나는 서둘러 집을 나섰다. 트럭을 사면 나는 자유로울 수 있을까, 뻥튀기 기계를 차에 싣고 나는 골목골목 돌아디니며 뻥이요, 뻥이요, 외칠 것이다. 뻥이요, 외치고 난 뒤 뿜어져 나오는 하얀 연기는 언제 보아도 달콤했다. 한 주먹이 한 가마니가 되는 마술을 어린 나는 부르르부르르 몸을 떨며 바라보았다. 어느 날에는 뻥튀기 장수 손수레를 밀며 제자로 거둬 달라고 조르기도 했다. 노을이 들고 어딘지 모르는 곳까지 따라온 나를 아저씨는 주머니 가득가득 뻥튀기를 넣어 주며 돌아가라고 했다. 뻥튀기를 입 안 가득 욱여넣으며 돌아오는 길, 어둠은 깊었고 불쑥불쑥 달려드는 개 짖은 소리는 사나웠지만 나는 울지 않았다. 돌아와 난생처음 어머니에게 아주 심한 매질을 당했지만 그때도 울지 않았다. 이불을 덮고 누워서야 눈물이 흘러나왔다. 무서웠던 밤길 때문도 아팠던 매질 때문도 아니었다. 나를 받아 주지 않았던 아저씨가 원망스러워 울음이 났다. 내가 기억하는 달콤한 어린 시절은 그뿐이었다. 쌀팔 돈이나 누나의 수업료를 걱정하는 어머니를 나무라면서 아버지는 기어이 내 학원비를 꼬박꼬박 챙겨 주었다. 학원에 가기 싫었지만 나는 학교 갔다 돌아와서 주산 학원에 가고 주산 학원에서 돌아와 산수 학원에 가고, 다시 돌아와 영어 학원에 가야 했다. 내게 어린 시절의 기억은 학교와 학원이 전부였다. 시장에서 뻥튀기를 팔던 친구를 우연히 만나 내가 그토록 많은 술을 마신 까닭은 그러니까 뻥튀기 장수를 쫓던 기억 때문이었다.

  친구는 나를 제자로 받아 주마고 했다. 가벼운 발걸음을 하고 중고차를 보러 다니던 어느 날 나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친구는 차만 따로 사는 것보다는 기계와 차를 함께 사는 게 좋다고 했다. 그러지 말고 내가 좋은 놈 하나 알아봐 줘? 좋은 물건 나오면 바로 가계약이라도 하고. 일단 돈백만 있음 되는디…… 말끝을 흐리던 친구는, 근데 성현이 너 정말 마음은 단단한겨. 너 같은 샌님한테 장돌뱅이라는 게, 그게, 생각보다 쉽지만은 안 혈 텐데, 걱정도 잊지 않았다. 나는 그 소리가 고마워서 당장 계약금을 보내마고 계좌번호를 받아 적었다. 집에 돌아와 이곳저곳 숨겨 둔 비상금을 모아 계약금을 보내려다 말고 나는 그러나 친구를 향해 욕을 퍼부었다. 버리지 못한 법전에 숨겨 둔 오십 만 원과 싱크대 서랍 뜯어진 합판 사이에 숨겨 둔 십 만 원과 이제는 절대 덮지 않는 신혼이불에 숨겨 둔 십 만 원과 유모차 시트 밑에 숨겨 둔 몇 만원을 꺼내다 보니 문득 내가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개새끼, 누구를 봉으로 보고 사기를 치려고. 물건도 없이 무슨 계약금이야, 계약금이. 씨발새끼, 내가 뭐뭐 눈 뜬 장님이야. 씩씩거리고 있을 때 아이가 앙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바람을 쐬면 기분이 나아질까 아이를 유모차에 태워 거리를 헤매다가 나는 그만 농담처럼 내 앞에 펼쳐진 세계 속으로 발을 집어넣었다. 자영업 지원, 이라는 말은 내게는 그야말로 농담이나 다름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그 말에 이끌려 신차 매장에 들어섰다. 자영업 지원이란 것이 고작 차 값에서 오십 만 원을 빼 주는 것이 전부였지만 차를 계약하고 돌아오는 길에 나는 금방이라도 부자 장사꾼이 된 기분이었다. 바람을 타고 달콤한 뻥튀기 냄새가 날아다녔다.      


  뻥이요! 싸움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오랜만에 기분이 좋아진 나는 똥 먹는 아버지를 옆에 두고 맥주를 마셨다. 어머니도 하나, 아내도 하나, 아버지를 옆에 두고 맥주를 마셨다. 똥 먹는 아버지도 똥을 안주 삼아 맥주를 마셨다. 모두들 홀짝홀짝 맥주를 마시며 아주 잠깐 우리는 행복했다. 그러다가 맥주 깡통을 몇 개 더 마시고 잔뜩 기분이 올라와 나는 나도 모르게 뻥이요, 소리쳤다. 어그적어그적 똥을 씹던 아버지가 헤헤 웃으며 뻐, 뻐, 뻥이요, 나를 따라 소리쳤다. 아버지의 입에 가득했던 똥이 사방으로 튀었다. 아내가 어쩌지 못하고 바닥을 훔칠 때 아기가 울음을 터뜨렸다. 기시감 속에서 나는 푸하하 푸하하 웃었다. 아버지가 푸하하 푸하하 웃으며 다시 똥을 사방에 튀겼다. 푸하하 푸하하 웃으며 뻥이요, 뻥이요, 아버지가 소리쳤고 내가 따라서 뻥이요 뻥이요 소리쳤다. 

  너, 너, 너까지 도대체 왜 이러니? 너이 아버지 하나로도 나 힘들다, 그런데 너는, 너는 왜 자꾸 왜 자꾸 이러는 건데? 

  어머니가 갑자기 소리쳤다. 나는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해 가만히 맥주만 홀짝거리다가 문득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꼈다. 내가 왜 이러는 걸까? 나를 이렇게 만들어 버린 건 누구일까? 그게 모두 어머니로부터 시작된 것만 같았다. 나는 들고 있던 깡통맥주를 바닥에 쾅쾅 내리치며 소리쳤다. 

  왜긴! 왜긴! 지금 나한테 왜냐고 묻는 거예요? 내가 왜 이렇게 됐는데, 왜? 

  소리치고 나서 나는 그러나 한참을 막막했다. 그것은 누구에게랄 것도 없는 물음이었고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 물음이었다. 잘 길들어진 개처럼 자랐지만 그런 환경을 단 한 번도 탓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는 그게 모두 어머니 탓이라며 억지를 부리고 싶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집안 살림이나 맡아 돌보는 것도, 분유를 먹고 돌아서면 똥을 싸는 아기를 달래는 것도, 그 똥을 아버지에게 가져다 먹이는 것도, 그 똥을 먹은 아버지의 입 주위에 는적는적 달라붙어 있는 똥을 닦으며 사는 것도, 모두 진짜로 어머니 때문인 것만 같았다. 

  내가 왜 이렇게 됐는데? 그게 다 나를 이렇게 키운 어머니 탓이잖아요. 다, 어머니 탓. 나는 다시 한 번 소리치며 잘 먹지도 못하는 소주를 찾아 마셨다. 

  소주에서 똥냄새가 확 풍겼다. 

  점심 무렵이었다. 꿀물을 타 오며 아내가 나를 나무랐다. 대꾸할 힘이 없었다. 당신 운전면허증도 없는 사람이 글쎄 차는 어쩌려고…… 말꼬리를 흐리며 아내가 낑낑거리는 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먹지도 못하는 술을 그러게 뭐 하러 그리 마셔요. 근데, 당신, 아버지가 왜 똥 먹게 되었는지 진짜 모르는 거예요. 아니면 모른 척하는 거예요? 아무리 어렸다지만 어떻게 그런 걸 잊을 수가 있지…… 아내가 다시 말꼬리를 흐렸다. 아내의 말꼬리를 잡고 지난밤 어머니의 말들이 달려들었다. 

  아무래도 농담만 같았다. 

  그래, 이놈아, 다 내 탓이다. 내 탓. 어린년이 일찍 까져서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학교 선생이랑 서방질 한 것도 잘못이고, 그래서 세상 물정 없이 너 갖은 것도 잘못이고, 무엇보다 그런 걸 숨겨 보겠다고 착한 니 아버지랑 고향 등지고 이렇게 살고 있는 것도 잘못이고. 그러니 내 탓이지, 내 탓. 그래서, 그래서, 너는 그래 친자식에게도 안 주는 유산 물려주겠다니까, 좋아라 그 길로 차를 산다 집을 산다 난리를 치니, 그래, 아무리 피 한 방울 안 섞인 누나라지만 그래 너는 너이 누나한테 미안하고 부끄럽지도 않니. 그렇게 잘나서 너는 부끄럽지도 않니, 부끄럽지도.

  시골에 큰 부잣집에 딸 하나가 있었다. 계집아이가 무슨 학교냐고 했지만 아버지는 아이를 고등학교에 보냈다. 그런데 그만 그곳에서 계집아이는 학교 선생님과 눈이 맞아 아이를 갖게 되었다. 남부끄러 끙끙 앓던 아버지가 이웃에 사는 애 딸린 홀아비에게 서둘러 시집을 보내고 멀리 떠나 살라 일렀다. 그때 아버지는 홀아비에게 큰 땅을 떼어 주었다. 

  너 배고 서울 살 때도 서울서 사업 실패해서 시골로 시골로 떠돌 때도, 그리고 이놈아, 니 누나 시집갈 때도 그 땅만큼은 안 팔겠다고 니그 아버지가 그랬어. 왜, 왜, 그랬는 줄 알어? 그래야지, 그래야지, 나를 사랑하는 거라고, 그래야 자기가 나를 사랑해서 함께 사는 거라고, 그래야 자기 마지막 자존심이 지켜지는 거라고…… 그런데, 그런데, 너는 아직 아버지 저렇게 살아 계신데 벌써 그게 욕심이 나니, 그래, 그게 욕심이 나니…… 

  에이, 씨, 진짜 뭐라는 거야? 

  더 듣지 못하고 소주병을 집어던졌다. 갑자기 뺨이 얼얼했다. 그러나 그것은 어머니의 손이 아니고 아버지의 손이었다. 가, 갑돌이, 이, 이, 이놈의 새끼. 너, 너, 진짜 이놈의 새끼, 정색을 하던 아버지는 그러나 오래지 않아 다시 농담이었다. 갑돌아, 너야 석봉이 알쟈, 석봉이 어미가 왜 밤에 불을 끄고 글쓰기 시합을 혔는지 알어? 그래야, 떡이건 글이건 바꿔치기 해도 모른게 그려. 석봉이 어미가 실은 떡을 허천나게 대충 썰어야. 그랑게 슬쩍 바꿔치기라도 해야겠고, 그래서 밤에 시합을 한겨. 밤에. 밤에 일어난 일은 다 모르는 거구만, 암만 밤에는 다 모른 거랑게. 허허허, 아무도 따라 웃지 않았다. 인자, 그만 자자야, 그만허고 자더랑게. 아버지의 목소리가 무거웠다. 인자 자자야, 방으로 들어가며 아버지가 농담처럼 똥 하나를 덥석 물었다. 아버지 말보다 어머니 말이 모두 농담 같아서 나는 소주를 몇 잔 더 마셨다. 그러니까 아버지의 자식은 내가 아니고 누나였다. 그런데 왜 할아버지에게 받은 땅을 팔아 나를 주려고 했던 것일까? 아버리다면 이럴 때 또 어떤 농담을 했을까? 근디 문제는 그 집 처자가 그 오줌을 흠뻑 마시고이 아를 뱄어야, 그게 너이구만, 그런 농담 말고 다른 농담이 듣고 싶었다. 나는 애써 아내를 외면하며 끙 하고 돌아누웠다. 아따야, 이것도 제법 맛난다야, 어찌, 너도 한번 먹어 볼텨, 아버지의 목소리가 나를 골목으로 이끌었다. 어쩌면 그때도 어머니는 돈을 마련하려 외가에 갔을지도 몰랐다. 나는 아버지가 해 주는 밥을 먹고 집을 나섰다. 어디쯤 갔을까, 갑자기 똥이 너무도 마려웠고 화장실을 찾지 못해 그만 아무 골목이나 들어가 똥을 누웠다. 대문이 와락 열리고 무섭게 생긴 여자 하나가, 이놈의 새끼 이곳에서 똥을 싸면 어떻게 해, 소리를 질렀다. 밑도 닦지 못하고 바지춤도 끌어올리다 말고 무릎에 바지를 걸치고 뒤뚱뒤뚱 달렸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다리가 꼬여 그대로 넘어지고 말았다. 달려온 여자가 무릎 꿇렸다. 바지를 올리려고 했으나 여자의 빗자루가 내 손을 막더니 닭부리처럼 빗자루를 세워 내 아랫도리를 툭툭 치며 말을 이었다. 

  그대로 앉어 있어. 이래야 정신을 차리지, 정신을. 응, 다 큰 놈이 그래 어디다 함부로 똥을 싸고 그래, 응, 어디다 똥을.

  햇살이 내 다리를 지나 아랫도리를 간질였다. 킥킥거리며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이 지나갔다. 배꼽에 머물던 햇살이 목 언저리를 더듬었을 때 갑자기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니, 어떤 씨버럴 년이 우리 아들을 이래 놓은겨, 응. 어떤 씨버럴 년이. 아버지는 옆에 서 있는 여자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렇게 소리쳤다. 

  아니 어따 대고 욕이에요, 욕이. 

  너야, 씨발, 니년이야?

  여자도 만만치 않았다. 

  아니, 어따 대고 자꾸 욕이냐고, 욕. 내가 그랬어. 내가, 왜? 그럼 애새끼가 남의 집 대문 앞에 똥을 싸는데 재수 없게 가만히 둬. 가만히 두냐고?

  이 씨발 년이요, 이 씨발 년이 뭘 잘했다고 지랄이여, 응. 이 씨발 년이. 똥이 재수가 없냐? 똥이 재수가 없어 이년아. 이 씨발 년은 화투 치면서 똥도 안 먹을 년인가벼, 이. 똥이 왜 재수가 없어 이년아. 

  아, 진짜 이 아저씨가 뭘 잘했다고. 에이 재수가 없으려니까. 알았어요. 아저씨, 알았으니까, 애새끼 데리고 그냥 가세요, 네. 

  야, 이 씨발 보지에 똥 찍어 먹을 년아. 아버지의 욕은 점점 거칠어졌다. 동네 사람들이 하나둘 집 밖으로 나와 웅성거리며 싸움을 말리려 했지만 아버지의 서슬에 쉬 달려드는 이가 없었다. 이때다 싶어 내가 바지춤을 걷어 올리고 아빠, 그만 가자, 사정을 해도 아버지는 소용이 없었다. 가, 갑돌이 니는 잠깐만 있어야. 내 아조 저년을요, 아버지는 다시 여자를 향해 욕을 내뱉었다. 왜 자꾸 이 지랄이야. 자꾸 그러면 경찰 부를 거야. 경찰. 경찰이라는 말에도 아버지는 굴하지 않았다. 내가 다시 한 번 아버지 손을 잡아끌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저 내 머리를 한번 쓰다듬을 뿐 발길을 돌리지 않았다. 아버지가 여자를 향해 소리쳤다. 

  니가 이년아 애한테 잘못했다고 사과를 해야지, 니년도 무릎 꿇고 빌어야지. 

  아니, 보자보자 하니까 이 아저씨가. 더러운 똥 싸 놓은 건 누군데, 누가 누구한테 미안해. 누가 누구한테 미안해? 응, 그냥 미안하다면 될 걸, 왜 아저씨가 성질을 부리는데. 누구는 욕할지 몰라서 그래. 동네에서 서로 챙피하니까 그냥 넘어가려는 거지, 응. 이 더러운 똥은 누가 싸 놓고 나한테 지랄이야. 여기에 이렇게 싸 놓으면 누가 치우는데 응. 응!

  음마, 이 씨발 년이 인자 막해 보자네이. 이 씨발 년아, 똥이 뭐가 드러워, 니년은 똥 안 싸. 니년은 똥 안 싸고 똥구녕으로 오줌만 싸냐, 니년은 똥구녕으로 밥을 싸냐, 응.

  그래, 이 씨발 놈아. 정말 참자 참자 했더니 응. 그래 나는 똥구녕으로 오줌만 싼다. 응, 어쩔래, 어쩔 건데. 안 더러우면 안 더러우면 니가 그 똥 처먹던지, 처먹어 보던지, 응.

  이 씨발 년이요. 이 씨발 보지에 똥 싸 먹을 년이요. 그래, 내가 이 똥을 먹으면 그때는 니년이 무릎을 꿇고 빌어 볼래, 그때는 이놈아한테 참말로 빌어 볼래, 응?

  치, 누가 빌라면 못 빌어, 먹어 이 자식아. 처먹어 보라고. 그럼 내가 천만 번이고 무릎 꿇고 잘못했다고 할 테니까, 응.

  더 참지 못하고 아버지가 아주머니에게 주먹을 들이댔다. 그러다가 아버지는 성큼성큼 걸어가 한 웅큼 똥을 쥐고 돌아왔다. 이 씨발 년 이거 먹었는데 안 빌기만 해 봐라, 이를 앙다물며 말하고는 아버지가 입을 크게 벌리고 똥을 한 웅큼 욱여넣었다. 어어, 여자가 그 서슬에 풀썩 무릎을 꿇었다. 꿇었다가 아, 아저씨, 미, 미안해요, 애, 애야 미안하다, 소리치듯 사과하고 일어나 달아났다. 아버지가 야, 이 씨발 년아 제대로 사과 안 혀냐, 제대로, 소리칠 때 여자는 벌써 대문을 걸어 잠그고 들어간 뒤였다. 훌쩍거리는 내 머리를 아버지가 쓰다듬으며 씨익 웃어 주었다. 

  아따야, 이것도 제법 맛난다야, 어찌, 너도 한번 먹어 볼텨.

  아버지 손에 묻어 있던 똥 몇 덩어리가 내 머리에 는적는적 달라붙었다. 누런 빨래비누로 몇 번이나 머리를 감았지만 머리카락 사이사이를 파고든 똥냄새는 쉬 지워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농담이었다. 나는 내가 기억하는 그날의 일들을, 햇살 아래 작은 마당에서 똥 묻은 내 몸을 씻겨 주던 아버지의 손길을 농담으로만 기억했다. 그 모든 것들은 그저 아버지가 들려주는 농담 가운데 하나였다. 시원찮은 농담은 잊고 살아도 그만이다. 아니 시원찮은 농담이라면 잊고 사는 편이 좋다. 아버지가 똥을 먹게 된 것도 내가 아버지의 자식이 아니라는 것도 시원찮은 농담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그래도 세상은 바뀔 게 없었다. 그래야 세상은 굴러갔다. 그래서 아버지는 여전히 어그적어그적 농담처럼 똥을 먹는 것일까? 도대체 저 똥을 무슨 맛으로 먹을까, 나도 모르게 입안에 침이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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